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았음을 후회함

후회는 능동의 단어였다.

by now nina

늘 자족하며 살았다. 다른 사람이 부럽지 않았다.

학창 시절, 나보다 이쁜 아이도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도 부럽지 않았다. 나는 나인 것이 좋았다.

그것이 자긍심인지 적극적 현실 긍정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후회의 감정도 크게 느껴본 적 없다. 후회하느니 끌어안았다.


글쓰기 선배가 그토록 원하던 첫 책 출간을 앞두고 출판사와 미팅을 가진 애기를 들려준다. 계약을 위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자신이 참 열심히 살아왔구나 다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남들 놀 때 일하고 모두 잠잘 때 깨어 공부하고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잊고 지냈던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다시 생긴다는 것이었다.

작가 데뷔를 누구보다 응원하고 축하하던 나였다. 다른 사람에 깃든 행운을 조금도 탐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초라해졌다. 다른 사람이 뭘 가지든, 뭐라고 하든 '그까짓 것'하고 무시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50살이 넘어서 자기 인생을 돌아보고 내가 정말 열심히 살아왔구나 하고 스스로를 긍정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내 텅 빈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야 했다.


내 발등에 떨어진 현실을 끌어안고 부단히 애쓰며 살아왔는데 왜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할까? 나는 나를 끄집어내어 쓰지 않았다. 내 안에는 써보지도 않고 낡아버린 내가 있다. 나를 쏟아서 열정을 쏟아서 성취를 이루었다고 말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물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고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고 성취라고 말해도 할 말은 없다. 위로를 담은 진실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가정과 자녀를 둔 엄마이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나를 바라본다.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살아왔나? 살아온 날을 돌아보며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나 정말 잘해왔구나'

하고 말해 줄 수 없어서 녹록지 않은 결혼생활과 직장생활을 견디고 애쓰며 살아온 내 인생에게 미안해졌다. 처음으로 '후회'라는 단어가 가슴에 밀려들어온다.


후회 -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
후회막급 - 이미 잘못된 뒤에 아무리 후회하여도 다시 어찌할 수가 없음


나는 후회를 후회막급과 같은 뜻으로 오해하고 살아왔다. 이미 잘못된 뒤에 아무리 후회해도 어찌할 수 없다는 말과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친다는 말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말이었다. 후회는 능동의 단어였고 후회막급은 수동의 단어였다. 후회의 감정은 당장은 아프지만 그래서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후회한다는 것은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했다는 얘기다. 후회하는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는 이 과정을 무시하고 건너뛰었다. 내 인생에 후회 따위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무엇이든 내게 일어난 일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받아들였다. 일어날 일은 언제나 일어난다는 편리한 운명론에 기대어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깊은 내면에는 후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면서 실망과 좌절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이 잘못되었다 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에 겁을 먹고 차단해버린 것이다. 후회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후회할 용기가 없었다.




후회하지 않으면 언제나 그 자리이다. 후회가 발전의 연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지금 지나온 세월 동안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치지'않은 것을 후회한다.

후회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작가의 이전글명품으로 도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