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패배한 승리-난언

23. 난언

by 조병인

인왕산에 봄기운이 퍼지면서 수성동 계곡을 뻐꾸기 한쌍이 차지했다.

늘 같이 약초를 캐러 다니는 사재와 춘삼은 도성에서 가까운 곳을 목적지로 삼았다.

아침 일찍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용나루에서 내려 용문산에 들어갔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누비며 종일 달래와 두릅을 채취하다 해가 저물어 산에서 내려와 외딴 주막에 들었다.

먼저 투숙한 길손이 두 명 있었다.

주막 앞을 흐르는 개울에서 산속을 뒤지느라 흙투성이가 된 손발을 씻었다.

사재와 춘삼은 먼저 투숙한 두 사람과 같이 봉놋방에서 저녁밥상을 받았다.

둥그런 탁자 주위에 초면인 두 명과 함께 사이좋게 둘러앉아 주린 배를 채웠다.

처음 보는 두 사람은 일행이 아니고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저녁을 마친 뒤에 사재가 두 사람에게 차례로 말을 걸었다.

나이가 젊어 보이는 사내는 집이 홍천인데 한양 사는 형님에게 당숙의 부고를 전하러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사내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땅꾼이라고 하였다. 사재가 어리게 보였던지 그 사내는 사재에게 말을 낮췄다.

-주로 어떤 뱀을 잡으세요?

사재가 땅꾼이라는 사내에게 물었다.

뱀에 관심이 있어서 물은 것은 아니다. 약초를 캐러 산속을 돌아다니며 만난 땅꾼들을 떠올리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그냥 지껄인 거였다.

- 지금은 겨우내 자빠져 자다가 교미하러 모여든 놈들을 주워 담는 때지.

-몇 달을 굶다가 눈 뜨자마자 교미를 한다고요?

땅꾼의 대답에 사재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러니까 계집이 뱀 먹은 사내를 만나면 환장을 하는 거지. 계집들이 그러니까 나라의 고관대작들도 뱀집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거고.

-여자 좋아하는 사내들이 비싼 돈을 주고 뱀탕을 먹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

-자네들도 나이를 먹으면 알게 되겠지만 뱀은 참으로 신비한 영물이네. 작년에 예비국모였던 세자빈이 뱀이 교접할 때 나오는 분비물로 세자의 환심을 사보려다 주상에게 들켜서 대궐에서 쫓겨난 사건을 모르는가?


사재는 어이가 없었다. 사재도 세자빈이 폐출된 일을 자세히 알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아는 바를 옮긴 적이 없다. 그런데 뱀을 잡는 땅꾼 주제에 사람들 앞에서 감히 왕실의 치부를 들추다니.

사재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땅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땅꾼은 도리어 신이 나서 엄청난 비밀을 알려주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의기양양하게 이야기를 떠벌였다.


세자빈이 처음에는 세자가 좋아하는 여인의 가죽신을 오려서 불에 태운 재를 몸에 지니고 다녔지. 그것을 술에 타서 세자에게 먹이면 자기에게 관심을 보일 거라는 시녀의 말을 따른 거였지. 그런데 오래도록 기회가 오지 아니하자 다시 시녀를 졸라서 뱀이 교미할 때 흘리는 액즙을 수건에 묻혀서 몸에 지니는 방법을 알아내 그대로 따랐는데 시부모에게 발각되어 왕실에서 쫓겨났다네. 누구의 책임이 큰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네. 세자빈을 욕하는 사람도 있고 세자를 욕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나는 시부모인 주상과 왕비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재는 땅꾼이 난언(亂言)을 했다고 생각했다. 국법은 임금이나 왕실의 위신을 실추시킨 자를 난언죄로 극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난언을 듣고도 관아에 알리지 않은 자는 불고죄(不告罪)로 엄벌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사재는 땅꾼이라는 사내를 난언죄 현행범으로 체포해서 관아에 넘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뒷간을 다녀오겠다고 핑계를 대고 춘삼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때까지 연신 하품을 하고 있던 춘삼은 군말 없이 따라 나왔다. 사재는 춘삼을 뒷간 앞으로 데려갔다.


