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뒤에 감순청의 순관이 의금부로 무원을 찾아왔다.
순관은 살곶이다리 아래서 수배전단의 사내를 닮은 송장을 건졌다고 하였다.
무원은 순관에게 변사체의 특이점을 물었다.
-키가 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거 같습니다. 머리가 깨지고 윗니 세 개가 부러졌습니다. 턱수염이 몇 해 내버려 둔 수풀더미 같습니다.
강용을 죽인 자다. 이득시의 심복들이 후환을 없앤 것이 분명하다.
무원은 문득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범 세 명을 법대로 응징한 대가가 착하고 반듯한 두 청년의 자살과 한 청년의 피살인가? 텁석부리의 참혹한 죽음도 따지자면 내 책임 아닌가? 그런데도 숱한 모멸과 좌절을 참으며 수사에 열심인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인가?
무원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쓸데없는 헛짓거리 같았다. 수사에는 선악의 경계가 없고 일방적 승리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사에 대한 환멸이 느껴졌다. 의금부 도사 직책을 떠올리면 정나미가 떨어졌다.
경서(經書)에서 배운 이래 자신을 그 도구로 여겨온 덕치(德治)라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흠휼지인과 휼민신형은 도달이 불가능한 상상 속 목표다. 주상이 내려준 여덟 가지 옥송수칙도 백성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주상이 내세우는 어진정치는 나라를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혹세무민(惑世誣民) 아닌가?
한번 마음이 떠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급히 서둘러야 할 업무도 없지만 사소한 잡일도 처리하기가 싫었다.
의금부에 출근해서 보내는 하루가 일 년보다 길게 느껴졌다. 퇴청 후에 친한 벗들과 만나서 술을 마시며 자괴감을 토하는 날이 늘었다.
***
-농번기가 한참 지났는데 비가 올 기미가 안 보여 걱정이다.
가뭄이 길어지자 주상이 조회 때 한재대책을 토론에 부쳤다.
-관례대로 기우제를 지내서 하늘에 비를 청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예조 판서가 주상에게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경회루 못가에서 석척(蜥蜴) 기우제를 행할 수 있게 준비하라.
예조의 상하 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구름을 부리는 용을 대신할 도마뱀 열 마리를 물에 적신 버들가지로 두드리며 ‘비가 오게 하면 놓아주겠다.’고 외칠 아동 스무 명을 골랐다. 그들에게 입힐 푸른 의복과 손발을 푸르게 물들일 염료도 준비하였다. 필요한 제물과 축문까지 갖췄다. 주상이 친히 기우제에 쓸 향을 내려주었다.
손과 발에 푸른색을 칠하고 푸른 옷을 입은 아동 스무 명이 경회루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도마뱀 열 마리를 집어넣은 독을 물에 적신 버들가지로 두드리며 ‘비가 오게 하면 놓아주겠다.’고 종일 외쳤다.
하지만 이후로 열흘이 넘도록 비가 오지 않았다.
주상은 관례에 따라 형조로 하여금 사면을 검토하게 하였다.
그다음 날 오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하루 사이에 갈라진 논밭을 흠뻑 적셨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다음날 새벽에 장대 같은 소낙비로 변했다. 마치 여러 달 치 비를 한 곳에 모아두었다가 한꺼번에 퍼붓는 것 같았다.
-전하께서 남형(濫刑)의 폐단을 제 때 알아채시고 사면령을 내리려고 하신 용단에 하늘이 감응한 것이옵니다.
대신들은 하지도 않은 사면을 가지고 비가 흠뻑 내린 것을 온전히 임금의 공으로 돌렸다.
-비가 올 때가 되어서 온 것이지 어찌 사면을 계획했다고 비가 내렸겠느냐. 사면은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화를 내리는 하늘의 뜻과 거리가 멀다.
대신들이 머쓱한 표정으로 편전을 들락거리는 사이 밤낮으로 억세게 비가 퍼부었다.
주상이 불길한 예감을 드러냈다.
-농사에 필요한 만큼만 내려야 하는데 물난리로 이어질 조짐이 보여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야속하게도 예감이 적중했다.
무려 닷새를 쉬지 않고 폭우가 쏟아져 전국에서 물난리가 났다.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무수한 사람이 흙더미에 깔렸다. 백성들의 명줄인 농토가 자갈과 모래에 파묻혔다. 처참한 피해상황을 보고하는 장계가 속속 대궐에 도착했다.
갖가지 유언비어가 궐내 사람들의 입과 귀에 실려 대궐의 담을 넘었다. 바람을 타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확대 재생산을 반복했다. 급기야는 홍수에 대한 책임을 임금에게 씌우는 괴담이 퍼졌다.
