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슈필라움 가지기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은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에서 나온다

by now nina
복잡한 관계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갈수록 당신은 혼자만의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당신 인생에 당신을 주인공으로 초대할 수 있다.
인위적인 규칙과 질서에서 자유롭게 시간과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때
당신은 내가 경험한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혼자 사는 즐거움, 사라 브라이트만-


집에 혼자 있을 때 가끔 무서움을 느꼈다. 자기 사는 집에서 그러는 이유를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결혼 후 직장 때문에 자취를 하게 되었을 때, 남편에게 창문을 열지 못하게 못을 박아 달라고 했다. 1층을 주차장으로 쓰는 필로티가 있는 2층이었는데 말이다. 침입이 무서웠다.

우연히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의 사택을 방문했었다. 회사 사택은 30평 아파트였다. 친구가 쓰는 방은 하나이고 나머지 방 2개가 썰렁하게 비어있었다. 옛날 아파트라 앞뒤 베란다에 구석진 보일러실까지 음침해 보였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혼자 잘 수 있는지 친구의 용감함에 감탄했다. 나라면 여기서 혼자 살 수 있을까, 하지 않아도 될 상상을 하며 방문을 열어보고 벽장문도 열어보며 역시 나는 내가 사는 작은 투룸이 적당하다고 결론지었다.


잊혀진 기억


어렸을 때 내가 살던 집은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3개가 있는 넓은 집이었다. 상상하는 좋은 집이 아니라 아버지가 공장을 하는 점포가 가운데 자리하고 점포 양쪽으로 집으로 드나들 수 있는 문이 하나씩 있는 구조였다. 집은 점포 뒤쪽에 자리해서 어두웠고 어린 내 기억에는 엄청나게 넓은 안방이 있었다.

통금이 있던 그 시절, 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집안에 어른들은 다 병원으로 몰려가고 집에는 아직 10대였던 고모와 여섯 살 꼬마인 나만 남아있었다. 잠을 자다 깼는데 옆에 있어야 할 고모가 안보였다. 어둠 속에서 혼자 깨어난 나는 무서워졌다. 그때 어떤 아저씨가 보였다.

사람을 보고 마음이 놓인 나는 우리 고모 어디 갔냐고 물으며 찾아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고모가 금방 올 거라고 나는 안심시켜 주었다. 귀신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던 어린 시절, 아저씨가 옆에 있어 줄 테니 걱정 말고 자라는 말을 믿고 그대로 다시 잠이 든 것 같다. 잠시 후 어른들이 수런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통금이 해제되자 돌아온 엄마, 아버지, 할머니가 놀라움을 담아 조용히 얘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 좀 봐, 도둑놈 발이 진짜 크네”, “문이 다 잠겨있었는데 어디로 들어왔을까?”

내가 누워 자던 매트리스 위에 선명하게 찍힌 운동화 자국, 나는 왜 아저씨가 신발을 신고 다녔을까 의아했다. 고모는 나에게 아무말도 하지 말라고 당부 했고, 어른들은 없어진 것은 라디오뿐이고 폐물은 그대로라고 안도했다. 곤히 자고 일어난 내게는 어젯밤의 일을 묻지도 얘기하지도 않았다. 고모는 내 입막음을 함으로써 자신의 밤마실을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았고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되살아난 기억


그렇게 잊혀진 기억이 어느 날 문득 떠 올랐다. 뉴스에서 아동 성범죄니 어쩌니 하는 흉악한 소식들을 듣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그때는 몰랐던 두려움에 소름이 돋는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어린 나를 안심시켜주고 단지 라디오만 훔쳐간 착한(?) 도둑을 만난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번 되살아난 기억은 영화 ‘숨바꼭질’을 몰입해서 보고 난 후 침입에 대한 트라우마로 단단히 자리 잡았다.


그런 공포를 가지고 있는 내가 혼자 산다는 것은 엄청난 두려움을 견뎌야 하는 일이다. 저층은 배관 타고 창문으로 올라올까, 고층은 옥상에서 줄 타고 내려올까, 진입로가 어두우면 골목에 괴한이 서있을까, 온갖 경우의 침입에 대비해 집을 구했다. 그리고 2층 집에 창문을 열지 못하도록 못질을 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혼자 있는 즐거움- 슈필라움


그렇게 혼자 사는 일에도 적응이 되어가던 어느 날 자려고 누웠는데 ‘아, 너무 행복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 혼자 있기 무섭다고 두려움에 떨던 내가, 혼자 있는 공간을 둘러보다 갑자기 행복감이 밀려와 내뱉은 소리였다. 이 아늑한 공간에 혼자 있는 것이다.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이 오롯이 혼자이다. 내 작은 집에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내 시간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시간, 혼자만의 시간, 에너지가 나에게로 집중되는 시간, 나를 만나는 시간을 누리는 행복감이 깊은 곳에서 차올랐다. 혼자 있는 즐거움을 알아버린 것이다.


슈필라움(Spielraum)이라는 말은 활동의 여지, 여유 공간이라는 뜻이다

놀이 spiel와 공간 raum을 합친 독일어인데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라고 한다. 우리말에는 없는 이 말은 심리적 여유를 누리는데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는 공간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얻을 때가 많다. 미술관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도 미술작품에 조예가 깊어서 라기보다는 아름답게 배치된 공간이 주는 힐링이 크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슈필라움이 필요했다. 가족은 소중한 존재이지만 그들과 잠시 떨어져 혼자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은 완벽하게 혼자 떠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은 필수적이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도 슈필라움은 필요하다. 집은 일상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생활을 내려놓고 혼자 사색하고 차 마실 수 있는 나만의 놀이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가족과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온전한 내 공간은 나를 만나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나만의 슈필라움 만들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


아파트에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내 공간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더 나만의 슈필라움이 필요하다.

방법은 소박하다.


1. 내 방이 따로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족들로부터 가장 먼 곳에 내 공간을 만들어라. 어릴 적 로망이 숨 쉬는 구석 자리를 찾아내라. 가족의 눈길로부터 가려지는 곳, 가족의 출입이 가장 적은 곳에 내 공간을 만든다. 나는 드레스 룸 한쪽 구석에 자리를 마련했다.

2. 내 공간을 만드는데 돈을 아끼지 마라. 가구점을 둘러보고 앉아보고 마음속에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책상을 구입하라.

3. 내 책상이 있으면 그곳은 내 공간이 된다. 책상 서랍에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챙겨둔다. 어릴 적처럼 나만의 비밀이 그곳에 쌓인다. 내 마음을 살펴보고 적어두는 공책도 한 권 준비해둔다.

4. 되도록 벽을 등지고 앉는 것이 좋다. 등 뒤가 열려 있는 것보다 닫혀있는 것이 내 공간에 집중하기가 더 좋다.

5. 가능하면 창밖을 볼 수 있는 공간이면 더 좋다. 한 번씩 고개를 들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면 감성에 좋을 것이다.

6. 책상이 아니면 이젤이나 서랍장이라도 좋다. 나만의 공간을 꾸미는데 핵심적인 가구 한 점이면 된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들을 넣은 상자가 있어도 좋을 것이다.


드레스 룸 한편에 책상을 들여놓고 나만의 슈필라움을 만들었다. 책상 밑에는 작은 러그를 깔아 드레스 룸과 내 공간을 분리했다. 책상 위에 스탠드와 작은 가습기를 올려두고 노트북을 얹으니 완성이다.

이제 TV를 끄고 나만의 시간을 누릴 차례이다.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내 인생은 충만해질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내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다. 나만의 공간에서 나를 만나는 일은 놓치고 싶지 않은 내 버킷 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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