너도 분명히 들었지? 저 자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주상의 체면에 먹칠을 한 거야. 임금의 위신을 실추시킨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는 잘 알고 있지? 난언을 듣고도 신고를 안 하면 우리도 죄를 면할 수 없어. 내일 아침에 저 자를 꽁꽁 묶어서 가까운 관아에 넘기자고. 밤사이에 도망치지 못하게 둘이 교대로 지키다가 날이 밝으면 행동을 개시하는 거야. 알았지?


춘삼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손목을 묶을 끈과 입을 틀어막을 수건이 필요했다.

사재가 주막집 뒤꼍으로 가서 나뭇지게에 묶여있는 새끼줄을 풀었다.

양쪽 끝을 잡고 곧게 펼쳐서 다시 양쪽 끝을 잡고 곧게 펼쳤다.

윗옷을 벗고 새끼줄을 허리에 두른 다음 다시 풀기 쉽게 매듭을 느슨하게 묶었다.

윗옷을 다시 입고 부엌에 들어가 행주를 집어서 발목에 묶었다.

방으로 들어가 젊은 사내에게 사는 곳과 이름을 물어서 머리에 저장해 두었다. 뒤에 목격자 증언이 필요하게 될 경우를 대비한 조치다.


***


사재는 사내에게 땅꾼들의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뱀들은 어떤 곳에서 겨울을 나는가. 뱀이 많이 사는 산은 어디인가. 독사의 독이 가장 강한 때는 사철 중 언제인가. 독사에 물렸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격이 가장 비싼 뱀은 어떤 종류인가.


방에 등잔이 없어 사방이 깜깜한데도 사내는 사재가 묻는 말에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사재가 다른 땅꾼들에게 들은 말과 다른 대답도 있었지만 사재는 상관하지 않았다. 몇 차례 더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다가 졸음을 핑계 대고 대화를 멈췄다.


젊은 사내는 방문에서 가장 먼 안쪽에 큰 대자로 누워 코를 드르렁거렸다. 땅꾼은 젊은 사내 옆에 드러누웠다. 그다음에 사재가 눕고 춘삼은 맨 바깥쪽의 방문 앞에 누웠다. 사재도 춘삼도 겉옷을 벗지 않았다.

낮에 종일 산속을 헤맨 두 사람은 몸뚱이가 바위처럼 무거웠다. 졸음을 참기가 허기를 참기보다 힘들었다.

먼저 춘삼이 불침번을 서다가 뒤에 사재가 넘겨받았다.

사재가 비몽사몽 간의 시간을 보내는데 닭장에서 수탉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사재는 슬며시 몸을 일으켜 조용히 춘삼을 흔들어 깨웠다.

허리에 감고 있던 새끼줄을 풀고 발목에 묶은 행주를 풀었다.

사재의 헛기침을 신호로 웅크려 자고 있는 땅꾼을 옆으로 굴렸다.

춘삼이 달려들어 무릎으로 땅꾼의 어깨를 힘껏 누르고 행주로 입에 재갈을 물렸다.

사재가 땅꾼의 양손을 뒤로 돌려서 새끼줄로 꽁꽁 묶었다.

젊은 사내가 잠에서 깨어나 두 손으로 허공을 더듬었다.

사재가 젊은 사내에게 말했다.


우리는 한양의 훈도방에 사는 약초꾼들이오. 내 이름은 사재고 이 친구는 춘삼이요. 우리가 체포한 이 사람은 어제 우리 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왕실의 체통을 떨어뜨렸소. 전년에 불미스러운 일로 세자빈이 대궐에서 나간 일을 제멋대로 떠벌여서 난언죄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이니 뒤에 의금부에서 형씨를 증인으로 부르면 그대로 진술하시오.


사재는 땅꾼의 허리춤을 붙잡고 마당으로 나왔다. 주모를 깨워서 세 사람의 숙박비를 건넸다.