‘주상이 사면령을 너무 자주 내려서 바람에 범죄로 피해를 입은 백성들의 원한이 쌓여서 홍수를 부른 거래요.’
열흘이 넘도록 비가 멈추지 않았다.
사흘이 더 지나서 어명이 뒤집혔다.
-즉시 기청제(祈晴祭)를 지내서 비가 멈추게 하라.
예조가 나서서 도성의 사대문과 종묘에서 비가 그치기를 빌었다. 창의문 밖 근교와 전국의 명산대천에 공물과 짐승을 바치고 무당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였다.
천만다행으로 다음날부터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었다.
***
무원은 관직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 사직한 뒤의 계획은 차후에 세우기로 하였다. 순서를 바꾸면 딱히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아 사직을 못할 것 같았다.
곧바로 안방으로 건너가 아내에게 결심을 밝혔다.
아내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마치 진즉부터 앞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처럼 차분하게 남편의 말을 받았다.
-나라는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원한을 풀어줄 책임이 있겠지만 당신이 계속 사형을 떠맡는 것은 복을 짓는 길이 아닙니다. 불가에서는 산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을 첫 번째 계율로 삼지 않습니까.
무원은 아내의 말이 더없이 고마우면서도 야속하게 느껴지는 괴이한 감정을 느꼈다.
-내 뜻을 흔쾌히 따라줘서 고맙소. 사실은 당신의 생각이 다르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었소.
첫 번째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무원은 백만 대군을 얻은 것 같았다.
-부모님과 큰 형님께도 미리 말씀드리셔요.
-그렇지 않아도 내일 찾아뵐 생각이오.
바로 다음날 맏형을 만나서 자신의 결심을 알렸다.
건강 문제로 집현전 응교(종 4품) 직에서 잠시 물러나 있던 맏형은 주상이 사표를 반려할 거라며 무원을 다독였다.
무원은 맏형과 함께 부모님을 찾아가 맏형에게 했던 말을 반복했다.
- 주상께서 네게 다른 직책을 맡기실 공산이 크다.
모친은 혹시 사표가 수리되면 어떻게 살 것이냐고 물었다.
무원은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상께서 사직서를 반려하실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무원은 자기 대신 모친의 염려를 덜어준 맏형이 고마웠다.
의금부도사 직책에 대한 애착이나 미련이 있었던 게 아니다.
주상이 다른 직책으로 옮겨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무원은 서궤의 서랍을 열고 지필묵을 꺼냈다.
먹물과 붓이 하나가 되어 빳빳한 한지에 무원의 각오를 새겼다.
신이 하찮은 자질로 자애하신 전하의 성은을 입어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나 맡겨주신 중책에 비해 천성이 용렬하고 재주가 턱없이 부족함을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본직을 면해주시기를 간곡히 청하옵니다.
신은 그동안 야밤에 훈도방 개천교에서 왜통사 이춘발을 살해하는 데 가담한 자들을 모두 붙잡아 혐의를 입증하고 죗값을 치르게 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쏟았습니다. 그래야지 망자의 원혼과 유족의 원통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하오나 수사 초기에 저의 그릇된 판단으로 인해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을 가혹하게 고문하여 그중 두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사건해결에 기여한 관원이 잔인하게 보복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비극들은 백성을 끔찍이 아끼시는 전하의 성덕을 심히 훼손한 것이라 생각되오니 신의 무능과 우매를 가엾게 여기시어 사직을 윤허해 주시기를 엎드려 청하나이다.
무원은 붓을 내려놓고 아내에게 신경을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였다.
-제 걱정은 하지 마셔요. 나랏일을 돕는 일이 어디 관직을 맞는 길 뿐이겠습니까. 그동안의 경험을 책으로 엮어서 남기시거나 장차 크게 쓰일 만한 인재들을 키우시는 것이 어찌 관직에 있는 것만 못하다 하겠습니까.
무원은 되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무원은 의금부로 출근하기 전에 중추원으로 가서 도제조에게 사의를 표했다. 도제조는 그간의 공로를 치하하며 무원을 달랬다.
무원은 도제조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이조로 가서 사직서를 냈다.
당당하던 자신감은 다 어디 가고 긴장과 두려움만 마음에 남았다.
사직서가 언제 어떻게 처리될는지 궁금했다. 알아볼 방법도 없었다.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기약 없이 기다리면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는 걸 조석으로 느꼈다.
지루한 기다림은 닷새 만에 끝났다.
무원은 주상이 직접 친서를 내릴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주상은 서두에 무원의 죄책감을 벗겨주는 말을 적었다.
