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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fulmito Mar 24. 2023

벼르고 벼르던 구례 산수유 마을

 일요일 밤이 깊어가는 시간. 입술이 실룩실룩된다. '아~ 나는 내일 학교 안 간다~' 내 일을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나는 노는 게 훨씬 더 좋다. 너무 당연한 소린가? 옆에 있는 딸에게 "엄마는 내일 학교 안 가지롱~"하고 자랑하고 싶은 걸 애써 꾹꾹 참으며 미소를 흘리고 있는데, 딸이 먼저 "아~~ 엄마는 왜 내일 학교 안 가는데?!?!" 한다. 풋 하고 웃음이 나오는 걸 꾹 참고 "그래도 엄마가 학교 훨씬 다녔다고!!" 하며 대응한다.

 나는 월요일 출근 안 하고 구례 산수유 마을에 갈 예정이다. 늘 가보고 싶었지만 사람 많은 게 싫어서 못 가 봤던 곳들을 찍는 게 올해 해 보고 싶은 일들 중 하나다.

 벼르고 별러 가는 곳인 만큼 어떤 옷을 입을지 그 전날부터 고민을 한다. 노란색 산수유라고 노랑색 옷을 입고 싶진 않고, 하늘하늘한 롱원피스를 입고 싶은데 내게 있는 원피스들은 색깔이 너무 강하다. 노랑색이랑 안 어울려. 긴 청스커트와 짧은 검정색 시폰 원피스를 두고 고민하다가 검정색을 골랐다. 노랑 배경에 검정 원피스 괜찮지 않을까? 그 위에 올리브빛 베이지색의 롱 트렌치코트를 매치했다.

 오늘 나들이의 동행자 친정엄마를 모시러 가 전화를 드렸는데 도통 전화를 받지 않는다. 결국엔 아빠에게 전화를 드려 "엄마 좀 내려가라고 전해주세요"를 전한다. 엄마와의 나들이에 늘 아빠도 동행하셔도 되고 엄마가 물어보셨을테지만 내가 직접 여쭤보지 않은 게 괜히 죄송하다. 아빠는 내가 엄마 모시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기특해하시는 거 아는데도.

 엄마가 차에 타시자마자 아빠한테는 같이 가실지 여쭤봤는지를 묻는다. 여쭤보셨다길래 다행이다하며 안도한다. 언제든지 엄마가 아빠한테도 여쭤봐주세요 하며. 그런데 아빠가 같이 안 가시는 이유는 꽤 황당하다. 엄마에게 구례 간다고 했는데 엄마는 군위로 착각하시고, 아빠한테 산수유 마을이 작아서 볼 건 많이 없더라는 설명을 덧붙이셨단다. ㅋㅋ 이야기를 듣고 아빠가 같이 동행하지 않기를 원하신 거 아니냐며 깔깔 웃었다.

 늘 그렇듯 차에 타시자마자 엄마의 수다가 계속된다. 이제 엄마의 수다 타이밍에 내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섞어 넣고 함께 웃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누구나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고 싶게 서로를 맞추어갈 수 있게 된다. 엄마와 딸이라고 누구나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성향이 다르기도 하고 서로에게 기대가 커서 더 맞추기 힘들기도 하다. 엄마가 이야기를 하시다가 스스로 깨닫고 치유를 경험하는 일도 내게는 뿌듯한 시간이기도 하다.

 엄마와 끝없이 이야기를 하면서 운전하는 일도 익숙해져 간다. 엄마와 어딘가를 갈 때는 숫하게 고속도로에서 길을 잘못 들기도 했는데 이번엔 고속도로 내린 후에 몇 번 길을 잘못 든 정도니 아주 양호한 편이다. 하기야 여행 중 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고속도로에서 내리면서부터 어디로 가든 노랑 물결이 이어진다. 이게 구례 산수유~ 구례 산수유~ 하는 이유구만.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네. 산수유로 이름난 동네만 해도 여러 개이지만 이름 없는 동네들도 곳곳이 노랑색으로 물들어 봄내음이 가득하다. 이 마을 저 마을 차를 세우고 산책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우리도 사진을 부탁하고 엄마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엄청 사진을 잘 찍으시는 듯 이리저리 우리 포즈를 코치하시던 아주머니께서 찍으신 사진을 뒤늦게 기대 잔뜩 안고 확인하다가 풉 하고 웃음이 터진다. "난 뭐 되게 사진 잘 찍으시는 줄 알았잖아." 그래도 덕분에 엄마랑 같이 노란 산수유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으니 됐다. "아까 그 아줌마 남편 되게 챙기시는 거처럼 행동하시다가 남편 모자 깔고 앉으셔서 사진 찍으시더라." 하며 또 깔깔 웃었다. 반전 매력을 가지신 아주머니야.

 현천 마을을 둘러본 후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지역 농산물 매장이 보인다. 이런 곳에서 쇼핑하며 지갑 마구 열어젖히시는 우리 엄마. 산수유 막걸리, 건산수유, 김부각 등등 장바구니에 마구 담으신다. 이 산수유에서 씨를 빼내는데 이로 물어서 뺀다고 하시길래 '설마 요즘은 기계로 하겠지'하는 의문을 던졌더니 바로 매장 아주머니에게 가셔서 궁금증을 해결하시는 우리 엄마. 그러면 그렇지. 요즘엔 기계로 다 한대.

 코로나 시즌 동안 이곳도 문을 닫은 식당이 많은 모양이다. 문을 연 식당이 많지 않다. 덕분에 문을 연 식당들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산수유철 반짝인 관광지가 코로나 시즌을 버티기가 쉽지 않았겠다. 절묘한 타이밍에 들어선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잡고 앉아 들깨칼국수를 한 그릇씩 들이킨다.

 반곡마을과 상위마을까지 둘러보다 보니 시간이 꽤 되었다. 가는데 2시간이나 걸리니 아이들 저녁 차려주려면 서둘러야 한다. 그림 한 장 못 그리고 가려니 아쉽지만 큰맘 먹고 온 곳에서 보고 싶은 곳을 남겨두고 앉아서 그림을 그릴 여유는 없었다. 둘째 야구 레슨 전에 저녁을 해주기 위해,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집에 가기 위해 휴게소도 들르지 않고 대구로 왔는데 엄마가 우리 집으로 바로 가라고 고집을 부리신다. 오늘 많이 안 걸어서 우리 집에서 내려서 걸어가시겠단다. 우리 엄마는 못 말리지 뭐.

 벼르고 벼르던 산수유 구례마을은 이렇게 클리어를 했네. 올해는 진해벚꽃 나들이도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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