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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

by 조병인

삼월 하순의 밤이라 사방에 냉기가 가득하다.

날씨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

듬성듬성한 구름 사이로 풀기 빠진 반달이 눈곱 낀 민낯으로 잠에 취한 도성을 내려다보았다.

왜관은 남산 북쪽 기슭을 아우르는 남부 낙선방에 있었다. 광통방 통사의 집에서 엎어지면 코가 닿을 만한 가까운 거리다.

통금시간이라 길에 사람이 없다. 개도 고양이도 지나다니지 않는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소나무 숲이 울창한 남산의 우람한 그림자뿐이다.

통사 가족은 남산에 집안의 화목과 평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산다고 믿었다. 통사의 처는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남산에 있는 묵사(墨寺)에 올라가 법당의 부처에게 식구들의 무탈과 길운을 빌었다.

통사는 왜관에 투숙하는 자들의 못된 행태를 떠올렸다.

왜관에 묵는 왜국상인들은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심하게 다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번에도 보나 마나 하찮은 일로 충돌이 생겼을 것으로 여기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북쪽 하늘에서 유성 하나가 길게 꼬리를 만들며 아래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통사는 속히 왜관에 가서 싸움을 말릴 생각으로 개동에게 말을 재촉하게 하였다.

얼마 안 되어서 왜관이 가까운 개천교에 닿았다.

다리를 반쯤 건넜을 때 어둠 속에서 사내 두 명이 불쑥 나타났다.

-통금시간이니 말에서 내리십시오.

두 사내는 순관(巡官) 행세를 하였다.

순관은 매일 밤 인정(밤 10시)부터 파루(다음날 새벽 4시)까지 도성 곳곳을 순찰하는 한성부 감순청(監巡廳) 소속이다. 비록 직위는 낮아도 범죄·화재·사고 방지를 핑계로 갖은 위세를 다 부렸다.

순관이 요구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 사유를 밝혀야 한다.

공무수행, 환자진료, 가족출산, 직계사망 같은 긴급사유가 아니면 예외 없이 구금시설에 갇힌다.

-왜관의 통역관이다. 왜관에 급한 볼일이 생겨 가는 길이다.

통사는 의례적 검문으로 여기고 점잖은 어조로 신분과 용건을 밝혔다.

-그래도 잠깐 내리십시오.

통사와 순관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통사가 몇 번을 반복해 말해도 순관은 요구를 거두지 않았다.

갈 길이 바쁜 통사는 시간을 아끼려고 언쟁을 멈췄다.

통사가 말에서 내리려고 몸을 옆으로 틀었다.

통사의 몸이 아직 말 등에 있는데 길고 시커먼 물체가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을 갈랐다.

통사가 술에 만취한 것처럼 말에서 스르륵 미끄러져 무거운 모래자루처럼 돌바닥에 엎어졌다.

직전까지 순관 행세를 하던 자가 야수로 돌변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거친 숨을 몰아쉬는 통사의 배와 가슴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앞서 몽둥이를 휘두른 자가 발로 통사의 허벅지를 냅다 걷어찼다.

통사에게 하마를 요구하던 자는 주먹으로 통사의 얼굴을 갈겼다.

개동은 눈앞이 캄캄했다. 가만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무서워서 덤벼들 엄두가 안 났다. 몸을 움직이려 해도 발바닥이 땅에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소리를 지르려 하여도 목구멍이 잠겨서 열리질 않았다.

두 사내 모두 몸놀림이 비호처럼 날쌨다. 주먹과 발길로 통사를 유린하는 몸놀림이 바람처럼 빨랐다.

몽둥이를 휘두른 사내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윗몸을 낮췄다. 땅바닥에 널브러져 눈을 까뒤집은 통사의 코에 제 귀를 가져다 댔다.

-됐어. 명줄이 끊어졌으니 어서 튀자.

사내는 몸을 일으키며 순관 행세를 한 자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두 사내는 미리 약속해 둔 것처럼 동시에 왜관 방향으로 힘껏 내달았다. 한 명은 통사의 머리를 가격한 몽둥이를 가지고 뛰었다.

속력을 내는 데 방해가 되었던지 잠시 뒤에 손에 들고 있던 몽둥이를 허공으로 집어던졌다.

***

개동은 돌바닥에 엎어져있는 주인에게 다가가 왼 손으로 어깨를 받치고 오른손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나리. 정신 차리고 일어나십시오. 지금 돌바닥에 누워계십니다요.

통사는 아무른 반응이 없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개동은 무작정 사방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몇 번을 반복해 외쳐도 사람의 기척은 안 들리고 사방에서 개들만 시끄럽게 짖어댔다.

