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봉합

7. 호의

by 조병인

사재는 어미와 함께 아침식사를 일찍 마지고 전날 어미가 준비한 닭요리와 상이에게 넣어줄 솜옷을 싸가지고 함께 집을 나섰다.

의금부는 경복궁과 창덕궁 인근의 중부 견편방에 있어서 훈도방 주련의 집에서 단숨에 닿을 수 있었다.

활짝 열린 의금부 대문으로 안쪽을 들여다보니 지붕이 공중에 걸린 것 같은 건물이 열 채도 넘는 것 같았다. 의금부에 갇혔을 때는 건물을 세어볼 겨를이 없었다.

건물들마다 잡혀오는 자들을 한 입에 삼킬 듯한 위세로 대문을 내려다보았다.

의금부 대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먼저 사재를 알아보고 용건을 물었다.

자세히 볼 것도 없이 사재와 상이를 모질게 고문한 나장 중 한 명이었다.

사재는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고 무원을 만나게 해 주기를 청했다.

문지기는 마치 사재의 속내를 아는 것처럼 이유를 묻지도 않고 부하를 시켜서 무원에게 사재의 방문을 알리게 하였다.


사재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무원은 사재와 주련을 집무실로 맞아들였다.

사재는 무원이 자신의 방문을 기다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무원은 내색을 하지 않고 주련 모자에게 찾아온 연유를 물었다.

-상이가 혹시 다른 마음을 먹고 몹쓸 짓을 할까 봐 걱정이 돼서 어머니를 모시고 왔습니다.

사재는 의금부 앞에 가서 신문고를 치고 임금에게 탄원서를 올린 사실을 밝히고 상이를 만나게 해 주기를 청했다.

무원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송구하옵니다만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사재는 전날 자신이 행한 일들을 무원이 소상히 알고 있다고 짐작하였다.

-상이를 만나게 해 줄 것이니 동생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어라.

무원은 즉시 나장을 불러서 두 사람을 의금부관원들의 식당으로 안내해 상이와 만나게 해 주라고 시켰다.

사재와 주련은 허리를 깊게 숙여 감사를 표하고 무원의 집무실을 나왔다.

나장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식당은 공간이 넓고 내부가 밝았다. 나무식탁의 숫자가 어림잡아 삼백 명 정도가 동시에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식당에 딸린 부엌에서 열 명도 넘는 여자들이 분주하게 점심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여섯 명은 동이로 물을 길어오고 열 명 정도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서 곡류와 채소를 씻었다.

관노비로 보이는 남자 둘이서 지게로 땔나무를 져다가 부엌 가운데다 내려놓았다.

사재아 주련은 햇볕이 잘 드는 창문가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주련은 상이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먹을 수 있게 삶은 닭의 다리를 정성껏 찢었다

사재는 식당의 출입문에 두 눈을 고정시키고 상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얼마 안 되어서 상이가 식당 밖에 나타났다.

그런데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서 한쪽 다리를 절뚝거렸다.

양쪽 눈두덩이 언덕처럼 부어있고 입술에는 무자비가 짓밟고 지나간 자국이 부스럼처럼 덮여있었다.

주련이 무너지듯 상이의 허리를 껴안고 어깨를 들먹였다.

상이도 어미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아이처럼 울먹였다. 상이의 눈물과 콧물이 입가에서 뒤섞여 턱 아래로 떨어졌다.

-힘들지 않은 게 없지?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입는 것도...

사재가 상이의 손을 붙잡으며 말길을 뚫었다.

상이는 심하게 찢어져서 달라붙은 입술을 얼른 떼지 못했다. 어렵게 혀를 내밀어 침으로 말라붙은 피딱지를 적셨다.

-말을 할 때마다 생살이 찢어지는 거 같아요.

주련과 사재는 억장이 무너졌다.

주련은 상이를 가슴에서 떼어내 의자에 앉혔다.

-배고플 테니 이것부터 먹고 이야기는 천천히 하자. 급하게 먹으면 체할 수 있으니 천천히 꼭꼭 씹어서 삼키거라.

주련은 미리 찢어놓은 닭다리를 손으로 집어서 상이의 입에 넣어주었다.

