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약속 시간을 못 지키면 못 보는 거구나

by joyfulmito

오늘 머물 숙소까지는 2시간, 꽤 장거리를 가야 한다. 오랜 여행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이제 2시간 차 타는 것 정도는 힘들어하지 않고 잘 다닌다. 심지어 중간에 휴게소도 안 가도 된다는데, 전망이 너무 멋진 휴게소가 있으니 엄마가 멈춰 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다 중간 섬에 있는 휴게소라니. 잠깐 쉬다 가자며 내렸는데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쉬다 보니 너무 쉬어 버렸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몽산포 해수욕장에 들러 일몰을 볼 계획이었는데, 일몰 시간도 체크도 해 두었는데, 너무 정확한 시간에 몽산포에 도착하고 말았다. 몽산포 해수욕장에 들어갈 때 해가 반쯤 남아 있더니 주차를 하는 사이 반이라도 남아 있던 해가 바닷속으로 쏙 몸을 숨겨버렸다. 무슨 만날 사람이라도 있는 듯 일몰 예정시간 5시 50분에 정확히 맞춰 싹 사라져 버리네. 아쉬워라. 엄마가 휴게소에 마음을 빼앗기는 바람에 일몰을 놓쳤구나. 내가 시간을 맞추는 습관이 이렇다.

학교 다닐 때도 늘 종 치는 순간 교실에 들어선다고 친구들이 종순이라 부르고 했었다. 시간이 좀 남도록 여유롭게 가도 될 것을 시간이 조금 남는다 싶으면 그 사이에 또 다른 무언가를 한다. 그러다 늦거나 급하거나 하면서도 말이다. 결국엔 늦은 만큼 뛰어서 겨우 종 칠 시간을 맞추는 거지. 중학교 친구가 하는 치과에 진료를 받으러 가면서 또 그렇게 시간을 꼭 맞춰 헐레벌떡 뛰어 들어갔더니 친구가 “여전하네. 여전해”하며 깔깔 웃는다. 사람 잘 안 바뀌지. 암. 이 친구 역시 나와 같이 종소리에 맞춰 교실에 들어가던 친구다. 원래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잖아.

일몰 후에 하늘은 더 아름다워지는데, 왠지 모르게 약이 올라 아름다운 일몰 후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괜히 심술이 나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린다.


오늘 놓친 일몰이 아까워서 내일 아침엔 다 같이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다. 겨울이라 해가 늦게 뜨니 아침잠 많은 딸도 다 같이 도전해 볼 만하다. 여행 와서 처음으로 알람을 맞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7시에 알람을 끄고 “일출 보러 갈까?” 하니, 아들이 눈을 뜨며 “누나 가면 나도 갈래.” 한다. 딸도 “그래 가자”하며 부스스 눈을 뜬다. 생각보다 밖이 너무 환해서 일출도 놓쳐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 살짝 초조해진다. 아이들이 실망할까 걱정이 되어 “구름이 많으면 못 볼 수도 있어. 일출 보는 게 원래 쉬운 일이 아니거든.” 하며 혹시 모를 상황에 아이들의 마음을 대비시켜 둔다. 중학교 시절 바닷가로 간 교회 수련회 마지막 날. 일출을 보겠다며 친구들과 밤을 새우고 해변으로 나갔는데, 구름이 자욱해서 전혀 해가 보이지 않았더랬지. 그날 얼마나 실망을 했던지 해변에 친구들과 허탈하게 앉아 있던 모습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그 기억 때문에 아이들을 깨워 데려가면서도 일출을 보여 주지 못할까 봐 조마조마하다.


20분을 달려 서해에서도 일출을 볼 수 있다는 황도에 도착했다. 다행히 아직 해는 뜨지 않았고 이미 충분히 예쁜 빛깔을 연출 중이다. 일출이 잘 보일 만한 곳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일출을 기다렸다. 바깥 풍경이 너무나 예뻐서 해가 뜨기도 전에 몇 번이나 들락날락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수십 장의 사진을 찍는 사이 드디어 예쁜 해가 떠오른다. 감탄사를 쉴 새 없이 터트리며 쉼 없이 셔터를 누른다. 세수도 안 하고 나왔지만 멋진 배경 속에 우리도 넣어본다. 어차피 실루엣 사진이라 전혀 문제없지. 멋진 일출을 감상하고 다시 30분을 달려 꽃지 해수욕장까지 들렀다. 물이 빠진 시간이라 유명한 할미 할아비 바위까지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바람이 너무 차서 도저히 더 걸어갈 수는 없다. 일출을 보고 이곳에 왔는데 여기는 동그란 달이 아직 선명하게 떠 있네. 예쁜 풍경만 눈에 담고 빨리 차에 올라탔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돌아다녔으니 오전엔 숙소에서 뒹굴뒹굴 쉬어야겠다. 찬바람 쐬고 들어왔더니 따끈따끈한 방이 더없이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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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담도 휴게소: 충남 당진시 신평면 서해안고속도로 275

몽산포 해수욕장: 충남 태안군 남면 신장리

황도 선착장: 충남 태안군 안면읍 황도리 26-6

꽃지 해수욕장: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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