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하게 롯데 야구 보기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누리는 매확행(매일의 확실한 행복)

by now nina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젊음을 모두 쏟아부은 그라운드를 떠나 홀로 방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벽에 기댔을 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면
그 선수는 진정 야구를 사랑했노라고
- 롯데 최동원-

봄기운이 사방으로 간지럽게 펴져나간다.

봄이 오는 것만큼 기다려지는 것은 야구 시즌 개막이다. 봄과 야구, 설레는 시기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KBO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경기도 즐겨볼 것이다. 특히 류현진은 한화 시절부터 좋아했던 선수라 LA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류현진 경기를 보는 것이 은퇴 후 버킷이기도 했다. 지금은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을 해서 LA 다저스 스타디움 가는 것은 보류해야 할 일이 되었다.


처음 야구를 좋아하게 된 것은 30년 전이다.


91년 봄, 첫 발령을 경북 영양으로 받았다. 눈을 들면 빽빽한 산이었고 초록은 온 천지에서 숨 막히게 쏟아졌다. 버스는 하루에 2번 다녔다. 학교 담장 바로 옆 사택으로 퇴근하면 25살 젊음은 갈 곳이 없었다. 금방 어두워지는 산골 고추밭 귀퉁이에 앉아 멀리 자동차 불빛이 보이면 반가웠다. ‘저걸 타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도시에 데려다줄 수 있는 자동차를 자세히 보려고 찻길로 나서니 덜덜 소리를 내며 경운기가 그 형태를 드러낸다. 사택으로 발길을 돌리는 심정이 아득해진다. ‘경운기를 타고 가면 언제쯤 부산에 도착할까’ 방 한편 TV에서는 야구경기가 한창이었다. 부산 롯데 자이언츠! 부산을 연결해 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았다. 경기 보는 법도 모르면서 그렇게 야구에 빠져들었다.


야구는 매 경기 각본 없는 실시간 드라마를 연출한다. 잘 이기고 있다가도 한 번에 뒤집어지기도 하고, 질 듯 질 듯하면서 끝까지 마무리를 잘하는 경기도 있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한다. 선발이 누구냐에 따라 그날의 승패가 대강 점쳐진다. 그러나 투수의 컨디션이나 경기 운에 따라 흔들리거나 위기상황이 온다.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마운드에서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혼자만의 싸움을 하는 투수를 보며 마음을 졸인다. 야구에서 안방마님으로 불리는 포수는 경기의 실제적인 리더이다. 투수의 주특기를 바탕으로 그날의 좋은 공을 파악해서 상대 타자에게 불리한 공을 주문할 수 있어야 한다. 10개 구단 전체 선수의 장, 단점을 알고 있어야 하는 중요한 자리이다. 유격수, 외야수, 내야수들도 단 한 번의 실수로 경기의 흐름을 내어줄 수 있기 때문에 잠시도 방심하면 안 된다.


공격에 나섰을 때는 타석에서 집중력이 중요하다. 홈런을 날리고 안타를 치고 포볼을 골라내는 선구안은 기본이고 투수와의 기싸움에서도 밀리면 안 된다. 도루를 하고 주루사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달리기 실력도 기본이다. 팀 배팅을 위해 번트나 희생플라이도 칠 수 있어야 한다. 상대 투수의 공 배합을 지켜보다가 노림수를 가지고 타석에 들어서야 한다. 팬들의 원성을 듣지 않으려면 적어도 병살을 피해야 한다.

야구 중독


사직구장에서의 응원문화는 야구의 또 다른 재미이다.

선수들의 얼굴이 크게 그려진 현수막이 나부끼고 타석이 바뀔 때마다 선수 맞춤용 응원가를 부른다. 롯데에서 이적한 선수가 타석에 섰을 때는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고 상대 투수가 우리 타자를 견제하면 다 같이 “ 마(견제하지 마)”를 외친다. 경기 초반에 롯데가 이긴다 싶으면 “부산갈매기”를 후반에 이긴다 싶으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떼 창 한다. 7회가 가까워지면 나누어 주는 쓰레기봉투를 머리에 쓰고 다 같이 물결을 탄다. 부산사람들의 단순하고 꾀 없는 목소리에 넘치는 활력이 좋다. 같은 팀을 응원하며 느끼는 동질감은 야구장 치맥의 맛을 더 좋게 만든다.

야구장 직관도 좋지만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은 TV 시청이다. 6시 30분에 맞추어 빨리 샤워를 마치고 소파에 느긋하게 몸을 파묻고 국민의례부터 본다. 누가 오늘의 히어로가 될 것인지 선수들의 얼굴을 살피며 맥주 캔을 따는 손맛은 좋다. 매일 저녁의 확실한 행복을 야구가 보장해 준다. 야구가 없는 월요일은 그래서 허전하다.


어느 날 한창 지고 있던 경기가 8회 말에 드라마틱하게 반전이 일어나고 있는데 남편이 퇴근해 저녁밥을 달라고 했다. 한순간도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는 바로 그때 밥을 달라고 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야구에 빠져 밥을 소홀히 하는 나쁜 아내는 야구로 인해 남편과 싸웠다. 어느 날은 딸이 나에게 그랬다. “엄마는 롯데 진날은 나한테 화내더라.” 말도 안 되는 소리, 롯데는 거의 5할 꼴로 지는데 그럼 내가 하루 걸러 화를 낸다는 말이냐! 그래, 아무튼, 야구 중독이다!


문제가 있다고?


그런데 여기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야구는 평균 3시간, 타자들 상태 좋으면 4시간, 연장까지 가면 5시간을 끈다. 한마디로 하루 여가를 야구 보는데 다 보내버린다는 말이다. 퇴근하고 야구 보면 자야 할 시간이다.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야구를 안 보고 그 시간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인생이 꼭 심각할 필요는 없으며 지성이나 학문은 다른 사람이 하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내 할 일만 한다는 단순한 사람인데도 말이다.


직장인에게 퇴근 후의 시간은 중요하다. 그 시간이 내 시간이기 때문이다. 운동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인생의 의미 있는 시간을 오로지 야구만 보며 지낼 수는 없다.

매일 확실하게 즐길 수 있는 일을 두고 다른 취미를 찾을 필요는 없지만, 그 일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앗아가 버린다면 문제가 된다. 직장을 다니면서 야구 보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시간을 나눠쓰야 한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 글 쓰고 책 읽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야구를 보기 위해서라도 지금 시간을 더 성실히 살아야 한다.

매확행(매일의 확실한 행복)은 소중한 일을 먼저 하고 누릴 때 행복할 것이다.




‘봄데’들의 계절이 오고 있다. 봄의 롯데는 아무도 못 말린다. 그렇게 늘 팬들에게 우승에 대한 헛된 희망을 심어준다. 3월 20일 시범경기가 사직에서 열린다.

올해는 특히 추신수가 KBO에 들어오지 않는가? 도저히 야구를 보지 않을 재간이 없다.

퇴직하고 나면 매일 같은 시간 실황으로 야구를 볼 것이다. 류현진 경기를 보러 미국으로 갈 것이다. 그때까지 류현진이 잘 던져주기를 바랄 뿐이다. ‘마음 편하게 롯데 야구 보기’는 현재 진행형 버킷이자 미래형 버킷이다. 아, 물론 ‘마음 편하게’는 롯데가 승률 5할 정도는 지켜주는 협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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