상이는 허겁지겁 허기를 채웠다.

주련은 닭고기를 맛있게 먹는 상이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주련은 상이가 입 안의 고기를 다 씹기도 전에 남은 닭다리를 마저 집어서 상의의 손에 쥐어주었다.

주련은 부엌에 가서 물을 한 바가지 얻어다 상이에게 마시게 하였다.

상이가 배가 부르다며 먹기를 멈췄다.


사재가 상이를 위로해 줄 말을 찾고 있는데 상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임금님이 죄수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시나 봐요. 먹고 입고 자는데 큰 불편이 없어요. 관원들도 죄수들을 험하게 다루지 않아요.

-맞아. 임금님은 죄수들을 괴롭히는 옥졸들을 가만두지 않으셔. 형벌을 잘못 써서 억울한 마음을 품는 백성이 많으면 하늘에서 천벌이 내린다고 믿으시거든.


즉위하면서 어진 정치를 다짐한 주상은 4년 뒤에 부왕(태종)이 죽자마자 백성들의 목숨과 관련된 두 가지 파격적 혁신을 단행했다.

첫째로, 임금이나 왕실의 허물을 들추거나 불평을 말하면 불충으로 몰아서 목숨을 빼앗는 ‘괘씸죄’를 추방했다. 법적 근거도 없이 정적을 제거하는 ‘유령의 칼’로 쓰여 온 ‘난언죄’를 법전에 넣어서 부왕시절의 유산인 공포정치를 단번에 끝낸 것이다.


둘째로, 도둑들의 죄를 다스리는 치도(治盜)의 기조를 뒤집었다. 절도 3범이면 사면 전력과 상관없이 사형에 처하던 것을 사면된 범행은 전과에서 빼도록 한 것이고, 덕분에 이전 같았으면 자동으로 사형에 처해졌을 수많은 도둑이 목숨을 건졌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주상은 보위에 오른 직후부터 죄를 짓고 옥에 갇힌 죄수들의 고통을 줄여줄 방도를 부단히 강구했다. 특히 수감자의 병사나 의문사를 막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옥에 죄수가 병에 걸리면 활인원(活人院)의 의원이 가서 성의껏 치료하게 하였다. 뒤에 가서는 죄의 경중을 따지지 말고 모두 활인원에 입원시켜 치료하게 하였다.

옥졸들이 죄수를 보살피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옥송과 무관한 업무들을 면해주었다. 옥바라지를 해줄 가족이나 친척이 없는 수감자는 관에서 의복과 음식과 의약품을 주도록 하였다.

죄수의 성별과 죄의 경중을 가려서 각기 따로 가두게 하였다.

옥방을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주게 하였다.

특히 중범죄를 범하여 장기간 옥에 갇혀있는 죄수들을 성심껏 보살피게 하였다.

수감자가 목숨을 잃으면 끝까지 원인을 밝혀서 책임자를 문책하게 하였다.

부모가 옥에 갇혀 고아가 된 아동은 가까운 친척에게 양육을 맡기게 하였다.

밥을 먹기 전인 유아는 젖이 풍부한 산모에게 맡겨서 아이가 굶어 죽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였다.

친척이 없는 아이는 관아에서 기르고 지방은 관원의 집에서 기르게 하였다.

***

사재는 상이에게 의금부 앞에 가서 신문고를 치고 임금에게 탄원서를 올린 이야기를 해줬다. 직전까지 풀이 죽어서 힘이 없 상이의 두 눈에 생기가 번지는 것이 보였다.

-상이야. 도사께서 너하고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어. 그러니까 시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상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무슨 말을 해도 귀담아듣겠다는 신호였다.

사재는 미리 준비해 간 말들을 순서대로 꺼냈다.

-상이야. 너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어. 네가 여기 갇히게 된 것은 나라의 옥송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야. 용의자의 자백이 있어야 유죄판결이 가능하다는 원칙 때문에 네가 억울하게 죄를 받은 거라고.

