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을 부려도 좋다, 꿈이라면

어느덧 스무 살, 여전히 꿈꿀 수 있었으면

by 남대생A
말해주세요,
그대는 그대의 단 하나뿐인 거칠고 소중한 삶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나요?

Tell me,
what is it you plan to do with your one wild and precious life?

- 메리 올리버의 <여름날> 중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다. 내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어린이들에게 삶은 아직 사용하지 않은, 무엇이든 이뤄줄 수 있는 같은 티켓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꾸는 꿈은 무모하며 동시에 아름답다. 정해진 모양이 없으며, 제각각 다른 향기가 난다. 그리고 가슴으로 만들어낸 꿈을 머리로 옮기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나 나이를 먹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때때로 수많은 한계와 마주치는 것이기도 하다. 할 수 있는 것보다는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교과서가 가득한 책가방보다 훨씬 무거운 책임들을 등에 지게 되면서, 그들의 꿈은 점점 회색 현실으로 물든다. 누군가는 그들을 '철들었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한다. 더 이상 천진난만한 어린이로 살아갈 수 없는,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꿈을 가슴 한 켠에 놓아둔다. 아니, 손대지 않고 영원히 남겨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했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법한, 다른 어른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만한, 그리고 어린 날의 스스로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을 법한 적당한 핑계 몇 가지와 함께. 과연 이게 맞는 걸까?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본 적 있을, 어린 날의 패기 넘치는 꿈은 항상 이런 식으로 끝나야만 하는걸까?




물론 절대 아니다. 차라리 트럼프가 좋은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게 더 쉽겠다. 어린이가 품었던 조그맣고 선명하게 빛나는 꿈은 절대 그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


스무 살 공대생, 내 꿈은 자그마치 멋진 과학자다. 이렇게 적을 수 있게 되기까지 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집을 부려야했다. 시작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어머니가 사다주신 <마법의 용광로>라는 과학서적 한 권을 읽으면서 어렴풋하게 느꼈던 몽환적인 열정. 책의 내용은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한 꼬마를 감동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책을 덮자마자 옥상으로 올라가, 구름 사이로 잘 보이지도 않는 별을 두고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내 꿈은 몇 페이지의 글과 한 줌의 별빛으로 양념된 초등학생의 미숙한 두근거림에서 시작했다.


그 꿈의 향기를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받아쓰기를 틀리지 않게 되고, 어느덧 많은 친구들이 안경을 쓰게 되었을 즈음에, 더 이상 선생님들이 나눠주시는 종이에는 '꿈'이라는 단어가 적혀있지 않았다. 대신 장래희망, 이라는 칙칙한 네 글자가 숙제처럼 쓰여있었다. 내키지 않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어른들이 나쁜 뜻으로 그랬을 리는 없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들은 내 꿈을 재단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터무니없이 거칠고 커다란 아이들의 꿈을, 적당한 틀에 담아 모양을 잡은 뒤에, 적당한 호응과 조언 그리고 나름대로의 충고를 건네주면서 학교 밖 사회의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적당히 키워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청바지 대신 교복을 입는 중학생이 되자, 내 꿈을 향한 응원은 눈에 띄게 적어졌다. 과학자가 되서 세상을 바꿀 발견을 해내겠다고 말하는 학생은, 어느새 공무원이 되서 걱정없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학생보다 덜 현실적인, 아니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대부분의 어른들에게는 무모한 꿈보다는 그럴듯한 미래가 훨씬 가치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꿈이 초라하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고집을 부리기로 했다. 어린이로 남겠다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고 싶은 곳으로 나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덕분에 나는 꿈 위에 현실을 그리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세상을 바꿀 대발견을 해낼 과학자로 자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은 학생이고, 앞으로 학생이 아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더라도 계속 배워가야 할 것이다.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에 관해서는 아직 감도 잡히지 않는다. 이뤄낸 것이라고 해봤자 이뤄내고 싶은 것에 비하면 티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하나는 확신할 수 있다. 후회하지 않았고, 또한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에게 누군가가 꿈에 관해 묻는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완벽한 핑계가 아니라, 어설프더라도 지금 꿈을 살아내고 있는 중이라는 대답을 기쁘게 내놓을 수 있기 때문에.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번역하신 과학저술가 최재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룰 수 없는 꿈은 있을지 몰라도 쓸모없는 꿈이란 건 없다.


우리는 어린 우리가 꿨던 순박한 꿈을 지켜낼 의무가 있다. 허무맹랑한 몽상 속을 거닐며 현실에서 도피하자는 식의 주장을 하는 얘기가 아니다. 꿈을 지켜내기 위해서 현실에서 눈을 돌리 필요는 없다. 단지, 어린 시절의 꿈을 끝내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좀 더 고집을 피워야 한다. 얼마나 나이를 먹더라도,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으며, 심지어 그 꿈을 살아가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때때로 냉철한 어른이 아니라 해맑은 어린이의 모습으로 그 시절 순수한 꿈의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언젠가, 스스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꿈을 이루는 데에는 안타깝게 실패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꿈의 선명한 색깔이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는 당신의 아름다운 삶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