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이 낭청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나장 차덕수가 찾아왔다. 덕수는 무슨 일을 맡기든지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고하여 무원의 신임이 두터운 부하다. 그래서 힘든 역할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면 매번 덕수를 찾는데 이번에는 덕수가 제 발로 무원을 찾아온 거였다.
-무슨 특급정보라도 수집하였는가?
무원은 덕수를 가까이 불러서 시선을 맞췄다.
-묵사 아랫동네 사는 제 친구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원은 대답 대신 덕수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음 말을 재촉하였다.
-매일 날이 어두워지면 묵사에 묵고 있는 왜인들이 몰래 동네로 내려와 물건을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한답니다.
-쥐새끼 같은 놈들. 왜관 주변은 단속이 엄하니까 감시가 허술한 묵사로 옮겨갔구나. 그래 어떤 물건들을 거래한다고 하던가?
-그것까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밤에 나장들을 넉넉히 데리고 가서 모두 잡아오게. 일시에 동네를 덮쳐서 몰래 물건을 사고파는 자들을 남김없이 체포하게. 왜인이고 내국인이고 할 것 없이 모조리 잡아다 옥에 가두게. 저녁밥을 미리 먹고 있다가 사방에 땅거미가 깔리면 즉시 출발하게.
다음 날 무원이 의금부에 출근해 보니 내국인 밀수범 열 명이 붙잡혀와 옥에 갇혀 있었다. 현장에 몇 명이 더 있었는데 사방이 어두워 놓쳤다고 덕수가 보고했다.
무원은 나장들을 시켜서 열 명 전원을 마당으로 끌어내 한 줄로 나란히 세우게 하였다.
-모두 눈을 감으라. 내가 다시 뜨라고 하기 전에 눈을 뜨면 매질이 가해질 것이다.
무원은 왼쪽부터 차례로 한 사람씩 자기 이름을 말하게 하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순서를 지나서 세 번째 순서가 되었다.
-한영우입니다.
마치 미리 약속을 해 둔 것처럼 무원과 덕수의 시선이 빠르게 부딪혔다.
덕수가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무원이 그 의미를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열 번째 순서가 끝나자 다시 왼쪽부터 전날 밤에 왜인들과 물품을 거래한 내역을 말하게 하였다.
열 명 모두 왜상에게 구리·납·철 중 한 가지를 건네고 그 대가로 은(銀)을 받았다고 하였다.
다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밀무역 전과를 숨김없이 말하게 하였다.
열 명 모두 전에도 밀무역을 한 적이 있지만 발각되기는 처음이라고 하였다.
무원은 신문을 마치고 열 명을 서로 다른 옥방에 나눠서 가두게 하였다.
무원은 지체 없이 중추원에 들어가 의금부 도제조인 판부사 허조를 만났다.
의금부로 돌아온 무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필시 간밤에 체포된 열 명의 처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왔을 터인데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가고 오후가 되었다.
영우의 매형인 기무라가 의금부에 나타났다.
무원은 기무라를 반갑게 맞아들여 차를 대접했다.
무원이 모른 척하고 기무라에게 찾아온 연유를 물었다.
-제 처남이 여기 옥에 갇혔다고 해서···.
기무라는 무원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처남이 잡혀와 있다고요? 무엇을 잘못했길래요. 처남 이름이 뭐지요?
무원은 여전히 시치미를 떼고 기무라에게 물었다.
-영우입니다. 한영우요.
기무라는 처남의 이름을 말하면서 제 옷소매에서 작은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
-집사람이 시집올 때 혼수로 가져온 금가락지요. 약소하지만 내 성의로 여겨주시오.
비단 주머니를 앞으로 내미는 기무라의 비루한 표정에 무원의 분노가 폭발했다.
-내가 이따위 수작에 넘어갈 사람으로 보이시오?
무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오른손 주먹으로 앞에 놓인 탁자를 내리쳤다.
-우리 둘이 입을 다문다면 누가 알겠소. 천정에서 귀신이 내려다보는 것도 아니고.
무원은 기무라를 노려보며 주상이 갑진년(1424) 칠월에 뇌물을 준 자와 받은 자를 함께 처벌하도록 법을 세운 기억을 떠올렸다.
