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의 황혼
로건. 바쁜 학기 중 시간을 내서 두세 번 돌려보았다. 그동안 난 클로로 악당들을 토막내는 울버린이라는 캐릭터를, 멋있지만 유치한 캐릭터 정도로 치부해왔다. 한 방 제대로 먹었다. 눈물 몇 방울은 전혀 아깝지 않은 영화다. 개봉된 지 세 달 가까이가 지났지만, 그래도 <로건>이 다른 히어로 영화들과는 어떻게 다른지, 어떤 가치를 전해주는지, 에 대한 내 감상과 의견을 펼쳐보려고 한다. 누군가 공감할만한, 혹은 새롭게 알아갈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당한 기준으로 글을 세 갈래로 쪼개보았다.
첫째. 슈퍼히어로의 황혼
둘째. 중년과 소녀의 이야기
셋째. 그들이 짊어진 무게
DVD를 멈춰가면서 장면들에 담겨있는 상징, 가치와 의미 같은 것들을 세세히 짚어내려 노력했다. 풀어놓고 싶었던 생각들이 넘치도록 많았기에, 글 또한 생각보다 길어질 듯 하다. 객관과 주관이 섞인 색깔 있는 리뷰를 쓰려고 했고, 그렇게 된 것 같다. 원하는 부분만 골라 읽거나, 천천히 쉬어가시면서, 부족한 글이지만 음미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누어 읽으셔도 좋겠다.
첫째, 슈퍼히어로의 황혼
당신이 울버린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총알을 벌거벗은 몸으로 받아내며, 클로로 사람을 썰어버리던 짐승? 두꺼운 시가를 입에 물고 거침없이 욕을 뱉던 깡패? 동료 진을 사랑하던, 수염 덥수룩한 포마드 중년 아저씨? 그렇다, 지금까지 울버린은 이성적이지 않은 것들 - 어쩌면 ‘힘과 본능’의 대명사였다. 소년 시절 처음 꺼낸 클로로 친아버지를 살해했고, 온몸의 뼈에 아다만티움을 주입한 뒤에는 잔인한 병기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그의 삶 곳곳에 깊게 자리잡은 분노와 증오는, 어쩌면 그를 해하려던 악당들에게서 건네받은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호탕한 성격, 짐승을 떠올리게 하는 행동들은 울버린 본연의 것이었다고 본다. 자신만의 정의와 철학을 추구하는 배트맨의 팬이었던 나는, 결코 울버린을 좋아할 수 없었다.
울버린은 그랬다. 하지만 로건은 아니다. '로건'은 그가 찰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쫄쫄이를 입고 엑스맨으로 활동하던 시절 불렸던 이름이다. 물론 본명은 아니다.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 머나먼 옛날 그의 이름은 '제임스 하울릿'이다. 하지만 엑스맨으로서의 정체성은 오로지 로건이라는 두 글자에만 잔뜩 새겨져 있다. 그가 더 이상 무기가 아닐 수 있었고,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었던 시절 그는 로건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그의 마지막에 어울리는 이름이고, 그의 마지막 영화에 어울리는 제목이다.
스크린에 비추는 로건은 더 이상 히어로가 아니다. 늙고 병들었다. 리무진을 훔치려 하는 강도 몇 명을 해치우는 데에도 애를 먹고, 고름까지 나오는 클로는 더 이상 원하는대로 꺼낼 수도 없는 상태다. 로건만 늙은 건 아니다. 라이벌 매그니토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초능력의 소유자였던 찰스도, 이제는 치매에 걸린 90대 노인일 뿐이다. 그 둘은 더 이상 세상이 위험할 때마다 멋지게 등장하던 엑스맨이 아니게 되었다. 한때 정의와 가치, 생명을 수호했던 히어로들도 스크린 속에서 늙고,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관객들은 익숙하지 않은 애처로움과 연민을 느끼게 된다.
로건과 찰스의 정신적인 노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그들이 안고 있는 후회의 무게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듯하다. 설리번까지 합해서 세 명 모두, 저마다의 후회를 짊어지고 미련으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버텨내는 것조차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참한 모습이다. 로건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잃어버린 탓에, 그들과 가까이 지냈고 또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려 했던 자신에게 잘못을 돌린다. 심지어 그에게 많은 가치들을 전해주었고, 돌연변이들의 편에서 평생에 걸친 투쟁을 지휘해온 찰스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한다.
You always thought we were part of God’s plan.
But maybe... Maybe we were God’s mistake.
당신은 항상 우리가 신이 세운 계획의 일부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우린 그저 신의 실수일지도 몰라요.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 그가 택한 길은, 지키지 못할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 한 때 정의를 위해 싸운 엑스맨이었던 그는, 절박하고 처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가브리엘라를 차갑게 외면한다. 가브리엘라가 찰스를 선시커에 태울 수 있을 정도로 거액의 돈을 준대서야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실망과 함께 그가 겪어온 세월에 대한 깊은 동정심을 느끼게 한다.
