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로 내닫는 삼월은 갈 길이 바빴다.
초목은 여름을 맞느라 시끄럽고 새들은 둥지를 트느라 소란했다.
의금부도사 강무원은 귀가 간지러워 쥐고 있던 붓대를 놓칠 뻔하였다.
낭청의 문을 열고 대청으로 나가 인왕산을 올려다보았다.
소나무 숲과 높은 암벽의 어울림이 한 폭의 산수화 같다.
큰 돌덩이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도성을 굽어보는 경색(景色)이 흡사 용상에 앉아있는 주상의 용안 같다.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구름더미는 어진정치에 감화된 백성의 웃음판 같다.
-도사 나리. 찬성 어른께서 급히 찾으십니다요.
의정부 찬성은 의금부 도제조다. 찬성의 긴급호출은 중대한 사건이 생겼다는 의미다.
의정부에서 온 사령은 아직 할 말이 남은 것 같은데 무원의 몸은 이미 댓돌을 향했다.
의정부는 지척의 거리에 있지만 무원은 말을 타고 달려갔다.
-간밤에 훈도방에서 왜통사 이춘발이 괴한에게 맞아 죽었다네. 주상께서 의금부와 병조에 범인체포를 지시하시고 자네를 수사책임자로 지명하셨네. 주상께서 조회 때 역정을 내셨으니 속히 범인을 색출하게.
찬성 권진은 무원에게 질문할 기회도 주지 않고 어서 돌아가라는 손짓을 보였다. 지체하지 말고 돌아가서 빨리 범인을 붙잡으라는 뜻이다.
의금부는 대역죄(역모·반란·이적)나 강상죄(綱常罪)를 전담하는 곳이다. 따라서 보통의 살인사건은 형사사건을 전담하는 형조의 장금사(掌禁司)가 수사를 맡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주상이 의금부에 수사를 맡긴 것은 사건을 위중하게 여긴다는 증거다.
의금부로 돌아온 무원은 곧바로 나장 다섯 명을 데리고 고인의 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흐려지거나 생각이 바뀌기 전에 시친(屍親·변사자 유족)을 만나보기 위해서다.
피살된 왜통사의 집은 숭례문 근처 광통방에 있었다. 의금부에서 멀지 않은 거리지만 걸음을 서둘렀다.
무원은 서른여섯 살이다. 십오 년 전에 잡과시험(율과)에 합격해 율학을 거쳐서 법을 다루는 관직에 보임되었다.
무원은 인물이 좋았다.
광장처럼 시원한 이마와 과일껍질처럼 매끄러운 피부가 관복의 맵시를 더해주었다. 유리처럼 투명한 눈알,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윤슬처럼 반짝이는 눈빛은 무원의 직책과 직무에 어울렸다.
작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무원의 왼쪽 볼에 대추나무 잎사귀만 한 흉터가 보인다. 어렸을 때 모친이 바느질에 쓰려고 불에 달군 인두를 만지려다 실수로 데인 상처가 아문 자리다. 극한의 고통이 지나간 발자국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
그날 아침 편전에서 조회가 진행되는 동안 주상은 거의 입을 떼지 않았다.
평소 정사를 논할 때도 주상은 가만히 듣기만 하고 신하들은 자유롭게 떠들 때가 많았다. 어떤 정책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갈릴 때는 서로 싸우는 것처럼 언쟁을 벌였다. 그래도 주상은 꾸짖기는커녕 도리어 논쟁을 부추겼다. 결말이 나지 않으면 점심을 주면서 토론을 잇게 하였다. 그런데 그날은 입을 떼는 사람이 없어서 분위기가 냉랭했다.
긴 침묵을 깬 것은 주상 쪽이었다.
-나라가 위태롭다는 증거다. 임금이 사는 도성의 치안이 이렇게 허술해서야 백성들이 어찌 마음 편히 살 수 있겠느냐?
주상의 반문은 간밤에 훈도방 개천교에서 왜통사가 피살된 비극에 대한 질책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주상의 꾸지람은 짧았다.
주상은 십 년 동안 각종 살인사건을 처리하면서 쌓은 안목을 공유하였다. 내용은 간략했지만 무게는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재물을 노린 정황이 없으면 미리 계획된 범행으로 봐야 할 것이다. 평소 고인을 미워했던 자를 탐문해 보라. 또, 고인이 죽어서 득을 보게 될 사람들을 추려보면 용의자가 한두 명으로 좁혀질 것이다. 형조와 의금부가 같이 범인을 추적하되 의금부도사 강무원이 총괄책임을 맡게 하라. 범인을 빨리 잡을 욕심으로 죄 없는 백성을 고문하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일러라.
예조 판서 신상이 밀무역하는 자들의 소행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바다를 건너온 왜상들과 내통해 거래가 금지된 물품들을 사고팔다가 춘발에게 들킨 자가 범인일 거라고 단정하듯 말했다.
주상도 왜관에 투숙한 왜국상인들과 결탁해 밀무역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밤낮으로 단속을 벌여도 소용이 없다. 고위관리 중에도 왜국상인들과 밀무역을 하는 자가 있다. 밀무역을 간첩으로 간주해 사형에 처하게 한 법조문도 효험이 없다.