나는 그대가 왜통사 이춘발을 살해한 자들을 모두 체포해 결안을 지어서 올리느라 노고가 많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수사 초기에 죄 없는 사람들을 가혹하게 고문하여 두 젊은이의 자살과 한 관원의 참변을 부른 사실도 소상히 알고 있다. 그 모든 일이 슬프기 짝이 없는 비극이지만 네가 직분을 다하려다 발생한 일이니 죄책감에 빠져서 고민할 일이라 생각지 않는다.
두 번째로는 많은 옥관들의 무신경을 지적하고 무원의 수사방식을 칭찬하였다.
형벌을 쓰는 관원들 중에 옥송을 핑계로 아무나 붙잡아다 마구잡이로 매질을 가하는 자들이 많아서 내가 백성들을 대할 면목이 없다. 그런데 그대는 흠휼지인과 휼민신형에 대한 신념으로 내가 내려준 여덟 가지 옥송수칙을 충실히 지켰다. ‘형벌을 쓸 때는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당부한 옛 성인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고 고문 대신 증거로 혐의를 입증해 마침내 비열한 청부살인의 전모를 밝혀서 나의 체통을 세워준 그대의 충정은 여러 옥관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세 번째로는 사직서 수리 여부에 대한 대답을 적었다. 부친의 예상이 적중했다.
관직을 영구히 떠나고 싶을 정도로 수사가 싫어진 그대의 심정에 충분히 공감을 느낀다. 하지만 국법질서를 공고하게 유지해야 하는 임금으로서 그대의 뛰어난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잠시라도 나라와 백성의 안위가 위태로워지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는 살인사건 처리를 맡기지 않을 것이니 바다를 건너온 왜상들과 결탁하여 몰래 밀무역를 해서 사익을 취하는 자들을 단속하는 데 전념하도록 하라. 전년 6월에 왜관에 머무는 왜국상인들이 왜어통역사나 왜관의 사령과 결탁해 거래가 금지된 물품들을 몰래 사고팔지 못하도록 「밀무역 근절대책」을 세워둔 것이 있으니 내용을 숙지하도록 하라.
네 번째로는 고문을 하지 않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적혀있었다.
중범죄 사건을 처리하면서 매질을 하지 않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것이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해치는 줄을 알면서도 형장(刑杖)을 허용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형벌로 정치를 보완한다(형이보치·刑以補治)’는 말은 형벌의 불가피성을 말한 것이지 형벌을 쓰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범죄의 정황이 뚜렷하고 증거와 증인이 있는데도 자백을 완강히 거부하는 용의자에 대하여는 법에 규정된 범위 내에서 적절하게 형장을 쓰도록 하라.
주상의 친서는 무원에게 선택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았다. 무원은 좌고우면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사리사욕에 눈이 먼 자들의 밀무역을 방치할 수는 없다. 밀무역은 양쪽 모두 이득을 본다는 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존하는 살인·강도·방화·강간·절도·사기·무고·위증 같은 범죄와 결이 다르다. 엄밀히 말하면 피해자가 없는 것이 아니다. 피해가 불특정 다수에게 아주 조금씩 나눠지기 때문에 피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따라서 다수가 조금씩 떠안은 피해들을 합치면 나라의 산업과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나라에서「밀무역 근절대책」을 세운 것이다.,
나라에서 수립한「밀무역 근절대책」골자는 왜인들이 들여온 물품의 유통과 왜관의 관원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한 거였다.
첫째. 왜상들이 가져온 물품의 판매가격과 팔고 남은 재고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였다.
둘째. 내국인이 10승 이상의 모시나 베 혹은 금·은·화문석·표범가죽·동전 등을 주고 왜상들로부터 물품을 사는 행위를 금지시켰다.
셋째. 왜관의 동관과 서관에 각각 금란관(禁亂官) 두 명씩을 배치해 교대로 숙직하면서 왜상이 통사·사령·방지기·창고지기 등과 결탁해 밤에 밀무역을 하는 것을 단속하게 하였다.
넷째. 통사·사령·방지기·창고지기 등이 왜상의 밀무역에 관여하다 적발되면 왜관의 금란관·장무관·녹사를 함께 처벌하게 하였다.
다섯째. 왜관에 한 번 근무한 적이 있는 관원은 다시 왜관에 근무하지 못하게 하였다.
무원은 왜국상인과 내국인간의 밀무역을 근절하려면 조선과 왜국의 외교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주상의 친서를 읽어본 무원은 곧바로 도제조를 찾아가 예조에 보관된 외교기록들을 볼 수 있게 해주기를 청했다.
도제조는 곧바로 예조에 사람을 보내 무원이 그 내용을 보고 싶어 하는 문서들을 모두 볼 수 있게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