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투자 천재들의 선견

1. 재신(財神) 백규-중국

by 조병인

중국 역사서인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 「화식열전(貨殖列傳)」 편이 들어있다. 거기에 중국 춘추시대 말기부터 한(漢)나라 초기 사이에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된 사람들과 여러 지방의 풍속, 물산, 교통, 상업 등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화식(貨殖)에서 ‘貨(화)는 재물을 뜻하고 식(殖)은 불린다는 뜻이다. 열전(列傳)은 여러 사람의 전기(傳記)를 차례로 벌여서 기록한 기전체(紀傳體)의 역사를 말한다.


2012년에 고전연구가이자 평론가인 신동준이 <화식열전> 전문을 내용별로 갈라서 21세기의 경제ㆍ경영 이론과 비교한 《사마천의 부자경제학 『사기』 화식열전》을 냈다. 그 책에 중국인들이 재신(財神)으로 받드는 백규(白圭)라는 인물이 역발상으로 거부(巨富)가 된 비결이 나온다.

백규는 사람들이 버리고 돌아보지 않을 때 해당 재화를 사들였다가(인기아취·人棄我取), 사람들이 재화를 취하고자 할 때 팔아넘겨서(인취아여·人取我予) 거부(巨富)가 되었다(175쪽).


인취아여(人取我予)에서 '여(予)'는 상대방에게 유리하게 넘긴다는 의미다.


백규는 상인이 큰 부를 이루려면 지(智)·용(勇)·인(仁)·강(强)을 구비해야 한다고 하였다.


지(智)는 물가 등의 시세변화를 예측하는 지혜다. 용(勇)은 과감하게 결정할 수 있는 용기다. 인(仁)은 다급한 상황에서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행동하는 여유다. 강(强)은 기회가 오면 비호처럼 달려드는 날렵함이다.

백규는 상품의 공급이 수요를 넘어 아무도 구하지 않는 상황이 도래하면 대량을 사들이고, 수중에 있는 상품의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가격이 크게 오려면 대량을 처분하는 방법으로 자산을 늘렸다(175-176쪽).


사마천은「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백규처럼 부를 쌓는 데 성공한 사람들을 때를 아는 지시(知時)의 달인으로 규정하였다.

백규는 '지시'를 '때의 변화를 즐겨 살피는 것'으로 이해하고 물가의 등락을 예측하여 매년 재산을 2배씩 늘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백규의 비결은 시장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상품을 사고팔기에 적합한 시기를 정확히 포착한 데 있었다. 전쟁터에서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듯이 시세(時世)의 변화에 맞춰 임기응변을 한 것이다(176쪽).

수시로 변하는 시장 상황에서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전쟁에서 사용되는 용병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사마천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정밀한 사전 예측, 치밀한 대책, 정확한 기회 포착, 과감한 결단 등이 그것이고 병법에서 승리의 전제조건으로 강조되는 지피지기(知彼知己)이다(196-197쪽).


자신을 알고 상대방을 알면 100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


자신을 알고 상대방을 모르면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다.

☘부지피이지기(不知彼而知己) 일승일부(一勝一負).


자신도 모르고 상대방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위험에 빠진다.

☘부지피부지기(不知彼不知己) 매전필태(每戰必殆).


위의 세 문장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때 손무(孫武)가 지은 ≪손자병법(孫子兵法≫ 제3편(모공편·謀攻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손자(孫子)는 노자(老子), 장자(莊子), 공자(孔子), 맹자(孟子), 순자(荀子)처럼 손무를 높여서 부르는 호칭이다.


손자는 <모공편>에서 적을 직접 공격하기보다 적의 공격을 막는 데 주력할 것을 권하며 공격을 펼칠 때는 적의 허점을 이용하라고 강조한다. 작전을 펼치기 전에 먼저 적의 강점과 약점을 면밀히 파악하여 허를 찔러야 승리를 거둘 수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손자는 또 공격을 감행하기 전에 적의 계책, 지형, 기후, 군사력, 전투력 등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가장 유리한 시기와 장소를 택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싸울 것을 권한다.

