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복병

16. 하극상

by 조병인

-이 자가 감히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인 주제에 주인의 혈육에게 행패를 부렸으니 법대로 목을 베어야 할 것입니다.

그 사내 옆에 새끼줄에 꽁꽁 묶인 개동이 몸을 떨면서 서 있었다.

몰골을 보아하니 도착하기 전에 이미 실컷 두들겨 맞은 모양이었다.

개동을 끌고 온 사내는 지난 3월에 훈도방 개천교에서 괴한에게 피살된 이춘발의 동생이었다.


-목을 베고 말고는 나중 일이니 자초지종을 말해보게.

무원은 사내에게 개동을 의금부로 데려온 연유를 물었다.

-저를 죽이려고 한 놈에게 직접 물어보십시오.

사내는 속에서 열불이 나서 자세히 말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무원은 직감적으로 사내의 대답에 거짓이 섞였다고 느꼈다. 자기가 먼저 잘못을 저지르고 상대방에게 죄를 떠넘기려 한다는 예감이 들었다.


춘길에게 끌려온 개동은 반대로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빨리 좀 물어달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가 이런 몰골로 내 앞에 잡혀온 까닭을 숨김없이 말해 보아라.

-도사 나리. 정말로 억울합니다. 아무려면 제가 아무런 까닭 없이 가만있는 사람에게 몹쓸 짓을 했겠습니까.

개동은 간간이 설움 섞인 울음을 토하며 끌려오게 된 사정을 자세히 털어놓았다.

***


바로 전날은 이춘발이 죽은 지 백일이 되는 날이었다.

춘발의 아내 박 씨는 앞서 남편의 장례를 되는 대로 치른 것이 마음에 걸려서 백일제사라도 정성껏 지내주기로 진즉 마음을 먹었다.

박 씨는 남편의 장례 때 입은 상복들을 미리 깨끗이 세탁해 놓았다. 집안을 깨끗이 치우고 제주(祭酒)로 쓸 술을 담갔다. 분이를 시켜서 제사음식을 담을 놋그릇들을 광이 나게 닦았다. 제사에 쓸 지방과 향을 정성껏 준비했다.

제사 하루 전날 제사상에 올릴 육류와 생선을 성의껏 갖췄다.

개동이 헛간의 장작더미를 절반쯤 덜어서 부엌으로 옮겨놓았다.

분이는 박씨 부인의 지시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분이 또래인 개동의 처는 사흘 전에 다섯째를 출산해서 집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었다.


출가한 딸과 동서들이 미리 와서 제사준비를 도왔다. 고인의 형제자매와 조카들도 미리 와서 일손을 보탰다.

박 씨는 제사상에 올릴 음식과 별도로 손님들을 대접할 음식과 제사 후에 시동생, 시누이, 조카들에게 들려 보낼 음식을 넉넉히 준비하게 하였다.


제사 당일 날 오전부터 개동은 손님들과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마음이 괴로웠다. 죽은 주인이 괴한 두 명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장면이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다.

개동은 주인이 개천교에서 봉변을 당한 뒤로 심한 죄책감에 빠졌다. 눈앞에서 주인이 괴한에게 맞아 죽는데도 멀뚱히 구경만 한 자신이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백일제사가 돌아오니 안주인과 고인의 혈육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시선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혀를 끌끌 차면서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쥐구멍에도 숨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은데 제사를 지내러 온 고인의 혈육이 개동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처음에 박 씨 부인이 개동에게 뒤꼍에서 기름질을 하는 여자들에게 장작을 가져다주라고 시켰다.

개동은 헛간에 들어가 장작을 한 아름 안고 뒤꼍으로 향했다.

개동이 뒤꼍으로 가려고 마당을 지나서 건넛방 앞을 지나가는데 방 안에서 자신의 이름이 새 나왔다.

