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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발질

by 조병인

무원은 제보의 추측이 엉터리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그때까지 드러난 정황들을 하나하나 냉정하게 되짚어보았다.

선입견을 완전히 비우고 꼼꼼하게 따져보니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운 허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만한 일로 살인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춘발의 처와 아들도 주련에게 혐의를 두지 않는다. 나라면 누가 밉다고 자식에게 살인을 시킬까? 설령 시키더라도 내 집의 물건을 도구로 쓰게 놔둘까? 살인의 증거물을 집 근처 도랑에 아무렇게나 버릴까?


무원의 심증에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균열의 틈새들이 조금씩 넓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심증의 둑이 와르르 무너졌다.

내가 너무 성급했어. 춘발 사위의 짐작은 억측이었어. 호조 판서의 추측이 옳다면 세 사람은 밀무역을 하였을 리가 없어. 눈이 입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데 세 사람 모두 눈빛이 정직했어. 입은 상대방을 속일 수 있어도 눈은 절대로 상대를 속이지 못한다. 내 판단이 틀린 거야.


무원은 우두머리 나장을 시켜서 세 사람을 낭청으로 데려오게 하였다.

-아무런 죄가 없는 너희들에게 고통을 줘서 미안하다. 확실치 않은 제보를 무턱대고 믿은 내 잘못이 크다.

주련도 사재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순진한 상이만 무원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이후로 답답한 교착상태가 기약 없이 이어졌다.

용의자가 떠오르기는커녕 변변한 제보조차 없었다.

하루, 이틀, 사흘을 하릴없이 보냈다. 무원의 마음이 급해졌다.


사재 놈의 교활한 술책이었어.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입을 맞춘 거야.


무원은 문득 사재의 잔꾀에 속았다고 생각하였다.

즉시 나장들을 시켜서 주련과 사재 형제를 다시 잡아오게 하였다.

-통사가 죽은 날이 네 아비 기일이었던 게 맞느냐?

무원은 맹수처럼 사납게 사재를 몰아쳤다.

-아비의 기일을 속이는 자식도 있습니까?

-제사를 마치고 집에 내려와서 잔 것이 아니냐?

-통금시간이라 내려올 수 없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무원은 그런 대답을 예상하고 준비해 둔 질문을 꺼냈다.

-추운 산속에서 어떻게 밤을 보냈다는 말이냐?

사재는 밤에 추울 것 같아서 솜이불을 가져갔다고 하였다.

무원은 목격자를 대라고 다그쳤다.

사재는 집집마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어서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고 하였다.


계속 입씨름을 벌일 일이 아니다. 형틀 밑에 얻지 못할 자백은 없지.


-저 두 놈에게 신장(訊杖) 맛을 보여줘라.

무원은 기어코 자백을 받겠다는 어조로 단호하게 지시하였다.

나장들은 사재와 상이를 나무로 된 형틀에 엎드린 자세로 묶었다.

-시행하라.

한 대, 두 대, 세 대···.

-윽. 으윽. 아! 아! 멈춰주세요. 저희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두 번 속을 줄 아느냐?

형제는 어금니를 앙다물고 고통을 견뎠다.

-제발 멈춰주십시오. 정말이지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어리석게 버티다가 아까운 목숨 잃지 말고 순순히 자백하라.

늙수그레한 나장이 사재 옆으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백할 일이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자백하란 말입니까?

사재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상대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강요했다.

-죽고 싶지 않거든 네가 한 짓을 바른대로 실토하라.


매질로 인한 고통이 뼛속까지 닿았다. 몇 대만 더 맞으면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계속 맞기만 하다 죽느니 한 번 덤벼나 보고 죽자.


-도사 나리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원을 쳐다보는 사재의 눈빛에서 섬뜩한 결기가 뿜어져 나왔다.

무원은 사재가 자백을 하려는 것이 아니란 걸 직감하였다. 하지만 할 말이 있다는 용의자의 입을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겠다는 것이냐. 할 말이 있거든 지껄여보아라.


