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이 되지 않기

'너를 위해서'라는 말로 자녀에게 간섭하지 않기

by now nina
그대들의 자녀들은 그대들의 자녀들이 아니랍니다.
그들에게 그대들의 사랑을 줄 수는 있으나, 그대들의 생각을 주지는 마세요.
그들의 영혼은 그대들이 꿈에서조차 가볼 수 없는 미래의 집에서 살고 있거든요
-칼릴 지브란 예언자-


창업을 하겠다고?


40년 지기가 있다.

한참 감수성 예민하던 여고시절에 만나 지금껏 좋은 친구이다 보니 인생에 크고 작은 일에 서로 모르는 것이 거의 없다. 친구가 아들에게 받은 문자를 한 통 보여준다. 결연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힌 글을 읽고 있자니 친구가 느꼈을 감정이 전해져 온다. 친구의 아들은 명문대 전자공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다. 특목고 시절부터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잘해서 어떻게 해라고 잔소리할 필요가 없는 아들이었다. 아들은 엄마 머리 닮는다는데 경민이가 네 아들이라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해도 딱히 반박은 없다.

그런 아들이 삼성전자 입사 대신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엄마 입장에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입사를 마다하고 온라인으로 검색을 해야 나오는 그런 일을 시작하겠다고 하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아들이 엄청나게 책을 읽고 남다른 열정으로 노력을 한다는 것을 알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당장 출근만 하면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안정된 회사를 두고 사업이라는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이의 치기처럼 무모해 보인다. 잔소리를 안 할 수 없다. 부모 눈에 자식은 아무리 커도 어려 보인다.


친구가 보여준 문자에는 엄마를 걱정시키는 철없는 아들 대신, 소신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는 야심 찬 젊은이가 있었다. 결코 엄마 눈에는 보이지 않은 성인이 거기 있었다. 자신을 믿고 지지해 달라고 부탁하는 청년은 엄마의 잔소리를 정중히 사양하고 있었다. 친구가 느꼈을 한편 대견하고, 한편 당혹스러웠을 그 감정이 내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사랑을 거두어 주세요


얼른 나를 돌아보게 된다.

조금 늦게 본 외동딸이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워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따라다니며 '밥 먹어라, 씻어라'하고 아이가 어릴 적에 하던 잔소리를 그대로 하고 있다. 딸이 이미 성인이고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자고 마음먹어도 도대체 지켜지지가 않는다. 그것이 애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딸도 알고 나도 안다. 그런데 그 사랑을 거두는 법을 모른다.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사랑하는 법도 달라져야 하는데 나는 아직 아이가 어릴 적 방법 그대로이다. 법륜스님은 자녀가 20세가 넘으면 정을 떼 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정을 떼 준다는 것은 독립된 성인으로 인정하고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얼마 전에 본 영화 ‘Place beyond the pines '가 생각난다.

아버지 없이 자라온 루크(라이언 고슬링)는 떠돌아다니는 모토사이클 스턴트맨이다.

1년 만에 다시 돌아온 곳에서 옛 연인이 자신의 아이를 낳아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던 그는 자신의 뛰어난 오토바이 실력을 이용해 은행 강도가 된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그 순간은 너무 짧다. 또다시 은행 강도를 벌이다 신입 경찰 에이버리 (브래들리 쿠퍼)가 쏜 총에 죽게 되고 에이버리는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다. 영화는 세월이 흘러 에이버리의 아들 AJ와 루크의 아들 제이슨(데인 드한)이 같은 학교에서 친구가 된 이후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너를 위해서 한 일이 너를 궁지로 모는 일이 되어버렸어.


2세대에 걸친 중첩적인 구조로 생각할 거리가 많고 라이언 고슬링과 데인 드한의 매력만으로도 빛나는 영화였지만 내 마음에 꽂힌 장면은 따로 있다. 아버지가 없는 루크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있으니 바로 루크의 오토바이 실력을 높이 산 정비소 주인 로빈이다. 로빈은 루크의 위험한 은행 강도를 막기 위해 그가 타는 성능 좋은 오토바이를 망가뜨려버린다. 루크는 낡은 오토바이를 구해 은행 강도를 벌이다 도망치지 못하고 결국 붙잡혀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루크의 죽음이 안타까웠다. 은행강도는 범죄행위지만 그렇다고 그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토바이만 말썽을 안 부렸어도 도망칠 수 있었는데, 낡은 오토바이 때문에 죽게 된 것 같았다. 로빈은 루크가 은행강도를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망가뜨렸지만 그를 몰랐다. 로빈은 루크를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했고 그 사랑은 독이 되었다. 루크를 위해 한 일이 루크를 궁지로 모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로빈이 될 수는 없어!


로빈은 우리 엄마들과 아버지들을 닮아 있다. '너를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자녀들의 인생에 끼어들고 바꾸려고 한다. 너를 알지 못한 채 내 방식을 고집한다. 사랑해서 끼어들고 결국은 엉망을 만들어 버린다.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네게로 가서 무엇이 될지 모른 채 내가 준다는 사실에만 집중한다.




이제 우리 50대는 자녀의 인생에서 물러나야 할 시기이다.

방황도 실패도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그 인생을 존중하고 지지해줘야 한다. 쉽지 않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영화 속 로빈을 떠올려 본다. '너 잘되라'고 하는 티겟으로 딸의 인생에 함부로 입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로빈이 되지 않기’는 아무리 하고 싶어도 성인이 된 자식 일에 간섭하지 않기로 마음먹는 일이다. '로빈이 되지 않기'는 계속 기억하고 지켜나가야 할 내 버킷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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