-머저리 같은 개동이 자식. 놈들이 형님을 내리치기 전에 죽기 살기로 덤볐어야지. 등신같이 쳐다보고만 있었다는 게 말이 됩니까. 형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나 처먹은 놈이 힘이 달리면 이빨로 팔뚝이라도 물어뜯었어야지요. 그러고도 돼지같이 하루 세끼 밥을 축내는 걸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요. 형님은 개동이가 밉지 않으세요?


개동을 머저리 등신으로 깎아내린 이는 고인의 막내 동생인 춘길이었다. 바로 위의 형인 춘필과 슬픔을 나누다가 홧김에 분통을 터뜨린 것인데 춘길의 화를 돋운 당사자가 우연히 그 말을 들은 것이다.

개동은 팔과 다리의 근육이 풀리면서 몸을 지탱하던 기운이 땅으로 스미는 것을 느꼈다. 두 팔에 안겨 있던 장작들이 스르륵 미끄러져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창피하고 미안하던 마음이 불 같은 복수심으로 변했다. 몸속 어디에선가 뜨거운 불덩이가 위로 솟구쳤다. 개동은 두 눈을 부릅뜨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무리 신분이 천한 노비라지만 이 집의 일이란 일은 다 맡아서 하는 나더러 밥만 축내는 돼지 같다고? 나만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고? 그런 줄도 모르고 날마다 잘못을 뉘우치며 뼈가 부서지게 일을 하였으니 나는 등신 머저리가 맞네.


스스로 자신을 등신 머저리로 인정하니 자신을 그렇게 만든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솟구쳤다. 당장이라도 춘길을 마당으로 끌어내 세 치 혀를 잡아 뽑고 싶은 충동이 목구멍을 넘어왔다. 하지만 하인 주제에 차마 주인의 혈육을 해칠 수가 없어서 폭발 직전까지 이른 울분을 가라앉혔다.


-이렇게 바쁜 날 왜 그렇게 멍하니 서있는 거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을 텐데.

부엌에서 일을 하다 마당으로 나온 하녀 분이가 핀잔을 주었다.

그때까지 분이 덜 풀린 개동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 말 안 들려? 어디서 꿀 훔쳐먹었어?

이번에도 개동은 나무처럼 제자리에 선채로 반응이 없었다.

-지금은 바빠서 그냥 가지만 나중에 가만 두나 봐라.

분이는 입을 샐쭉거리며 대문 쪽으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


개동이 힘들게 화를 삭이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해가 지고 사방에 땅거미가 깔렸다. 제사는 자정에 지내게 되어있었다.

분이가 저녁상을 차려가지고 춘걸과 춘길이 있는 건넛방으로 들여갔다. 밥상을 내려놓고 얼른 부엌으로 돌아와 숭늉을 챙겨가지고 다시 건넛방으로 갔다.


춘길이 얼간하게 취한 목소리로 형수인 박 씨에게 항의 조로 말했다.

-형수님은 어쩌자고 개동이를 아직까지 끼고 계십니까? 저 머저리 같은 밥버러지를. 하늘에 계신 형님이 형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개동이가 곧바로 덤벼들었으면 형님이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셨겠어요? 날이 밝는 대로 개동이를 이 집에서 내쫓으세요. 개동이 이름만 들어도 오장육부가 뒤집힙니다.

박 씨는 도리어 개동을 두둔했다.

-서방님. 개동인들 덤비고 싶지 않았겠어요? 상대방이 번개처럼 달려들어서 미처 손쓸 사이가 없었다고 하잖아요. 그날 그 일이 있은 뒤로 개동이가 고개를 못 들고 말없이 일만 해서 제가 도리어 미안해요.

-미안하시다니요. 등신 머저리 놈이 무엇을 잘못한 줄이나 알겠어요?

거기까지 듣고 방을 나온 분이는 어둠을 헤치고 개동을 찾았다.


개동은 마구간에서 말에게 저녁을 먹이고 있었다.