-그런 건가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사자는 상이가 자신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방금 말한 모순이 옥관들을 치사하고 야비하게 만드는 거야. 가족 압박, 수면이나 면회 불허 같은 거 있잖아. 그런데도 웃기는 거는 그래야지 죄 없는 백성이 누명을 쓰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거야. 그게 말이 되니? 당장 네가 반대되는 상황에 처했잖아. 그러니까 잘못한 쪽은 고문에 굴복한 네가 아니라 무리한 고문으로 위증을 강요한 의금부도사인 거야. 내 말이 맞지?

-그러면 그런 문제를 왜 그대로 두는 거예요?

-원칙을 고치면 다른 문제들이 생기기 때문이야. 우선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다는 핑계로 엉뚱한 사람에게 죄를 씌우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아무런 죄도 없이 누명을 쓰는 사람이 많아질까 봐 섣불리 손을 못 대는 거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네가 거짓말을 한 것은 나와 내 친구들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는 거야. 알겠지 상이야?

사재는 상이에게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려줬다.

그때마다 상이는 면목이 없다는 말을 반복하였다. 혹시 살아서 의금부를 나가더라도 영팔과 춘삼을 똑바로 쳐다볼 자신이 없다고 하였다.

사재는 자백이 있어야 유죄판결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옥송제도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면 고문을 못하게 막아야 하는 게 아니에요?

-당연하지. 그래서 옥관들의 무리한 고문을 막기 위한 장치가 촘촘하게 갖춰져 있어. 주상께서는 틈만 나면 옥관들에게 ‘형벌을 조심해서 쓰라’고 당부하시고. 문제는 성과가 별로라는 거야. 임금이 뭐라고 하든지 제 맘대로 형벌을 쓰는 옥관이 많다면 믿어지니?

상이는 옥송제도의 문제보다 사면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수감자들 중에 사면령을 예상하는 이가 많다고 하였다.

-나라에 큰 경사가 있거나 가뭄이 오래 계속되면 사형수까지 내보내준다던데요.

상이의 말에는 석방에 대한 기대와 사재의 말에 대한 질문이 함께 담겨 있었다.

사재는 머지않아 상이가 풀려날 것으로 예상하였다. 주상이 자기가 올린 글을 보고 의금부도사의 잘못을 알게 되면 필경 상이를 용서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상이가 언제 어떤 절차를 거쳐서 석방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사재는 사면령에 기대를 걸었다. 주상이 즉위한 이후 십일 년 동안 열한 번의 사면이 있었다. 나라에 큰 경사가 있으면 백성과 더불어 경축한다는 뜻으로 사면령을 내렸다. 원자 탄생, 세자 책봉, 임금 즉위 같은 때 사면이 있었다. 대국으로 섬기는 명나라에 비슷한 경사가 있어도 제후국으로서 함께 축하한다는 뜻으로 사면령을 내렸다.

***

농사철에 가뭄이 지속되어도 사면령을 내렸다. 옥관들이 형벌을 잘못 써서 하늘이 천벌을 내렸다고 여기고 기우사면을 단행했다. 사면의 결과로 비가 오고 안 오고는 상관이 없었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을 따랐다는 것이 중요했다.

기우사면은 중국의 당(唐)나라 때 법전인 <개원예>에서 비롯되었다. 그 법에 「오래도록 비가 오지 않으면 지체된 옥송의 조속한 처리를 독려하라.」는 조문이 들어있다. <개원예>라는 명칭에서 ‘개원’은 당나라의 여섯 번째 황제였던 현종(685년∼762년) 치세의 연호다.

원(元)나라 학자였던 마단림(1254년∼1323년)이 중국 고대로부터 남송의 영종 때까지의 제도와 문물을 소개한 <문헌통고>라는 책에도 「4월 이후에 비가 오지 않으면 가장 먼저 억울하게 갇힌 죄수들을 풀어주라.」고 적혀있다.

〈개원예〉와 〈문헌통고〉의 문구는 사법처리가 늦어졌거나, 남의 죄를 덮어썼거나, 지은 죄보다 무거운 형벌을 받은 죄수들을 가려내서 풀어주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죄수가 억울하게 갇혔는지를 가려낼 방법이 없으니까 일정한 범위를 정해서 사면령을 내리는 관행이 정착되었다.


