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의혹
무원은 나장을 기무라의 집에 보내 편한 날 편한 시간에 한 번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하게 하였다.
그다음 날 오후에 기무라가 의금부로 찾아왔다.
무원은 주상의 특명으로 자신이 밀무역을 단속하게 된 소식을 기무라에게 알리고 협조를 구했다.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성부와 생언이 없어진 뒤로 국법을 어기고 밀무역을 하는 자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들었소.
기무라의 대답은 심드렁하였다. 밀무역이 성행해야 협조할 일이 있지 않겠느냐는 투였다.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요. 그런데 대관절 누가 그런 말을 합디까. 내게 이름을 말해줄 수 있겠소?
무원은 기무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밀무역이 줄어들었다는 말의 출처를 대기를 기다렸다.
-도성에 와서 왜관에 투숙했던 상인들이 돌아가면서 남긴 말이오.
기무라는 다수의 왜국 상인이 같은 말을 하더라고 대답하였다.
-왜국에서 물품을 많이 들여오는 사람을 한두 명 소개해 줄 수 있겠소?
-나와 친했던 사람들이 모두 늙거나 죽어서 마땅한 인물이 없소.
-그렇다면 혹시 나중에라도 소개할 만한 인물이 생각나면 말해주시오.
-그렇게 하리다.
-그나저나 이춘발을 죽이고 목이 베인 성부의 처자들은 사는 게 말이 아니겠지요?
무원은 기무라에게 걸었던 기대를 접고 화제를 죽은 성부의 유가족 이야기로 돌렸다.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가장이 살인죄로 처형된 처지에 어디 가서 사람 행세나 하겠습니까. 보나 마나 모두 도성을 떠나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거지처럼 살고 있겠지요.
무원이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표했다.
-성부는 목이 베이기 직전에 어떤 말을 남겼소?
기무라가 뜬금없이 성부의 유언에 관심을 보였다.
-별 말 없이 황천으로 갔소. 옥방을 나서기 전에 의식을 잃어서 무슨 말을 남길 경황이 아니었소.
-생언도 성부처럼 아무 말 없이 저승으로 갔나요?
-생언도 옥방을 나서기 전에 이미 송장이 되어 있었소.
-그런데 대관절 왜 두 사람의 마지막 말이 궁금한 거요.
무원은 기무라에게 죽은 자들의 유언을 궁금히 여기는 이유를 물었다.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 죄수에게 마지막 말을 남길 시간을 준다고 들은 적이 있어서 그냥 물어본 거요.
-내가 보니까 열에 아홉은 옥방에서 이미 죽어서 이승을 떠납디다. 목이 달아나는 마당에 유언은 남겨서 무엇하겠소.
무원은 하기 싫은 대답을 억지로 하는 것처럼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소문이 잘못 퍼진 것 같네요.
무원은 전에 기무라에게 제보가 늦어진 이유를 물었다가 모욕을 당한 기억을 떠올렸다.
무원의 불편한 심기를 알아챘는지 기무라가 급한 볼 일을 핑계 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원은 기무라를 붙잡지 않았다. 하지만 성부와 생언의 유언을 물은 이유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기무라가 성부와 생언의 마지막 말에 관심을 보인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다.
그 자는 왜 두 사람의 마지막에 관심을 보였을까? 혹시···.
무원의 가슴에 인왕산만 한 의혹이 똬리를 틀고 들어앉았다. 기무라는 훤히 알고 있는 것을 자신은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이춘발 피살사건에 대한 수사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의혹을 시원하게 풀어줄 만한 사람을 찾을 자신이 없었다. 이춘발과 홍성부가 이미 죽은 마당에 누가 결정적 증언을 해주겠는가. 확실한 증거도 없이 섣불리 일을 벌였다가 고생만 하고 그만두느니 그냥 잠자코 있는 게 낫다고 결론을 내렸다.
바로 그때 사그라지는 의욕의 불씨를 살리는 두 가지 변수가 생겼다.
첫째로, 전에 어쩌면 죽은 춘발의 분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남산의 두견새가 떠올랐다.
둘째로, 주상이 자신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내려준 비답이 기무라의 주변을 탐문해 보라는 특명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은밀히 숨어 있다가 기무라의 집에서 사람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다가가 집안 사정을 슬쩍 떠보게.
무원은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나장 덕수를 기무라의 집 근처로 보냈다. 접근하는 방법은 현장 상황에 따라 적절히 알아서 정하게 하였다. 무원은 덕수의 탁월한 판단력과 순발력에 기대를 걸었다.
무원의 지시를 받은 덕수는 나장복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태연하게 의금부 대문을 나섰다.
빠른 걸음으로 기무라의 집 근처에 도착한 덕수는 주변을 거닐면서 행인들의 눈에 띄지 않게 기무라 가족의 동태를 살피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보았다.
큰길 건너 모퉁이에 작은 목공소가 있었다. 목수를 따로 고용하지 않고 주인이 직접 나무를 다듬고 가구를 만드는 곳 같았다. 가까이 다가서 안쪽을 들여다보니 주인이면서 목수로 보이는 사내의 인상이 착하고 온순해 보였다.
