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복병

17. 혼란

by 조병인

기유년(1429) 7월 30일.


무원이 왜통사 이춘발 피살사건의 결안을 완성해 주상에게 올렸다.

그해 3월 23일 밤에 사건이 발생한 지 4개월 7일 만이다.


무원은 홍송부와 김생언이 이춘발 살해를 공모하고 이득시와 간충을 끌어들여 모의를 실행한 과정을 자세히 적었다.

신백이 밤중에 찾아와 숨겨달라는 이득시의 청을 처음에는 뿌리쳤다가 아내의 설득으로 마음으로 바꾼 사정을 상세히 적었다.

간충은 외아들이고 집에 허리를 못 쓰는 늙은 아비와 그런 남편을 늙은 노모가 힘들게 간병하고 있는 사정을 상세히 적었다.

마지막으로 수사 초기에 상이가 매질을 면하려고 거짓으로 자기 친형과 형의 친구 두 명을 살인범으로 지목해 사건 해결을 지연시킨 사실을 상세히 적었다.


무원은 주범 홍성부와 공범 김생언은 참형(斬刑)에, 공범 이득시와 간충은 교형(絞刑)에 처하기를 청했다. 참형은 머리를 베어 목숨을 끊는 것이고 교형은 목을 공중에 매달아 목숨을 끊는 것이다.

살인용의자 이득시를 집에 숨겨준 신백은 장 1백대를 가하여 3천 리 밖 변방의 병영에 보내기를 청했다.

위증죄를 저지른 상이는 장 1백대, 3천 리 밖 유배, 노역 삼 년에 처하여 속전(贖錢)을 받기를 청했다.


주상은 무원의 구형을 그대로 따르되 외아들인 간충의 형을 한 등급 낮추고, 상이는 속전을 받지 말고 풀어주게 하였다.


외아들특례의 적용을 기대한 간충과 범인은닉혐의가 벗겨지기를 바랐던 신백은 공히 장 1백대씩을 맞고 각기 변방의 병영에 보내졌다.


위증죄로 4개월 넘게 옥살이를 한 상이는 어미와 형이 기다리는 집으로 갔다.


더 이상의 심리와 판결은 없었다.


법정형이 사형(사죄·死罪)이면 반드시 세 차례 심리를 거치게 한 사죄삼복법(死罪三覆法)이 있었지만 주상이 의금부에 내린 사건은 사죄(死罪)라도 한 번의 심리로 사법절차가 끝났다.

***

춘분에서 추분에 이르는 여름 동안은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관행에 따라 홍성부·김생언·이득시의 처형은 추분 이후로 미뤄졌다.


곡식이 결실을 맺는 계절에 사람을 죽이면 망자의 원혼이 화기(和氣)를 떨어뜨려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미신이 살인범들의 명줄을 늘려준 것이다.

사형이 확정된 세 명은 밤마다 저승에서 춘발의 혼령이 내려와 자신을 노려보는 악몽을 꾸었다. 각기 다른 옥방에 흩어져서 갇혀있어도 밤마다 비슷한 악몽을 꾸었다.


셋 모두 새벽같이 잠을 깨고도 옥방 안에 저승사자가 들어와 있을 것 같아 눈을 뜰 수 없었다.

간신히 눈꺼풀을 추켜올려도 무서운 허상들이 어지럽게 뒤얽혔다.

낮에는 입맛이 꺾여서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고 밤에는 목이 베이는 환각에 빠졌다.

나장이 큰 칼로 내리치면 목덜미가 얼마나 아플까?

피는 얼마만큼 쏟아질까?

숨이 끊기면 몸은 이승에 남고 혼령은 저승으로 가는 건가?

저승에 가면 시뻘건 불길이 치솟는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을 견뎌야 하는 것인가?

우리들이 아무리 잘못을 뉘우쳐도 우리가 죽인 이춘발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살과 뼈가 폭삭 썩어서 흙이 되려면 몇 년이 걸릴까?

