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상이는 사람을 피했다. 낮이고 밤이고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옥문을 벗어났어도 혹독한 고문에 굴복해 거짓 진술을 한 데 대한 죄책감 때문에 마음속에 옥방을 만들어 영혼을 가둔 것 같았다.
주련은 그런 아들이 가엾고 불쌍해서 끼니마다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밥상을 차려줬다. 기운을 돋우는 탕약도 달여서 먹였다. 마귀를 쫓는 굿도 하고 액운을 쫓는 부적을 써서 몸에 지니게 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이는 아침에 잠깐 뒷간을 갈 때를 빼고 종일 방에만 틀어박혀 옴짝달싹도 안 했다. 오래도록 햇볕을 쬐지 않아 안색이 파리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형이 보는 법률서적을 꺼내서 읽는 시간이 길다는 것이었다.
사재는 법률에 흥미를 느끼는 상이에게 옥송제도의 구조적 모순을 깨우쳐주려고 노력했다.
-상이야. 우리 가족은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거야. 자백 없이도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면 우리가 고문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네가 겁에 질려 위증을 하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우리의 자백 없이 유죄선고가 가능하면 우리가 살인범이 되었겠지요.
-그런 일은 없었을 거야. 사형에 처해질 죄수는 반드시 담당자를 바꿔가면서 세 번 심리하게 되어 있잖니.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이 걸러지는 거지.
-의금부가 담당한 사건은 한 번으로 심리가 끝나잖아요.
상이의 반문에 사재는 당황했다. 법률서적 몇 권 읽었다고 거기까지 알 줄은 몰랐다. 하지만 도리어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사죄삼복(死罪三覆) 제도의 연혁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원래는 의금부가 사죄를 처리할 때도 한 번만 심리하면 안 되는 거야. 지난 병오년(1426)에 궁녀가 왕실의 재물을 훔친 사건을 계기로 주상이 의금부도 사죄는 세 번 심리하라고 명을 내렸거든. 그런데 지켜지질 않으니까 없는 것처럼 된 거야.
-임금이 명을 내렸는데 왜 안 지켜요?
-일벌백계에 대한 집착 때문이야. 백성들을 겁주려면 백성들의 기억이 생생할 때 사형을 집행해야 되는데 세 차례 심리를 거치면 기회를 놓친다는 거지. 도중에 죄수가 죽거나 달아날 수도 있을 테고.
-용의자의 자백이 없어도 유죄판결이 가능하게 법을 고치면 옥관들이 좋아할까요?
상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형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모두 껴내서 상이의 궁금증을 조목조목 풀어줬다.
-법을 뒤집으면 분명히 고문이 줄어들 거야. 하지만 걸림돌이 있어. 게으른 옥관이 자신의 심증만으로 무죄를 유죄로 만드는 경우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법을 고칠 수도 없고 안 고칠 수도 없다는 말이네요.
-맞아. 바로 그렇기 때문에 너의 허위 자백은 배신이 아닌 거야.
-그래도 형들한테 죽을죄를 지은 것 같아 견디기 힘들어요.
-방금 그 대답은 옥송제도의 불합리가 핏줄 간의 우애와 친구 간의 우정까지 해친다는 사실을 증언한 거야.
대화가 길어지면서 상이의 양쪽 눈에 졸음이 찼다.
-고문을 제한하는 장치는 없어요?
-아주 많지. 주상께서 즉위하신 뒤로 죄수들의 목숨을 지켜주기 위한 장치가 수없이 생겼어. 그것 때문에 새로 생긴 법이 한둘이 아냐.
***
즉위하면서 어진 정치를 다짐한 주상은 형벌을 쓰는 옥관들이 무리한 고문으로 무고한 백성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지은 죄에 비해 과도한 형에 처하는 것을 막는 데 혼신을 쏟았다. 중요한 것만 예를 들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명을 내려서 어린 아이나 노비를 고문할 때에 등에는 매질을 하지 못하게 했다.
죄수의 목이나 발에 칼을 씌울 때는 반드시 법조문을 따르게 하고 위반자는 법대로 다스리게 했다. 관리가 아전이나 백성의 등에 매질을 가하는 행위를 금지시켰다.
