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oyfulmito
Nov 25. 2023
마흔다섯, 너무나 이른 나이에...
이런 날이 올까 봐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이런 연락을 받지 않기를 바라고 바라왔다. 그러면서도 왜 옆을 지켜주지 못했던가.
친구는 암선고를 받은 후 친구들과 거리를 두었다. 친했던 친구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아주 가까웠던 친구는 아니었기에 친구의 소식을 오래 알지 못했다. 각자 살기 바빠서 연락이 끊어진 지도 꽤 되었다.
어느 날 친구의 블로그를 통해 친구가 아프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하지만 겁이 나서 그 글을 클릭해서 읽지도 못했다. 전화를 해 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에 서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곁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내 번호인지 모르고 받은 듯 전화기를 통해 전해지는 내 목소리를 듣고 친구는 깜짝 놀랐다.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고 어색했다. 이 시간이 친구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또 전화할게."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그게 내가 친구와 한 마지막 통화가 되고 말았다.
그 이후 친구 생일날 선물을 한 번 보냈고, 겨울 방학 때는 꼭 맛있는 밥 사주며 드라이브라도 시켜주어야지, 다짐했는데... 코로나 규칙이 엄격해져서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친구는 물론 나도 백신 후유증으로 2차까지 마치지 못해서 식당 출입도 2명 이상은 불가능한 때였다. 아쉬움을 담아 친구와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다행히 친구는 몸이 나아져서 복직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다음 해 그 친구와 무관한 누군가로부터 친구의 재발 소식을 듣고 말았다. 이번엔 더더욱 도저히 전화를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친구의 마지막이 외로웠을까 봐 너무 마음이 아프다.
장례식에 가는 걸음이 너무 무겁다. 어떻게 친구 남편과 아이들의 얼굴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장례식장에 걸리기에는 너무 젊고 예쁜 친구의 사진이 보인다. 고등학생의 아직도 앳된 두 아이가 상복을 입고 의젓하게 아빠 옆을 지킨다.
노년기를 보내는 것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범한 시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는다. 장례식장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누군가를 만난다. 장례식이 아니면 보지 못했을 옛날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운 건지 반갑지 않은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친구의 남편인 선배가 올해 좋은 곳에서 같이 많이 가고, 고통 없이 가고 싶다고 했는데 고통 없이 갔다며 우리를 위로한다. 우리를 보고 친구가 좋아할 거라며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아무래도 나는 너무 늦게 왔다. 더 용기를 냈어야 했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남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고작 이게 전부다.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우리 마음을 들을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를 뒤늦게 전한다. 친구야, 거기서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