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oyfulmito
May 13. 2023
10년째 새해 첫날, 명절, 스승의 날에 꼬박꼬박 인사를 전해오는 제자가 하나 있다. 20년 전 발령 첫 해 까까머리 중1이었던 소년. 웃으면 작아지던 눈과 귀에 걸린 미소로 기억되던 순박하고 수줍음 많고 성실했던 아이. 매번 카톡으로 인사를 전하며 '시간 될 때 쌤 꼭 뵈러 갈게요'하던 제자가 웬일로 '내일 저 쉬는데 학교로 찾아가도 될까요?' 하는 카톡을 보냈다.
휴직을 해서 학교에는 없지만 늘 바쁘다던 아이가 모처럼 시간이 나서 찾아오겠다는데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몸살로 이틀을 누워 있었지만 아파서 내일은 안 되겠다고 할 수 없었다. 이 아이는 20년이나 지난 이 시간에 굳이 나를 왜 보러 오려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랜만에 만나면 어색하지는 않을까? 풋풋했던 20대에 가르쳤던 아이를 40대 중반 중년의 나이가 되어 만나려니 부담스럽기도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휴직해서 선생님 시간 많다며 커피 한 잔 하자고 약속을 잡았다.
늘 그렇듯 약속 시간을 딱 맞춰 가면서 무척이나 성실했던 그 아이가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와 있을 거라고 추측을 했다. 약속 시간 10 분 전 2층에 있어요 라는 카톡을 보고 예상 적중했다며 혼자 낄낄댔다.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 아이를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중1 까까머리 소년의 모습이 그대로 담긴 34세 청년을 단박에 알아봐 버리고 또 깔깔 웃었다. 너 옛날이랑 똑같아.
그때도 착하기만 했던 그 아이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선생님도 옛날이랑 똑같으시네요 하며 거짓말을 해 준다. 속으로는 선생님도 주름이 많이 생겼네 하고 생각했겠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해 주니 고맙다.
커피를 주문하고 마주 앉았다. 20년 만의 대면이라니. 살면서 누군가를 20년 만에 다시 만나 마주 앉은 일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라는 나의 한 가지 물음에 수줍음 많아 이야기도 잘 못 하던 아이는 20년 세월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거리낌 없이 늘어놓는다. 공감능력 부족한 나이지만 내가 귀여워하던 꼬마가 그 사이 그렇게 힘든 일들을 겪어냈다는 사실이 안쓰럽고 대견하고 기특해서 최선을 다해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했다. 고작 11살 차이 밖에 나지 않지만 명색이 사제관계 아닌가. 첫 발령 아이들이 그저 예뻐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해였지만, 당연하게 넘기지 않고 그게 감사하다고 20년이 지나서 선물을 사들고 스승의 날이라고 나를 찾아왔지 않은가. 그 아이의 감사에 나도 최대한으로 보답을 하고 싶었다.
20년 전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마주 앉았을 때는 부끄러워 꺼내지 못했을 이야기들을 담담히 솔직하게 꺼내놓을 만큼 이 아이는 나를 신뢰하고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여전히 이 아이에게 '너는 진국이야'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은 겨우 1년, 그것도 20년 전인데 어떻게 서로를 이렇게 신뢰할 수 있을까? "돌아보면 선생님도 그때 너무 어렸어." 맞아. 우리는 서로의 순수했던 시간을 함께 보낸 사이다.
순수했던 교사와 순수했던 아이는 성실하게 20년을 살아내는 동안 성장하고 성숙했다. 이 아이가 보석 같은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나 또한 부끄럽지 않은 중년이 되어 있어 다행이다. 덕분에 대화는 서로를 감동시키고 서로에게 도전을 준다.
"고맙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이렇게 찾아주고.." 했더니 "당연한 게 아니지요.." 한다. 작은 사랑을 크게 받아준 아이의 마음이 내 마음을 울린다.
같은 교무실에 동료들이, 연수에서 만나 친구처럼 지내는 동료들이 이 아이의 나이다. 이제는 제자가 내게도 친구 같다. 딸이 친구 같은 것처럼. 아주 오랜만에 제자를 만나고 왔는데 친구가 생긴 기분이다. 모처럼 기분 좋은 스승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