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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fulmito Mar 17. 2023

길거리 예술가


 매일 오전에 아무 데나 가서 아무 데나 앉아 그림을 그린다. 남편이 출근하는 길 중간 지점에 떨어뜨려달라고 하기도 하고, 집에서부터 아무렇게나 기분 내키는 대로 마구 걸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걷다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장면들을 사진으로 마구 담아보는데, 그렇게 사진에 담긴 모습을 그리기에 적당한 자리가 있으면 그곳이 오늘 머물러 갈 장소가 된다. 그렇게 어느 벤치에 앉기도 하고 상가 계단에 앉기도 하고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라면 땅바닥보다 겨우 한 칸 높은 난간에 주저앉기도 한다. 의자까지 들고 다니는 어반스케쳐들도 있지만 하루 한 시간에서 두 시간씩을 걸을 예정이기 때문에 가방도 최대한 가벼워야 한다. 물론 그림 도구도 최소한으로만 갖추어 나간다.

 그렇게 앉아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그림을 그리다 보면 한적한 길이더라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꽤 많다. 저 사람은 뭔가 싶어 한 번쯤 뒤돌아 보며 걷기도 하고,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은 말을 거시기도 한다. 칭찬을 해 주고 가시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학교에서 칭찬받아 기분 좋은 학생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기도 한다. 혹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대단한 예술가라도 되는 느낌도 든다. 다만 취미로 그림을 그릴 뿐인데 말이다. 살짝 웃음이 난다. 최소한의 그림 도구를 가지고 내 마음대로 그리면서 대단한 예술가인 척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한 스타일은 아니다. 부담스럽거나 싫은 것도 아니다. 다만 내향성 인간이라 모르는 사람과 긴 대화를 즐기지 않을 뿐이다. 중학교 영어교사로 꽤 틀에 갇힌 생활을 해 온 내게 마치 예술가인 것처럼 살아볼 수 있는 시간은 선물이고 축복임에 틀림없다.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들이 있어 1년의 휴직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낯선 곳에서 한달살이를 계획할 만큼 여유롭지는 않지만, 올 1년은 예술가의 삶을 살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취미로 그림을 그린 지 벌써 5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그림 실력이 많이 늘기도 했지만, 요즘은 내 그림 실력에 불쑥불쑥 불만이 생기곤 한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내가 팔로우하는 인스타 운영자들이 어반스케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괜히 나에게 불만을 가지곤 한다. 그리고는 깜짝 놀란다. 내가 아직도 이런 비교의식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어서. 그리고 다시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잘 그리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노년에 여행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던 나의 로망을 좀 더 일찍 이루었을 뿐이다. 나는 현재 나의 여행과 그림을 즐길 뿐이다. 그림을 오래 그리다 보니 자연스레 욕심이 생기기는 하지만 그 욕심이 지금의 행복을 갉아먹는다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러면서도 살며시 이렇게 1년 동안 매일같이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내 그림도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가진다.

 한 시간 혹은 한 시간 반을 앉아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 장소를 자세하게 기억하게 된다. 사진 찍고 지나간 것과는 달리 그 장소에 대한 추억이 쌓이고 애정이 생긴다. 그렇게 공원, 길거리, 카페 등등의 대구 시내 곳곳, 내가 여행하는 다양한 곳들이 내 장소가 되어 간다. 이 또한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는 매력적인 포인트이다. 그렇게 욕심 없이 올 한 해는 길거리 예술가라는 사치를 누려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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