훌륭한 결혼만큼 즐겁고 황홀하고 매력적인 인간관계, 즉 무언에 의한 마음의 교류는 없다 -마틴 루터-
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배우자를 자신의 인생에서 결코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젊은 날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져 그때의 지성과 감성으로 결혼을 결정하고 나머지 인생을 전부 영향받으며 산다. 시작은 봄이었으나 살다 보니 가을 겨울이다. 어쩌면 봄은 짧고 긴 겨울을 지내야 했을 수도 있다. 인연이나 운명이라는 말은 이 기막힌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처방전 같은 단어이다. 스스로를 납득시킬 단어가 필요했을 것이다.
첫 만남의 기억
인생은 조금 조숙했던 나를 놀리기로 작정한 것 같다. 중학교 때부터 죽어도 선생은 하기 싫다 했는데 유치원 교사가 되었고 선생 옆집에도 살기 싫다 했는데 학원 강사와 결혼해 한집에 살고 있다. 남편을 처음 만난 것은 영어 학원이었다. 그는 강사, 나는 수강생. 강의실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을 때 ‘내 남자’라는 단어가 톡 떠올랐다. 다른 건 다 잊어도 이 순간만은 기억한다.
그런 남자와 결혼하고 내 인생은 질기고 고달픈 무엇으로 변했다. 그 배경에는 시댁도 한몫했다. 종편에서 ‘스트레인저’라는 남녀 연애 리얼 프로그램을 보다가 발끈했다. 첫인상에서 여자들의 높은 선택을 받은 남자가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다. 이상형을 묻는 여자의 질문에 “ 부모님께 잘하는 여자”라는 대답이 들렸다.
밥을 먹다 말고 티브이 앞으로 달려가 저런 대답을 하는 남자의 면상을 확인했다. 희멀건 하게 생겼다. 서른이 넘은 남자가 이상형을 말하는데 성격이나 취미, 가치관의 공유가 아니라 부모에게 잘하는 여자라니! 시작도 하기 전에 역할을 정해놓고 그 역할을 여자에게 지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직 저런 말을 하는지, 딸 가진 부모로서 저런 남자는 절대 안 된다며 혼자 화를 삭이다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흥분하는지 의아했다. 내 상처가 건드려진 것이다. 실은 저 남자에게서 내 남편의 모습을 본 것이다.
매주 주말이 되면 시댁에 다녀오는 것이 큰 숙제였다. 곱게 맞이해 주지도 않으시면서 자주 안 온다고 불호령이었고, 들어가도 늦게 왔다고 구박이었다. 시댁 대문을 들어설 때에는 심호흡을 하거나 서로 먼저 들어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주말이 다가오면 시댁 스트레스로 자연히 부부 사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남편도 본가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나를 대하는 방식은 시댁 어른들과 같았다.
첫 만남의 기억은 그런 날들에서 한 가닥 위안이 되어주었다. 누군가의 영향이나 강요가 아니라 순전한 내 선택이었다는 점이 내 인생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부모나 형제처럼 내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관계에서 느끼는 무력함은 적어도 없었다. 그와의 만남이나 결혼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사랑에 빠져 있던 그때의 나를 원망하거나 자책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돌이킬 수 있다면 돌이키고 싶은 순간들은 참 많았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날들도 분명히 있었고 남편만큼 강한 내 성격 탓도 하다 보니 아이가 자라 어느새 초등학생이었다.
할머니 장례식 후 처음 든 생각은 ‘이혼하자’였다.
그런 어느 날 치매로 고생하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이 마흔이 넘어 처음 죽음을 목격했다. 할머니와는 정서적 유대가 깊었던 만큼 슬픔도 엄청났다.
‘사람이 죽는구나, 정말 죽는구나, 이렇게 그냥 사라지는데 이렇게 애쓰고 살아야 하나, 이혼하자’ 나는 진지하게 진정으로 이혼을 원했다. 남편은 갑자기 진심으로 이혼을 고집하는 나를 보고 당황했다. 싸울 때마다 이혼 얘기를 꺼내기는 했어도 그 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늘 억압당한다는 기분이었다. 내 욕구가 억압당할 때는 그나마 나았다. 나로서는 자연스러운 감정과 생각이 배척당하고 시빗거리가 될 때에는 숨 막히는 분노와 좌절을 느꼈다. 싸움은 치열했다. 지는 것을 몰랐던 나는 이기려고 애썼고 그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싸우고 나서 남편이 먼저 사과하는 법은 없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길들여져 사는 동안 다툼을 피하려 나는 스스로를 통제하고 억압해야 했다. 젊은 날 평화와 자유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자유를 선택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되고 보니 내 자유는 평화를 위협하는 몹쓸 가치였다.