혹시 왜인이 연루되어 있으면 조사에 신중을 기하도록 하라. 왜인과 관련된 일이면 왜국정부가 티끌만 한 흠도 트집을 잡아서 억지를 부리지 않느냐.
간밤에 훈도방 개천교에서 괴한에게 맞아 죽은 이춘발은 교린외교 일선에서 왜어통역사(왜통사)로 잔뼈가 굵은 노련한 외교관이었다.
태종 시절인 무자년(1408) 오월에 바다를 건너온 왜국사절단이 돌아갈 때 호송관으로 따라갔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앞서 왜구에게 붙잡혀간 백성 스물여덟 명을 데려왔다.
성품이 청렴하고 강직하여 삼 년 전에 나라에서 운영하는 왜관(倭館)의 전속 통역관이 되었다. 왜관은 선왕 태종이 왜국에서 오는 사신과 상인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건립한 영빈관이다.
***
무원 일행이 고인의 유족이 사는 동네 어귀로 들어서니 멀지 않은 곳에서 여자들의 통곡소리가 들렸다. 곡소리를 따라서 백보쯤 걸어가니 초상집이 나타났다.
그때까지 고인의 배우자도 아들도 평상복 차림이었다. 두 사람의 표정에 황망하고 비통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인의 친지로 보이는 사람들도 표정에 깊은 슬픔이 담겨 있다.
-고인의 영전에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비보를 듣고 오기는 했소만 무슨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소.
무원은 공손하게 신분을 밝히고 모자(母子)를 향해 충격에 공감하는 표정을 지었다.
고인의 배우자는 답례 대신 애절한 오열을 토했다.
-아이고 도사 나리.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우리 영감은 평생 누구와 싫은 소리 한 번 안 했습니다. 그렇게 착하신 분에게 왜 이런 봉변이 생긴 겁니까. 아이고. 원통합니다. 아이고.
무원은 범인을 반드시 붙잡아서 고인의 원혼을 꼭 풀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하늘 끝보다도 멀다는 황천길을 어쩌자고 한마디 말도 없이 혼자서 가셨습니까. 아이고, 아이고, 가엾은 우리 영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억울하게 죽은 우리 영감 불쌍해서 어떡해요. 어떡해요.
위로가 될까 해서 인사차 건넨 말인데 돌아온 반응은 더 애절해진 오열이었다. 무원은 다시 한번 철저한 수사를 약속하였다.
옆에 서있던 고인의 아들이 무원 일행을 사랑채로 안내했다.
무원은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 아랫목에 가부좌를 틀고 않았다.
-명호라고 하옵니다. 공무가 바쁘실 텐데 누추한 곳을 친히 찾아주셔서 고맙사옵니다.
무원은 빠른 속도로 명호의 관상을 훑었다.
이목구비에 흠이 없고 심성이 온순해 보인다. 성인이 되도록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과 충돌을 빚거나 다툼을 벌인 일이 한 번도 없었을 것 같다.
-어제 부친이 변을 당하실 때 현장에 있었던 하인을 부르겠습니다.
무원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명호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몰골이 추레한 사내를 데리고 들어왔다.
사내는 문지방을 넘자마자 방바닥에 넙죽 엎드려 목울음을 삼키며 구슬프게 흐느꼈다.
-흑흑흑. 도사 나리. 이 못난 머저리를 죽여주십시오. 흑흑흑.
이름은 개동이고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라고 명호가 말했다.
-울음을 그치고 간밤에 겪은 일을 차근차근 말해 보아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슬프게 울기만 하는 개동을 향해 무원이 말했다.
개동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무원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바로 하루 전의 일이기 때문인지 개동의 설명은 살아서 퍼덕이는 생선 같았다. 제 눈으로 직접 목도한 장면들을 시간의 흐름에 맞춰서 촘촘하게 되짚었다.
***
-쾅! 쾅! 쾅!
전날 밤늦은 시간에 고인의 집 대문이 요란하게 덜컹거렸다.
-컹! 커겅! 컹! 커겅! 컹! 커겅! 컹!
한 집의 대문이 흔들렸을 뿐인데 온 동네 개가 거의 동시에 일제히 사납게 짖었다.
개동은 바람이 대문을 차는 소리에 개들이 놀랐나 보다 여기고 내쳐 잤다. 개들은 밥값을 한다고 그러는 것인지 심심풀이로 목청을 겨루는 것인지 사방이 잠잠할 때도 허공에 대고 객쩍게 짖는 일이 흔했다.
개동이 아직 잠에 빠지지 않았는데 대문 쪽이 다시 또 시끄러웠다.
개동은 비몽사몽간에 방문을 열고 마당을 내다보았다.
대문 밖에서 주인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통사 나리, 왜관의 사령입니다요.
개동은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마당으로 나갔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바로 열어드리겠습니다.
