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복병

19. 분노

by 조병인

훈도방 관내인 남산 중턱에 자리한 묵사(墨寺)는 한증목욕탕을 운영했다. 환자들의 치료를 도우라고 나라에서 지어준 것이다.


한 사내가 절에서 한증목욕을 마치고 산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사내의 시선이 길 옆의 숲 속을 향했다.

-사람이야! 사람이 틀림없어.

숲 속에 남자로 보이는 사람이 상의가 벗겨진 상태로 엎어져있다.

사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겁먹은 표정으로 서너 발짝 뒤로 물러섰다.

사내는 발길을 되돌려서 다시 묵사로 올라갔다.

절 마당에서 체격이 건장한 사내가 장작을 패고 있었다.

-주지 스님 어디 계시지요?

굳게 닫혀있던 방문이 천천히 열리고 주지가 밖으로 나왔다. 방 안에서 자기를 찾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절 입구에 송장이 있습니다.

장작을 패던 사내가 도끼질을 멈추고 주지가 방에서 나오는 모습을 쳐다봤다.

-김처사! 나하고 같이 내려가 보세.

사내가 앞장을 서고 주지와 김처사가 뒤를 따랐다.


삼백 보 남짓 걸었을 뿐인데 눈앞에 송장이 보였다.

-누구지? 누군데 날 몸으로 저렇게 죽어있지?

주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김처사가 전설이 남은 수풀을 헤치며 송장 쪽으로 다가갔다.

주지와 사내가 뒤따라갔다.

김처사가 상체를 굽히고 송장의 상태를 살폈다.

-머리는 박살이 나고 옷은 피로 염색이 됐네요.

주지와 사내는 미간을 찌푸렸다.


송장을 처음 발견한 사내가 주지에게 말했다.

-감순청(監巡廳)에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제가 얼른 가서 순관들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당연히 자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 김처사가 역할을 자청했다.

-그렇게 해주게.


-저 돌로 머리를 맞은 거 같습니다.

사내가 손가락으로 소나무 아래를 가리키며 주지를 쳐다봤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피가 많이 묻은 걸로 봐서.

주지도 사내의 짐작이 합리적이라고 느끼는 눈치였다.

-이 절의 신도였나요?

사내가 마치 수사를 하듯이 주지에게 물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오.

주지는 당연한 질문을 받은 것처럼 무덤덤하게 대답하였다.

사내는 주지에게 절에서 낯선 옷을 입고 낯선 말을 쓰는 이들의 정체를 물었다.

주지는 왜관이 비좁아서 왜국에서 장사를 하러 온 자들이 절에서 묵는다고 하였다.

-그 사람들은 무엇을 가져와서 팝니까?

-쓰잘머리 없는 잡물들을 가져와 인삼 같은 고가품과 바꾼다고 들었소. 소문에는 금은이나 동전 같은 것을 몰래 사기도 한다고 하오만 내 눈으로 본 적은 없소.


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를 찍는 소리가 골짜기를 울림통으로 만들었다. 주지는 봄이라서 알을 낳을 둥지를 마련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절의 아래쪽에서 중년사내가 아들로 보이는 젊은이와 함께 올라왔다. 묵사로 한증목욕을 하러 온 것 같았다.

잠시 송장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걸음을 재촉해 절로 올라갔다.


***


아래쪽에서 여러 사람이 절 쪽으로 올라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김처사가 모두 나이가 젊어 보이는 순관 다섯 명과 함께 도착했다.

한 명은 수레를 가지고 왔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겨울이라서 송장이 멀쩡하구먼.

-얼어서 썩은 내가 안 나니 좋네요.

부하 순관이 맞장구를 쳤다.

-송장을 뒤집어보게.

옆구리에 날카로운 칼에 찔린 상처가 있다.

끓는 물에 삶은 조개처럼 이쪽과 저쪽의 간격이 넓다.

우두머리 순관이 옆에 있던 싸릿가지를 꺾었다.

한쪽 끝을 상처에 밀어 넣어 깊이를 쟀다.

싸리가지를 옆으로 눕혀서 머리의 상처들을 득득 긁었다.

혼잣말로 ‘돌멩이에 맞은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주지가 손가락으로 길가의 소나무 아래를 가리켰다.


우두머리 순관이 가까이 다가가 피 묻은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피가 덜 묻은 쪽을 잡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순관들을 불러 모았다.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는지 주변을 뒤져보라.

순관 네 명이 사방으로 흩어져 이리저리 수풀을 헤집고 다녔다.

-이 절에 자주 오시오?

우두머리 순관이 송장을 처음 발견한 사내에게 물었다.

-몸에 피부병이 있어서 종종 와서 한증욕을 하고 갑니다.

-사는 곳과 이름을 알려줄 수 있겠소?

-준수방 인왕산자락에 사는 송칠석입니다.


주변을 뒤지던 순관들은 빈손으로 수색을 마쳤다.

부하들로부터 수색결과를 보고받은 우두머리 순관이 송칠석에게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집으로 순관을 보내겠소.

순관들이 송장과 피 묻은 돌을 수레에 싣고 현장을 떠났다.

***

한성부 검시관은 송장의 나이를 스물다섯 살 내외로 추정했다.

얼어있던 송장이라 사망 시간은 모르겠다고 하였다.

소지품 가운데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없다.

특이점이라고는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박이고 손톱 밑이 까맣게 찌든 것이 전부다.

우두머리 순관이 부하 순관에게 실종 신고자 목록을 가져오게 하였다.

20대와 30대 남자 다섯 명을 추려서 집집마다 순관을 보내 성인 한 명씩을 데려오게 하였다.

가족대표가 도착하는 순서대로 송장의 얼굴을 보여줬다.

네 번째로 도착한 남자가 송장의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아이고. 우리 형님입니다. 엿새 전에 집을 나간 제 형님이에요.

송장은 무원이 이춘발 피살사건을 수사할 때 이득시의 정체를 알려준 강용이었다.

이득시 심복의 짓이 틀림없어! 내가 대신 복수해 주마!


무원은 나장 두 명을 시켜 강용의 처를 데려오게 하였다.

잠시 틈새가 생긴 동안 궁금증이 쌓였다.

도대체 누가 어둠을 무용지물로 만들었을까?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는데 강용의 처가 도착했다.

-강용은 언제 집을 나갔소?

-엿새 전에 나간 뒤로 소식이 끊겼습니다.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간다는 말은 없었소?

-밤에 어떤 사내가 찾아와 불러냈습니다.

-그 사내의 얼굴을 보았소?

-덩치가 크고 텁석부리였습니다.

무원은 곧바로 수배전단 이백 장을 제작해 전국의 교통요지에 붙이게 하였다.

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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