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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fulmito Mar 18. 2023

동생이랑 점심 먹으러 대전 출동

 내게는 쌍둥이 동생이 있다.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구경하는 게 싫었고, 사춘기에 접어들어서는 비교의식 때문에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나에겐 가장 소중한 친구다. 늘 붙어 다니며 시시콜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동생이 다른 지역으로 대학교를 가면서부터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동생이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박사 과정을 하고, 주말부부로 연구원 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동생을 늘 바빴다.

 동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잠잘 시간도 쪼개야 하는 동생에게 내게도 시간을 내어달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늘 마음은 한결같지. 어릴 적엔 내가 꼭 끌어안고 자던 내 분신 같은 동생인데.

 휴직을 하고 시간이 많아졌으니 동생과 점심을 먹기 위해 대전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만 먹기 위해 대전까지 혼자 오가야 하는 길이 남들이 보기엔 어처구니없을지 모르지만, 내겐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동생과 단둘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 게 도대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이니.

 대전에 가는 김에 미술관이나 전시관도 들르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동생에게 카톡이 왔길래 벌써 대전 도착해서 미술관 관람 중이라고 했더니 동생이 깔깔깔 웃는다. 역시 비범하다며. ㅋㅋ

 동생이 근무하는 연구소 근처에 있는 작은 미술관에 들러 작품들을 둘러본다. 작은 미술관이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게 재미있다. 책을 통해 배우는 것과는 또 다른 발로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동생에게 가기 위해 미술관에서 나왔는데 하늘은 또 얼마나 예쁜지.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다음 달에 하는 다른 전시도 알아봐 둔다.

 자율근무시간 제도 덕분에 바쁜 동생이 모처럼 충분히 시간을 뺐다. 야근하면 된다며 점심 먹고 언니 따라가서 놀다 올 거라고 한다. 두 팔 벌려 환영이지. 동생이랑 놀아본 게 언제야.

 동생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데려가겠다고 그 전날부터 큰소리를 땅땅 쳤는데, 주차장은 이미 만차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곳에 갈 순 없다. 동생의 페이보릿 1호를 소개해준다는 목적을 우리는 반드시 달성해야만 한다. 주변을 빙글빙글 두세 바퀴 돌아 적당한 자리에 주차를 하고 식당으로 갔더니, 역시나 대기줄이 길다. 식당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것 좋아하지 않지만 어차피 오늘 나의 대전 나들이 목적은 동생을 만나는 일이다. 동생과 함께 줄을 서 있을 테니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오랜만에 동생의 이야기들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서서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며 음식을 먹으며 커피를 마시며... 동생과 엄마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빠지지 않는 우리의 주제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손쉽게 할 수 없는 우리끼리만 가능한 대화들이다. 자식과 부모가 서로 잘 맞을 수도 있고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는데, 엄마와 동생은 맞춰가기가 쉽지 않다. 둘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것은 내게 주어진 큰 임무다. 그 큰 임무가 내게 힘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가족이라고 모든 멤버들이 화목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서로가 다른 모양의 연결고리를 사용하더라도 이렇게 저렇게 얽혀 하나를 이룰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동생이 데려간 레스토랑의 음식들이 너무 비싸서 마음이 편하질 않다. 동생은 언니에게 제일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 데려왔는데 언니는 동생한테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마음껏 맛있게 먹어주지 못한다. 그러면 언니가 그렇게 맛있어하지 않아 동생은 충분히 기뻐할 수 없다. 내가 동생에게 엄마같이 행동하고 있어 웃음이 난다. 동생은 이미 가격 다 알고 나를 데려온 곳인데 나는 뭘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걸까. 다음에는 더 신나고 맛있게 먹어줘야겠다.

 점심을 먹고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갔다. 볼 것이 많은 곳은 아닌데 나는 이런 곳들 좋아한다. 동생에게는 별로 볼거리가 없을까 걱정했는데, 동생은 대전에 볼거리가 많지 않은 걸 미안해한다. 가족들끼린 서로를 너무 걱정하는 게 문제다. 둘 다 충분히 즐거우면서도 상대방에게 부족할까 봐 염려하느라 신경을 쓴다. 같이 전시관을 둘러보고 관련된 이야기들을 나누고 예쁜 곳에서 사진을 찍어준다. 여행광인 내가 동생과 단둘이 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니!! (물론 가족여행을 여러 번 같이 갔지만) 노년에 동생도 시간이 많아지면 그때는 동생이랑도 많이 다녀야지.

 동생은 언니가 여기서 그림 안 그리면 서운할 텐데 생각하지만 나는 바쁜 동생을 옆에 앉혀놓고 그림을 그리기에는 마음이 편하질 않다.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 야근을 해야 할 동생이 걱정이 되는 거지. 작은 전시관 나들이 하고 성심당에 들러 집에 가져갈 빵과 동생 간식으로 들려 보낼 빵을 사고 다시 동생을 연구소까지 데려다준다. 올해는 종종 이렇게 동생과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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