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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시(檢屍)

by 조병인

다음 날 아침 의금부에 출근한 무원은 사체검안(死體檢案)을 보조하는 오작인(仵作人)을 데리고 검안실로 갔다. 전날 개천교에서 옮겨온 왜통사의 시신의 상태를 살펴보고 사망의 원인과 사망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검안실로 쓰이는 별채 건물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않는 후미진 곳에 으스름하게 위치하고 있다. 무원처럼 업무상 종종 들르는 이들에게도 매번 처음처럼 느껴지는 기이한 공간이다.


오전에 잠깐 햇볕이 들다가 오후가 되면 줄곧 어둑하고 침침하다.

시신은 남자용 가죽신을 온전히 신은 채로 거적에 덮여있다.

송장 썩는 악취 대신 화단에서 날아든 꽃향기가 후각을 간지럽혔다. 창살 틈새로 커다란 쇠파리가 날아들어 시신 위를 맴돌았다.

벌어진 창틀 사이로 따사로운 햇볕이 비집고 들어와 시력을 도왔다. 무수히 많은 미세먼지가 밝은 조명을 받으며 산 생명처럼 요동쳤다. 마치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수사가 더디다고 시위를 벌이는 것 같았다.

-반드시 범인을 붙잡아 억울함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무원은 시신 앞에 향을 피워놓고 망자의 혼령에게 정중히 고했다.

오작인이 시신을 덮고 있던 거적을 벗겼다.

입고 있는 옷마다 핏물로 얼룩져있었다.

시신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심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원통하고 억울한 심정을 분출하였다.

오작인은 피가 엉겨서 살갗에 들러붙은 옷들을 조심스럽게 벗겼다.

시종 침착하고 능숙한 손동작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시신의 손발이 오작인의 손놀림을 순순히 따른다.

첫 번째 경직(硬直)이 풀리고 두 번째 경직이 진행되기 전인 것 같다.

시신은 입을 벌리고 눈을 뜨고 있다. 머리털과 상투가 심하게 엉켜 있다. 무원은 굵은 나무토막 같은 살덩어리에 시선을 박았다.

눈알에 단단히 힘을 주고 시신의 전신을 훑었다.

시신의 말없는 절규와 호소를 눈으로 들었다.

닫힌 입을 대신하여 몸 전체가 많은 말을 쏟아낸다.

얼굴과 목의 피부가 연한 적색을 띠고 있다. 강력한 타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암시다.

시신의 콧속과 입안이 핏덩이로 막혀 있다. 뱃속의 장기들이 터져서 분출된 혈액이 식도와 기도를 타고 역류한 것 같다.

오른쪽 귀 바로 위에 움푹 들어간 함몰이 있다. 무원은 괴한에게 몽둥이로 가격당한 자리로 추정하였다.

함몰의 위치는 머리의 오른쪽이다. 몽둥이를 휘두른 자가 왼손잡이라는 암시다.

오른쪽 턱의 살갗이 심하게 찢어져 걸레조각처럼 너덜거린다. 위아래 입술도 사방으로 금이 간 얼음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져있다. 무원은 모두 주먹으로 강하게 맞아서 생긴 흔적으로 여겼다.


오작인이 손가락으로 입술을 벌렸다.

앞니 세 개가 부러져 있다. 개천교 현장에서 수거한 이빨조각들을 맞춰보니 교합이 딱 맞았다.

시신의 양쪽 배와 가슴에 여러 개의 멍 자국이 뒤엉켜있다.

오작인이 소주로 시신의 몸을 닦았다. 시신의 가슴 한복판에 검은색에 가까운 자줏빛 멍이 있다. 양쪽 옆구리 늑골 부위에도 검푸른 멍 자국이 보인다.

무릎 아래 양쪽 정강이에도 검푸른 멍 자국이 있다. 신안(腎岸)이라고 불리는 생식기 위의 두둑한 부분(불두덩)이 통통한 만두처럼 부풀어 있다. 무원은 주먹이나 발길로 강하게 가격을 당해서 생긴 부증(浮症)으로 추정했다.

오작인은 검시용 관척(官尺·검시용 자)으로 멍의 크기를 일일이 재서 기록하였다. 살점이 떨어져나간 곳은 깊이를 재서 적었다.

검시용 은절편을 시신의 목구멍에 집어넣었다가 빼내서 색깔의 변화를 살폈다.

목구멍에 집어넣기 전후의 색깔이 같다. 사망의 원인이 독극물과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무원은 오작인을 시켜서 시신을 뒤집게 하였다.