형벌을 표준화하기 위해 대명률의 옥구도(獄具圖)와 똑같은 신장(訊杖)의 교판(較板)을 제작해 중앙과 지방의 관아에 나눠주었다.
의금부도사가 부득이하여 형장(刑杖)을 써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상하 관하(管下)들이 회의를 통해 혐의를 논의한 뒤에 함께 한 청에 앉아서 시행하게 하였다.
죄가 가벼운 것 같기도 하고 무거운 것 같기도 할 때는 죄가 가벼운 쪽을 따르고, 반드시 무거운 법을 써야 할 상황이면 법에 정한 수위에 맞춰서 형을 정하게 하였다.
주상은 중앙과 지방의 옥관들에게 ‘형벌을 신중히 쓰라.’고 한 《서경(書經)》<우서(虞書)> 편의 가르침을 주입시켰다.
흠재흠재 유형지휼재(欽哉欽哉 惟刑之恤哉)!
형벌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신중하게 써야 한다.
전국의 관아에 수시로 교지를 내려서 형정을 담당하는 관원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자세와 삼가야 할 행동들을 반복해서 환기시켰다.
사헌부 장령을 불러서, 항시 사실관계를 명백히 밝히되, 형벌을 과하게 써서 급하게 판결을 내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자나 깨나 고민이 깊었다.
-죄인을 다루는 옥관들이 임금의 명을 무시한다면 믿어지니?
-그래서 우리 식구들이 당한 거잖아요.
-맞아. 법이 있어도 억울하게 당하는 백성이 한둘이 아냐.
사재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용의자의 자백을 받기 위하거나 혹은 사사로운 앙심을 풀기 위해 무리한 짓들을 하다 사람이 죽거나 불구가 되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고문할 때 등에는 매질을 못하게 한 법이 있는데도 관원이 홧김에 등에 매질을 하는 옥관이 흔했다. 작은 매를 써야 할 때에 큰 매를 쓰는 경우가 허다했다.
채찍을 써야 할 때 회초리를 쓰거나, 화가 풀릴 때까지 무한정 채찍을 휘두르는 경우가 많았다. 볼기를 쳐야 하는데 허리를 때리고, 넓적다리를 때려야 하는데 등을 때려 죄수가 죽는 일도 있었다.
사재는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았는데 상이가 길게 하품을 토했다.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은데 잠이 쏟아져요. 자꾸만 눈이 감겨요.
-그래. 오늘은 이만 하고 다음에 이어서 하자.
상이와 사재는 둘이서 한 방을 썼다.
상이가 먼저 자리를 펴고 누웠다. 곧바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
열흘쯤 지나서 사재의 친구 영팔이 한강에 몸을 던졌다. 상이의 허위 자백으로 춘삼과 같이 의금부에 잡혀가 죽다가 살아난 것이 화근이었다.
영팔은 의금부에서 풀려난 뒤로 밤마다 형틀에 매달려 죽기 직전까지 채찍질을 당하는 악몽을 꿨다. 날이 갈수록 무기력에 빠져서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주련은 수시로 영팔을 찾아가 성심껏 위로해 주었다. 흉살(凶殺)을 풀어내는 살풀이를 해주고 잡귀를 쫓는 부적을 써서 방문에 붙여주었다.
하지만 영팔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모두 허사가 되었다.
-상이야 놀라지 마라. 영팔 형이 스스로 한강에 빠졌다는구나.
사재는 힘들게 말을 하고 나서 상이의 눈치를 살폈다.
-저도 힘들지만 영팔이 형은 훨씬 더 힘들었을 거예요.
상이의 표정이 의외로 덤덤했다. 마치 진즉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사재는 뜻밖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상의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상이야. 저번에 하던 이야기 이어서 하자.
사흘쯤 지나서 사재가 상이에게 앞서 하다가 그만둔 옥송 이야기를 마저 하자고 하였다.
상이는 사재의 제안을 순순히 따랐다.
사재는 상이가 죄의식을 벗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알기 쉽게 풀어줬다.
상이는 간간히 하품을 하면서 형의 설명을 귀담아들었다.
사재는 상이의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여기고 이야기를 마쳤다.