내 제삿날에는 내 혼령이 저승에서 이승으로 내려올까?

옥방의 다른 죄수들은 날마다 목을 빼고 사면 소식을 기다렸다.

세 사람도 실낱같은 기대를 움켜쥐고 나라에 큰 경사가 생기거나 한재·수재·역질·풍재·화재 같은 재앙이 닥치기를 빌었다.

보위를 이을 세손이 태어나거나 임금이나 세자가 중병에 걸리기를 비는 죄수도 있었다.

팔월과 구월이 지나고 시월이 시작되자 사형수들의 희망이 절망으로 변했다. 절망은 공포를 키웠고 공포는 사형수들의 피를 말렸다.


시월 중순경 옥방을 지키는 나장이 밤에 성부와 생언을 우두머리 나장에게 데려갔다.

-목이 베일 때 고통을 줄이고 싶으면 미리 사례를 해두어라.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겠다.

우두머리 나장은 ‘선택은 자유’라는 말을 덧붙였다.

두 사람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하였다. 둘 다 배우자들이 옥바라지를 하느라 집까지 팔아서 식구들이 산속의 움막에 산다고 하였다. 모두가 사실이었다.


닷새 뒤에 성부에게 고기반찬이 곁들여진 저녁식사가 제공되었다.

생언과 득시도 같은 식사를 받았다. 세 사람 모두 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인상이 창검(槍劍)으로 무장한 옥졸 십여 명이 옥방 앞에 도착했다. 인상들이 하나 같이 험상궂어 저승사자 일행 같았다.

성부도, 생언도, 득시도 옥졸들을 보자마자 넋을 잃고 실신하여 의식이 없었다. 숨은 쉬는데 죽은 송장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옥졸들이 자물쇠를 열고 옥방 안으로 들어가 세 사람을 끌어냈다.

사방에 창살이 설치된 달구지 세 대에 셋을 나눠 태워 두 팔과 머리채를 난간에 단단히 묶었다.


몸집이 큰 황소가 끄는 달구지에 실려서 의금부 대문을 출발한 세 사람은 점심때가 되기 전에 숭례문 밖 당고개에 도착했다.

나장들이 세 사람을 수레에서 끌어내 땅바닥에 무릎을 꿇렸다.

나장 한 명이 도사 강무원에게 흰색 두루마리를 바쳤다.

무원은 나장으로부터 넘겨받은 두루마리를 길게 펼쳐서 느린 목소리로 근엄하게 읽었다.


홍성부·김생언·이득시는 서로 공모하여 기유년(1429) 3월 23일 자정 무렵 훈도방 개천교에서 말에 타고 있던 왜통사 이춘발의 머리를 몽둥이로 가격해 춘발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게 하였다. 의금부가 어명을 받들어 살인의 동기와 과정을 명백히 밝히고 범행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네 명의 자백을 받았다. 주상께서 보고를 받으시고 ‘살인자는 죽인다(殺人者殺)’는 상명(償命) 원칙에 의거해 홍성부와 김생언을 참형에 처하시고 이득시는 교형에 처하셨다. 세 사람은 재물에 눈이 멀어 주상의 명에 따라 왜통사 직책을 성실하고 강직하게 수행하던 유능한 관원을 잔인하게 살해한 만행을 깊이 참회하고 고인의 혼령과 그 유족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승을 떠나라.


판결문 낭독이 끝나자 나장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장 둘이서 성부와 생언의 양쪽 귀에 아래에서 위로 화살촉을 꿰었다. 다른 두 명이 두 사람의 상의를 벗기고 상체를 앞으로 구부려서 목 아래 굵직한 나무토막을 받쳤다.

두 사람의 상투에 긴 줄을 묶고 한쪽 끝을 옆에 세워둔 나무기둥에 각각 붙잡아맸다. 목을 벤 뒤에 세 발 장대에 쉽게 매달기 위해서다.


