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2년 미루기로 했어

나를 위해

by now nina

직장 생활 30년, 정확히 말하면 유치원 교사로 산지 30년 차이다. 올해 9월부터 연금 수령을 받을 수 있다. 즉 8월 말에 명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공무원 연금법이 바뀌기 전에는 20년만 근무하면 연금수령이 가능했다. 대학 졸업 후 아무것도 모르고 두메산골로 발령이 났을 때부터 오직 그것 하나 믿고 있었다. 그런데 연금법 개정으로 20년이 30년으로 늘어났다. '내 밥그릇에 손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누구는 공무원 철밥통이라고 욕을 할지 모르겠지만, 그 밥통 지키느라 나도 죽을 고생 했다.


남들이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로 돈 벌 때 학교와 집 사이를 오가며 세상을 모르고 살았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 보니 기회는 우물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모르고 지났다. 학교 다닐 때 성적이 비슷하거나 조금 못한 친구들이 회사에 취직해서 받는 월급은 교사에 비할바가 아니었고 실적이 좋은 해의 성과급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많았다. 점점 따라 잡을 수 없는 경제적 격차에 자괴감 비슷한 감정이 있었다는 말을 지금 한다면 또 욕을 먹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길고 가늘게 버틴 30년이다. 이제 그만두고 집에서 연금을 수령해도 되는 시기이다.


그런데, 참 쉽지 않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빈약한 가계형편을 여기서 다 말할 필요야 없겠지만 아직 대출금이 어마어마하다. 퇴직금은 대출금에 어림없다 . 외동딸은 이제 대학 졸업반이고 취직이 금방 될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남편은 하던 일 접고 다른 일 찾을 때까지 실업자이다. 실업급여도 나오지 않는 자영업자였다.

이제 나까지 그만두면 세 식구 모두 실업자인데 얼마 안 되는 연금밖에는 수입이 없다.


이렇게 저렇게 현실적인 부분을 따지다 보면 명퇴는 커녕 정년을 채우고도 모자랄 것이다. 그냥 그만두고 뉴욕으로 날아가 버릴까? 퇴직 후 버킷리스트 1번이 '뉴욕에서 가을맞이하기'이니 그것만 해도 퇴직의 의미는 충분할 것 같다.




그런데 뭔가 석연치가 않다. 부동산이 팔리지 않고 실업자인 다른 가족들이 문제가 아니라 망설이는 이유는 나 자신에게 있었다. 진짜 그만두고 싶은 것인지. 지금 그만두면 아쉬움이 남지 않을지, 후회하지 않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명퇴는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이다.

다른 시작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지, 불안하다.

끝은 쉽다. 내일부터 안 나가면 된다.

시작은 어렵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할지 모른다.


그중 제일 힘든 것은 나를 통제할 툴이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직장이라는 툴에 맞춰 살아왔다.

전날 기분에 취해 술을 마시고 늦게 잠자리에 누워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세수하고 화장하고 출근했다. 힘이 들어도 힘들다는 생각뿐, 몸은 자동적으로 움직였다. 30여 년을 그렇게 틀에 맞춰서 살아오다 이제 그 틀을 벗어버리고 오로지 자유, 혹은 막막함 속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자유가 두렵다. 그 막막함이 두렵다.

당장은 편하고 구속 없는 시간의 누림을 즐길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럴까?

내가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아무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을 느낀다.


창업이나 다른 일을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그런 류의 준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준비는 내 시간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준비이다.

타율이 아닌 자율로 살 수 있는 준비.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끌어가는 삶을 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준 사람이 있다.


그 얘기는 내일 해야겠다. 밤이 늦었고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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