사재는 칠 년 전에 죽은 태종 임금을 소환했다.


-선왕께서 정유년(1417)에 제정하신 신장규칙을 모르십니까. 한 번에 신장을 서른 대 이상 때리면 안 된다는 걸 잊으셨습니까? 매를 때렸으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도 잊으셨습니까. 자백을 못 받았어도 반드시 기록을 남기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리는 저희들을 무한정 때리셨고 기관(記官)은 한 대도 적지 않았으니 주상께서 아시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발칙한 놈이구나.

고문의 지휘자인 무원은 심히 아니꼽고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문을 당하는 사재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차가운 결기가 동시에 반대쪽 끝으로 치달았다.

무원은 분노를 키우고 사재는 반감을 키웠다.

무원은 오기를 더하고 사재는 용기를 늘렸다.

-네가 원하면 법대로 해주겠다. 그래도 할 말이 있거든 계속하여라.

무원의 말은 겁을 주기 위한 엄포가 아니었다.

무원은 여간해서 잘 쓰지 않는 필살기를 꺼냈다.

-저 건방진 놈들에게 압슬의 된 맛을 보여줘라.


사재와 상이의 무릎 위에 널따란 나무판때기가 올려졌다.

무원의 고갯짓에 따라 덩치가 황소만 한 나장들이 각각 두 명씩 판때기 위로 올라섰다.

사재도 상이도 살과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느꼈다.


선왕 태종은 신장규칙을 제정하면서 압슬의 수위를 세 단계로 구분해 놓았다. 1단계는 두 명이 올라서고, 2단계는 네 명이 올라서고, 3단계는 여섯 명이 올라서는 식이다.


-나리는 정녕 국법을 모르시는 겁니까. 알면서 무시하시는 겁니까.

사재는 관대한 자비를 구하는 대신 불굴의 투지를 드러냈다.

-2단계를 시행하라.

무원은 대답 대신 압슬의 수위를 높이게 하였다.

-나리는 어명이 우습게 보이십니까?

-3단계를 시행하라.

-으∼으∼으윽!

-그래도 할 말이 있거든 맘껏 지껄여 보아라.


사재는 몇 차례 혼절을 거듭하다 종당은 의식을 잃었다.

무원의 낯빛이 성난 마귀의 안색으로 변했다.

-옆으로 눕혀서 인정사정 두지 말고 두들겨 패라.

나장들은 가죽을 두 겹으로 덧댄 채찍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사재와 상이는 사냥꾼이 던진 죽창에 목을 찔린 맹수처럼 비명을 내질렀다.

등짝·볼기·정강이·장딴지에서 피가 튀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나장들은 법에 절대 때리지 말라고 되어 있는 곳들만 골라서 무자비하게 갈겼다.


11년 전인 무술년(1418) 8월 10일 보위를 물려받은 주상은 다음 해 동짓달에 관리가 아전이나 백성의 등을 때리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세웠다.

하지만 무원도 나장들도 국법 같은 것은 안중에 없는 것 같았다.

무원은 고갯짓을 멈추지 않았고 나장들은 팔뚝의 힘줄이 떨릴 때까지 경쟁적으로 채찍을 휘둘렀다.

무원은 악에 받치고 사재는 인내의 한계치를 높였다.


무원은 자신의 고통은 참아도 혈육의 고통은 눈 뜨고 못 보는 본성을 떠올렸다.

무원이 턱이 상이를 가리켰다.

나장들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큰 자가 상이에게 다가가 솥뚜껑처럼 우람한 손으로 상이의 머리채를 잡았다.

눈 깜짝할 사리에 상이의 몸이 공중에 떠서 한쪽으로 빙빙 돌았다.

-도사 나리. 멈춰주십시오. 사실대로 고하겠습니다.

-저 놈이 이제야 살 길을 깨달은 모양이다. 어디 한 번 들어보자.

