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금부에서 매질을 당한 곳들이 쑤시고 아파서 똑바로 앉아있을 수가 없다. 거짓말을 지어내서 우리를 벼랑으로 몬 상이 놈을 확실하게 응징하겠다. 아무리 고통이 심했다 해도 상의의 배신은 변명의 여지가 손톱만큼도 없다. 같이 고문을 당하다가 저만 살겠다고 제 형을 살인범으로 몬 놈이 사람이냐? 내가 기필코 본때를 보일 것이니 너희들은 모른 척해라.
-그래도 핏줄인데 그러면 되나. 나도 상이가 옆에 있으면 당장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이지만 상이 입장도 생각을 해야지. 고통이 오죽이나 심했으면 우리가 죽게 될 걸 알면서 거짓말을 둘러댔겠어. 상이는 마음이 여리고 겁도 많잖아. 우리보다 나이도 어리고. 또 지금쯤 상이가 얼마나 후회를 하고 있겠어. 불쌍한 상이 처지를 생각해서 흥분을 참으라고.
영팔이 손사래를 치며 사재를 진정시켰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춘삼이 영팔을 거들었다.
-역시 영팔이는 나보다 속이 깊다. 나도 상이가 숨이 넘어갈 것 같아서 거짓말을 한 거라고 믿어. 당장 죽을 거 같으면 누구라도 살 길을 찾는 것이 사람 마음이잖아. 우린 들 참을 걸 참았나. 나도 금방 죽을 거 같아서 아무 이름이나 대야겠다는 생각을 백 번도 더 했어. 그러니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우리가 상이를 용서하자.
춘삼이 다시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
-그래 영팔이 말이 옳아. 우리들이 죽도록 얻어맞는 걸 보면서 상이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어. 그러니 형이 마음을 크게 써서 동생을 이해해. 형 만한 아우 없다고 하잖아. 자, 우리 죽다가 살아난 기념으로 술이나 실컷 마시자. 오늘 술값은 내가 낸다. 주모!! 여기 막걸리 한 병하고 안주 한 접시 추가요.
사재는 영팔과 춘삼이 알아채지 못하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재가 친구들 앞에서 상이를 혼내겠다고 공언한 것은 상이를 보호하기 위한 연기였다. 혹여 영팔과 춘삼이 상이를 혼내자고 나올까 봐 미리 선수를 처서 상이가 공격당할 여지를 없앤 것이다.
-그나저나 상이가 걱정이다. 머지않아 상이의 거짓말이 밝혀지면 저 사냥개 같은 도사가 상이를 가만두겠냐고.
분위기가 훈훈해져서 사재가 마음을 놓자마자 영팔이 상이의 앞날을 걱정했다.
-먼저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상이가 아니라 도사잖아. 의금부 앞에 가면 임금이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은 와서 치라고 큰 북을 매달아 놓았다던데···.
춘삼이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북을 한 번 쳐보라고 권했다.
-나도 들었는데, 북을 치는 사람이 없대.
-그러면 첫 번째로 한 번 쳐보는 거지.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가만있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
-알았어. 집에 가서 일단 먼저 법조문을 확인하고 깊이 고민해 볼게.
술과 음식으로 허기를 채운 세 사람은 주막을 나와 개천교 근처에서 헤어졌다.
사재는 오랜만에 취기를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사재의 머릿속은 의금부에 남겨진 상이를 하루빨리 집으로 데려올 궁리로 가득 차 있었다. 상이가 거짓말을 했다고 상이를 심하게 꾸짖은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상이가 거짓말을 하고 나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오죽 겁이 났으면 형이 사람을 죽였다고 둘러댔을까. 실은 나도 너무 아프고 무서워서 차라리 그대로 죽기를 바랐으니까. 여하튼 상이를 의금부에서 빼낼 방법을 찾아야 돼.
-어머니 저 왔어요.
사립문을 밀치고 마당으로 들어선 사재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등잔불이 켜져있는 안방을 향해 자신의 귀가를 알렸다.
-사재 왔느냐. 일찍들 헤어진 게로구나.
-네. 주막에 가서 막걸리 한 잔씩 하고 바로 헤어졌어요. 어머니는 저녁 드셨어요?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안 먹었다.
-뭐라도 좀 드셔야지요. 내일 아침까지 어떻게 견디시려고요.
-내 걱정 말고 일찍 자거라. 그렇게 두들겨 맞았으니 몸뚱이가 성한 곳이 있겠느냐.
주련은 끝내 상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사재는 어미의 마음이 상이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알았지만 들려줄 말이 없었다.
사재가 판단하기에 상이가 풀려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수사책임자인 도사가 바로 목격자이고 증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어미가 충격을 받을까 봐 조금이라도 희망이 담긴 이야기로 어미를 안심시켰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상이의 죄는 도사가 법을 어겨서 생긴 거니까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아볼게요. 쉽지는 않겠지만 궁리해 보면 길이 전혀 없지는 않을 거예요.
주련은 사재의 능력으로는 상이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재가 더없이 대견하게 생각되어 묵묵히 응원을 보냈다.