혈관 속의 피가 모두 아래로 모여서 형성된 시반(屍斑)이 보인다. 오작인이 항문에 은절편을 밀어 넣어 이상반응이 없음을 확인했다.

등·허리·장딴지·종아리에 여러 개의 멍 자국이 있다. 오작인은 모조리 크기를 재서 꼼꼼하게 기록하였다.

무원은 오작인에게 시장(屍帳)과 시형도(屍形圖)를 상세히 작성하게 시켰다. 시장은 검시결과를 서술한 문서다. 시형도는 시신에 상처 부위를 표시한 그림이다.

오작인이 열심히 작업에 몰두하는 동안 무원은 불굴의 수사의지를 예열하였다.

용의자를 속히 붙잡지 못하면 백성들이 주상을 비웃을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 뒤져서라도 반드시 살인범들을 잡고야 말리라.

***

오후에 무원은 의정부에 들어가 의금부 도제조인 찬성 권진을 만났다.

도제조의 품계는 정 1품이고 의정부 찬성이면서 의금부 도제조를 겸하고 있었다. 따라서 평상시는 의정부로 출근해 직책을 수행하다 사안이 생기면 의금부를 대표해 주상에게 아뢰거나 논의를 주도했다.

무원은 도제도 권진에게 검시 결과를 상세히 고했다.

-병조가 정예병들을 풀어서 도성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있으니 결과를 기다려보세.

도제조는 병조의 수색에 기대를 거는 것 같았다.

무원은 병조가 공을 세울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훈련이 잘 되었어도 얼굴도 모르는 용의자를 무슨 재주로 잡겠습니까. 불확실한 결과를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의금부가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범인을 잡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둔 계책이라도 있는가?

-범인을 체포하거나 고발하는 자에게 면포 백 필과 범인의 재산 전부를 주겠다고 하면 너도나도 팔 걷고 나서지 않겠습니까?

도제조는 그길로 대궐에 들어가 주상의 윤허를 받아다주었다.

의금부로 돌아온 무원은 우두머리 나장을 불러서 긴급 지시를 내렸다.

-즉시 도화원에 연락해 수배전단 이백 장을 그리게 해서 도성 안팎의 교통 요지에 붙이도록 하라.


도화원에서 수배전단을 준비하는 동안 무원은 죽은 이춘발의 일지를 꼼꼼히 살폈다.

춘발의 일지에는 생전의 일과와 그날그날의 느낌이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여있었다.

하지만 살인범을 추적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기록은 하나도 없었다.

아까운 시간을 이틀이나 투자해 삼년의 기록을 다 읽은 노고가 헛수고가 되었다. 눈을 부릅뜨고 이 잡듯이 뒤졌지만 원한관계를 유추할 만한 작은 단서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무원은 이춘발이 왜관의 통역관으로 임명된 이후의 왜관 일지를 가져다 꼼꼼히 읽어봤다. 역시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무원은 캄캄한 동굴에 홀로 갇힌 기분이었다. 옹달샘을 찾으러 어두운 굴속에 들어갔다가 어둠에 갇혀서 출구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머릿속에 건국 이후 37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도성의 거리와 건물들이 떠올랐다. 필시 그 중 어딘가에 범인이 숨어있을 것 같았다.


1392년 7월 17일 새 왕조의 시작을 선언한 태조는 한양부를 새 도읍으로 정하고 그 이름을 한성부로 바꿨다.

왕조의 역사가 삼십년을 넘기면서 경복궁과 창덕궁의 위용이 더해지고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갖춰졌다. 사대교린의 외교정책으로 외국인들의 왕래가 빈번해졌다.

상주인구와 유동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소비가 급속히 증가했다. 각종 물자의 유통과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전국 각지에서 각계계층 사람들이 모여들어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며 땀내와 술내를 섞었다. 말을 타고 혼잡한 거리를 달리다가 사고를 내는 사람도 생겼다.

밤에는 통행이 금지되어 도시 전체가 적막에 싸인다. 새벽에 통금이 풀리면 사방의 성문이 열리고 수많은 남녀노소가 도성을 출입한다. 그 중에는 별별 사람이 다 섞여있을 것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국가시험을 준비하는 학생, 도성의 치안을 담당하는 장졸, 여기저기로 물품을 팔러 다니는 장사꾼, 주인을 위해 평생을 가축처럼 사는 노비,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객지를 떠도는 방랑자, 왕조 교체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승려, 남자들에게 웃음을 팔아 먹고사는 색주가 여인, 지방에 살다가 경비나 공사에 징발된 장정 등등.