-값비싼 고급 나무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무원은 목공소 문지방을 넘으면서 손님인 것처럼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어서 오시오. 소나무가 태반이지요. 안쪽에 오동나무와 감나무도 좀 있고요.
목공소 주인은 덕수의 말을 공손하게 받았다.
-소나무가 제일 잘 팔리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집을 지으려면 기둥·서까래·대들보·마루·문틀·방문·대문에 온통 소나무가 들어가니까요. 초상이 나도 소나무로 관을 짜지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소나무속에서 태어나 평생 소나무속에서 살다가 마지막에 소나무속에 들어가 이승을 떠나는 거지요. 대궐에 사시는 주상이나 나 같은 무지렁이나 차이가 없지요.
목공소 주인은 마치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소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이 쏟아냈다. 말에 막힘이 없는 것이 타고난 수다쟁이 같았다.
-소나무가 사람이고 사람이 소나무네요.
-그런 셈이지요. 그런데 불이 나면 끝이지요. 송진이 엉긴 관솔들이 불쏘시개로 변해서 미친놈처럼 제 몸을 태웁니다.
오동나무와 감나무는 어디에 쓰지요?
-쓰임이 다양하지요. 오동나무는 가볍고 단단하면서 쉽게 썩지 않아 머릿장이나 문갑 같은 것을 만듭니다. 감나무는 부드럽고 유연해서 가구의 표면을 마감하는 데 많이 쓰이고요.
-나무에 대해 모르시는 것이 없네요.
-나무 덕에 먹고사는 목수가 나무를 모르면 어떻게 식구들을 먹여 살리겠소.
목공소 주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덕수의 두 눈은 목공소 주인을 향하고 있었지만 덕수의 두 귀는 목공소 건너편에 위치한 기무라의 집에 고정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계속되는데 길 건너편에서 대문이 활짝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삐걱하는 소리를 따라서 덕수의 몸이 뒤로 돌아서고 두 눈과 두 귀가 길 건너편의 가옥을 향했다.
기무라의 집에서 당나귀 한 마리가 뒤에 마차를 달고 나왔다.
무원의 시선이 달무리처럼 마차를 에워쌌다.
마차 위에 중년 사내와 열댓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타고 있었다.
-아침 일찍 딸을 태우고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는가?
목공소 주인이 마차 위의 사내에게 행선지를 물었다. 가는 곳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인사가 늘 그런 것 같았다.
사내는 용산 나루로 장작을 사러 간다고 하였다.
덕수는 마차 위에 앉아있는 사내의 안색을 유심히 살폈다.
사내의 움직임에 활기가 없어 보이고 표정도 시무룩하다. 무엇이 마음에 못마땅한지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확연하고 목수에게 하는 대답이 화난 사람처럼 무뚝뚝하다.
-나라에서 내려준 저 집의 노비요. 같이 탄 여자 아이는 딸이고요. 딸 셋 중에 큰딸인데 집밖으로 나갈 때마다 저렇게 데리고 다닌다오.
목공소 주인은 무원이 묻지도 않은 말을 너절하게 늘어놓았다.
-딸이 귀엽게 생겨서 집에 떼놓고 다니기가 싫을 만도 하네요.
-순진하시기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주인이 자기 딸을 어떻게 할까 봐 저러는 거라오. 주인이 오래전에 귀화한 왜인인데 저 아이를 자기 첩으로 삼으려 한다지 뭡니까. 나잇살이나 먹어가지고 주책이지요.
주상은 즉위한 이후로 귀화하는 왜인이나 야인(여진족)들을 극진히 대우했다. 뿌리를 내리고 편안히 살 수 있게 집과 토지를 주고 혼인까지 시켜줬다. 그뿐만 아니라 노비를 하사해 살아가는 데 불편이 없게 해 줬다. 그런데도 은혜를 모르고 함부로 국법을 어기는 자가 많아서 주상과 조정대신들이 골치를 앓았다.
-저 노비는 이름이 뭔가요?
-보수요. 내외가 다 심성이 착하고 못하는 일이 없어서 탐내는 사람이 많다오. 왜놈 주인이 복에 겨워 눈이 먼 거지요.
-주인의 흑심을 알았으면 얼른 혼인을 시키면 될 일 아니오.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나요?
-작년 봄에 보수가 눈치를 채고 서둘러 출가시키려고 했는데 마땅한 사윗감을 찾지 못한 모양입디다.
-저 집의 안주인은 저 처녀 혼사에 신경을 안 쓰나 보지요?
-웬걸요. 저 아이에게 좋은 짝을 찾아주려고 여러 집에 매파를 놓았다가 연분을 못 찾았지요. 저 집 안주인은 조선 여자고 그 언니도 귀화한 왜인과 혼인했지요. 언니도 동생도 심성이 비단결처럼 곱다오.
덕수는 기무라의 아내가 조선 여자라는 말에서 뭐라고 딱 집어서 말하기 어려운 희망과 가능성을 느꼈다.
-저 집의 안주인은 인정이 많은가 보네요.