-엄니. 편히 주무세요.
-그래 너희들도 잘 자거라.
사재와 상이는 어미와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들어갔다.
사재는 자리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영팔이 죽은 뒤로 잠을 설친 날이 많았던 탓이다.
잠시 뒤에 상이도 코를 골기 시작했다.
마루에 남아서 형제가 잠에 들기를 기다리던 주련은 그제야 안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음날 새벽 첫닭의 울음에 잠을 깬 주련은 평소 습관대로 건넛방 문을 열어봤다.
상이가 안보였다.
주련은 사재가 깨지 않게 조용히 밖으로 나가 상이를 불러봤다.
-상이야. 어디 있니. 상이야. 상이야.
뒷간 앞으로 가서 다시 불러도 상이의 대답이 안 들렸다.
뒷간 안을 들여다봐도 상이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주련은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 사재를 깨웠다.
-사재야. 상이가 안 보인다. 나와서 같이 갈 만한 곳을 찾아보자.
곤히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사재가 저고리를 걸치며 후다닥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어머니 예감이 안 좋아요. 상이가 기어코 바보 같은 결심을 한 것 같아요.
-그럴 리가. 우리 상이가 그럴 리가.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어머님은 동네를 돌아보세요. 저는 영팔이가 빠져 죽은 곳을 가봐야겠어요.
사재는 신발도 신지 않고 바람처럼 사립문을 벗어나 한강을 향해 힘껏 내달렸다.
숭례문에 이르니 문지기가 연신 하품을 하며 꾸꾸 꾸벅 졸고 있다.
사재는 숨을 헐떡이며 졸다가 깨서 좌우로 머리를 흔드는 문지기에게 상이의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문지기는 얼굴을 치켜들고 턱짓으로 노량진 쪽을 가리켰다.
사재는 돌부리를 걷어차 발가락에서 피가 철철 나는데도 삽시간에 강변에 닿았다.
사방에 물안개가 뿌옇게 서려 있어 강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상이의 모습을 찾았다.
바로 그때 저만치 떨어진 강둑에서 애타게 도움을 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배를 좀 가져와 도와주세요. 사람이 강물에 뛰어들었어요. 저기 떠내려가잖아요. 누구라도 어서 배를 가지고 가서 저 사람을 구해주세요. 저대로 놓아두면 물속으로 가라앉아요.
사재의 시선이 물살에 떠밀려 짐짝처럼 하류로 떠내려가는 물체에 닿았다.
-상이다. 상이가 맞아. 누가 우리 상이 좀 구해주세요. 누구라도 제발 배를 띄워서 우리 상이를 구해주세요. 어서요 시간이 없습니다.
사재는 몸을 좌우로 돌려가며 목이 터져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배를 띄우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물고기를 잡는 어부도 사람을 실어 나르는 사공도 보이지 않았다.
-안 돼, 안 돼, 상이야! 그렇게 떠내려가면 안 돼.
사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넋을 놓고 통곡했다.
황망한 통곡이 강을 건넜다가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왔다.
상이의 머리가 물속에 잠겼다. 잠시 뒤에 물 위로 솟았다가 다시 물속으로 잠기기를 반복했다. 한번 가라앉았다 떠오를 때마다 몸이 하류 쪽으로 떠내려갔다.
사재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무원을 물어뜯었다.
-의금부도사 이 몹쓸 인간아! 당신이 우리 상이를 죽인 거야∼. 당신은 살인마야. 당장 상이를 살려내. 어서∼!
영팔과 상이의 애석한 죽음은 하룻만에 무원의 귀에 전해졌다.
무원은 온몸의 기운이 아래로 흘러서 땅속으로 스미는 것 같았다.
자신의 불찰로 죄 없는 두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하니 죽을죄를 연달아 지은 기분이었다. 훗날 저승에 가서 두 사람을 만날 일을 생각하니 차라리 지금 따라서 죽는 편이 낳을 것 같았다.
영팔아. 상이야. 정말 미안하다. 너희들은 나 때문에 죽은 거야. 둘 다 내가 죽인 거야. 제도의 모순을 탓할 일이 아니야. 훨씬 더 일찍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내가 어리석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