그뿐만 아니라 싸움에 수반되는 비용과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이를 위해 기만전술로 적을 속이고 교묘한 심리전으로 적이 동요하게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래서 사마천은 「화식열전」을 쓰면서, 백규가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권고와 제안들을 충실히 지켜서 큰 부자가 되었다고 적은 것이고, 그 덕분에 백규가 중국에서 대대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송(宋나)라 진종은 백규를 상성(商聖)으로 추존하였다.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백규를 ‘인간 재신(財神)’으로 여기며 ‘천하 치생(治生)의 비조(鼻祖)’로 인식한다. 비조는 한 겨레 혹은 가문의 시조(始祖)가 되는 조상이거나 특정 학문 혹운 기술의 창시자를 일컫는 말이다.


백규는 본래 전국시대 위나라 혜왕의 신하였으나 나라가 갈수록 부패해지자 위나라를 떠나 중산국과 제나라를 거쳐서 진(秦)나라로 갔다가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상업에 뛰어들었다.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한 낙양(洛陽)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상업에 뛰어난 눈을 지니고 있었던 백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시대 최고의 대부호가 되었다. 당시 대상(大商)들의 대다수가 보석 장사로 큰돈을 벌 때 백규는 농업부산물 장사로 돈을 벌었다.


백규는 당시 농업생산이 급속하게 발전하는 것을 보고 농산물 장사가 장차 커다란 이윤을 창출하는 업종이 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거래로 인한 수익은 적어도 거래량이 많아서 큰돈이 벌릴 것을 알았던 깃이다.

게다가 백규는 재산을 움켜쥘 시기에 이르면, 마치 맹수와 맹금류가 먹이를 낚아채듯이 행동이 민첩했다.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 백규가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적었다.


나는 장사를 할 때 이윤(伊尹)이나 강태공(姜太公)이 계책을 실행하는 것처럼 하고, 손자(孫子)와 오기(吳起)가 군사작전을 펼치는 것처럼 하며, 상앙(商鞅)이 법령을 집행하는 것처럼 한다.

이윤은 아득한 옛날에 중국의 상 왕조 성립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강태공은 주나라 재상으로 왕을 도와 상나라를 무너뜨린 공로로 제나라의 제후가 된 인물이다.


손자(孫子)는 중국 춘추시대에『손자병법』을 썼고 오기는 전국시대에 병법서인『오기((吳起)』를 썼다. 상앙은 옛날 중국의 진(秦)나라 때 신상필벌과 일벌백계에 앞장선 법가(法家) 출신 정치가였다.


백규가 어느 날 많은 상인이 창고에 가지고 있던 면화를 싼값에 모두 파는 것을 보았다. 어떤 상인은 남보다 면화를 빨리 처분하려고 헐값에 넘기기도 하였다. 백규는 수하들을 시켜서 상인들이 팔려고 내놓은 면화를 모두 사들이게 하였다.

그러면서 다른 수하들을 시켜서 양질의 모피를 잔뜩 사들여 창고에 쌓아놓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앞으로 모피가 크게 유행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겨울에는 시장에 모피가 없을 것이라는 말도 떠돌았다.


면화를 모두 팔아넘긴 상인들은 백규로부터 모피를 경쟁적으로 사들였다. 백규는 모피의 가격이 더 오르기를 기다리지 않고 재고를 몽땅 팔아 큰돈을 벌었다.

얼마 뒤에 흉년으로 면화생산이 줄었다. 면화를 구할 수 없게 된 상인들이 백규가 가지고 있던 면화를 경쟁적으로 매입해 백규는 또 큰돈을 벌었다.


백규는 곡물이 익어가는 계절에는 양곡을 사들이고 비단과 칠기를 팔다가 누에고치가 생산되기 시작하면 양곡을 내다 팔고 비단과 솜을 사들였다.

추수철이거나 풍년이 들어서 농민들이 곡물을 대량으로 내다 팔면 곡물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농민들에게 비단과 칠기 등을 팔았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반대로 곡물을 내다 팔고 재고가 남아도는 수공업 재료와 공산품을 사들였다.


백규는 그러한 상술로 많은 재산을 모았을 뿐만 아니라 상품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농민과 수공업자들이 손해를 안 보게 하였다. 백규는 자신의 이러한 상술을 ‘인술(仁術)’이라고 하였다.

또, 백규는 지혜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근면하고 검소하였다. 큰 부자가 된 뒤에도 기름진 음식이나 화려한 의복을 탐하지 않았다. 언제나 평민처럼 소박하게 먹고 간편하게 입으면서 일꾼들과 동고동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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