사재는 방에 들어가 이부자리를 펴고 몸을 집어넣었다. 무자비한 매타작을 용케도 견뎌낸 뼈들이 극한의 고통을 호소하며 아우성을 쳐댔다.
시간이 흐를수록 졸음이 겹겹이 쌓이는데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술기운이 남아있는데도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몸을 뒤척이기조차 힘들었다.
이불속에서 눈을 감은 채로 의금부 마당에서 상이가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자신을 살인범으로 지목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고문이 얼마나 겁났으면 형을 살인자로 만들 생각을 하였을까? 상이도 나처럼 잠을 못 자고 형을 배신한 자신을 원망하겠지. 하지만 먼저 죄책감을 느껴야 할 사람은 상이가 아니라 의금부도사야. 그 자가 법을 지켰으면 상이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죽도록 두들겨 맞더라도 북을 두들겨보자.
사재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옷을 갖춰 입고 책상 앞에 앉았다.
법전을 펼쳐서 격고(擊鼓·북을 치는 것)의 요건과 절차를 찾아봤다.
「먼저 사헌부에 호소해서 담당자가 성의를 안 보이면 북을 쳐라.」
사재는 벼루에 먹을 갈아서 붓으로 탄원서를 써 내려갔다.
맨 앞에 의금부도사가 안일하게 피살자 유족의 억측을 믿고 죄 없는 자기 가족을 잔혹하게 고문한 내역을 상세히 적었다.
두 번째로 극단의 공포를 느낀 상이가 허위자백을 해서 자신과 애먼 친구 두 명이 죽도록 얻어맞은 일을 자세히 적었다.
세 번째로 의금부도사가 스스로 잘못을 깨달아 자신과 친구 두 명은 풀어주고 상이는 의금부에 구금된 내역을 적었다.
마지막으로 상이의 위증죄를 벗겨주고 의금부도사의 법령위반을 엄히 다스려주기를 청했다.
임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적고 나서 예상 질문과 모범답안까지 작성하였다.
첫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옷을 벗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다행히 누적된 피로가 졸음을 퍼부어줘서 어렵사리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어미와 함께 조반을 먹고 육조거리에 있는 사헌부로 갔다. 문지기에게 용건을 말하고 안으로 들어가 담당 감찰에게 탄원서를 냈다.
내용을 읽어본 감찰은 대뜸 사재의 무지를 꾸짖었다.
-임인년(1422)에 제정된 부민고소조를 몰라서 이런 것을 가져왔느냐?
부민고소조는 하급 관리나 일반 백성이 상관·감사·수령을 고소하는 것을 금지한 법이다. 어기는 자는 고소한 내용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무고죄로 처벌하게 되어 있었다.
사재는 간밤에 치밀하게 준비한 반론으로 응수했다.
-부민고소조는 상관·감사·수령의 비리를 고소하는 자를 벌주라는 법이지 억울한 백성의 간절한 호소를 무시하라는 법이 아니지 않습니까?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것이냐. 하급관리나 일반백성이 상관·감사·수령을 고소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고죄에 처해진다는 것을 모르느냐?
-저는 관리가 아닌데 어떻게 의금부도사의 부하가 될 수 있습니까. 또, 의금부도사는 감사도 수령도 아니니 제가 의금부도사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위법이 될 수 없습니다.
감찰은 도끼눈을 뜨고 사재를 노려봤다.
사재도 지지 않고 눈을 부라렸다.
감찰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젊잖게 사재를 구슬렸다.
-옥관은 삼한법(三限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죄 없는 사람을 고문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리고 설령 옥관의 고문이 과했더라도 죄 없는 형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려 하였으면 마땅히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삼한법에 따르면 사죄(死罪·사형)는 구십일, 도죄(徒罪·노역)와 유죄(流罪·유배)는 육십일, 태죄(笞罪·작은 회초리)와 장죄(杖罪·큰 회초리)는 삼십일 이내에 심리를 마쳐야 했다.
그런데 옥관마다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아서 법을 지키기가 어려운 현실을 감찰이 핑계로 내세운 것인데, 사재는 법적용의 불공정을 지적하였다.
-제 동생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의금부도사의 신장규칙위반을 먼저 다스려야 법이 공평한 게 아닙니까?
-어디 감히 무당 자식을 옥관과 같은 반열에 두려고 하느냐?
사재는 상대가 그런 말을 할 것에 대비해 미리 준비한 대답을 꺼냈다.
-무당 아들은 법 아래 있고 의금부도사는 법 위에 있다는 말씀입니까?
감찰의 안색이 험악하게 바뀌더니 속물 본색을 드러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보자 보자 하니까 머리끝까지 기어오르는구나. 네 놈 눈에는 사헌부 감찰이 허깨비로 보이느냐?
사재는 굴하지 않고 한 번 더 감찰의 염장을 질렀다.
-존경하옵는 감찰 나리님! 감히 존함을 여쭤도 되겠사옵니까?
-네 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당장 썩 꺼지지 못하겠느냐?