사재는 춘삼에게 땅꾼의 작업도구들을 챙기게 하였다. 뱀을 담는 포대는 비어있었다.

주모는 사재와 땅꾼을 번갈아 쳐다보며 놀란 눈을 추스르지 못했다.

젊은 사내는 주모 옆에 나무처럼 버티고 서서 눈알을 좌우로 굴렸다.

사재가 앞에 서고 중간에 땅꾼을 세우고 그 뒤에 춘삼이 섰다.

이른 새벽이라 길에 사람이 없었다. 제멋대로 웃자란 풀들이 이슬의 무게에 활처럼 휘어져 길을 덮었다.

맨 앞에 선 사재가 발로 누운 풀들을 걷어차며 두 사람을 이끌었다. 몇 발짝 안 가서 세 사람의 짚신이 물에 빠진 것처럼 흥건하게 젖었다.


주막에서 용나루까지는 한 마장이 조금 넘었다.

나루를 향해 걷는 동안 땅꾼은 절망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르고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어린애 같았다. 법대로 따른다면 땅꾼의 운명은 목숨을 내놓든지 삼천리 밖으로 쫓겨나든지 둘 중 하나다.


사재가 앞을 바라보니 저만치 용나루가 뿌옇게 보였다.

땅꾼이 작은 소리로 사재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젊은이. 나를 놓아주면 내가 가진 재산을 몽땅 주겠네.

사재는 죽을죄를 저지르고 뇌물을 앞세워 살길을 찾으려 하는 소행이 더없이 미웠다.

-죄를 지었으면 마땅히 벌을 받으셔야지요.

사재는 혓바닥을 입 밖으로 내밀어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혔다.

땅꾼은 힘없는 눈빛으로 춘삼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사재를 설득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애원이 배어있었다.

-당신 재산은 나라에서 모두 몰수해서 필요한 데에 쓸 것이오.

춘삼의 입이 열리기 전에 사재가 사내의 망상을 깨 줬다.

-나를 놓아주고 내 재산을 전부 받으면 평생 놀고 먹어도 될 것이네.

땅꾼은 포기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사재의 마음을 돌리려고 하였다.

-그 재산을 내가 받으면 내 목이 달아난다는 생각은 왜 못하시오?


땅꾼은 사재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애걸하였다.

-대관절 무엇을 해서 그렇게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까.

-왜국에서 건너오는 상인들과 오랫동안 무역을 하였소.

-전국으로 뱀을 잡으러다닌다며 언제 무역을 하였다는 겁니까.

뒤따르던 춘삼이 땅꾼의 거짓말을 알아채고 발길로 땅꾼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땅꾼은 한쪽 발을 들고 땅을 짚은 발을 절뚝거리며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이후로 땅꾼은 더 이상 협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른 아침의 용나루는 물안개가 자욱했다.

한식경쯤 지나서 배가 들어와 세 사람을 태웠다. 다른 승객은 없었다. 배가 나루를 떠나자마자 땅꾼이 갑자기 몸을 일으켜 배의 뒤쪽으로 가려했다. 사재가 재빨리 일어나 그 자리에 주저앉혔다. 춘삼이 합세하지 않았으면 투신을 막지 못할 뻔하였다.

사재는 땅꾼을 갑판에 꿇어앉히고 춘삼과 양쪽에서 감시하였다.

땅꾼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황소의 표정으로 사재를 쳐다봤다.

사공은 노를 젓는 중간중간에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민간인 복장을 한 청년들이 사람을 묶어서 데려가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눈치였다.


***

양근 관아에 이르러 사재가 군수에게 땅꾼의 난언을 고했다. 군수는 땅꾼에게 사실 여부를 물었다. 땅꾼은 순순히 혐의를 시인했다. 군수는 사내에게 호패(號牌·신분증명서)를 보자고 하였다. 사내는 호패를 잃어버렸다며 이름은 필우고 나이는 스물여섯 살이라고 하였다. 사는 곳은 한양 남부라고 하였다.

군수는 관원들에게 땅꾼을 묶은 새끼줄을 풀고 관아에서 쓰는 오랏줄로 다시 묶게 하였다.

