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비록 남루하더라도 자신을 마주하는 용기

by now nina
글쓰기와 독서는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일 혹은 이미 지나가버린 삶을
다시 한번 살아보려는 뜨거운 욕망과도 같은 것이다.
- 위화-



인생은 내 계획에 맞추어 기다려 주지 않는다.


대학시절 소설 창작 동아리에 가입한 적이 있다.

국문과에 가고 싶었지만 접어야 했던 나는 늘 인문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마음을 달래었다. 그러다 우연히 나무의 꼭대기 줄기라는 뜻을 가진 '우듬지'를 알게 되었다. '우듬지'는 스무 명 남짓한 회원들이 매주 한 편의 소설을 써서 발표하고 합평하는 동아리였는데 국문과에서 만든 거였다. 소설 창작에 관심 있는 학부생은 누구나 가입이 가능했지만 타과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회원들 사이에서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활개를 쳤다. 타인의 소설을 읽고 분석하는 일은 재미있었고 서로 다른 생각들을 내어 놓고 토론하는 일은 내 적성에 맞았다. 나는 풀 곳 없던 글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드러내었다. 모두들 내가 올릴 소설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회원수는 많았고 나는 내 차례를 미루고 또 미루었다.


내 생애 첫 소설을 아무렇게나 쓸 수가 없었다. 나는 소중한 시작을 아껴두었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마음을 다잡고 쓰리라 생각했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 조용한 시간에 시작하리라 생각했다. 시험도 끝나고 여행도 다녀왔지만 쉽게 시작할 수 없었다. 첫 소설을 쓰기 위해 적절한 때를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적절한 때가 오기도 전에 졸업을 하게 되었다. 단 한 줄의 소설도 적어보지 못한 채 유치원 교사가 되어 30년을 살았다. 퇴직을 하면 글쓰기 공부를 시작할 것이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내 계획에 맞추어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나는 타인이었다.


3년 전 가을,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날보다 삶이 절실했던 순간은 없었다. 암은 흔한 단어였지만 내가 암이라는 결과지를 받고 보니 그것은 절망의 단어였다. 갑자기 내게서 고개를 싹 돌리는 인생의 냉혹함에 당황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내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울부짖었다.


" 나는 아직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나는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침대 위에 무너지며 오열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울부짖으며 생을 미치도록 갈망했다. 이 상황이 장난이거나 꿈이기를, 나쁜 꿈에서 깨기를 간절히 바랬다. 아직 나를 위해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죽을 수도 있는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병원 세 곳에 예약을 하고 가장 빠른 날짜가 나오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살기 위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 하였다는 사실에 마음의 안정과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수술 후 암이 아니라는 진단을 다시 받았다.


그러나 암을 진단받았을 때의 절망감은 암에서 벗어났을 때의 안도감보다 더 강하게 마음에 자국을 남겼다. 암은 지나갔지만, 내 마음에는 울부짖던 그날의 목소리가 남아있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기에 50년을 넘게 살아놓고도 아직 살아보지 못했다고 소리쳐야 했을까? 지금껏 나는 살지 않고 그저 존재하기만 했던 것일까? 제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보통의 남자와 결혼하여 딸을 낳고 직장을 다니며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위해 애쓰고 살아온 날들이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신기루처럼 허무하게 무로 변해 버렸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도 대신 죽어줄 수는 없으며 죽음은 철저하게 고독하고 혼자만의 일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쿵 치고 들어왔다.


죽음 앞에서 나는 엄마도 아내도 직장인도 아닌 내 이름을 불러보았다.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 내가 나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나는 타인이었다.


글쓰기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일이다.


글을 쓰지 않고 살아온 날들은 50년을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았다.

지금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적어본다.


첫째,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글을 쓴다. 사람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존재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내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적어보면 거기 한 사람이 보일 것이고 그 사람이 나일 것이다. 아무리 초라하고 형편없는 모습이라도 그것이 내 안에서 나온 것이라면 기꺼이 마주할 것이다. 자신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무지갯빛 망상 속에 사는니 비록 남루하더라도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둘째, 나 자신을 탈탈 털어 쓰기 위해 글을 쓴다. 내가 가진 모든 힘과 열정과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서 죽을 때 아무런 에너지가 남지 않도록 나 자신을 소진하기 위해 쓴다.




암이라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기 이전의 나는 삶은 ‘다른 어딘가에’ 있고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살았다. 죽음의 두려움에 마주하고 난 다음에야 삶은 '지금 여기'가 전부임을 실감한다. 이제 나는 언제 맞닥뜨릴지 모를 죽음 앞에서 살아보지도 못했다고 오열하지 않기 위해 지금 쓴다. 글쓰기는 죽기 전에 내가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버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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