-가회방 나리가 마님에게 네가 머저리 같아서 통사 나리가 돌아가신 거라며 막 화를 내셨어. 등신 같은 너를 왜 이 집에 머물게 하시냐며 펄펄 뛰시더라고.

분이는 개동의 양손을 붙잡고 춘길이 박 씨에게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마님은 뭐라고 하시데?

개동은 춘길의 말보다 안주인의 반응을 궁금히 여겼다.

-통사 나리 돌아가신 뒤로 말없이 일만 하는 네게 미안하다고 하셨어.

-마님은 내 마음을 아시는구나. 그런데 아시면 뭐 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돼버렸는데.

개동은 열심히 먹이를 먹고 있는 말의 갈기를 쓰다듬어주었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니야. 내 눈에도 언제나 묵묵히 일만 하는 네가 불쌍해 보여. 네 기분 풀어주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야.

-네 말은 고맙지만 나는 등신 머저리가 맞아. 주인이 눈앞에서 맞아 죽는 걸 멀뚱히 보고만 있었잖아. 너니까 말이지만 통사 어른 돌아가신 뒤로 나 많이 괴로웠어. 사람들이 나를 깔보고 무시하는 것 같아서 죽고 싶을 때가 많아.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바보보다도 못한 천치가 되었을까?

-미안해 개동아. 내가 괜한 말을 했나 봐. 내 생각이 짧았어.

분이는 춘길의 말을 개동에게 일러바친 것을 후회하였다. 혹시라도 개동이 엉뚱한 마음을 먹을까 봐 불안한 생각이 쌓였다.


-분이야. 나를 머저리로 업신여기는 원수를 죽이고 나도 같이 죽으면 어떨까. 평생 서럽게 사느니 후련하게 분을 풀고 일찍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우리는 백 년을 살아도 죽을 때까지 노비잖아.

분이의 두 눈이 천적에게 놀란 토끼의 눈처럼 휘둥그레졌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떻게 그런 맘을 먹을 수가 있어. 네가 죽으면 딸린 식구들은 어떡하라고.

분이는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제 혀가 떠미는 대로 지껄였다.

-사람은 누구나 저 먹을 양식은 가지고 태어난다잖아. 빈손으로 태어나도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

개동은 식구들이야 살든지 죽든지 무슨 상관이냐는 투로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개동이 너 사내 맞니? 무슨 사내가 밴댕이처럼 속이 좁으냐. 상대는 두 명이고 한 명은 몽둥이까지 들었는데 혼자서 맨손으로 어떻게 덤벼? 만약 덤볐으면 너도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생각이 올바른 사람들은 너를 욕하지 않아. 못 믿겠으면 동네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

분이는 어미가 자식을 달래듯 애타게 개동을 타일렀다. 분이의 양쪽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개동은 어둠에 휘감긴 분이의 얼굴에서 죽은 어미의 인자한 미소를 보았다.
개동의 어미는 비록 노비였어도 개동을 각별히 챙겼다. 여러 남매의 막내라서 젖을 배부르게 먹이지 못한 데다 성격이 온순해서 매사에 손해를 볼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알았어. 잘 알았으니까 걱정 말고 어서 가봐. 마님이 찾으시기 전에.

-한 번만 더 그런 말 하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분이는 얼른 가서 저녁상 가져오겠다며 마구간을 나갔다.

무원은 말의 엉덩이를 서너 차례 두들겨주고 마당으로 나왔다.

불이 훤하게 밝혀진 안채의 부엌과 안방이 몹시 시끄러웠다.

개동은 도무지 납득이 안 되었다. 참혹하게 죽은 가장을 추모하러 모인 혈육들이 잔칫집 하객처럼 큰소리로 웃고 떠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개동은 몸을 돌려서 마구간에 붙어있는 제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분이가 저녁상을 가져왔다. 개동이 하루에 세 번씩 받는 그런 밥상이 아니었다. 하얀 쌀밥과 소고기뭇국을 비롯하여 다양한 종류의 고기와 생선과 나물이 그득하고 술이 담긴 호리병도 있었다.

