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봉합

8. 탈피

by 조병인

승지가 올린 사재의 탄원서를 읽어본 주상은 억장이 무너졌다.

고통을 참지 못해 형에게 살인죄를 씌우려 한 상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눈앞에서 자식들의 눈이 뒤집히는 걸 본 어미는 임금을 얼마나 원망하였을까?

영문도 모르고 의금부에 잡혀가 속수무책으로 매질을 당한 세 식구에 대한 죄책감이 뼛속을 후볐다.

10년 넘게 공들여 쌓은 탑이 한순간에 돌 더미로 변한 것 같았다. 입맛이 통째로 달아나 저녁 수라를 한 술도 뜰 수 없었다.

죄 없는 백성을 무리하게 압박해 살인죄를 씌우려 한 자를 그냥 두면 나라를 다스릴 자격이 없는 것이다. 왕명을 어기고 순진한 일가족을 잔인하게 고문한 자를 관직에 있게 할 수 없다.

주상은 무원을 파면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런데 무원의 뒤를 이을 적임자가 없다. 재능을 눈여겨봐 둔 관원이 몇 명 있으나 무원만큼 강단을 갖춘 자가 없다.

무원은 고약한 고문 버릇만 빼면 나무랄 데가 없는 인재다. 조정대신들이 군계일학(群鷄一鶴)으로 꼽을 정도로 역량이 출중하다. 율학(律學) 생도 시절 수십 명의 동급생 가운데 성적이 최상등이었다.

의금부 도사들 가운데 무원의 책임감을 따를 자가 없다. 무원은 휴일도 없이 으금부에 출근해 백성을 괴롭힌 자들을 잡아들였다. 오죽하면 의금부 동료들이 무원의 건강을 염려해 때때로 염려를 표할 정도였다.

그때마다 무원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힘없는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이 모두 사라진 다음날이지.’라고 호기롭게 응수했다.

게다가 엄밀히 따지자면 무원의 탈선은 옥송원칙의 불합리가 빚은 창피한 비극이다. 용의자의 자백이 없으면 유죄판결이 불가능한 구조적 모순이 무원을 무자비한 괴물로 만든 것이니 무원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전하, 중전마마께서 오셨사옵니다.

주상의 고심이 깊은데 문밖에서 내관의 음성이 들렸다.

-중전이? 어서 안으로 모시어라.

중전은 주상이 저녁 수라를 걸렀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돼서 왔다고 하였다.

주상은 이유도 없이 입맛이 없다고 둘러댔다.

중전은 주상의 용안에 수심이 어린것을 알아채고 염려를 표했다.

-죄 없는 일가족을 잔인하게 고문한 자를 변방으로 보내려고 하는데 뒤를 잇게 할 후보를 못 찾고 있소.

주상은 무원이 죄 없는 일가족을 무리하게 고문한 사실과 후임자를 찾기가 어려운 사정을 소상히 털어놓았다.

-단점을 고쳐서 다시 쓰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전하께서 타시는 어가(御駕)도 어디가 망가지면 수리해서 다시 쓰지 않습니까?

-단점을 고쳐서 다시 쓴다? 그런 묘책이 있는 걸 몰랐구려.

주상은 중전의 조언을 따르기로 하였다.

하지만 무원의 고약한 버릇을 고쳐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

무원은 평소「죄수에 대한 동정은 형정(刑政)의 주적」이라는 신념으로 직무에 임했다. 무원이 그런 신념을 갖게 된 데에는 옛날 중국의 진(秦)나라 때 국정을 좌우한 법가(法家)의 영향이 컸다.

법가에서는 범법자들을 공동체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독버섯으로 여기고 엄형득정(嚴刑得情)을 당연하게 여긴다. 유력한 증거나 증언이 있는데도 자백을 거부하는 용의자에 대해서는 혹독한 고문을 용인한다.

율학생도 시절 법가사상을 접한 무원은 한비자의 가르침에 매료되었다. 이후로 ‘완력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는 자들을 응징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정하고 이름을 석봉에서 무원(無冤)으로 바꿨다.

무원은 원통하게 죽은 사람의 억울함(寃)을 풀어준다(無없)는 뜻이다. 중국의 원(元)나라 때 왕여(王與)가 펴낸(1308년) 『무원록(無冤錄)』이라는 검시지침서에서 따온 것이다.

스물한 살에 율학 연수를 마친 석봉은 형사사건의 사법처리를 담당하는 형조의 장금사에 배속되자마자 이름을 무원으로 고쳤다.