개동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주인의 상체에 제 몸을 포개고 울음을 터뜨렸다.

-꺼억! 꺼억! 당장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대관절 무슨 원한이 맺혔기에 착하디 착하신 우리 나리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단 말이냐. 꺼억! 꺼억!!

말도 주인의 비극을 알았는지 양쪽 눈에 슬픔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앞발로 땅을 걷어찼다.

개동은 말의 고삐를 다리의 돌기둥에 묶고 가까운 민가로 달려갔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누구라도 밖으로 나와서 좀 도와주시오.

개동은 주먹에 힘을 있는 대로 주고 대문을 두드렸다.

야속하게도 집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

개동은 대문을 더 세게 걷어차며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여전히 내다보는 사람이 없다.

개동은 옆집으로 달려가서 똑같이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도 내다보는 이가 없다.

개동은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를 등진 거라고 여겼다.

개동은 속이 타들어갔다. 날이 밝기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이 시간에 웬 소란이냐?

개동이 고개를 돌려보니 횃불 하나가 어둠을 물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개동은 덜컥 겁이 났다. 순관들이 자기를 살인범으로 의심하고 손발을 꽁꽁 묶을 것 같았다. 횃불에 대답을 기다릴 것을 알면서도 혀가 꼼짝을 안 했다.

-귓구멍에 말뚝이 박혔느냐?

-그런 게 아닙니다요.

개동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횃불 곁으로 다가가 손짓으로 개천교를 가리키며 말없이 앞장을 섰다.

***

횃불을 든 순관이 허리를 숙이고 송장의 얼굴을 비췄다.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서 돌바닥을 시커멓게 적셨다. 역겨운 피비린내가 차가운 밤공기를 타고 사방으로 번졌다.

-이 사람이 누구냐?

-왜관의 통역관이신 이춘발 나리십니다요.

개동의 목소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어쩌다가 이 밤중에 차가운 돌바닥에 누워있게 된 것이냐?

개동은 순관들이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두 놈이 튀어나와 몽둥이로 머리를 갈기고 발로 배를 짓밟아 이 지경을 만들었습니다.

-숨을 쉬지 않는 걸 보니 운명하신 게로구나?

-아마도 그러신 거 같습니다.

-주인이 맞아 죽는 것을 보고만 있었느냐?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막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횃불을 든 순관이 동료 순관에게 말했다.

-어서 감순청으로 가서 당직자에게 알리게.

순관들이 역할을 분담하는 사이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처음에는 멀찌감치 떨어졌던 사람들이 흘깃흘깃 옆 사람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다리로 다가왔다. 고개를 반쯤 뒤로 돌리고 찡그린 눈으로 처참하게 죽어있는 송장의 모습을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려고 하였다.

개동이 어찌할 바를 몰라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쯧쯧! 망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송장을 뻔히 보고만 있으면 어떡하나. 내가 집에 가서 뭐라도 덮을 걸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게.

도움을 자청하고 나선 이는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이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로 고맙겠습니다. 어르신.

개동은 노인이 사라진 뒤에야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서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 안 되어서 노인이 돌돌 말린 돗자리를 옆구리에 끼고 나타났다. 노인은 마치 자는 사람에게 이불을 덮어주듯 송장을 가렸다.

돗자리가 짧아서 정강이 아래는 바깥에 있었다. 돗자리에 숭덩숭덩 구멍이 나있어 송장의 목과 가슴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물귀신처럼 까뒤집은 두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개동은 횃불을 든 순관에게 현장을 부탁하고 단숨에 집으로 달려가 가장의 봉변을 알렸다.

곤히 자다가 남편의 부고를 들은 박씨 부인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잠꼬대를 하는 것이냐는 표정으로 멍하니 개동을 바라봤다. 통사의 외아들 역시 무슨 헛소리냐는 눈빛으로 개동을 바라봤다.

-마님도 서방님도 어서 개천교로 가셔야 합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어쩐지 나리의 귀가가 늦는다 하였더니. 어젯밤에 네 아버지를 보내는 게 아니었어. 아비야 이 일을 어떡하면 좋으냐. 어서 무슨 방법을 찾아봐. 어서.

아들은 대답 대신 어미를 버럭 껴안고 오열을 토했다.

박씨 부인도 아들을 끌어안고 목구멍이 막히도록 울었다.

개동은 안주인과 서방님이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렸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서 아버지 계신 곳으로 가봐야지. 나도 대충 주워 입고 나올 테니 너희들도 들어가 대강 걸치고 나오너라.