분이는 술병을 집어 들어 술잔을 채워주었다.

그런 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개동은 다시 한번 죽은 어미의 푸근한 미소를 떠올렸다.

개동은 눈으로 분이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술잔을 들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분이는 개동이 술을 들이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자 약속해. 아까 한 말 다시는 안 하겠다고.

개동이 잔을 비우자 분이가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앞으로 다시는 죽고 싶다는 말 안 하겠다고 약속하라는 압박이었다.

분이는 자기 왼손으로 개동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억지로 끌어다 자신의 엄지에 걸었다.

-남자가 한 번 약속했으면 죽어도 지켜야 한다는 거 알지?

분이는 고리처럼 묶인 두 손가락을 아래위로 서너 차례 흔들었다.

개동은 손가락에 힘을 빼고 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난 나가볼 테니까 천천히 많이 먹어. 급하게 먹다가 체하지 말고.

-그래. 천천히 맛있게 먹을게. 고마워.


개동은 평소 습관대로 밥의 절반 정도를 국에 말아서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식사를 오래 하면 할 일이 밀려서 밥을 빨리 먹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개동이 겨우 몇 숟가락을 떠넣었는데 밖에서 누가 문고리를 잡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방문이 활짝 열렸다. 개동의 시선이 닿는 곳에 방금 전에 개동이 죽일 마음을 먹었던 춘길이 상체를 반쯤 뒤로 젖히고 고목처럼 서있었다.

춘길이 숨을 쉴 때마다 지독한 술내가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개동은 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고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였다.

-호사가 늘어졌구나. 주인의 목숨도 지키지 못한 주제에 오늘 같은 날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 네가 사람이면 오늘은 끼니를 끊고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고 생각되지 않느냐? 짐승만도 못한 머저리 같은 놈.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막말을 퍼부은 춘길은 방문도 닫지 않고 연신 가래침을 뱉으며 뒷간 쪽으로 걸어갔다.

개동은 참을 수 없는 모멸감에 떠밀려 숟가락을 팽개치고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컴컴한 어둠속에서 몸을 비틀거리며 뒷간의 문을 잡아당기는 춘길의 모습이 보였다.

개동은 도저히 멈출 수 없는 격정에 떠밀려 앞으로 돌진했다. 성난 맹수처럼 춘길에게 달려들어 오른팔을 앞으로 뻗쳐서 힘껏 목을 졸랐다. 춘길은 사력을 다해서 개동의 팔을 떼어내려 하였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데다 술까지 마신 춘길은 젊은 개동의 분노를 당해내지 못했다.


-개동아 너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나리를 어서 풀어드려.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어서 팔을 놓아. 어서.

분이의 외침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개동은 춘길의 목을 계속 졸랐다.

분이가 안채 쪽을 향해 큰 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누구 좀 나와 보세요. 개동이가 가회동 나리를 죽이려고 해요. 얼른 좀 나와서 말려주세요.

분이는 안채 쪽을 향해 큰 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안채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손님들이 순식간에 우르르 마당으로 나왔다. 모두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춘길을 개동의 팔에서 구해내고 지게꼬리를 가져다 개동을 꽁꽁 묶었다.

춘길이 주먹으로 개동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렸던지 발길로 개동의 어깨를 힘껏 밟았다. 춘길의 불같은 분풀이가 이어지는 동안 누구 한 사람 달려들어 말리는 이가 없었다.

***


무원의 시선이 춘길에게로 옮겨갔다.

-상대방을 죽일 생각으로 목을 졸랐느냐?

춘길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내 짐작이 맞는 게로구나.

-아무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소인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손님들이 뜯어말리지 않았으면 목을 감은 팔을 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주인의 핏줄을 구타한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행패를 부린 것이냐?

개동은 ‘죽을죄를 지었다.’라는 말만 두 번 세 번 반복하였다.


무원은 개동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난동을 부렸다고 결론을 내렸다.