심지어 가브리엘라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뒤에 그가 머무는 곳으로 찾아온 로라도, “그녀는 우리와 상관없다”며 버리고 도망치려 한다. 어쩌면 로라가 그에게 소중한 인연이 되는 것을 두려워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겁한 로건에게는 더 이상 무모한 울버린의 용기도, 동정도 정의도 남아있지 않았다. 영화 <로건>은 스스로의 기억을 짊어지는 것만으로도 벅찬, 인간 로건의 모습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렇기에 영화가 더 특별해질 수 있었다. 물론 철학적, 인간적인 재제를 히어로 영화에 담아내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마블 스튜디오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를 포함한 여러 편의 영화에서 히어로 영화도 사람들에게 무게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히어로가 늙어가는 모습, 언제까지나 빛날 줄 알았던 그들의 비참하고 희미한 황혼을 담아낸 영화는 <로건>이 처음이다. 절뚝거리는 로건의 고름 묻은 클로는 나를 포함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아련함이 섞인 안타까움, 각자의 인생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살아온 관객들의 경험과 아픔에 기반을 둔 공감. <로건>이 특별한 이유다.
물론 <로건>이 내내 스크린에 비참한 로건의 모습만 잡아내는 영화가 아니라는 게, 관객들에게 조금의 위안을 준다. 다시 찾아온 희망이 그를 변하게 한다. 예고 없이 찾아온 그의 딸, 로라로 인해.
중년과 소녀의 이야기
영화의 주인공은 로씨 부녀, 로건과 로라다. 그들의 특별한 사연을 배제하고 일상의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중년남성과 소녀다. 애틋하다. 관객들은 중년의 로건을 연민 섞인 따뜻한 시선으로, 힘든 일을 겪어야 했던 소녀 로라를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둘 사이에는 많은 것들이 오간다. 애증에 가까운 애정, 로건의 후회와 로라의 성장, 로건이 죽으면서 남긴 유산까지.
중년과 소녀. 나이로도, 성별로도, 현실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아마 공감대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예술에서는 그렇지 않다. 영화, 책, 게임 등 많은 작품들에서 비슷한 주인공 구도가 사용되었다. 킬러 레옹과 소녀 마틸다가 등장하는 <레옹>부터,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에서 잉태의 기적을 품게 된 한 소녀를 지켜내는 테오의 여정을 담아낸 <칠드런 오브 맨>, 빚을 갚기 위해 공중도시에 갇힌 소녀 엘리자베스를 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부커의 이야기인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좀비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리와 클레멘타인의 모험을 담은 텔테일 게임즈의 <워킹데드>까지.
관객들은 이러한 구도 속에서 깊고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중년은, 소녀 그리고 소녀의 순수함까지 지켜내기 위해 악당들과 싸운다. 예민하고 순진하며 희망을 간직한 소녀와, 노련하지만 회의가 가득한 중년은 때로 투닥거리기도 한다. 애증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리는 감정선을 로맨스라고 부를 수는 없다(<롤리타>는 예외일 수 있겠다). 로맨스라기보다는 서로를 아끼면서 성장하는 사랑의 원초적인 형태에 가깝다. 관객들이 로맨스도 없는, 그렇다고 모성애나 부성애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그들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공감하는 이유는, 소녀와 중년의 이야기에서 피어오르는 애틋함이 사람 대 사람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감정의 가장 본질적이고 소중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소녀와 중년의 만남은 대개 사적이지 않은, 비즈니스적이거나 의무적인 분위기로 시작한다.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에는 중년이 소녀에게 '유산'을 남긴다. 물건일 때도 있고, 희망, 추억 혹은 소녀의 미래이기도 하다. 이 유산은 대개 감독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레옹은 마틸다에게 그녀의 미래와 함께 화분 하나를 남겼고, <칠드런 오브 맨>의 테오는 인류의 미래를, <워킹데드>의 리 에버렛은 스스로의 희생으로 클레멘타인을 구해내고 그녀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한다.
로건도 그렇다. 로라도 로건에게 그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가족이 주는 행복과 기쁨을 주었다. 로건은 목숨을 건 싸움 끝에, 새로운 돌연변이 세대가 될 로라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선물해주었다.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희생이다. 로건은 자신의 유전자로 태어난 로라에게 자신이 겪어왔던 끔찍하고 비참한 삶이 아닌, 인간으로서 많은 것들을 누리고, 선택하고, 이뤄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져다주었다. 항상 차별과 억압 같은 무게 있는 주제를 다뤄왔던 엑스맨 무비 시리즈를 이끌어왔던 로건의 마지막이기에, 그가 남긴 유산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가 던졌던 소수에게 가해지는 차별에 관한 메시지처럼, 로건의 유산은 감독이 그의 마지막을 빌려 관객들에게 던지는 유산과 세대에 관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그들이 짊어진 무게
영화 <로건>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바로 히어로의 인간적인 고뇌이다. <로건>을 어벤져스처럼 마냥 편하게 볼 수만은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찰스는, 길가에서 만나 도움을 주었던 농장주 가족들의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누우면서 로건에게 이런 말을 한다.
