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해가 막 떠오르려 한다. 급히 옷을 챙겨 입고 일출을 보러 나갔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와 분위기 있는 겨울나무, 은빛 구름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오늘의 해가 은은하고 평화롭다. 강렬한 일출과는 또 다른, 겨울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우아한 일출이다. 덕분에 우아한 하루를 기대하게 된다.
오늘은 이동 거리가 꽤 긴 편이라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서두르나 늑장을 부리나 체크아웃 11시는 늘 똑같다. 학교 다닐 때는 늘 종 칠 때 정확하게 교실에 들어온다고 친구들이 종순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종 칠 때 정확하게 교실에 들어간다는 것은 여유롭게 일찍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결국엔 늦은 만큼 뛰어서 겨우 종 칠 시간을 맞추는 것이지. 예나 지금이나 습관은 바뀌지 않는다. 뭐든 미리 해 두는 건 잘되지 않는다.
인심 좋은 주인아저씨께 인사를 드리고 부여를 빠져나왔다. 차도, 신호등도 거의 없던 한적한 부여를 빠져나와 수원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를 에워싸는 차들로 도로는 빈틈없이 메워진다. 수원에 도착해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아간 식당 앞에서도 주차할 곳을 못 찾아 한참이나 애를 먹었다. 결국, 아이들은 식당 앞에 내려주고 먼 곳에 주차한 후 주차한 위치를 저장해 두었다. 도시에 살면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질 수밖에 없겠어.
서울 가는 길, 수원에 들른 이유는 수원화성을 보기 위해서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꼭 한 번 와 보고 싶었어. 드디어 와 보긴 했지만, 수원화성이 워낙 넓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하다. 물론 나 홀로 여행이라면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마음에 드는 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수원화성을 즐기겠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 이렇게 넓은 곳에서는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보고 싶은 것을 보기도 전에 아이들이 지쳐 버리면 낭패다. 그렇다고 갑자기 계획이 생길 리 만무하고 일단 무작정 성벽을 따라 걷는다. 이렇게 성벽만 따라 걷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화성행궁에라도 가볼까 싶어 길을 물었는데, 우리가 오던 길을 돌아가야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딸은 입이 삐죽 나왔고 설상가상으로 또다시 엉뚱한 곳으로 빠지는 바람에 산길을 한참이나 헤매고 말았다. 결국엔 두 아이가 완전히 지친 채로 화성행궁에 도착했고, 우리가 점심 먹었던 곳 바로 옆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계획성 없는 엄마 덕분에 두 아이가 고생이 많다. 지친 두 아이는 다리가 아프다며 벤치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잠시 앉아 쉬고는 금세 충전 완료되어 배터리 빵빵하게 이곳저곳을 팔짝팔짝 뛰어다닌다. 덕분에 나도 힘을 내서 화성행궁을 돌아보았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왔다 가던 길에 쉬었다는 화성행궁, 어머니의 환갑잔치를 열어드렸다는 곳이다. 어린 시절 겪었던 아버지의 비극적인 결말을 평생 잊지 못했을 정조는 아버지의 인생뿐 아니라 어머니의 삶도 평생 짠했었나 보다. 나도 가끔 평생을 자식을 위해 살아가시는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면 짠할 때가 있다. 부모님을 돌보고 형제자매들을 돌보고 자식들을 돌보느라 당신은 전혀 돌볼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엄마를 떠올릴 때는 그런 짠한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화성행궁을 둘러보고 지친 다리를 쉬기 위해 잠시 카페에 들어왔는데, 아이들이 놀 거리를 안 갖고 왔다며 차에 가서 쉬자고 한다. 다리 아프다더니 아이들은 역시 노는 게 더 중요하다. 잠시 쉬고 차로 돌아가는 길에 한 외국인이 귀엽다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몇 살인지 묻더니 나더러 “Is he your brother?”하고 묻는다. 푸하하하하. 나이 마흔 하나에 아들의 누나냐는 질문도 받아보다니. 동양인 나이 가늠하지 못하는 서양인 덕분에 한참을 웃었네. 외국인과 헤어진 후 아이들도 깔깔깔 웃음을 터트린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지쳤을 때는 또 하나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이제 서울까지 운전해서 가야 하는데 차에 앉으니 피곤이 몰려온다. 엄마가 차에 앉아 쉬는 동안 아이들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하나씩 사 와서 간식을 먹으며 또 깔깔댄다. 티격태격하면서도 둘이 있으면 그렇게 재미있나 보다. 두 아이의 웃음소리가 엄마를 충전시키는 에너지가 된다. 실컷 쉬고 수원을 빠져나오는 내내 수원화성이 눈앞에 보인다. 앞에서 보는 모습은 더 멋지구나. 다음에 오면 천천히 둘러보며 더 많이 구경해야지.
서울 들어가는 길, 예상대로 차가 엄청나게 막힌다. 아… 서울 가기 힘들다.
수원화성: 경기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320-2
화성행궁: 경기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