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자식들 밖에 모르는 사람이다.조금이라도 자식들에게 부담을 줄까 봐 '엄마는 괜찮다', '너네만 잘 살면 된다', '엄마는 신경 쓰지 마라'가 늘 반복되는 엄마의 레퍼토리다. 효도하는 기분도 딸에게는 뿌듯함과 행복함이 된다고 아무리 설교를 해도 엄마는 오랜 세월 지켜온 엄마의 입장을 바꾸지 않으셨다.
엄마와의 나들이를 위해 갈 장소를 찾아내고 식당을 잡아놓고서도 그날 아침에 펑크를 내는 일도 여러 번이었다. 다른 일이 생겼다거나 가고 싶지 않으신 것도 아니면서, '저네들끼리 가는 게 더 편할 텐데'라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시고 결국엔 안 가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그럴 때 자식들이 얼마나 허탈한지 아무리 설명해도 "고만, 나는 됐어." 하며 우리의 이야기를 잘라 버리신다.
그러나 올해 휴직을 하고 엄마와 단둘이 나서기 시작한 나들이에 엄마가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셨다. 딸이 시간이 많아서 폐가 덜 된다고 생각하여 조금 담을 허무시기 시작했고, 여러 번의 나들이가 반복되면서 딸에게도 즐거운 시간이라는 것을 드디어 깨닫기 시작하시면서 엄마도 부담 없이 여행을 즐기기 시작하셨다. 여러 번의 나들이로 내가 엄마와의 여행에서 서로 잘 맞는 부분을 찾아내고, 진심 신나서 여기저기를 누비는 모습에 엄마는 드디어 경계를 허물어내신 거다. 딸의 제안이 '가짜'나 '의무'가 아님을 드디어 믿으시게 되었다.
엄마는 사진에 별로 관심이 없으시다. 우리가 어릴 적 사진 찍기가 흔했던 문화도 아니었고. 같이 여행을 다녀도 그 흔한 스마트폰 한 번 꺼내 풍경이라도 한 번 찍으시는 일이 없으시다. 그러다 보니 딸 사진을 찍어주실 생각도 못 하셨고, 예쁜 풍경 앞에 서 보시라고 하면 "같이 찍자" "나는 어릴 때 하도 외롭게 커서 혼자 찍기 싫어"하시며 사진 찍기를 거부하신다. 그러면 예쁜 배경은 다 가려지고 엄마와 내 얼굴만 가득한 셀카만 가득 남곤 했다. 그러시던 엄마가 수국 앞에서 내 사진을 찍어주시고는 "나도 거기서 찍어야겠다. 엄청 이쁘네"하신다!! "나는 어릴 때 하도 외롭게 커서.."로 시작되는 멘트가 하도 지겨워서 "알겠어요. 엄마 찍기 싫으면 안 찍어 돼."하고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는데. 그러시던 엄마 입에서 "나도 여기서 찍을란다"라니.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이 70의 엄마가 바뀌셨다. 오로지 내 공인 것처럼 나는 마구 가슴이 뛴다. 감격스럽다.
차를 타고 가다가 예쁜 코스모스밭을 보시고 감탄을 하시며 "엄마 70에 니가 휴직을 해서 너무 좋아"하신다. 내가 휴직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엄마의 이 말 한마디로 나의 휴직기간은 의미가 충분해진다. 초여름의 모내기밭을 특별히 좋아하는 내가 가는 곳마다 감탄을 내뱉다가, "김제를 가야겠다"했더니, "그래, 그래, 좋다. 김제 가자"하시며 맞장구를 치신다. 여행 가자고 하면 "너네나 가서 재밌게 놀아"하시던 과거의 엄마는 기억 속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엄마랑 다니다 보면 유난히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셨던 중년 아주머니들께 핸드폰을 돌려드리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쁘네요. 진짜 예쁘다"하신다. 그 정도는 아닌데? 하며 웃다가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하는 딸이 어른들 보시기에 그렇게 예쁘구나 하고 깨닫는다. 예전에 남편이 데려갔던 멍게비빔밥집에 엄마를 모시고 갔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우리 식탁 옆에 오셔서 아무 말씀 없이 빙긋이 웃으시며 우리의 식사 모습을 보신다. 머쓱해서 "지난번에 남편이랑 왔는데, 엄마 모시고 다시 왔어요"했다. 잠시 후 아주머니께서 멍게회 한 접시를 들고 다시 나타나셨다. "이것도 함 잡솨봐요." 내가 좋아서 놀러 다닐 뿐인데 엄마랑 다니면서 다른 어른들께 과한 사랑을 받는다. 그러는 중에 엄마의 어깨에는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세상의 어떤 성공한 딸보다 '자랑스러운 내 딸'과 함께 하시는 엄마 마음에 변화가 없다면 그게 더 신기한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