음습한 살기가 가득한 의금부 마당에 잠깐 동안 적막이 흘렀다.

상이가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고 무원을 바라봤다.

-사재 형이 친구 두 명과 함께 통사를 죽였습니다.


주련과 사재는 상이가 넋이 나가서 헛소리를 한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착각임을 알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 사람이 통사에게 묵은 원한이 있어서 함께 기회를 노리다가 이번에 날을 잡아 죽인 것입니다요.


무원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빠르게 번졌다.

무원은 주련과 사재를 옥방에 가두고 상이를 구슬렸다.

-네 형과 함께 통사를 죽인 자들의 이름을 대라.

상이는 사재가 같이 약초를 캐러 다니는 친구들인 영팔과 춘삼이와 함께 통사를 죽였다고 하였다.

무원은 세 청년이 통사에게 원한을 품게 된 동기를 물었다.

-셋이서 길을 가는데 통사 아들이 발길로 걷어찼다고 들었습니다.

-통사 아들은 왜 세 사람을 발길로 걷어찼다고 하더냐.

-우리 엄니가 자기 엄마를 헐뜯었다고 트집을 잡더랍니다.

무원은 상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통사 아들은 감정이 상해도 누구를 때릴 만한 위인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사 아들이 직접 발길질을 했다고 하더냐?

무원은 통사 아들이 다른 사람을 시켜서 어미의 복수를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같이 있던 친구들에게 형들을 때려주라고 시켰다고 들었습니다.


무원은 상이를 옥방에 가두고 사재를 다시 데려오게 하였다.

-영팔과 춘삼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언제냐?

갈길이 바빴던 무원은 사재가 두 사람을 아는지 여부도 묻지 않고 본론으로 직진했다.

-지난 설 명절 때였습니다. 겨울에는 산에 갈 일이 없어서 각자 집에서 약초공부를 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약초를 캘 때까지 서로 만나지 않습니다.

사재도 두 사람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순순히 대답을 내놨다.

-근래에 셋이 같이 길을 가다가 통사 아들에게 얻어맞은 적이 있느냐?

-그런 적 없습니다. 상이가 목숨을 잃을까 봐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무원은 사재가 솔직하게 털어놓기를 기다리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판단했다.

-사재를 앞세우고 가서 영팔과 춘삼을 잡아오라.

나장들을 출발시킨 무원은 죽은 통사 집에 나장 두 명을 보내 통사 아들에게 상이의 말이 맞는지 여부를 알아오게 하였다.

나장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원은 세 사람을 신문할 계획을 짰다.

형틀에서 풀려난 상이는 온몸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앞으로 맞닥뜨려야 할 일들을 상상하였다.


나는 형들을 배신한 거야. 형들은 목이 달아나기 전에 나를 저주할 거야. 내 거짓말이 들통나면 형들 대신 내가 목을 잘리겠지.


오래지 않아서 영팔과 춘삼을 잡으러 간 나장들이 두 사람을 데려왔다.

영팔도 춘삼도 사재만큼은 아니어도 눈빛과 몸가짐이 당차 보였다.

무원이 사람을 제대로 본 것이 두 사람 모두 동네에서 수재 소리를 들었을뿐더러 틈틈이 사재의 책들을 빌려다 읽고 사재와 토론을 벌이는 청년들이었다.


무원은 속으로 어깨가 더 무거워진 기분을 느끼며 사재와 춘삼을 각기 다른 옥방에 가두게 하였다. 주련과 상이도 따로 가두게 하였다.

-네가 이것으로 개천교에서 통사의 머리를 내리쳤느냐?

무원은 피로 얼룩진 작대기를 눈앞까지 치켜들고 영팔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 같은 무지렁이가 어떻게 감히 관원을 때리겠습니까?

영팔은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항의조로 반문했다.

-사재와 춘삼이 하고 길을 가다가 통사 아들에게 얻어맞지 않았느냐?