가까이서 자루가 긴 칼을 손에 든 회자수(劊子手) 두 명이 성부와 생연 곁으로 다가갔다. 죽음을 면해주는 조건으로 살인죄로 사형에 처해진 죄수들 중에서 지원을 받아 차출한 자들이다. 사람을 죽여본 경험이 있다 해도 두 사람 모두 극도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원은 집행을 명하기 전에 회자수들에게 미리 준비해 간 소주(燒酒)를 원하는 만큼 마시게 하였다.

한 명은 두 잔을 들이켜고 또 한 명을 석 잔을 들이켰다.

회자수들이 소주를 마시는 동안 입을 여는 사람이 없어서 한낮인데도 사방이 밤처럼 고요했다.

오직 따가운 아침햇살만이 의식을 잃고 땅바닥에 엎어져있는 성부와 생언의 목을 뜨겁게 달궜다.


살벌한 적막은 잠깐으로 끝났다.

-회자수 들은 형을 집행하라.

국법에 떠밀린 회자수들의 우람한 팔 네 개가 하늘로 솟구쳤다.

서슬이 시퍼런 칼날 두 개가 햇볕을 반사하며 허공에 자리를 잡았다.

거의 동시에 위에서 아래로 두 개의 커다란 원이 그려졌다.

-윽! 으윽!

극한의 고통을 가득 머금은 짧은 신음이 이승과 저승을 갈랐다.

죄수들의 목에서 튀어 오른 핏방울이 회자수들의 옷과 얼굴에 무수한 반점을 만들었다.


회자수들의 네 팔이 다시 목 뒤로 올라갔다가 아래를 향해 한 번 더 원을 그렸다. 죄수들의 목이 몸에서 분리되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곧바로 이어서 득시가 허공에 매달린 투박한 올가미에 목이 졸려서 숨이 끊겼다. 참형과 달리 목을 베이지는 않아서 머리와 몸이 붙어있었다.

득시의 목을 허공에 매달고 올가미를 잡아당긴 두 명도 사형수 중에서 차출된 사형수들이다.


***


성부와 생언의 목이 숭례문 옆 공중에 나란히 내걸렸다.

또 다른 살인을 막기 위해 살인자의 말로를 보여준 것인데 지나가는 행인들은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지 않았다.

넋을 잃은 유족들만 목이 잘린 가장의 시신을 안고 목 놓아 울었다.

득시의 시신은 온전한 상태로 유족에게 인계되었다.

시신의 몸과 머리가 분리된 유족과 그렇지 않은 유족의 울음의 수위가 현저하게 달랐다.


무원은 《효경》 의 첫 장 개종명의(開宗明義)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을 떠올렸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신체·머리카락·피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다.


불감훼상 효지시야(不敢毁傷 孝之始也).

몸을 훼손하거나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성부와 생언의 처자도 득시의 처자도 효경을 읽었을 리 없다. 그런데도 가장의 목이 베인(신수이처·身首異處) 유족과 목이 시신에 붙어있는(전기지체·全基肢體) 유족의 통곡이 다른 것이 신기했다.

무원은 반년쯤 전에 졸지에 가장을 잃고 망연자실하여 울부짖던 이춘발의 처와 아들의 처연한 모습을 떠올렸다.


남의 손에 황당하게 죽은 쪽이나 남을 죽이고 처형된 쪽이나 유족의 고통은 같다고 생각하니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

무원은 사형 집행에 참여한 나장들을 주막으로 데려갔다. 죄수의 목을 칼로 베거나 올가미로 조른 사형수들과 그들의 집행을 보조한 나장들의 침묵을 깨뜨리기 위해서다.

자리를 잡고 엉덩이를 걸치기도 전에 무원은 우두머리 나장에게 독한 소주와 기름진 안주를 넉넉히 시키게 하였다.