개동이 춘길을 구타한 것은 명백하지만 사건의 발단은 춘길이 개동을 멸시한 데서 비롯되었다. 만약 춘길이 개동을 자극하지 않았다면 개동의 난동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춘길의 형인 춘발의 죽음은 개동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개동은 강상(綱常)을 어겼다.


고려를 없애고 조선을 세운 이들은 고려의 쇠퇴를 불교 탓으로 돌리고 유교의 근간인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을 전면에 내세웠다. 삼강과 오상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정한 것으로 흔히 줄여서 ‘강상(綱常)’이라고 한다. 오상을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강상은 백성의 신분을 엄격히 구분하는 성리학(性理學)의 명분론(名分論)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명분론에서 명(名)은 사람의 서열을 천자ㆍ제후ㆍ공경(公卿)ㆍ대부ㆍ선비ㆍ서인으로 나눈 것이고, 분(分)은 사람을 상하(上下)ㆍ존비(尊卑)ㆍ남여(男女)ㆍ귀천(貴賤)ㆍ장유(長幼)로 구분한 것이다.

성리학을 창시한 주자(朱子)는 사람의 신분을 위와 같이 나누고 서열을 매겨서, 높은 자가 낮은 자를 부리고, 낮은 자가 높은 자를 받들게 하였다. 이로부터,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공격하거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덤비거나, 노비가 주인의 명령을 거부하거나, 아내가 남편과 맞서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불손하면 강상죄로 다스리는 법이 생겼다.

***


무원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개동을 법대로 다스리면 개동이 억울할 것 같고 개동의 죄를 덮어주려면 법을 무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국법은 노비가 주인을 구타하였으면 노비를 참형에 처하게 하였다. 노비가 주인의 잘못을 관아에 고발해도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노비의 목을 베게 하였다. 사면 혜택도 박탈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노비가 주인의 혈육을 구타해도 엄벌로 다스리게 하였다.


춘길은 개동의 주인은 아니지만 주인의 가까운 혈육이니 개동의 죄를 덮어줄 방법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개동의 죄는 용서하고 모든 책임을 춘길에게 지우고 싶지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무원은 법은 지키되 일이 벌어진 순서대로 잘못을 꾸짖기로 가닥을 잡았다.


그때까지 개동을 향하고 있던 무원의 시선이 춘길에게로 옮겨갔다.

야무지게 단련된 무원의 혀가 춘길의 양심을 날카롭게 찔렀다.


글을 읽은 선비가 힘없는 노비를 깔봤다가 맞아 죽을 뻔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나. 아주 잘했다고 편 들어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 것 같은가?


춘길은 배가 무릎에 닿도록 허리를 구부리고 잔뜩 움츠러든 목소리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면목 없습니다. 돌아가신 형님을 떠올리니까 감정이 격해져서 그만···.

-혀 밑에 도끼 들었다는 속담을 모르는가? 아무리 노비라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함부로 욕을 하면 누군들 가만있겠나?

춘길은 자신의 경솔을 거듭 시인하고 반성과 자중을 약속했다.

춘길의 대답이 끝나자 무원의 시선이 다시 개동에게로 옮겨갔다.


-개동이 너는 네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알고 있느냐?

-예. 나리.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옵니다.

무원이 춘길을 꾸짖는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 개동의 음성에서 희망섞인 기대감이 배어났다.

-너는 하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어기고 주인의 혈육에게 행패를 부렸으니 국법에 따라 장(杖) 마흔 대를 선고하겠다. 이후로 다시 같은 죄를 저지르면 그때는 목숨을 내놔야 할 것이다.

춘길이 무원에게 개동이 강상을 어긴 죄를 눈감아주기를 청했다.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말면 마땅히 그래야지.

무원은 춘길의 청을 받아들여 개동의 형을 태(苔) 스무 대로 감해주었다.

태형(笞刑)은 굵은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것으로 다섯 단계의 형벌 중에서 고통이 가장 적은 죗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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