이후 3년 동안 폭력ㆍ공갈ㆍ협박 등으로 남을 괴롭힌 자들을 무수히 잡아들였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ㆍ아동ㆍ여성ㆍ노비ㆍ귀화인 등을 살상하거나 학대하거나 갈취한 자들을 절대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다.

주상이 무원을 의금부도사로 발탁한 것도 무원의 그런 기질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원의 장점을 살리면서 무리한 고문을 차단하고 싶은데 비책이 떠오르질 않았다. 알아듣게 타이르는 방법도 유배를 보내겠다고 겁박하는 방법도 무원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덕치(德治)를 이유로 강력한 법집행을 막는 것은 병사에게 창을 주면서 적을 살살 찌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사건마다 동기와 결과가 천차만별이라 법집행의 한계를 정할 수도 없었다. 기준을 잡기가 불가능할뿐더러 무리해서 잡는다고 해도 제대로 지켜진다는 보장이 없다.

주상은 고민을 시작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끝장을 보는 습성이 있었다. 이번에도 간간이 깊은 한숨을 쉬어가며 밤이 늦도록 궁리를 거듭하다 자정 무렵에 드디어 해법을 찾았다.

-지필묵을 대령하라.

분부가 떨어지기 무섭게 내관이 연상(硯床)을 가져다 주상 앞에 놓았다. 주상이 글씨를 쓰기 편하게 종이의 접힌 부분을 평평하게 펼쳤다. 문진(文鎭)을 집어서 양쪽 가장자리를 누르고 벼루에 먹물을 부었다.

주상은 붓끝에 먹물을 묻혀서 옥송을 담당하는 관원들이 유념해야 할 수칙들을 써 내려갔다.

다 쓰고 세어보니 여덟 가지다.

주상의 용안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

다음날 무원이 의금부에 출근해 나장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리고 있는데 승정원에서 내관이 왔다.

무원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사재가 신문고를 두들긴 일로 파직 통보가 올 것을 예상하고 마음을 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원은 내관에게 주상이 자신을 찾는 이유를 물었다.

내관은 자기가 알 일이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무원은 내관이 자신의 파직을 알리기가 난처해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납득이 안 되는 측면이 있다.

직책을 거두려면 이조를 시켜서 임명장(職帖·직첩)을 회수하면 될 일을 국정에 바쁜 주상이 당상관도 아닌 나를 굳이 만나보려는 의도가 무엇일까?

무원은 마음 한구석에 궁금증을 한 아름 품고 내관과 함께 대궐을 향했다. 모친이 정성껏 지어준 정갈한 관복의 정면에 정 오품 표시인 학 두 마리가 보기 좋게 수놓아져 있다. 발 모양의 나무 바닥에 검은색 사슴 가죽으로 목을 대서 만든 나무신과 단아하게 채색된 사모관대가 관복의 맵시를 더해주었다.


내관의 안내를 따라서 어전에 나아간 무원은 고개를 쳐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주상에게 공손히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으로 용상이 있는 쪽을 향해 허리를 깊게 숙였다.


주상은 거두절미하고 자신이 왕위를 물려받은 11년 전의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즉위하던 해 동짓달에 팔도 감사에게 형벌을 함부로 쓰는 수령을 엄히 다스리라고 교지를 내린 사실을 알고 있느냐?

주상은 무술년(1418) 팔월 십일에 임금이 되고 삼 개월 지나서 중앙과 지방의 각급 관원들에게 아홉 가지 기본책무를 내려주었다. 그 여섯 번째에 사적인 감정으로 형벌을 과하게 쓰는 수령이 있으면 감사가 엄히 다스리라고 적혀있었다.

-형벌을 쓰는 관원이 어찌 전하께서 첫 번째로 내리신 유시(諭示)를 모를 수가 있겠사옵니까?

-잘 알면서 어쩌자고 죄 없는 가족을 그토록 모질게 다뤘느냐?

-아뢸 말씀이 없사옵니다. 형벌을 함부로 쓴 죄를 달게 받겠사옵니다.

무원의 대답은 솔직하고 담백했다.


주상은 다시 한번 무원의 속내를 떠봤다.

-네가 피살자 유족의 억측과 어린애의 위증에 속아 죄 없는 여러 명을 모질게 다뤘다는 말을 듣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죽거나 불구가 되었으면 내가 무슨 낯으로 백성을 대하겠느냐.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저의 잘못을 변명하지 않겠사옵니다.

-너에게 흠휼지인(欽恤之仁)과 휼민신형(恤民愼刑)을 실천하는 법을 알려줄 것이니 가슴 깊이 새기고 항시 그대로 따르도록 하라.