남들보다 두둑하다고 믿었던 무원의 배짱이 번데기처럼 오그라졌다. 한강의 모래알만큼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무런 표시도 없는 범인을 무슨 수로 가려낸단 말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주눅이 부풀었다. 경쟁상대와 기량을 겨뤄보지도 못하고 판정패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대낮인데도 사방이 캄캄하게 느껴졌다.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앞이 보이질 않았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암벽 같은 거대한 물체가 앞을 가려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이처럼 무원이 자신감을 잃고 심한 무력감에 빠져 있을 때 예기치 못한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제 장인은 여자 무당이 죽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 여자가 자기 아들들을 시켜서 제 장인을 죽였을 것입니다.

제보자는 집에서 곤히 자다가 어이없게 함정에 빠져서 국어처구니없이 죽은 왜통사 이춘발의 사위였다.


무원의 앞을 막고 있던 장벽이 아침햇살에 안개 걷히듯 소리없이 자취를 감췄다.

무원은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것 같아 싱거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섣불리 김칫국부터 마시면 안 될 것 같아 속내를 숨기고 침착을 유지했다.

-그렇게 단정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춘발의 사위는 어떤 무당이 자기 장모를 몹시 미워했다고 하였다.

무원이 들어보니 여자들 사이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해 정월에 춘발의 처인 박씨가 무당에게 새해 운세를 보러 갔다.

무당은 삼년 안에 박씨 집안에 젊은 과부가 생길 거라고 하였다.

박씨는 얼굴을 붉히며 무당에게 거친 말을 퍼부었다.

무당이 박씨에게 앙심을 품고 박씨를 욕하고 다녔다.

제보자의 말을 종합해 보니 무원이 이미 만났던 무당 주련의 가족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무당이 미워한 사람은 네 장모고 죽은 사람은 네 장인이 아니냐?

-장모에게 골탕을 먹이려고 집안의 기둥을 쓰러뜨린 거지요.

-고작 점괘 때문에 살인을 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

-증거가 더 있습니다.

제보자는 춘발이 개천교에 괴한에게 맞아죽던 날 말고삐를 잡고 따라갔던 하인의 말을 들려주었다. 춘발이 피살된 직후 하인이 인근의 무당 집으로 달려사 대문을 두드리며 아태게 도움을 청했는데도 내다보는 이가 없었다고 하였다.

-집 안에 아무도 없었을 수도 있지 않느냐?

무원은 자신도 모르게 주련의 가족을 편드는 반응을 보였다.

-통금시간에 집에 사람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

-세 사람 모두 깊은 잠에 빠졌을 수도 있지 않느냐?

-세 식구가 미리 입을 맞추고 일부러 모른 척 한 것이 분명합니다.

무원은 주련의 장남인 사재가 어미 몰래 앙갚음을 하였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사재처럼 똑똑한 아이가 제 어미를 능욕한 상대방을 가만두었을 리가 없다고 여겼다.

무원은 우두머리 나장을 불러서 즉시 주련의 집에 가서 세 식구를 잡아오라고 시켰다.

***

점심때가 막 지나서 세 사람이 끌려왔다.

셋 중 차남 상이만 초면이고 무당과 장남은 구면이다.

다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무원을 쳐다봤다.

무원의 시선이 주련을 향했다.

-지난 정월에 죽은 왜통사의 처인 박씨를 만난 적이 있느냐?

-정월 보름 날 새해 신수를 보러 왔었습니다요.

-그래서 뭐라고 신수를 봐줬느냐?

-삼년 안에 집안에 젊은 과부가 생길 거라고 했습니다.

무원은 그 다음 상황을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박씨가 그 말을 듣고 뭐라고 하더냐?

-저더러 ‘엉터리 선무당’이라고 욕을 퍼붓고 방을 나갔습니다.

-복채는 받았느냐?

-복채가 다 뭡니다. 한 푼도 안 주고 그냥 휙 가버렸습니다.

무원은 꼭꼭 다져서 머릿속에 넣고 있던 질문을 꺼냈다.

-그래서 화가 나서 두 아들에게 통사를 죽이라고 시킨 것이냐?

대답 대신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이 무원의 시선을 떠밀었다.

-세상에 자식에게 살인을 시키는 어미도 있습니까?