‘됐어. 이 정도면 요건을 충분히 갖췄어.’
사재는 탄원서를 가지고 신문고가 있는 창덕궁 앞으로 뛰었다.
궁궐 정문 앞에 있는 사각건물 중앙에 작은 연자방아만 한 북이 매달려 있었다.
사재는 그 북을 두드리면 임금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궁금했다.
북을 지키는 의금부 관원에게 다가가 용건을 밝혔다.
말을 꺼내기 전에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1년쯤 전에 신문고를 지키던 관원 두 명이 북을 치러 온 노비를 가로막았다가 그 노비가 광화문의 종을 울리는 바람에 직에서 쫓겨난 뒤로 북을 치기가 쉬워졌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의금부 관원은 두 말 없이 정자의 출입문을 열어줬다.
사재는 정자의 돌계단을 올라가 북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꼭뒤에서 의금부 관원이 ‘분이 풀릴 때까지 원 없이 쳐도 좋다.’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정면에 놓인 작은 탁자 위에 큼지막한 북채가 놓여있었다. 두 손을 뻗어 북채를 집어 들고 북으로 다가갔다. 온몸의 힘을 팔뚝에 모아서 둥그런 가죽의 한복판을 후려갈겼다.
-둥∼둥∼둥∼둥∼둥∼.
평생 힘들게 일만 하다 살과 뼈와 내장은 사람들에게 먹히고 가죽은 북이 된 황소의 울분이 사재의 억울함을 짊어지고 종루를 지나 주상이 머무는 대궐의 담장을 넘어갔다.
그 울림에는 열심히 자라다가 한순간에 소의 먹이가 된 수많은 풀들의 공분과 그 뿌리들에게 양분을 빼앗긴 흙의 분노가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다.
사재는 북채를 내려놓고 정자 밖으로 나왔다.
의금부 관원이 “북을 치고 나니까 후련하냐?”라고 물었다.
-불을 마음껏 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재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관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의금부 관원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조금 있으면 대궐에서 사람이 나올 거라고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승정원의 좌부승지가 돈의문을 빠져나와 신문고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사재는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예를 표했다.
-북을 치게 된 연유를 자세하게 말해보아라.
사재는 사헌부에 내려다 거절당한 탄원서를 승지에게 바쳤다.
승지는 사재에게 더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물었다.
사재는 도사의 다시 한번 낱낱이 밝히고 상이의 무죄를 주장했다.
승지는 중간에 사재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끝까지 진지하게 경청하였다.
사재가 말을 마치자 승지가 인자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입궐하는 대로 주상께 너의 억울함을 소상히 아뢰고 탄원서를 올릴 터이니 집에 돌아가 결과를 기다려라.
집으로 돌아온 사재는 어미 주련에게 아침부터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들려주었다.
주련은 불쌍한 동생을 구하려고 애쓰는 사재가 남편처럼 든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시도 염려를 놓을 수 없었다. 일이 잘못되어 세 식구가 다시 또 의금부에 잡혀가는 상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주련은 사재의 시선을 피해서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내일 별일 없으시면 저와 같이 상이가 보러 가시겠어요?
사재가 불쑥 얼토당토않아 보이는 제안을 내놨다.
주련은 사재가 의금부에서 매를 너무 많이 맞아 맨 정신으로 잠꼬대를 한다고 생각했다. 사재와 같이 의금부를 찾아간들 옥방에 갇힌 상이를 어느 누가 만나게 해 주겠는가.
-같이 가는 거야 어려울 것이 없다만 가서 어떻게 상이를 만난다는 것이냐?
주련은 아들의 뜬금없는 제안에 대해 깊고 두터운 의구심을 드러냈다.
-의금부도사에게 부탁하면 만나게 해 줄 거예요. 자기가 먼저 법을 어겨서 상이가 위증을 한 거니까 양심이 있다면 거절하지 않을 거예요.
주련은 반신반의하였지만 누구보다 똑똑한 아들이 헛말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어머니 저 먼저 좀 자야겠어요. 어제 거의 밤을 새워서 그런지 잠이 쏟아지네요.
-그래. 많이 피곤할 터이니 어서 들어가 푹 자거라.
주련은 아들이 제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궁이에 불을 지핀 뒤에 솥에 물을 채우고 마당에 있는 뒤꼍으로 갔다. 햇볕을 쬐면서 낮잠을 자고 있던 암탉들 중에서 살집이 제일 좋은 놈을 붙잡았다.
부엌으로 끌려온 닭은 양쪽 날개를 붙잡혀 옴짝달싹 못하면서도 어떻게든 주인의 손아귀를 벗어나보려고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을 쳤다.
주련은 닭의 날개를 붙잡고 남은 한 손으로 닭의 목을 잡고 오른쪽으로 행주를 짜듯 비틀었다.
닭은 양쪽 눈을 까뒤집고 고통스러운 표정일 짓다가 몸과 두 다리를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주련은 닭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금부 옥방에서 배를 곯고 있을 불쌍한 아들을 생각하며 털을 뽑고 토막을 내서 요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