주상의 윤음은 따뜻한 목화솜처럼 부드러웠고 물 먹은 수증기처럼 촉촉하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흠휼지인은 형벌을 삼가고 죄수를 가엾게 여기라는 뜻이다. 휼민신형은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형벌을 신중하게 쓰라는 뜻이다. 두 말 모두 법전의 모태인 경서(經書)에서 인용한 것이다. 둘 다 덕치를 떠받치는 근본이니 옥사를 담당하는 관리라면 마땅히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다.

-율학 생도 시절에 그와 같이 배운 기억이 있사옵니다.

-배우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말이란 걸 유념하라.

-명심하라는 옥음까지 깊이 새기겠사옵니다.


내관이 어전의 서궤에 놓여있던 두루마리를 집어서 무원에게 건넸다. 무원은 양손으로 공손히 받아서 말려있는 뭉치를 조심해서 풀었다.

시야에 잡히는 글자마다 용이 살아서 꿈틀대는 것 같았다.

글자를 이루는 획들이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파도의 물결처럼 요동쳤다. 위로 치솟았다가 아래로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군무를 추는 것 같았다.

무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어필이다! 틀림없는 어필이야!’

무원은 주상의 친필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전에 의금부 도제조와 제조들이 주상의 필체를 칭송하는 말을 우연찮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아직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 그대로다.

글자마다 획과 획의 간격이 일정하다. 모든 글자의 선이 굵고 획의 시작과 끝에 강한 기운이 배어있다. 힘을 줘야 할 곳과 빼야 할 곳의 조응(照應)이 눈부시다. 힘차게 내뻗다가 급하게 멈추는 강약의 조화가 황홀하다. 올곧은 직선과 유연한 곡선이 핏줄처럼 서로 기대고 있다.


〇 옥송수칙(獄訟守則)

-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마음을 비워라(精白虛心)

-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에 얽매이지 마라(無拘於一己之見)

- 사람들로부터 들은 말을 그대로 믿지 마라(無主於先入之辭)

- 남이 하자는 대로 따라서 부화뇌동하지 마라(毋雷同而効轍)

- 오래된 인연이나 연고에 얽매이지 마라(毋苟且以因循)

- 피의자가 말을 바꿔서 자백하였다고 기뻐하지 마라(勿喜囚人之易服)

- 사법절차가 속히 종결되기를 바라지 마라(勿要獄辭之速成).

- 여러 방면으로 따져보고 반복해서 답을 찾아보라(多方以詰之 反覆以求之)


무원은 벅찬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뢸 말이 한 마디도 떠오르지 않고 눈물만 하염없이 쏟아졌다.

-형법은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있는 것이지 죄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옥송이 지체되더라도 절대 막수유(莫須有)를 하지 마라. 명백한 증거 없이 심증만으로 죄를 씌우면 천벌이 내리느니라.

막수유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맞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옥송의 영역에서는 명백한 증거 없이 단지 주관적 심증만으로 죄를 씌우는 경우를 지칭한다. 옛날 중국 남송(南宋) 시대의 명장이었던 악비가 막수유로 처형되었다.

-죽을죄를 지은 죄인은 살릴 방도를 찾아보고 유배나 노역에 처해질 죄인은 형을 낮춰줄 방안을 궁리해야 하는 법이니라.

-전하의 윤음을 평생 가슴에 담고 살겠사옵니다.


무원은 양쪽 손바닥이 땀에 젖는 줄도 모르고 주상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형으로 정치를 보완하고(형이보치·刑以補治) 법으로 형을 정하는 것(율이단형·律以斷刑)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 그러나 범죄는 무한한데 법조문은 유한하여 ‘법전에 정확히 들어맞는 조문이 없으면 가까운 조문을 적용한다.’는 원칙이 생겼다. 형을 늘리거나 줄일 때는 터럭만큼의 차이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옥관들은 형을 적용할 때 대개 중한 법을 적용하여 죄인이 원한을 품게 만든다. 죄가 가벼운 듯도 하고 무거운 듯도 하여 형을 정하기가 애매하면 가벼운 쪽을 따르고, 죄가 무거운 쪽에 가깝다고 판단되면 법에 알맞게 형을 정하도록 하라.

-전하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겠사옵니다.

무원은 앞에서 한 번 써먹은 대답을 다시 써먹었다.

-사형선고를 받고 죽는 자가 구천에서 원한을 품지 않게 하고 살아남은 자가 앙심을 품는 일이 없게 하라. 옥송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의 원한이 쌓이면 민간의 화기(和氣)를 해쳐서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재앙이 닥친다.


