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점심시간 직후 의금부 앞에 한 중년여인이 나타났다. 필시 무슨 볼일이 있어 왔을 터인데 문지기에게 다가가질 못하고 한참 동안 대문 주변을 맴돌았다.
-볼일이 있어 왔으면 이리로 오라. 죄인을 만나러 왔느냐?
그제야 여인은 문지기에게 다가가 떨리는 음성으로 용건을 말했다.
-어제 의금부 사람이 집에 찾아와서 제 남동생이 여기 갇혀있다고 알려줘서 만나보러 왔습니다요.
-동생의 이름이 무엇이냐.
-필우입니다.
키가 작은 여인은 겁먹은 눈으로 문지기를 올려다보았다.
-동생이 땅꾼이냐?
문지기는 필우를 아는 것처럼 여인에게 물었다.
-전에는 땅꾼이었는데 지금은 뱀을 안 잡고 장사를 합니다요.
-제 입으로 땅꾼이라고 하던데. 직업을 속인 게로구나.
-실은 그것이···.
여인은 우물쭈물하며 ‘저기’ ‘저기’만 반복하고 뒷말을 잇지 못했다.
-어째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리기만 하고 말을 하지 못하느냐. 동생이 몰래 밀무역이라도 하였느냐?
-···.
문지기의 물음에 여인은 입을 떼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걸 보니 내가 딱 맞춘 게로구나.
문지기가 다그치자 여인은 더욱 어쩔 줄 모르고 전전긍긍하였다.
그때 밖에서 볼 일을 보고 일터로 들어오던 덕수가 문지기와 여인의 대화를 들었다.
-나를 따라오라.
덕수는 여인을 각종 고문도구가 즐비한 신문실로 데려갔다.
-어째서 동생의 직업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느냐? 우리는 네 동생이 관원들의 눈을 피해 밀무역을 한 사실을 소상히 알고 있다.
-이제라도 바른대로 말씀드리면 죄를 면할 수 있나요. 나리.
덕수가 반응을 떠보려고 그냥 한 번 찔러본 것이 그대로 적중한 거였다. 여인은 동생이 밀무역을 하게 된 연유를 소상히 털어놓았다.
***
일 년쯤 전 장마철에 날마다 비가 퍼부어 여인의 주막에 며칠 째 손님이 끊겼다. 그런데 고맙게도 폭우가 잠시 멈춘 틈을 타서 한 손님이 주막에 들어왔다.
주모는 우중에 찾아준 손님을 반갑게 맞았고 두 사람은 서로 술을 따라주며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주모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얼굴이 젊은 처자 같구먼.
손님은 취기가 돌기도 전에 주모에게 추파 같은 덕담을 건넸다.
-꽃다운 나이 때는 금붙이 은붙이 들고 와서 매달리는 사내가 줄을 섰지요. 그러더니 얼굴에 주름도 잡히기 전에 퇴물이 됩디다. 오줌도 겨우 누는 늙은이도 퇴박을 놓으니 끝난 인생이지요. 요 모양 요 꼴로 나이만 늘리다 죽느니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혈육은 없는가?
-누구 씨인지 모르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없는 것만 못한 피붙이지요. 죽도록 벌어도 시원찮을 나이에 허구한 날 계집에 빠져서 사니 핏줄이 아니라 원수지요. 원수. 허우대는 멀쩡해가지고.
-직업을 가질 생각을 아예 안 하는가?
-전에는 땅꾼 노릇을 하였지요. 열댓 살 때부터 산으로 들로 다니며 뱀을 잡아다 팔아서 제법 돈을 모았지요. 뱀술이나 뱀탕을 찾는 손님이 많았으니까요. 그러다가 독사에게 손가락을 물린 뒤로 제가 못하게 말렸지요. 뱀독이 온몸으로 퍼져서 거의 죽을 뻔했으니까요.
손님은 주모에게 아들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였다.
주모는 고맙게 여기고 방에서 뒹굴고 있던 동생을 불렀다.
-이름은 필우고 나이는 스물다섯 살입니다.
-심성이 착해 보이누만. 자네 혹시 장사해 볼 생각 없는가?
필우는 무슨 장사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해보고 싶다고 하였다.
그날 이후로 손님은 왜국상인들로부터 잡물을 사서 필우에게 넘겨주었다.
심성이 착하고 붙임성이 좋았던 필우는 땅꾼시절 만들어진 인맥을 통해 물건들을 팔았다. 뱀을 잡을 때 썼던 장비와 포대를 메고 다니면 통행에 제약이 없었다. 어쩌다 마주치는 관원들조차도 질겁하고 달아나 거리낄 것이 없었다.
재물은 사람 간의 거리를 좁혀주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필우의 수중에 재물이 쌓이자 필우는 손님을 친형처럼 따랐다. 손님도 필우를 친동생처럼 대했다. 주모는 동생을 적극 밀어주는 손님을 은인으로 여겼다.