할머니의 죽음을 본 후, 처음으로 아이만큼 내 인생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받을 상처와 아픔을 덮기 위해 내 인생 전체를 던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앞으로 살아갈 자기 인생이 따로 있고 이혼한 가정도 아이의 운명이라고 모질게 마음먹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엄마가 되고부터 약해진 내가 그렇게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 이혼을 요구하니 남편이 변했다. 고집 세고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처음으로 내게 사정을 했다. 아마도 사랑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하룻밤을 꼬박 새운 남편의 만류에 내가 설득당한 배경에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혼의 위기는 지나갔지만 남편은 역시 같은 사람이었고 대신 내가 변했다. 억압보다 싸움을 택했다. 아무리 싸워도 그때처럼 아이를 두고 또 모진 마음을 먹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싸우면서 생각했다. 이혼할 절호의 기회는 놓쳤으니 이왕 이렇게 된 것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참고 살자. 그리고 아이가 대학생이 되자 진심으로 기뻤다. 이제 마음대로 이혼해도 되겠구나. 이제 결혼생활을 누구를 위해 지속할 필요가 없었다. 남편과 같이 살지 말지 오로지 내 의지에 딸린 것이었다. 그 자유로움이 좋았다. 자유롭고 나서 돌아보니, 우리가 아무리 많이 싸웠다 해도 싸운 날보다는 함께 웃고 장난치고 서로 의지하며 산 날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 이야기는 참 하기 힘든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저렇게 말하면 천하의 난봉꾼으로 보인다. 이 얘기 저 얘기 섞어가며 말한다 해도 입체적인 사람을 평면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어떤 존재도 내 인생의 행복과 불행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일상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남편은 다정하고 따뜻하고 유머감각이 있어 나를 웃게 만든다. 쇼핑하고 카페 가고 산책하고 심야 영화 보기까지 마음이 잘 맞아 더 이상의 파트너가 필요 없다. 무엇보다 가정적이라 주말마다 가깝거나 먼 곳으로 가족여행을 가고 딸 사랑도 지극해서 좋은 아빠이다.
그런데, 동시에 사람 숨 막히게 하고 넓은 아량을 기대할 때마다 여지없이 치졸함의 끝을 보여줬다. 세상 너그럽고 학식 있는 남자를 보면 내 남자의 쫀쫀함과 냉정함에 정이 떨어졌다. 이기심은 또 얼마나 쩌는지, 식탐 많고 옹졸하고 게다가 가끔 무식하기까지 했다. (남편이 나를 어떻게 묘사할지 사실 걱정이 좀 된다)
남편은 나의 가장 친밀한 영혼
그런데 아프고 보니 남편이 제일 만만했다. 딸은 여전히 내가 보살펴야 할 대상이었고 친구나 다른 가족은 멀리 있는 존재였다. 오롯이 나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간호병동에 입원한 첫날 남편이 숙소로 돌아가야 했을 때 혼자 버려진 기분이었다. 다음 날 병원에 남편이 왔을 때 세상이 함께 온 것 같았다. 가장 힘든 순간에 남편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그렇게 내 존재 전부를 남편과 함께 했다. 내가 가장 약하고 힘없을 때,남편은 내 가장 친밀한 영혼이었다.
남편은 하던 일을 접고 부동산에 뛰어들었다가 우연히 마트 일을 맡게 되었다.
마트 일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힘쓰는 일을 안 해 본 사람이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보통 부부가 같이 해야 하는 일을 혼자서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아침에 눈뜨면 남편은 이미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쉬는 날 없이 음료수를 채워 넣고 매일 세제를 들였다 내놨다 반복했다. 처음에는 재미있게 생각했던 일이 할수록 힘든 일임을 깨달을 때마다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채워나가는 것을 보며 놀랐다. 힘들어서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데도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는 남편이 눈물겨웠다.
남편을 향해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감정이 생겨났다. 존경, 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을 존경하게 되었다. 남편이 내게서 그토록 받기 원하던 존경이 넥타이에 말끔한 양복이 아니라 목장갑에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모습에서 느껴졌다..
2년 계약이 끝나기도 전에 얼마 전 오토바이 사고로 어깨 접골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도중에 보호자를 찾아서 후덜 거리며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가운을 입고 소독까지 마치고 들어가 보니 언제나 나를 보호해 주던 남편이 자기 몸을 의사에게 맡긴 채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어깨에는 구멍이 뚫려있었고 모니터에는 남편의 이두박근이 찢어져 해파리처럼 나붓끼고 있었다. 자기 몸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어깨를 드러낸 채 잠들어 있는 남편이 한없이 연약해 보였다. 의사 선생님은 찢어진 이두박근도 같이 수술한다는 사정을 설명하러고 보호자인 나를 부른 것이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 보다 내 심장은 더 쪼그라들어서 나왔다.
한번 생긴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남편이 이쁘게만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언제 변덕스러운 내 마음이 심술을 부릴지 모른다. 남편 또한 언제 기대를 저버리고 미운 짓을 할지 모른다.
그래도, 이 세상에서 내가 누군가 한 사람의 영혼을 감싸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남편이 될 것이다. 나로 인해 가장 많이 웃고 울고 화내고 아프고 상처 받은 사람이다. 내가 가장 많이 미워하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이다. ‘남편의 소울메이트 되기’는 계속 이루어나가야 할 내 버킷이다. 지금 내 안에 남편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를 빼고 내 인생을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