You know, Logan...
this is what life looks like.
A home, people who love each other.
Safe place.
You should take a moment and feel it.
이봐, 로건...
이게 바로 삶의 모습이라네.
집,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전한 장소.
잠시 멈춰서서 느껴보게.
세상을 지켜내려 열심히 싸웠던 용감한 엑스맨들의 지휘관이었던 찰스도, 영웅적인 활약을 자랑하기보다는 소소한 행복을 음미하고 싶었나보다. 대사 마디마디에 엑스맨 시리즈의 세월이 묻어나는 듯 하다.
로건의 상태는 더 좋지 못하다. 과거를 떨쳐내지 못하고, 기대보다는 후회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다. 자신을 돌봐주는 설리번에게도 고맙다고 말하지 못하며, 가브리엘라의 간곡한 부탁을 듣고도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며 화를 내기까지 한다. 그의 부상을 치료해준 친절한 의사에게도 참견하지 말라며 매정하게 대한다. 울버린 그리고 엑스맨으로 살면서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이별, 짊어져야 했던 고통의 무게는 인간 로건에게는 턱없이 무리였던 것이다. 그가 ‘에덴’에서 로라에게 했던 대사를 보면 더 확실해진다.
And it is better this way.
Because I suck at this.
Bad shit happens to people I care about.
You understand me?
그리고 이게 더 나은 방법이야.
왜나면 난 이제 질렸다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은 나쁜 일들을 당해.
알아듣겠어?
운명이 그에게 소중했던 인연들을 남김없이 앗아갓기에, 더는 새로운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지 않겠다 다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작중에서 로건은 찰스와 설리번에게 집착하고, 둘을 제외한 사람들, 심지어 딸 로라에게도 대부분 차갑고 매정한 모습을 보인다. 맨골드 감독의 직접적인 언급도 있었다.
아마도 로건은 인간을 돕는 것에 지쳤을 것이다. 인간들은 어린아이처럼 항상 똑같은 문제를 일으키니까.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겪고, 또 새로운 사람을 사랑한 뒤 그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한 악당이 사라지면 또 다른 악당이 나온다. 로건의 상실과 피로감에 촉각을 세웠다.
다행인 건, 그의 곁에 로라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첫 만남에서 로건은 애써 로라를 무시한다. 찰스, 설리번과 함께 머물고 있던 곳으로 용병단이 쫓아오자 로라를 버리고 도망치려고까지 한다. 자신을 닮은 클로를 지닌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선뜻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설리번을 잃고 찰스도 살해당한 뒤에 맞이한 상실과 아픔 속에서, 로건은 작게나마 희망을 품게 된다. 자신을 닮은 이 아이가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희망.
영화 곳곳에서 로건의 인격적인 성장을 찾아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찰스를 호수 옆에 묻은 뒤에, 카메라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삽으로 트럭을 내리치는 로건과 주인이 원반을 던지자 순식간에 쫓아가는 개의 모습을 로라의 시선에서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이 장면은, 로건이 더 이상 철저하게 훈련된 살인기계가 아닌, 친구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는 한 명의 인격체로 성장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영화 후반부에 로라에게 해주는 대사에서는 그동안 그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던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답을 들을 수 있다.
악몽 꾼 뒤에 대사.
로건은 성장했다. 후회하고, 고민하고, 성찰하면서. 히어로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히어로의 모습이다. 괜스레 내가 뿌듯해진다.
마치며
연출에 관해서도 짧게 얘기하고 싶다. <로건>은 영화 도중에 등장하는 <셰인>을 포함한 많은 서부극들의 영향을 받았다. 필름으로 흑백 영화를 상영하던 시절에서 영감을 받아, <로건>의 흑백판인 느와르 에디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인간 로건에 주목한 영화인만큼, 기존의 히어로 영화에서 사용되었던 압도적인 스케일, 재빠른 화면전환과 같은 화려한 연출은 사용되지 않았다. 대신 인물들의 얼굴에 그려지는 표정들을 세심하게 잡아내거나, 대화의 흐름을 따라 화면이 바뀌는 전환을 자주 사용했다. 감독의 뛰어난 역량으로 볼 수 있겠다.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로건에게 어울리는 연출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더 울버린>을 만들었던 감독과 동일인물이라는 게 믿기지않는다. 더 이상 로건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그 아쉬움만큼 앞으로 펼쳐질 로라의 이야기에 기대를 걸어보겠다. 굿바이, 로건.
REFERENCES
커버 이미지 - <로건> 느와르 에디션 중
울버린 - https://www.quirkybyte.com/blog/2017/02/21/wolverine-recast-x-men-movie/
기타 로건 이미지 - <로건> 컬러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