개동은 안주인과 서방님 내외가 방으로 들어간 사이 분이를 안주인의 딸에게 보냈다. 안주인의 딸은 5년 전에 출가해서 남편과 함께 경복궁 서쪽의 순화방에 살고 있었다.

박씨 부인과 아들 내외가 거의 동시에 방에서 나왔다. 개동이 맨 앞에 뛰어가며 세 사람을 개천교로 이끌었다. 이웃처럼 가까운 거리가 천리보다도 멀게 느껴졌다. 박씨 부인과 아들 내외는 개동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수없이 넘어졌다.

일행이 개천교에 다다르니 횃불을 든 관원이 돌바닥을 비춰줬다.

박씨 부인은 돗자리에 덮여있는 사람이 남편이 아니기를 바랐다.

아들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을 떨면서 돗자리를 들췄다.

아들이 고개를 쳐들더니 누가 뒤에서 강력하게 떠민 것처럼 돌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비가 맞는다는 신호였다.

-아이고 영감. 살다 살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세상에. 세상에. 부처님도 무심하시지. 오십 평생 남에게 욕 한 번 안 하신 선비가 무슨 죽을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아이고. 아이고. 참으로 별일일세, 별일이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박씨는 이미 저승으로 가버린 남편을 끌어안고 미친 듯이 울었다.

-하늘 끝보다도 멀다는 황천길을 어쩌자고 한마디 말도 없이 혼자서 가셨습니까. 나 혼자서 어떻게 살라고요. 나 혼자서는 못 사니 나도 함께 데려가세요. 제발 내 부탁을 들어줘요. 아이고아이고 불쌍한 우리 영감. 가엾은 우리 영감의 극락왕생을 빌고 또 비나이다.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아이고아이고.

통사의 아들도 눈물을 펑펑 쏟으며 통곡을 그칠 줄 몰랐다. 통사의 며느리는 보름달만 한 배를 앞으로 쑥 내밀고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통사의 딸이 남편과 함께 허겁지겁 도착하더니 거적을 들춰보지도 않고 어미를 끌어안으며 자지러졌다.

-아이고 아버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차가운 돌바닥에 누워 계세요. 이게 꿈입니까 생십니까? 평생 누구와 말다툼 한 번 안 하신 분에게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아이고 아버지. 아이고 아버지. 벚꽃 피면 어머님과 함께 우리 집으로 외손자 보러 오신다 하셨잖아요. 어머니. 어머니. 우리 아버지 불쌍해서 어떡해요. 어떡해요. 어머니.

구경꾼들은 너무도 황당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유족들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냈다. 조그만 체구에서 폭포처럼 눈물을 쏟아내는 딸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여인도 보였다.

잠시 뒤에 순관 다섯 명이 말을 타고 도착했다. 감순청 당직자가 순관의 보고를 접하고 부하들과 함께 현장을 보러 온 거였다.

감순청 당직자는 말에서 내려 횃불을 든 순관을 가까이 불렀다.

허리를 숙여서 송장을 덮고 있던 돗자리를 거뒀다.

횃불을 더 낮추게 하여 송장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했다.

탕건이 벗겨진 채로 피가 엉겨 붙은 상투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비로소 남편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 박씨 부인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몸부림을 쳤다.

-영감. 영감. 피범벅이 되신 몸으로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아이고 불쌍하신 우리 영감. 어떡하나. 어떡하나. 아이고. 아이고.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그대로 놔두면 한 집에서 줄초상이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물을 거두시오.

감순청 당직자가 무뚝뚝한 어투로 박씨 부인을 위로하였다.

그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박씨 부인은 숨이 곧 넘어갈 것처럼 통곡을 계속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송장을 잘 지키고 송장에 절대 손대지 마라.

감순청 당직자는 순관들에게 사람들을 모두 물리라고 시켰다.

순관들은 고인의 유족과 구경꾼들을 다리 밖으로 내보냈다.

수레에 싣고 온 오랏줄을 풀어서 다리의 양쪽을 막았다.

감순청 당직자는 순관들에게 지시사항을 말하고 현장을 떠났다.

한 시진쯤 뒤에 종각 쪽에서 통금해제를 알리는 파루(罷漏) 소리가 들렸다.

밤의 종식을 알리는 종소리가 서른세 번 울리더니 박명(薄明)이희끄무레 먼동을 틔웠다.

칠흑처럼 캄캄했던 어둠이 어슴푸레 여명을 머금었다.

태양이 어둠을 완전히 삼키니 다리의 돌바닥과 난간 여기저기에 핏물이 튄 자국들이 보였다.

박 씨 모녀와 아들 내외가 한동안 그쳤던 오열을 다시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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