무원은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 궁금증을 간신히 숨기고 목수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르다마다요. 온 동네가 인정하는 현모양처인데 사고뭉치 남동생 때문에 속을 많이 썩지요. 사지가 멀쩡한 놈이 식구들은 팽개치고 투전으로 세월을 보내니 누나로서 속이 얼마나 상하겠소. 남편은 처남이 별짓을 하고 다녀도 신경을 안 쓰니 마음고생이 심하겠지요.
-노름판에 끼려면 밑천이 있어야 할 터인데 벌어놓은 돈이 많은가 보네요. 아니면 노름실력이 뛰어나서 뒷돈이 필요 없든지.
목수는 덕수가 물어주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기무라의 조선인 처남에 대한 이야기를 게거품처럼 쏟아냈다.
목수는 기무라의 처남이 제 매형에게 왜말을 배워가지고 왜상들과 무역을 해서 돈을 잘 번다고 하였다. 오지랖이 넓어서 형님 아우하며 지내는 사람도 많고 기녀들과 오입도 잘한다고 하였다.
-건달이나 잡배들이 침을 흘리며 부러워할 만한 사내군요.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는 놈들이 조석으로 질투할 만한 불량배지요.
목공소 주인의 말을 들으면서 덕수는 기무라의 처남이 밀무역을 하고 있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면 간첩죄로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용의자일 터였다. 하지만 섣부른 짐작으로 일을 망친 기억을 떠올리며 태연하게 대화를 이었다.
-그 기무라의 처남은 몇 살이나 먹었습니까.
-서른다섯인가 여섯인가 되었을 거요.
-나하고 연배가 비슷하니까 한 번 만나서 이야기라도 나눠보고 싶네요.
-하도 이사를 자주 다녀 요즘은 어디 사는지 모르겠소. 투전판을 드나드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한영우’를 물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요.
-나는 이름을 아는 놀음꾼이 한 명도 없지만 투전판에서 꽤 유명한 모양이지요?
목공소 주인은 오른손 검지를 세워 입에다 대고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어서 오십히오. 무엇을 찾으시는지요.
덕수가 한영우에 대해 몇 가지를 더 물어보려는데 손님이 들어와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다.
손님은 목수에게 다듬이방망이 두 벌을 주문했다. 딸내미 혼수를 장만하는 것이라며 날짜가 걸리더라도 맵시 있게 다듬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목공소 주인은 손님을 안심시키며 사흘 뒤에 찾으러오라고 하였다.
덕수는 손님이 돌아간 뒤에 목공소 주인에게 다듬이방망이는 어떤 목재로 깎는지 물었다.
-다듬이방망이 하면 박달나무지요. 나무가 돌처럼 단단해서 다듬잇감을 아무리 세게 두들겨도 터지거나 부러지는 일이 없어요. 다듬잇감을 감는 홍두깨, 곡식을 찧는 방아, 곡식을 빻을 때 쓰는 공이도 박달나무고, 떡살·다식판·머리빗도 박달나무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물에 담그면 금세 가라앉을 정도로 무겁고 단단해서 마차바퀴나 바큇살에도 박달나무를 쓴다오.
목공소 주인은 유창한 언변으로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듯 나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속속들이 들려주었다. 그런 뒤에 구석으로 가서 자기 팔뚝보다 더 굵은 나무토막을 들고 왔다.
-자 보시오. 이게 바로 박달나무요. 직접 한 번 만져보시오. 무게도 한 번 느껴보시고.
-보기보다 정말 단단하고 무겁네요. 야경을 도는 군졸들이 허리에 차고 다니는 육모방망이도 박달나무라고 하던데...
-그것도 박달나무를 깎은 거지요. 흉악한 강도나 도둑놈을 단 번에 제압하려면 박달나무가 제격이지요. 도둑을 잡는 도구를 하필 육각으로 깎은 것은 벌집 모양을 본뜬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벌들이 땀나게 일해서 빈틈없고 보기 좋은 육각형 벌집을 짓는 것처럼 한눈팔지 말고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라는 뜻이 담겼을 수도 있다는 거지요. 증거를 대라면 한 가지도 댈 수가 없지만요.
-증거가 없어도 그럴듯하네요. 그런데 박달나무로 다듬이방망이를 만들면 체구가 작거나 몸이 약한 여자들은 오래 사용하기가 힘들겠네요.
-그렇소. 그래서 개중에는 방망이의 속을 파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다오. 그러면 작은 끌로 속을 파낸 뒤에 색깔이 같은 나무로 깔끔하게 입구를 막아주지요.
-그 비밀 공간에다 금덩어리나 비밀문서 같은 것을 숨기면 감쪽같겠네요.
-저야 모르지요. 숨겨야 할 금덩이도 비밀문서도 가질 일이 없으니까요. 하여간 저 건너편 왜인 집의 조선 여자도 오래전에 제가 그렇게 만들어준 방망이를 아직까지 쓰고 있다오.
덕수가 머리를 굴리며 더 물어볼 말을 찾고 있는데 종루에서 정오를 알리는 종을 울렸다. 그제야 덕수는 자신이 목공소 주인의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음을 깨달았다.
덕수는 정중하게 사과와 감사를 표한 뒤에 며칠 후에 방세간을 사러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목공소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