수사와 재판을 거쳐서 형이 확정된 죄수만 용서한 것이 아니다. 죄를 짓고 잠적했거나 붙잡혀서 사법절차가 진행 중인 용의자도 용서했다. 임금이 성덕(聖德)을 베푼다는 구실로 사면이 선포되는 날 새벽 이전에 저질러진 모든 범죄를 깡그리 용서했다.


또, 사면령에 의해 죄를 벗은 사람의 범죄를 고발하는 자는 자기가 고발한 죄목으로 처벌하였다. 따라서 사면의 기준에 속하기만 하면 도망쳐서 종적을 감췄던 자들도 모습을 드러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였다.


임금이 그런 식으로 죄수들을 용서하자 죄를 짓고 옥에 갇혔거나 몸을 숨긴 자들은 가뭄이 더 심해지기를 일삼아 빌었다. 심지어 나라는 비를 비는 기우제를 올리는데 옥방의 죄수들은 가뭄이 더 심해지기를 비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비가 오지 않는다고 무조건 죄수들을 풀어준 것은 아니다. 사면령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거치는 절차가 있었다.


가뭄 초기에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리는 반찬을 줄이고 술과 음악을 거뒀다. 게으름과 과오를 반성하고 근신하는 공구수성(恐懼修省)이다.

그래도 비가 안 오면 전국의 명산대천(名山大川)과 주요 사철에서 기우제를 지내게 하였다. 도마뱀을 잡아다 경복궁의 경회루 연못에서 기우제를 지내게 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비가 안 오면 법집행을 책임지는 형조 판서가 남형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면 임금이 일정한 기준을 정해서 사면을 선포해 수많은 죄수들을 석방하라고 명을 내렸다.


가뭄과 형벌을 연계시키는 전통은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의 산물이다. 형벌이 지나치거나, 옥송이 지체되거나, 오결(誤決)이 잦으면 하늘이 노해서 재앙으로 응징한다는 믿음이 기우사면의 토대다.


***

사재가 보기에 만약 5월까지도 비가 안 오면 사면이 있을 공산이 컸다. 하지만 상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행여 예측이 틀려서 상이가 크게 낙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재가 미리 하고 싶었던 말을 얼추 마쳐갈 무렵 종루에서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부엌에서 점심을 준비하던 여자가 나와서 출입문을 열어젖혔다.

조금 있으면 관원들이 점심을 먹으려 몰려올 것 같아 일어설 채비를 하였다.

-상이야 임금께서 내가 올린 탄원서를 읽으시면 반드시 무슨 조치를 취하실 거야. 그러니까 절대로 다른 생각 하면 안 돼. 알았지?

-알았어요. 꾹 참고 견디는 데까지 견뎌볼 테니 너무 걱정 마셔요.

사재는 어미와 함께 상이의 팔짱을 끼고 식당을 나왔다.

식당 문 바로 앞에 상이를 데려왔던 나장이 빙그레 웃으면서 서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기다린 것 같았다.

사재는 허리를 굽혀서 나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주련은 상이를 부둥켜안고 어깨를 들먹이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만 보내주세요. 어머니. 나장 나리도 점심을 드셔야지요.

주련은 상이의 몸을 풀어주고도 한참 동안 상이의 손을 놓지 못했다.

사재가 억지로 상이를 잡아채서 나장에게 넘겨주었다.

두 사람은 나장을 따라서 옥방으로 들어가는 상이의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고리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상이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 두 사람은 의금부 대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둘 다 할 말을 잊고 텅 빈 하늘을 올려다보며 걷고 있는데 앞쪽에서 낯익은 얼굴이 다가왔다.

전날 사재와 상이에게 채찍을 휘두른 자였다. 사재는 못 본 척하고 어미의 손을 잡아끌었다.

-올해도 가뭄이 심할 거라고 하니 사면을 기대해 보아라.

주련도 사재도 못 들은 척하고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참으로 뻔뻔한 인간이다.

주련이 자기 손바닥으로 가린 입을 아들의 귀에다 가져다 대고 가늘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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