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박 26일 일정 중 스물다섯 번째 날. 이번 여행의 실제적인 마지막 날이면서 사랑하는 딸의 생일이다. 여행 중 생일상 차리기가 힘들어서 고민하고 고민해서 생각해낸 메뉴는 베이컨 말이다. 미역국은 즉석 미역국으로 간단하게 끓이고 채소는 다져서 밥이랑 섞어 두었다. 이제 베이컨에 말기만 하면 되는 비닐장갑도 없어 손에 달라붙기만 하고 도통 모양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명색이 딸의 생일상인데도 몇 개를 만들다가 기어이 포기를 선언하며 용감하게 그냥 볶음밥을 하자고 말해 버렸다. 엄마의 포기 선언에 실망한 기색도 없이 솜씨 좋은 딸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김밥도 엄마보다 더 예쁘게 만드는 딸램이 엄마가 포기한 베이컨 말이를 예쁘게 완성해 버렸지. 넌 도대체 못 하는 게 뭐니? 솜씨 좋은 딸 덕분에 엄마는 무사히 생일상을 차려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11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를 나섰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한 번 더 보고 떠날지 물었더니 다들 괜찮단다. 서해를 여행하면서 바다는 실컷 보긴 했다. 우리 공주님의 생일을 공주에서 보내기 위해 우리는 공주로 간다. 공주로 가는 길 공주님 생일 저녁 만찬을 위해 유명한 홍성 한우도 사서 차에 실었다. 그 사이에 차키 잃어버렸다며 한바탕 소동을 부리기도 했지만 모든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공주에 도착했다.
공주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무령왕릉이었지만 지금은 공사 중이라 공산성에 가보기로 했다. 공산성 성벽 위 산책은 바로 옆이 낭떠러지라 다소 아찔하긴 하지만 경치가 장난이 아니다. 공산성 옆을 흐르는 파란 강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돌벽과 정자 풍경이 기가 막히게 어우러진다. 역시나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셔터를 눌러댄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예술인데 이런 곳을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공산성 전체를 한 바퀴 걷고 싶지만 걷기 싫어하는 딸램을 데리고 생일날 너무 많이 걸으면 안 되니까 적절히 산책을 즐기고 나가기로 했다.
문을 향해 나가는데 아들의 눈이 반짝거린다. 활쏘기 체험이 있다. 참새 아들의 방앗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처음 해 보는 활쏘기 체험에도 재능을 발휘한다. 운동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아들이다. 체육이라면 전교에서 꼴찌였던 엄마에게서 어떻게 이렇게 운동을 잘하는 아들이 나올 수 있는 걸까. 체육 시간마다 민망하고 부끄럽고 눈물 꽤 나 흘렸던 엄마의 서러움을 말끔히 갚아 주는 아들이다.
공주 관광도 살짝 하고 산책도 했으니 이제 생일 파티를 하러 카페로 간다. 딸이 좋아할 만한 분위기에 케잌이 맛있는 카페를 미리 찾아두었지. 이미 주말에 아빠랑 케잌 사서 생일 파티는 했지만 생일날 그냥 넘어가면 또 섭섭하다. 예쁜 조각 케잌에 초도 꽂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미리 준비해둔 엽서도 한 장 내밀었다. 생일선물로 뭘 받고 싶은지 딸은 아직도 고민 중이다.
엄마가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주지 않는 편이라 이렇게 생일이나 어린이날 같은 특별한 선물을 받는 날엔 무엇을 살지 아주 신중하다. 이렇게 고민하면 ‘그냥 다 사줄게’ 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난 아이들을 너무 풍족하게 키우고 싶지는 않다. 부족함과 결핍도 모두 꼭 필요한 경험이다. 절제할 수 있어야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있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많이 고민하고 고른 만큼 생일선물은 분명 마음에 들 거야.
공주에서 함께 보낸 너의 11번째 생일. 너무너무 축하해. 11년 전 오늘은 엄마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의미 있는 날이었단다. 가장 감격스러운 날을 고르라고 한다면 엄마는 지체 없이 네가 태어나던 날을 꼽을 거야. 그날부터 엄마는 너와 함께 자라기 시작했어. 엄마도 그때는 철없고 어렸지만 네가 자라는 동안 엄마도 얼마나 많이 성숙했는지 몰라. 다 네 덕분이지. 부족한 엄마를 네 온 마음 다해 사랑해 주어 고마워. 어떻게 그 많은 사람 중에 우리가 엄마와 딸로 만났을까. 엄마도 마음 다해 사랑한단다. 사랑하고 사랑해.
공주 피탕김탕: 충남 공주시 한적2길 41-11
공주 공산성: 충남 공주시 금성동 53-51
미세스피베리: 충남 공주시 번영1로 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