-셋이서 어디를 간 적도 없고 같이 누구에게 맞은 적도 없습니다.

춘삼을 데려다 물어봐도 대답이 같았다.

무원은 나장들을 시켜서 두 사람을 각기 다른 옥방에 가두게 하였다.

한 시진(두 시간) 쯤 지나서 춘삼을 데려오게 하였다.

-사재도 영팔도 바른대로 실토했다. 너도 매를 벌지 말고 자백하라.

-저는 밤눈이 어두워서 해만 지면 밖에 나다니질 못합니다.

춘삼을 가두고 사재를 데려다 똑같이 물어도 대답이 바뀌지 않았다.

-통사 아들이 집에 없어서 헛걸음을 했습니다.

죽은 통사의 집을 다녀온 나장들은 통사 아들이 청주의 친정으로 해산하러 가는 부인을 따라가서 만나보지 못했다고 보고하였다.

무원은 청주로 나장을 보내려다가 아까운 시간만 버릴 수도 있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재의 어미인 주련이 죽은 통사의 처를 욕하고 다닌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통사 아들이 자기 부모를 모욕한 주련의 자식을 미워한 것은 자식의 본능이 부른 행동이다.


무원은 일단 세 사람에 대한 신문을 진행해 보고 결과에 따라 다음 행동을 정하기로 하였다.

무원은 나장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턱으로 나무널판을 가리켰다. 압슬을 시작하라는 신호다.

나장들은 세 사람을 땅바닥에 꿇어앉히고 각자의 무릎 위에 널빤지를 울려놓았다.

1단계...

2단계...

3단계...

나장들은 고통에 취약한 급소들을 귀신 같이 골라서 집중적으로 찍어 눌렀다. 저승에서 염라대왕을 보필한다는 악마들보다도 잔인해 보였다.

세 사람은 죽을힘을 다해 통증을 견뎠다.

사자의 시선이 무원의 눈동자에 박히는가 싶더니 사자의 양쪽 눈에서 쌍심지가 튕겨져 나왔다.

-나리는 옥관이 형벌을 잘못 쓰면 천벌이 내린다는 걸 모르십니까?

무원은 속이 뜨끔했다.

사재의 물음은 홧김에 내뱉은 엄포 같지가 않았다. 옥관, 형벌, 천벌 같은 단어에서 자신의 목을 옥죄는 것 같은 악력이 느껴졌다.

농사철에 한재가 닥치면 임금은 정치가 부실해서 하늘이 응징을 한 것으로 믿는다. 특히 옥관들의 형벌권 남용으로 백성의 원한이 쌓인 탓으로 여기고 사면을 단행한다. 가뭄의 정도가 심할수록 사면의 폭이 넓어져서 형이 확정된 사형수까지 풀려날 때도 있다.

이유는 농사가 근본인 나라의 농사철에 가뭄이 극심하면 나라와 백성이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형편이 잠시 궁핍해지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치안과 국방이 허술해져 나라 전체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임금은 「형벌을 조심해서 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무원의 심증이 흔들리고 냉정한 자기 검열이 뒤따랐다.


불확실한 심증에 갇혀서 재앙을 부를 짓을 무릅쓰는 것이 옳은가? 죽은 통사의 아들이 친구들을 시켜서 사재·영팔·춘삼을 구타했다는 상이의 말이 맞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만약 거짓이면 원인을 제공한 나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무원은 죽은 통사의 아들과 연락이 닿을 때까지 신문을 멈추기로 마음을 정했다.

-나장들은 압슬을 멈추고 세 사람을 풀어줘라.

세 사람 모두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셋 모두 죽을 각오까지 했었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않으면 목숨을 내놔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무원이 스스로 오인을 깨닫지 못했다면 세 사람은 기약 없이 매질을 당하다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되어 있었다.

종당은 고통을 못 참고 허위자백을 하는 사람이 나왔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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