기무라의 말은 그 법이 겁나느냐는 것이었으나 무원은 그 법이 생기기 전에도 뇌물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벽에도 귀가 있다는 말을 모르시오. 그 입 닥치고 당장 집어넣으시오. 내가 여기까지 찾아온 성의를 봐서 이 번 한 번만 특별히 영우의 죄를 가볍게 다룰 테니 처남의 버릇을 책임지고 고쳐주시오. 지금 이 자리에서 꼭 그러겠다고 약조하시오.
-약조뿐이겠습니까. 하지만 너무도 뜻밖의 선처라서 몸 둘 바를....
-지난해 이춘발을 죽인 범인을 알려줘서 사건을 쉽게 해결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한 작은 보답이오. 다시 또 잡혀오면 그때는 법대로 엄히 다스릴 것이니 한 마디도 빼지 말고 처남에게 똑똑히 전하시오.
기무라를 돌려보낸 무원은 나장들을 시켜서 옥방에 가둔 밀수 용의자 열 명을 모두 마당으로 끌어내 낭청 앞에 한 줄도 세우게 하였다.
맨 왼쪽부터 차례로 눈도장을 찍고 나서 미리 머릿속에 넣어둔 말들을 순서대로 꺼냈다.
국법은 밀무역을 한 자들을 나라를 팔아먹은 간첩으로 간주해 극형으로 다스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겁 없이 왜국상인들과 밀무역을 하였으니 사형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원이 전과가 없을뿐더러 어젯밤에 거래한 물량이 소량에 그쳐서 이번 한 번만 특별히 죄를 대폭 감해주겠다. 다음에 다시 또 밀무역을 하다 발각되면 그때는 예외 없이 법대로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재물이 아무리 탐나도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보잘것없는 이득과 맞바꾸는 바보짓을 하지 말라. 모두 내 말을 알아들었느냐?
-예. 도사 나리. 죽을 목숨을 살려주신 도사님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하늘을 두고 맹세합니다.
무원은 열 명 모두 태(苔·회초리) 스무 대씩을 때리게 하였다.
태형은 형률에 규정된 다섯 가지 형벌(사형·유배·노역·태·장) 가운데 가장 가벼운 벌이다. 끝장을 예상하고 공포에 질려있던 죄인들은 뜻밖의 선처에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무원이 턱으로 신호를 보내자 나장 열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잠깐 사이에 태형 집행을 마쳤다.
-다시는 법을 어기지 않겠다고 맹세할 수 있겠느냐?
무원의 시선이 긴장을 풀고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한 영우의 얼굴을 덮었다.
-하늘에 대고 맹세하겠습니다.
무원은 석방을 지시하기 전에 열 명의 주소를 적어두게 하였다.
덕수가 무원의 곁으로 다가가 귀에다 대고 가만히 속삭였다.
-이렇게 풀어주시면 놈들이 국법을 낮잡아보지 않겠습니까?
-내가 노리는 것이 따로 있으니 군말 말고 내 지시를 충실히 따르게. 이 시간 이후로 자네는 다른 일은 하지 말고 오직 영우의 뒤만 밟도록 하게.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도사 나리.
언제나 그랬듯이 이 날도 덕수의 대답은 활력과 자신감이 넘쳤다.
-오늘 식겁을 하고도 곧바로 다시 밀무역을 할 멍청이는 없을 것이네. 영우가 당분간은 집에서 조용히 지낼 테지만 사흘만 지나면 좀이 쑤셔서 못 견딜 것이네. 오늘은 영우가 사는 곳만 확인해 두고 사나흘 후부터 뒤를 밟도록 하게.
무원은 덕수에게 영우를 미행하면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꼼꼼하게 환기시켰다.
-예. 나리.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무원의 지시를 복창하는 덕수의 두 눈이 굳은 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상대방이 낌새를 알아채면 모든 게 허사가 된다는 사실을 잠시도 잊지 말게. 신중이 지나치면 기회가 멀리 달아나버린다는 사실도 명심하고.
-예.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 나리.
덕수는 무원에게 예를 표하고 소리 없이 몸을 돌려 낭청을 나갔다.
무원은 의금부 대문을 나서는 덕수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무원은 덕수가 무언가 큰일을 해낼 것 같은 예감을 강하게 느꼈다.
***
덕수는 영우가 의금부에 남긴 주소를 들고 영우의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영우의 집을 찾을 수 없었다. 이웃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덕수는 직감적으로 영우가 잔꾀로 자신을 속였음을 알아챘다.