-그 손님의 이름이 뭐요.
여인은 손님의 성이 ‘홍’씨라는 것밖에 모른다고 하였다.
-오늘은 필우가 조사를 받아야 해서 면회할 시간이 없을 것 같으니 집으로 돌아갔다가 내일 다시 오라. 오전이든 오후든 대문에 와서 나를 찾으면 내가 동생을 만나게 해 주겠다.
덕수는 여인을 타일러서 돌려보내고 곧바로 낭청으로 가서 무원에게 필우를 신문해 볼 필요성을 보고했다.
-즉시 불러서 사실 여부를 확인해서 보고해 주게.
***
덕수는 즉시 옥방으로 가서 필우를 신문실로 데려왔다.
필우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방의 고문도구들을 두리번거렸다.
-땅꾼노릇을 몇 년이나 하였느냐?
-대략 십 년쯤 했습니다.
제 누나가 면회를 왔었던 사실을 모르는 필우는 직업을 바꾼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뱀을 잡으면 그 뱀들을 누가 사가는 것이냐?
-몸이 아프거나 힘이 약한 사내들이 뱀탕과 뱀술을 많이 찾습니다. 햇볕에 말려가지고 가루로 빻아서 약국에 넘기는 물량도 꽤 됩니다.
-그런데 왜 말을 하는 동안 귓불이 빨개지느냐. 혹시 내게 숨기는 것이 있느냐.
-제가 나리를 속일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왕실의 허물을 퍼뜨린 죄로 목숨을 잃을까 봐 겁이 나서 그런 겁니다.
-네 누나네 주막에 자주 들르는 홍 씨의 이름이 무엇이냐?
무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필우의 안색이 싹 가셨다. 무엇이 두려운지 마치 숲 속에 숨어서 풀을 뜯어먹다 맹수를 만난 토끼처럼 양쪽 눈동자가 좌우로 비틀거렸다.
덕수는 돌격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고 생각했다.
-네가 왜상들과 밀무역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그 사내 말이다.
필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덕수는 서두르지 않았다. 필우가 마음을 정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필우가 한 차례 긴 한숨을 내쉬더니 마침내 홍 씨의 이름을 말했다.
-본인이 성추라고 했습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덕수는 하마터면 고함을 지를 뻔하였다. 두 손을 들어서 귓불을 만져보니 생시가 분명했다.
-홍 씨에게 무엇을 받아서 누구에게 파느냐.
필우는 홍 씨로부터 약재로 쓰이는 호초(胡椒)를 넘겨받아 경기 지역의 농촌을 다니면서 판다고 하였다. 약재와 물감으로 쓰이는 단목(丹木)을 받아서 팔 때도 있다고 하였다.
-한영우라는 자를 만난 적이 있느냐.
-홍 씨를 따라다니다 몇 차례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홍 씨가 너에게 한영우를 어떤 사람이라고 소개하더냐.
-그 사람 매형이 귀화한 왜인인데 조정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많다고 했습니다.
덕수는 거기까지만 확인하고 필우를 다시 옥방에 가뒀다.
지체 없이 낭청으로 가서 무원에게 성추를 약식으로 신문한 결과를 보고했다.
-성추를 조용히 불러내서 영우와의 관계를 넌지시 물어보게.
***
덕수는 성추를 고문도구가 즐비한 신문실로 불렀다.
성추는 영우와 투전판에서 가끔 만나는 것이 전부라고 잡아뗐다.
영우와 같이 왜상들과 밀무역을 한 적이 없느냐고 물어도 대답이 흔들리지 않았다.
-필우와 대질을 시켜도 자신이 있느냐?
덕수는 자기를 빤히 쳐다보는 성추의 눈빛을 굳은 표정으로 무시했다.
잠깐 사이에 성추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덕수의 추궁에 성추가 영우와 함께 밀무역을 하게 된 경위를 실토했다.
성추가 영우를 처음 만난 것은 갑진년(1424) 일월이었다. 왜국의 사신으로 온 규주와 범령이 대경경판을 요구하며 단식 소동까지 벌이고 돌아간 직후다.
어느 날 성추가 형제간에 의논할 일이 있어서 맏형인 성부의 집을 찾아갔다.
성부는 제 매형인 기무라의 부탁으로 심부름을 왔던 영우를 성추에게 소개했다.
나이를 맞혀보니 영우가 한 살 많았다.
그 자리에서 성추는 영우를 형이라고 불렀고 영우는 성추를 아우라고 불렀다.
배짱이 통한 두 사람은 열흘이 멀다 하고 주막에서 만나 술을 마셨다. 성추는 고정 수입이 없어서 매번 영우가 술값을 냈다.
-아우님. 내가 하는 장사를 배워볼 생각이 없는가?
어느 날 영우가 성추에게 자기와 같이 왜상들을 상대로 무역을 해보자고 하였다.
