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긍심은 자기 자신에 대해 내부에서 생겨나는 직접적인 평가인 반면 허영심은 이러한 평가를 외부에서 얻으려는 노력이다. -쇼펜하우어-
서울 사는 친구가 가지고 있던 부동산이 요 몇 년 새 크게 올라 더 부자가 되었다.
고급 차을 비롯해 명품 시계와 가방은 다 이 친구를 통해 구경하게 되는데 이번에 또 새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신상품인데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가격을 물어보니 터무니없이 싼 값이다. 흔히 말하는 짝퉁이란다. 지퍼를 열어 안쪽을 살펴보고 손바닥으로 가죽 질감을 쓸어봐도 도대체 어디가 짝퉁인지 알 수가 없다.
비싼 돈을 주고 산 것 보다 더 부럽다. 이건 무슨 심정인지 모르겠다. 나는 꼬박꼬박 제 값 주고 남편의 말없는 저항감을 애써 무시하며 하나씩 샀는데, 이 부자 친구는 무슨 행운으로 저렇게 싼 값에 저런 명품을 소유하는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명품 같아 보이는 싼 물건을 소유하는지.
왜 가난한 자의 허영심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허영심은 우리 모두의 공통분모이다.
모파상의 ‘목걸이’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가난한 하급관리의 아내 마틸드는 부자 친구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려서 파티에 참여한다. 타고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목걸이 덕분에 자신이 꿈꾸던 대로 파티의 주인공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친구의 목걸이를 잃어버리게 된다. 급하게 돈을 빌려 비슷한 목걸이를 사서 친구에게 돌려주고 10년 동안 그 빚을 갚는다. 빚을 갚는다고 고생한 마띨드는 예전의 미모를 잃어버리고 10년 만에 만난 부자 친구는 그 목걸이가 가짜 다이아몬드였다고 말한다.
허영: 자기 분수에 넘치고 실속이 없이 겉모습뿐인 영화, 또는 필요 이상의 겉치레
마띨드는 자기 분수에 넘치는 화려한 모습을 원했고 그 대가로 10년 동안 고생하고 늙어버렸다. 반면 부자인 포레스 띠에 부인은 여전히 젊고 아름다웠다고 소설은 얘기한다.
왜 가난한 자의 허영심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부자 친구도 역시 허영심이 있었다.
가난한 마틸드가 타인의 것을 빌려서라도 자신의 미모를 더 돋보이게 하고 싶었다면 부자 친구는 가짜를 진짜인 것처럼 빌려주었다. 부자인 자신이 가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친구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난한 마띨드의 허영심은 드러나 있지만 부자 친구의 허영심은 교묘하게 가려져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허영심이 있다. 자신이 가진 것보다 조금 더 잘나 보이고 싶은 마음, 내가 가진 장점을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게 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성이다. 조지 산타야나는 “ 허영심의 극치는 명예욕이다”라고 했다. 명예욕조차 허영심이라고 할 때 허영심은 우리 모두의 공통분모이다.
명품백의 오리지널리티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허영심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이 명품백이다. 백화점에서도 가장 메인 위치에 명품 샵들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허영심이 그렇게 고급스럽게 모셔지는 것에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다. 극도로 계산된 조명을 받으며 은은하게 빛나는 명품들은 다가갈 수 없는 가격으로 유리막을 치고 가난한 사람을 밀어내고 있다.
가짜 명품 백에 페이크라는 이름을 붙이고 진품의 가격을 걸어도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는 세상이다. 가짜를 가짜라는 말하는 순간 가짜로서의 오리지널리티가 생기는 것이다. 복제 양도 만드는 세상에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명품백의 오리지널리티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진짜와 페이크가 공존한 이 세상에서 허영심만이 진짜이다.
돈 있는 사람은 명품을 사고, 돈 없는 사람은 명품을 흉내 낸 제품으로 허영심을 만족시키며 살아간다.
그런데 때로는 돈 있는 사람이 페이크를 구입하고 없는 사람이 돈을 모아 진품을 산다.
마치 부자인 포레스 띠에 부인의 목걸이는 가짜였지만 가난한 마띨드는 진짜 목걸이를 구입한 것처럼.
포레스띠에 부인은 진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받아 가지고도 10년 동안 가짜인 줄 알고 있었다면 진짜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진짜와 페이크가 공존한 이 세상에서 허영심만이 진짜이다.허영심을 채우는데 진짜와 가짜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차피 허영심은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것을 어떻게 만족시키느냐는 자신의 선택이다. 노력에 비해 쉽고 빠르게 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페이크는 효율성이 뛰어나다. 나는 아마 친구의 그 효율성이 부러웠던 것이리라.
명품도 해마다 바쁘게 유행이 바뀌다 보니 큰 마음먹고 구입했던 것들이 더스트백 안에서 혼자 늙어가고 있다.
새로 산 클러치를 들고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얼마 주고 샀느냐고 묻는다. 내 대답을 들은 친구 표정을 보는 일이 즐겁다.
내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기준은 세상이 아니라 내게서 나온다. 내 허영심의 한켠에는 진짜와 페이크를 흔들어 대는 통쾌함이 있다. 그 통쾌함에 내 버킷을 기꺼이 한장 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