선왕 태종은 즉위하고 6년째 되던 해 3월 호패법을 제정하였다. 국방·치안·공사 등을 비롯한 국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6세 이상의 모든 남자는 자신의 신상정보가 기재된 호패를 지니고 다니게 하였다. 그런데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주거 정보는 빠져있었다. 그래서 열 명에게 각자 사는 곳을 적게 하였을 때 영우가 잔머리를 굴린 거였다.
기무라의 집을 찾아가서 물어볼 수도 없다. 영우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영우를 제외한 아홉 명을 몰래 불러서 물어볼 수도 없다. 그들이 적어낸 주소가 모두 맞는다는 보장도 없다.
덕수는 범법자들의 양심을 믿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며 나무처럼 제자리에 서서 고민을 거듭하다 의금부로 발길을 돌렸다.
무원은 덕수를 위로하며 둘이 같이 묘안을 찾아보자고 하였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비가 와서 무원도 덕수도 종일 의금부에 있었다.
그다음 날은 오전까지 비가 내리다가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개었다.
덕수는 정해진 아직 시간이 안 되었는데 점심을 먹으러 구내식당으로 갔다.
식당에서 일하는 여종들을 재촉해 서둘러 점심을 먹고 무작정 의금부 대문을 나섰다.
나오긴 나왔는데 갈 곳이 없었다. 한참 동안 대문 앞을 서성거리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압력에 떠밀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종루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종루가 바로 눈앞에 보였다.
어디선가 시커먼 구름이 무더기로 몰려와 해를 통째로 가렸다. 잠시 뒤에 우르르 쾅하는 천둥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너무 커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소낙비가 세차게 퍼부었다.
고개를 좌우로 둘려보니 사람들이 경시서(京市署) 건물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덕수도 그 틈에 끼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넓은 길 반대편 맞은편 건물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전에 어디서 만났던 사람이 분명한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덕수는 가만히 눈을 감고 기억창고를 더듬었다.
그래 맞아. 작년에 이춘발을 죽이고 처형된 홍성부의 동생이야. 홍성부가 당고개에서 목이 베인 뒤에 형수와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와서 형의 시신을 거둬간 홍성추야.
당시 처지가 딱해 보여 인지상정으로 시체수습을 잠시 도와준 기억이 육 개월의 공백을 메워주었다.
그런데 상대방은 멀뚱히 허공만 바라보고 반대편을 쳐다볼 생각을 안 했다.
잠시 뒤에 비가 그치고 사람들은 가던 길을 갔다.
덕수는 성추가 방향을 잡기를 기다렸다.
성추는 덕수가 가던 방향과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애당초 행선지가 없었던 덕수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무작정 성추를 따라갔다.
성추는 걸음을 서두르지 않았고 덕수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천천히 걸었다.
덕수는 목적도 없이 질척 질척 성추를 따라가는 자신이 어색하다 못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안 가서 성추가 걸음을 멈췄다.
두 사내가 반대쪽에서 걸어오다가 성추 앞에 멈춰 섰다.
세 사람은 서로 눈짓 고갯짓을 주고받더니 셋이 함께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섰다.
덕수는 골목 입구 담벼락에 몸을 바짝 붙이고 두 눈을 세 사람의 등짝에 고정시켰다.
세 사람은 허름한 초가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사방을 둘러본 뒤에 대문을 밀고 안쪽으로 사라졌다.
덕수는 담벼락에서 떨어져 골목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방금 전에 세 사내가 들어간 초가집 앞으로 가서 멈춰 섰다.
대문 앞에 잡초가 무성하다. 담장의 모서리가 무너져있다. 지붕도 형편없이 낡았다.
덕수는 사방을 빠르게 둘러본 뒤에 대문에 귀를 대봤다.
분명히 세 사람이 들어갔는데 집안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집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으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큰길 건너편에 자그마한 주막이 보였다.
주모로 보이는 여인이 밖으로 나왔다가 곧바로 다시 들어갔다.
무원은 길을 건너서 주막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셔요. 여기로 앉으셔요.
주모는 출입문 바로 옆 자리를 권했다. 무원은 속으로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의자에 앉아서 바깥을 내다볼 수 있게 식탁이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주안상을 시킨 뒤에 시선을 길 건너 골목에 집어넣었다.
잠시 뒤에 주모가 탁주와 부침개를 가져왔다. 탁주를 마실 사발과 젓가락도 함께 가져와 무원 앞에다 놓았다.