사재와 춘삼도 똑같이 묶어서 함께 경기감영으로 데려가게 하였다.

군수의 지시는 십 년 전인 기해년(1419) 윤 1월에 개정된 법에 입각한 것이었다.

사재는 국법이 바뀐 사실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당시 법이 바뀐 배경에는 주상의 외갓집 여종이 유생을 무고한 사건이 있었다.

주상의 외조모(태종의 장모) 송 씨는 남편 민제가 죽고 네 아들(무구·무질·무휼·무회)마저 모두 잃은 뒤에 전라도 부안에서 살았다.

그 집의 여종이 젊은 유생이 왕실을 능멸하는 난언을 했다고 관아에 고발했다.

부안현감은 법에 따라 여종 덕금과 우생 상온을 함께 묶어서 전주의 전라감영으로 보냈다.

전라도 감사가 석 달이 넘도록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십이월에 중앙의 다른 직책으로 발령이 났다.

후임 감사 역시 두 달 가까이 결말을 짓지 못하다 다섯 달이 지나서야 두 사람을 중앙의 의금부로 올려 보냈다.

보고를 접한 주상은 이조 판서와 우부대언(우부승지)을 의금부에 보내 삼성과 함께 두 사람을 신문하게 하였다.

덕금이 무고를 자백하니 장 1백대를 가하여 3천 리 밖으로 내쫓게 하고 난언죄 처리절차를 고치게 하였다.


지방에서 난언이 고발되면 감사가 고발인과 피고발인을 함께 단단히 가두고 즉시 보고를 올려서 의금부가 신속하게 진위를 밝힐 수 있게 하라.


사재와 춘삼은 땅꾼과 같이 오라에 묶여서 양근 관원들을 따라 경기감영으로 출발했다.

일행은 양근나루에서 배를 타고 하류의 용산나루로 향했다. 경기감영이 도성 복판에 있어서 용산나루에 내려서 숭례문을 거치면 의금부에 닿기가 쉬웠다.


양근의 관원들은 오랏줄에 묶인 땅꾼을 능숙하게 다뤘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잠시도 땅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땅꾼은 올빼미에게 목덜미를 물려 절망에 빠진 생쥐처럼 온몸을 떨었다.

사재는 무더운 복날 올가미에 걸려서 동네 뒷산으로 끌려가는 황구의 모습을 연상했다.


용산나루에 내려 숭례문까지 걸어가는 데 두 식경쯤 걸렸다.

숭례문에 도착해 통과절차를 밟았다.

양근 관원이 문지기에게 귓속말을 하였다.

문지기 한 명이 말을 집어타고 어디론가 급하게 달려갔다.

한식경쯤 후에 의금부 나장들이 말을 타고 도착했다.

나장들은 세 사람을 경기감영 대신 의금부로 데려갔다.

신문을 맡은 의금부도사는 사재에게 땅꾼을 난언죄로 체포하게 된 경위를 물었다.

사재는 용문산의 봉놋방에서 땅꾼이 세 사람에게 떠벌인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소상히 진술했다. 현장에 같이 있었던 홍천 백성의 이름과 주소도 말했다.

-제가 무식해서 죽을죄를 졌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그런 말을 안 하겠습니다.

땅꾼은 자신의 혐의를 순순히 자백하며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도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나장들을 시켜서 땅꾼을 옥방에 가두게 하였다.

-젊은이들이 참으로 장한 일을 하였네. 주상께서 자네들의 용맹을 들으시면 큰 상을 내리실 것이네.

-나라의 백성으로서 당연한 일을 하였을 뿐이니 주상께 아뢰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도사는 사재와 춘삼을 자신의 집무실로 데려가 다과를 푸짐하게 내주며 땅꾼을 붙잡은 공로를 치하했다.

사재는 도사에게 강무원 도사를 만나게 해 주기를 청하려다 그만두었다. 일에 방해가 될 것 같기도 하였을뿐더러 만나서 딱히 할 말도 없었다.

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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