형에게 왜말을 배워서 왜인들과 직접소통이 가능했던 성추는 영우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성추가 무역을 시작하자 왜통사인 형도 적극 나서서 도와주었다.
하지만 수입이 너무 적어서 다른 직업을 찾고 있는데 영우가 팔소매를 잡았다.
-왜관 통역관의 임기가 곧 끝나네. 후임으로 성부 형이 낙점될 것이네.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이춘발이 왜국의 사신들이 왔을 때 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네. 성부 형이 왜관의 통역관이 되면 우리 둘이서 왜관에 식자재를 납품할 기회가 생길 것이네.
그런데 윤인보 후임으로 홍성부가 아닌 이춘발이 임명되었다.
영우는 성추에게 이문이 많이 남는 밀무역을 제안했다. 만약 발각되어 사법절차에 넘겨지면 각계각층에 지인이 많은 자기 매형이 조정에 줄을 대서 해결해 줄 거라고 하였다.
성추는 영우를 따라 밀무역에 발을 들였고 이문이 많이 남으면 같이 투전판에서 시간을 보냈다.
영우가 밤에 묵사 아랫동네서 왜상들과 밀무역을 하다 붙잡힌 열 명 중에 성추는 없었다. 마침 모친의 기일이라 집에서 형들과 제사준비를 하였기 때문이다.
덕수는 성추의 자백을 간략히 정리하여 무원에게 보고했다.
-영우를 데려다 성추를 처음 만나서 이제까지 가깝게 지내온 과정을 물어보게. 만약 성추의 말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그 지점이 승부의 갈림길이네.
***
덕수는 퇴청을 미루고 영우를 신문실로 불렀다.
먼저 성추를 만나서 두 사람의 관계를 물어본 사실을 알려주었다.
-성추가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너의 도움으로 무역을 하다가 밀무역에 발을 들였다고 하였다.
덕수는 성추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영우에게 물었다.
영우의 대답은 성추의 말과 대체로 같았다. 간혹 다른 부분이 있어도 기억의 차이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성추는 힘을 줘서 말했는데 영우는 빠뜨린 이야기들이 있었다.
첫째로, 성추는 영우로부터 이춘발이 왜국의 사신이 왔을 때 잘못을 저질러 왜관의 통역관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는데 영우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둘째로, 성추는 영우로부터 자기 형인 성부가 왜관의 통역관이 되면 둘이 같이 왜관에 식자재를 납품할 기회가 주어질 거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는데 영우는 그런 말을 안 했다.
셋째로, 성추는 영우로부터 둘이서 밀무역을 하다 발각되면 자기 매형이 해결해 줄 거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는데 영우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덕수는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했다. 성추가 없는 말을 지어냈든지 영우가 있는 말을 고의로 빠뜨렸든지.
덕수는 성추보다 영우가 거짓말을 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성추의 말이 모두 맞는다면 영우의 매형인 기무라가 왜관의 통역관 인사에 개입했다는 증거라고 추측했다. 최종 판단은 도사의 몫이라고 여기고 두 사람의 대답을 분석한 결과를 무원에게 고했다.
무원은 덕수의 분석에 공감을 표하고 덕수의 노고를 치하했다.
무원은 기무라가 왜관의 통역관 인사에 관여했다는 무원의 추론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 추론이 악랄한 음모와 연결된 통로나 입구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자네는 도마뱀의 꼬리가 긴 이유를 아는가?
무원의 뜬금없는 질문에 덕수가 짐짓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적에게 물리면 끊고 달아나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요.
덕수는 대답을 하고서도 자신이 없다는 표정으로 무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만약 성추가 꼬리를 잘랐다고 가정하면 몸통은 어떻게 생겼을까?
-생김은 몰라도 크기는 최소한 꼬리의 수십 배는 되지 않겠습니까.
-맞았어. 바로 그거야. 지금부터 그 거대한 몸통의 생김과 크기를 밝히는 거야. 어쩌면 성추가 잘라낸 것이 영우의 꼬리일 수도 있으니 우리가 사실 여부를 파헤쳐보세.
-어떻게 앞산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뒷산의 경치까지 맞히십니까.
-눈을 감으면 넘겨다보이네. 수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육감으로 더듬어 찾는 것이라고 누차 말하지 않았는가. 밤이 깊었으니 오늘은 그만 퇴청하세. 내일 아침에는 집에서 게으름을 좀 피우다 천천히 출근하게. 어둠 뒤에 웅크리고 있는 야수를 단번에 잡으려면 체력을 비축해둬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날 아침 일찍 의금부에 출근한 무원은 성추와 영우가 숨긴 몸통을 찾아낼 방법을 궁리했다. 하지만 점심때가 되도록 쓸 만한 생각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는 장수의 심정으로 꾀주머니를 뒤져도 묘책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짜면 짤수록 뇌 안에 무수한 칸막이가 생겨서 창의적 발상을 방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