-열 것 없네. 왜관에서 패싸움이 났으니 속히 통사를 깨워서 왜관으로 오시라 하게. 나는 여기서 기다릴 시간이 없으니 먼저 왜관으로 돌아가겠네.
사내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개동은 먼저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왜관의 사령이라는 사내는 무엇을 물어볼 틈을 주지 않았다.
개동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안방 앞으로 가서 통사를 깨웠다.
-나리! 속히 왜관으로 가보셔야겠습니다.
한참 동안 방 안에서 기척이 없다.
마음이 초조해진 개동은 안방을 향해 조금 더 큰 소리로 외쳤다.
-한밤중에 웬 소란이냐?
그제야 통사가 잠에서 깨어나 반응을 하였다.
-왜관에서 패싸움이 났다고 합니다요. 금방 왜관사령이 다녀갔습니다.
춘발은 눈이 떠지지 않았다. 삼 년 가까이 왜관에 근무하는 동안 퇴청해서 잠을 자다가 말고 다시 일터로 간 적이 없었다.
눈은 간신히 떴으나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는 솜처럼 가뿐했던 발목에 쇳덩이가 채워진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직 삼월이라 바깥 기온이 찰 것을 생각하니 못 들은 척하고 내처 자고 싶었다.
옆에서 자다가 깨어난 춘발의 처 박 씨가 재빨리 일어나 등잔에 불을 붙이려 하였다.
춘발은 아내를 말리고 싶었다.
잘못하면 실직을 할 수도 있다는 염려가 춘발의 혀를 잡아당겼다.
춘발은 다른 통사들처럼 재물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청렴이 밥줄을 지켜주는 세상이 아니다. 춘발은 기지개를 크게 켜고 두 발을 위로 치켜들어 이불을 걷어냈다.
-알았다. 바로 나갈 것이니 말을 대령하라.
***
개동이 허겁지겁 마구간으로 달려가니 말은 이미 알고 있다는 눈치다.
멀뚱히 허공을 바라보는 눈망울에 가기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한밤중의 갑작스러운 외출이 달가울 리가 없다.
-너나 나나 밤잠도 마음놓고 못 자는 신세가 처량하구나.
개동은 손바닥으로 말의 등을 네댓 차례 두드려주었다.
말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기꺼이 따르겠다는 신호다.
개동은 말의 목덜미를 몇 차례 쓰다듬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등에 안장을 얹어서 마당으로 데리고 나왔다.
하녀 분이는 그제야 손 등으로 눈을 비비며 제 방에서 나왔다.
분이는 익숙한 솜씨로 호롱에 불을 붙여서 말고삐를 잡고 있는 개동이 옆에 자리를 잡았다.
분이와 개동은 스물다섯 살 동갑내기다. 어릴 적부터 같은 주인 밑에서 남매처럼 자라서 서로 허물없는 친구처럼 지낸다. 부모의 사이가 좋으니 아이들도 친형제처럼 지낸다.
잠시 뒤에 건넛방에 불이 켜졌다.
오래지 않아서 통사의 아들과 며느리가 방문을 열고 나와 마당으로 내려섰다. 잠을 자다가 아비의 외출을 알아채고 급히 차림을 갖추고 나온 것이다.
단잠의 허리를 자르고 나왔기 때문인지 아들이 길게 하품을 내뿜었다.
며느리도 손으로 입을 가리고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가 살며시 내뿜었다.
안방 문이 열리고 체구가 야무져 보이는 사내가 마루로 나왔다. 몸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탕건을 쓰고 있다.
통역을 오래 해서 예법이 몸에 배었기 때문인지 어둠을 가르는 사내의 걸음걸이가 풀을 매긴 옷처럼 빳빳하다.
사내의 배우자로 보이는 여인이 얌전한 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
사내는 댓돌에 놓여있던 가죽신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여인도 따라서 신발을 신고 사뿐히 마당으로 내려섰다.
분이의 손에 들린 호롱불이 춘발의 얼굴을 비췄다. 주름살이 몇 개 있어도 그리 늙지는 않았다.
사내가 오른발로 등자를 짚고 몸을 솟구쳐 말의 등에 올라앉았다.
-조심해서 다녀오셔요. 영감.
여인은 아침에 했던 것과 똑같이 남편을 배웅하였다.
아들 내외도 한밤중에 출근하는 가장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출산이 임박한 며느리는 허리를 숙이는 시늉만 하였다.
여인은 남편을 하루에 두 번 출근시키는 상황이 몹시 어색하다는 표정이었다.
-가서 얼른 수습하고 곧 돌아오리다. 혹시 늦어질지도 모르니 기다리지 말고 자던 잠을 이어서 자세요.
사내가 여인의 마음을 읽었던지 묵직한 어조로 여인을 안심시켰다.
아들 내외는 서로 다정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부모를 공손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단잠을 방해해서 미안하구나. 내 걱정 말고 어서 들어들 가거라.
여인과 아들 내외는 대문 밖까지 따라 나가 말의 엉덩이에다 대고 허리를 숙였다.
방으로 돌아온 여인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꿈속으로 통하는 길목을 막았다.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불안감이 몸 전체를 칭칭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