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램이가 방학을 하자마자 또 제주도로 간다. 코로나 이후 정말 뻔질나게 제주를 드나들고 있다. 선택지가 줄어든 때문도 있지만 자주 갈수록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결국엔 한국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제주의 매력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여행 일정은 충분히 늘이고, 딸이 원하는 호텔 조식을 먹기 위해 이틀은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늘 그렇듯 여행 일정은 계획하지 않았고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마트에 들러 장을 본다. 일상에서 빠져나오는 게 여행이지만 여행을 많이 다니는 우리에게는 여행의 루틴이 정해져 있어서 여행조차 일상 같다. 이번 여행에서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아들이 자가격리 중에 집으로 배달되었던 햇반과 캔 반찬 등의 휴대용 음식을 잔뜩 싸왔다는 점이다. 덕분에 이번 여행에는 아무래도 열심히 밥을 해 먹을 일은 없을 듯하다.
예약한 숙소가 마음에 든다. 공간이 넉넉하고 여유로운 복층 건물에 퀸 사이즈 침대 2개가 나란히 놓여 있고 스크린과 넷플릭스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바로 앞에 보이는 경치도 좋고 공용으로 사용하는 카페에는 커피와 귤, 양념뿐 아니라 만화책을 비롯한 다양한 책도 구비되어 있다. 저녁 먹고 나면 네 식구가 나란히 편안하게 누워 같이 드라마와 영화를 봤다. 나를 구경하는 창 밖 길고양이를 보며 그림도 그리고 여유롭게 책도 읽었다.
딸이 좋아하는 미술관, 아들이 좋아하는 액티비티,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카페에, 제주에 왔으니 동백 구경도 하고 예쁜 숲도 산책하고 녹차밭에서 사진도 찍는다. 제주 한 달 살이 두 번과 최근 뻔질나게 제주를 드나들었으니 우리 가족은 제주에 추억이 많다. 동백을 보러 가면 지난번에 동백을 보러 갔던 곳을 떠올리고, 숲을 가면 우리가 갔던 다양한 숲들을 떠올린다. 이야깃거리가 많아서 제주 여행이 더 즐거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많은 곳을 가 봐도 아직도 안 가 본 곳이 많은 것도 제주 여행을 계속하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12월 31일 온라인으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또 나란히 누워 드라마를 보다가 라면을 끓여 먹었다. 새해 첫날부터 이 밤에 라면이라니... 이렇게 밤에 야식 먹는 거를 해 보고 싶었다니 큰맘 먹고 여행 중에 위시리스트 하나를 지워준다. 남편이 해돋이 보러 갈까? 묻는데 내일도 볼 수 있는 해를 굳이 늦게 잔 날 일찍 일어나서 갈 필요 있냐며 다음날도 미룬다. 지극히 현실적인 엄마다. 그렇게 1월 2일 아침 해돋이를 보기 위해 다 같이 일어나 표선해수욕장으로 갔는데, 해가 떠오르는 시점이 되어서야 잘못된 위치에 서 있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걸어서 차에까지 가고 다시 해를 볼 수 있는 위치로 가니 해는 이미 중천^^;;에 걸렸다. 날씨 때문에 해돋이를 못 보는 경우는 많아도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오늘 못 본 해돋이는 다음에 또 보면 된다며 쿨하게 숙소로 돌아간다. 해돋이를 보는 것보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난 더 재미있더라.
새해가 시작되었으니 경치 좋은 카페에 앉아 새해 계획도 적어본다. 운동, 책, 성경 읽기... 늘 세우는 계획들이지만 계획을 세우면 더 책임감이 생긴다. 이렇게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카페에 앉아 같이 새해에 하고 싶은 일을 적는 것도 6년 전 제주 한 달 살이 때가 시작이었다. 아이들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할 것을 적었네. 나이가 들어가더라도 하고 싶은 것들도 꾸준히 적어야겠다.
호텔 식당 맞은편 자리에 앉은 엄청나게 바빠 보이는 젊은 부부가 우리의 시선을 끈다. 6개월쯤 되어 보이는 아가를 아기의자에 앉혀 놓고 젊은 부부가 얼마나 부산스러운지. 아무리 보아도 아가는 얌전하다. 싱긋이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남편을 보니 나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우리도 그랬어.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여유롭게 미소 짓고 있는 우리 앞에 앉아 의젓하게 아침을 먹고 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귀하다.
제주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카페에 앉아 바다 구경을 더 하기로 했다. 파란색 하늘과 바다. 대구에 가기 전에 많이 봐 둬야 해. 파란색 제주를 온몸 가득 채우고 일상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