-제가 잠깐 말동무해드릴까요? 호호.
주모가 눈웃음을 헤프게 흘리며 덕수에게 말을 걸었다.
-홀아비의 외로움을 한눈에 알아봐 줘서 고맙소. 그런데 저 골목은 어째서 동네 전체가 거미줄로 덮여 있는가?
무원은 손가락으로 길 건너 골목을 가리키며 주모에게 물었다.
-집주인들이 이사 갈 생각만 하고 집에 신경들을 안 쓰기 때문이지요. 저 골목의 낡은 빈집이 한 채 있는데 그 안에 귀신이 산다나요. 누가 그 집을 거저 가지려고 일부러 뜬소문을 퍼뜨렸겠지요.
-허허. 귀신은 다 쓰러져가는 빈집을 좋아한다는 말을 못 들었는가.
-나라님이 귀신이라면 질색이라던데 빈집인들 안전할까요? 호호.
주모는 연신 눈웃음을 뿌리며 술병을 들어서 덕수의 잔을 채웠다.
창문 너머에 꽂혀있던 덕수의 두 눈에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덕수의 시선이 그 아이의 뒤꿈치에 붙어서 뒤를 따라갔다.
아이는 조금 전에 세 사내가 들어간 집의 문 앞에 서서 작은 주먹으로 우람한 대문을 두드렸다.
잠시 뒤에 대문이 열리고 아이가 집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가 다시 대문을 나와 길가 쪽으로 걸어왔다.
덕수는 주모에게 재빨리 술값을 건네고 주막을 나와서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이 동네 사는 아이 같지 않은데 저 집은 왜 들어갔었니?
무원은 손가락으로 아이가 들어갔다 나온 집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이는 어머니 심부름으로 아버지를 부르러 갔었다고 하였다.
-아버지가 거기서 무얼 하고 계시니?
-우리 엄니가 그러는데 친구들과 투전을 하신 대요.
덕수가 보기에 아이는 심성이 착하면서 똑똑해 보였다.
-아버지가 저 집에 자주 가시니?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덕수는 아이와 또래가 비슷한 막내아들 얼굴을 떠올렸다. 순진한 아이에게 아비의 죄를 말하게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아이의 가정을 위해서는 아비의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버지 이름이 무엇이냐. 나도 친구를 찾고 있는 중이란다.
-성은 홍가고 이름은 성자 추자입니다.
-내 친구는 아니시구나. 네 아버지가 어떤 사람들하고 같이 있더냐?
덕수는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두칠이 아저씨, 명근이 아저씨, 영춘이 아저씨, 영우 아저씨, 이렇게 네 명이요.
아이는 손가락을 꼽으며 한 사람씩 이름을 말했다.
성추 한 명만 빼고 영우를 포함한 네 명 모두 묵사 아랫마을에서 왜인들과 밀무역을 하다 붙잡혀서 회초리 스무 대씩을 맞고 풀려난 자들이었다.
아이는 네 명 모두 아버지의 친구들이라고 하였다.
덕수는 강에 낚시를 담그지도 않고 대어를 낚았다고 생각했다.
-고맙다 꼬마야. 어서 가거라.
덕수는 아이의 머리를 두세 차례 쓰다듬어주었다.
-안녕히 가세요.
-그래 가다가 친구들과 놀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거라.
덕수는 빠른 걸음으로 의금부에 도착해 무원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영우와 성추가 함께 노름을 해? 세상은 좁다고 하더니 정말로 그런 것 같네.
-오늘 제가 길에서 성추를 만난 것은 순전히 운인 것 같습니다.
-일이 쉽게 풀릴 때는 운도 나서서 도와주는 법이네. 놈들이 흩어지기 전에 나장들을 데리고 가서 모두 붙잡아오게.
덕수는 육모방망이와 오라를 소지한 나장 열 명을 거느리고 의금부 대문을 나섰다.
성추가 노름을 하고 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발길로 대문을 박차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모두 동작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라. 도망치는 자는 몽둥이 세례를 받을 것이다.
체포에 이골이 난 나장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영우와 성추를 포함한 다섯 명을 오랏줄로 꽁꽁 묶었다.
성추는 그제야 덕수의 얼굴을 알아보고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의금부로 끌려온 다섯 명 모두 도살장에 끌려와 최후를 예감한 축생처럼 슬픈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