무원은 벽에 기대서 세워둔 피 묻은 작대기를 집어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재의 배때기를 푹푹 찔렀다. 좋게 말할 때 순순히 자백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우리 가족이 뭘 잘못했단 말입니까?

사재는 겁먹은 기색 없이 방어본능을 드러냈다. 두려움을 모르는 맹견처럼 여차 하면 달려들 것 같은 눈빛을 보였다.

-네 어미가 너희 형제에게 통사를 죽이라고 시키지 않았느냐?

-우리 엄니가 저희에게 살인을 시켰다고요? 뭔가 잘못 아신 거 아닙니까? 말이 되는 걸 물으셔야지요.

-아니면 이 막대기가 어째서 개천교 옆 도랑에 버려져 있었느냐.

-저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무원은 나장들을 시켜서 세 사람을 각기 다른 옥방에 가두게 하였다.

한 시진(두 시간) 쯤 지나서 차남 상이를 데려오게 하였다.

옥방에서 끌려 나온 상이의 양쪽 눈이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네 어미도 네 형도 다 실토했으니 너도 바른대로 고하여라.

상이는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말을 더듬으며 대답을 하는 동안 온몸을 후들후들 떨었다.

무원이 고문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아도 상이의 대답은 바뀌지 않았다.

무원은 상이를 다시 옥방에 가두고 어미인 주련을 데려오게 하였다.

-사재와 상이가 모든 걸 실토하였으니 너도 바른대로 고하여라.

주련은 펄쩍 뛰면서 자기들을 의심하는 이유를 따졌다.

무원은 주련을 옥방으로 돌려보내고 장남인 사재를 데려오게 하였다.

-네 어미도 시인하고 네 동생도 실토했느니 너도 바른대로 대답하라.

-생사람 잡지 마십시오. 저희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자가 누굽니까?

무원은 춘발이 개천교에서 괴한에게 맞다죽던 날 말고삐를 잡고 춘발을 따랐던 개동이 춘발의 사위에게 했다는 말을 들이댔다.

-개천교에서 왜통사가 죽던 날 밤에 누가 너희 집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들었느냐?

-그날은 아버지 기일이라 집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밤에 남산에 있는 어머니 굿당에 올라가 제사를 지내고 아침에 내려왔습니다.

누가 대문을 두드렸어도 소리를 들을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다.

-제사를 마쳤으면 집으로 내려왔어야 하는 게 아니냐?

칼날처럼 날카로운 무원의 시선이 사재의 입술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통금시간에 어떻게 내려옵니까.

무원은 자신이 묻는 말마다 또박또박 대답하는 사재의 기세가 자신을 압도하는 것 같은 부담감을 느꼈다.


사재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아는 것이 많았다.

선천적으로 명석하게 태어난 데다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아들의 비범한 재주를 일찍 알아본 주련은 지성으로 뒷받침을 해줬다. 무당 자식이라 벼슬길은 막혔어도 쓸모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권세가에 굿이 있을 때마다 지식과 지혜를 쌓을 수 있는 책들을 물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다주었다. 시중에서 파는 책들은 가격을 따지지 않고 사다주었다.

주련이 귀한 책들을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찍는 주자소가 동네에 있었던 덕분이다.


선왕 태종은 재위 초반(1403)에 정부가 구리를 출연하고 대소신료로부터 구리를 기부 받아 훈도방 개천교 인근에 주자소를 세웠다.

7년 뒤인 경인년(1410) 2월부터 희귀서적들을 넉넉하게 인쇄해 원하는 이들에게 팔 수 있게 하였다.

주련은 관리가 될 수 없는 아들에게 마음수양에 필요한 경서류(經書類)보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주로 구해다주었다. 특히 《신속육전》·《원육전》·《등록》·《당률소의》같은 법전과 《향약간이방》· ≪향약제생집성방≫ 같은 의약서적을 차례로 사다주었다.

수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머리가 총명했던 사재는 어미가 구해오는 책들을 밤낮없이 읽었다. 간혹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성균관을 찾아가 대문 앞을 서성이다 또래 유생이 나오면 궁금한 것들을 물어서 대답을 들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성균관 유생 중에 사재의 학구열에 감동해 그의 공부를 적극 도와주는 젊은이가 여러 명 생겼고 사재와 비슷한 또래의 유생들은 사재를 친구처럼 대해주었다. 그 덕분에 사재는 국법의 핵심 조문을 훤히 꿰고 약초와 관련된 지식도 풍부하게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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