무원은 율학 생도 시절에 배운 성현들의 가르침들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서경》에 나오는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의 가르침이 생각났다.

「형벌을 쓸 때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써야 한다.」


원문은「흠재흠재 유형지휼재(欽哉欽哉 惟刑之恤哉).」이다. 아득한 옛날에 중국의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은 형벌보다 덕(德)을 앞세우는 정치로 범죄가 사라져 형벌이 필요 없는 ‘무형국가’를 세우고자 하였다.

《논어》에서 읽은 공자의 말도 생각났다.


「법으로 인도하고 형벌로 질서를 잡으면 백성이 법망을 면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 덕(德)으로 인도하고 예(禮)로 질서를 잡으면 백성이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감화를 받는다.」

《예기》에 나오는 비슷한 구절이 떠올랐다.


「덕으로 가르치고 예로 질서를 잡으면 민중이 바른 마음을 갖는다. 정책으로 가르치고 형벌로 질서를 잡으면 민중이 피하려는 마음을 갖는다.」

《맹자》에 나오는「통치자는 인의도덕(仁義道德)을 실천해야 한다.」는 구절도 생각났다. 「임금이 부덕하면 왕조를 바꿔도 무방하다.」는 말도 떠올랐다.

바위처럼 단단하던 무원의 쇠고집이 거품처럼 사그라졌다.

엉터리 추측을 믿고 죄 없는 일가족에게 살인죄를 씌우려 한 일이 천 번 만 번 후회되었다. 어린애의 허위자백에 속아 죄 없는 세 젊은이를 잔혹하게 고문한 일이 죽고 싶도록 창피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오늘 저에게 친히 내려주신 윤음을 절대로 어기지 않겠사옵니다.

-어서 의금부로 돌아가 왜통사를 죽인 자들을 속히 붙잡도록 하라.

***

뒷걸음질로 어전을 나온 무원은 용의자가 자백을 거부해도 다시는 고문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능자로 낙인찍히더라도 비루한 폭력 대신 확실한 증거로 혐의를 입증하는 형관(刑官)이 되자.


의금부 집무실에 돌아와 정신을 차리고서 생각해 보니 마치 잠결에 꿈을 꾸다가 깨어난 기분이었다. 이른 아침에 잠은 깼지만 정신이 안 들어서 의식이 흐릿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서 어느새 해가 저물어 남산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옛날에 중국에서 사위에게 황제 자리를 빼앗기고 원통해서 울다가 지쳐서 죽은 뒤에 두견새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옛날 중국의 촉(蜀)나라에 이름은 두우(杜宇), 제호(帝號)는 망제(望帝)라고 불린 왕이 있었다.

어느 날 망제가 어떤 산 밑을 지나고 있는데 흐르는 강을 따라 빠져 죽은 시체 하나가 떠내려 오더니 망제 앞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떴다.

망제가 이상히 생각하고 곡절을 물으니, 자신은 형주(刑州) 땅에 사는 별령(鱉靈)인데 강가를 거닐다가 실수로 물에 빠졌는데 어찌해서 흐르는 물을 거슬러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망제는 하늘이 자신에게 어진 사람을 보내준 것으로 여기고 별령에게 집과 정승 벼슬을 내리고 처녀를 구해서 가정을 꾸려줬다. 당시 나이가 어리고 마음도 약했던 별령은 은연중 불측한 마음을 품고 대신과 하인들을 모두 자기 심복으로 만들어 나라를 마음대로 주물렀다.

급기야는 천하절색인 자신의 딸을 망제에게 바치니 망제가 크게 기뻐하여 국사를 모두 별령에게 맡기고 자신은 밤낮으로 황후에게 빠져서 나라를 돌보지 않았다.

그 틈에 별령은 대신들과 짜고 망제를 나라 밖으로 내쫓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권력을 빼앗기고 떠돌이 신세가 된 망제는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갈 길이 없어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날마다 서럽게 울다가 마침내 지쳐서 죽었다.

망제의 영혼은 두견새가 되어서 밤마다 ‘불여귀(不如歸: 돌아가고 싶다는 뜻)’를 부르짖으며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다. 후세인들은 망제의 죽은 넋이 두견새가 되었다고 여기고 ‘촉혼(蜀魂)’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무원은 야밤에 개천교에서 비명횡사한 이춘발의 원혼이 두견새가 되어 남산의 우거진 숲에 살고 있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춘발이 아무리 허망하게 죽었어도 그의 원혼이 두견새가 되었을 리가 없다. 무원도 터무니없는 공상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남산의 두견새를 원통하게 죽은 왜통사의 원혼으로 믿고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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