우두머리 나장의 주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모는 술병과 사발을 가져다 앞앞이 내려놓았다.

성부와 생언의 목을 자른 사형수 두 명과 득시의 목을 올가미에 매단사형수 한 명은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사발에 소주를 가득 부어 단숨에 들이켰다. 제 손으로 사람을 죽인 기억을 어서 지우려는 몸부림 같았다.

나장들은 사형을 집행한 사형수들이 사발을 비우기 무섭게 경쟁적으로 술병을 들어서 빈 사발을 가득 채워주었다.

무원도 다른 나장들과 더불어서 사발을 비웠다.


잠깐 사이에 하루치 매상을 넘긴 주모는 연신 싱글벙글하며 술과 안주를 날랐다.

나장들은 혀가 꼬부라져 음탕한 눈빛으로 기녀들을 희롱했다.

주방이 뿜어내는 기름질 냄새가 나장들의 체면과 염치를 제압했다.

무원은 칼로 죄인들의 목을 베고 올가미로 죄인의 목을 조른 사형수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죽을 목숨을 살게 해 준 보람은 간 데 없고 산목숨을 끊게 한 데 대한 후회만 넘쳤다.

문득 이승과 저승은 같은 곳을 다르게 부르는 말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죽은 사람들의 혼령과 산 사람들의 혼령이 서로 친구처럼 어울려서 흥겹게 축제를 벌이는 것 같았다.


무원은 우두머리 나장에게 뒤를 맡기고 홀로 주막을 나왔다.


의금부 낭청으로 돌아온 무원은 마음이 몹시 무겁고 어지러웠다.

일찍이 느껴본 적이 없는 의문들이 동시다발로 고개를 쳐들었다.

살인이 야만이면 사형도 야만이 아닌가?

옛날의 성인(聖人)들은 왜 야만을 야만으로 응징하게 놔뒀을까?

살인자를 죽인다고 피살자와 그 유족의 원한이 풀릴까?

살인자를 잔인하게 죽인다고 살인이 줄어들까? 오히려 지능적이고 잔인한 살인이 늘어나는 게 아닐까?

사형의 목적과 효과에 대한 의문들은 사형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懷疑)를 불렀다.

생각의 지평이 오판 가능성과 정적 제거에 악용될 가능성에까지 이르니 자신도 모르게 사형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

그렇다면 그처럼 위험하고 불합리한 사형이 형벌의 제왕 대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걸음 더 나아가 처형된 사형수의 유족과 회자수들의 기구한 팔자까지 감안하면 사형의 폐단이 고목처럼 우람해 보인다.

가장이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된 가정은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되는가?

처형된 사형수의 배우자와 혈육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당연한 것인가?

사형수에게 다른 사형수를 죽이게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온당한가?


무원은 해답을 찾기 위해 사형을 폐지할 경우에 예상되는 후과(後果)를 따보았다.


첫째. 법전에 사죄(死罪)로 명시된 모든 범죄가 증가할 것이다.

둘째. 범죄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 백성의 원성이 높아질 것이다.

셋째. 사법비용이 증가하여 백성의 조세부담이 늘어날 것이다.

넷째. 지능범죄와 조직범죄가 늘어나 백성의 불안이 가중될 것이다.

다섯째. 범죄에 대한 공포와 증세(增稅)에 대한 불만이 누적될 것이다.

여섯째. 역모를 꾸미거나 반란을 획책하는 세력이 준동할 것이다.

일곱째. 치안이 불안해져 외적이 쳐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무원은 잠시잠깐 사형은 시급히 없어져야 할 형벌이라고 여겼던 생각을 거둬들였다.


심정적으로는 사형이 폐지되기를 바라지만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요악이다. 사형은 무겁고 불편해도 책무를 다하려면 반드시 입어야 하는 장수의 갑옷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법전에서 사형을 빼는 것은 나라의 치안과 국방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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