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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샘 Dec 10. 2022

캄보디아, 또다시 STOP

낯선 이를 향한 환대를 바란 건 나의 이기심이었을까

"STOP"

망할 스탑 같으니라구.

또다시 스탑이라고?



공항을 나와 두 대의 차에 나누어 탔다.

공항에서 죽상을 했던 얼굴은

차창밖 프놈펜 거리를 구경하며

명색이 봉사활동이라고 배워온 캄보디아어 노래를 부르며

조금씩 평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짐은 자동차 지붕에 단단히 묶었다.

안전을 생각해 남자와 여자의 비율을 적당히 나누어 두대에 탔다.

내 뒤로는 벗어둔 모자 아래로 손을 깍지 낀 커플이 앉았다.

모자 아래 숨긴 두 손은 자기들만 비밀이었다.

그러라지.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은 초라하다 들은 프놈펜 시내에서도

공사 중인 곳들 사이로 멀쩡한 건물이 불쑥불쑥 보이는 대로였다.

번듯한 건물은 주로 대사관들이다.

인공기가 휘날리는 북한 대사관도 있고.


공항에서 날려먹은 설렘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낯선 곳에서 받게 될 환대를 다시 기대해본다.

어리석게도 말이지.


그때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를 들었다.


"스탑"

교통경찰이었다.

캄보디아어로 뭔가를 이야기하는데 미간을 잔뜩 좁혔다 폈다를 반복한다.

그래도 무표정하게 막대기를 휘두르던 그 남자보다는

이 남자의 표정이 낫다.

속이 보이니까.


부자 동네로 향하는 대로에 지붕에는 짐을 잔뜩 싣고

선팅이 되지 않은 차에 젊은 외국인이 가득 탔다.

십수 년 전부터 잘 살게 되었다는 한국인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 양반에게 돈을 바치고 이 길목을 배정받았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오늘 한몫 잡을 수 있겠다.

그가 된 듯 머릿속 시나리오를 써본다.

스탑


이유인즉슨 지붕에 짐을 너무 많이 실었단다.

지금 짐을 다 내리던지 아니면 벌금을 내란다.

뻔한 레퍼토리. 벌금은 개뿔. 자기 주머니에 들어갈 포켓머니가 필요한 거겠지.

말쑥하게 깃을 세운 제복은 이 남자가 새빨간 거짓말로 도둑질을 해도 당당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어라. 운전기사가 옆자리 한국인에게 건네받은 빳빳한 1달러짜리 지폐를 쥐여준다.

우리를 대하던 그 미소로 건넨 지폐는

경찰의 가슴팍 주머니로 조용히 자취를 감춘다.

목을 곧추세운 경찰은 자동차 본넷을 가볍게 두드린다.

목적 달성. 통과.


차가 출발하고 물었다.

그 남자에게 왜 돈을 준거냐고.

공항에서의 앙금이 이제 막 풀리려는데 스탑을 또 들었단 말이다.


사람들은 부패한 이 나라 사람들을 욕한단다.

킬링필드 같은 대량학살을 겪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쓴소리도 내뱉는단다.

그 욕지거리는 저 높은 곳에 계신 양반들의 몫인데 말이다.


이 나라 경찰의 월급이 터무니없이 적단다.

제복이 무색하게

저들의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단다.


벌금을 명목으로 터무니없이 많이 부른 금액을

통용되는 포켓 머니로 웃으며 건넨 거란다.

벌금 낼래, 용돈 줄래.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매일 아침

자기 반 아이들에게 빵을 팔아 생계를 잇는다.

월급이 너무 적기 때문에 그렇게 코 묻은 돈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다.

어차피 지식인, 교육자는 죽거나 도망갔고

누구라도 교사가 되어야 했던 판, 일단 살고 봐야지.


돈을 내고 빵을 살 수 없는 아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

학교 대신 거리로 나와 행인, 특히 외국인에게 사탕과 초콜릿을 받아 주린 배를 채우고 있다.




폴 포트가 이끄는 공산당 무장 조직인 크메르루주에 의해 자행된 대량학살 킬링필드.

민족주의를 명목으로 국민의 1/4이 죽어나갔다.

뚱뚱하면 혼자 잘 먹은 부자라서 죽이고

안경을 쓰면 너만 배운 지식인이라서 죽이고.

손이 희면 노동을 하지 않은 자라서 죽이고.

부자들에게 빼앗을 돈을 함께 나누어갖자는 명목으로 시작된 학살은

의사, 교수, 약사 같은 지식인들에게로 확대되고 급기야 무차별적 학살로 이어졌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들부터 다 죽어나간 셈.



그 역사를 알면서도 그 아픔을 알면서도

남은 이들끼리 건강한 나라를 세워가기를 바란 것은 이상이었을까.

낯선 나라에서 온 이를 환대해주리라 기대해준 것은 이기심이었을까.



20년 전 두꺼운 앨범에서 킬링필드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차마 브런치에 담기 어려운 사진들은 다시금 묻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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