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발 피살사건의 공범인 간충의 어미가 주상에게 탄원서를 올렸다. 집에 늙고 병든 아비를 보살필 자식이 없다며 외아들인 간충을 풀어주기를 청한 것이다.
상감마마. 감히 바라옵건대 살인혐의로 의금부에 갇힌 제 자식 간충을 풀어서 집으로 보내주시옵소서. 간충은 형제가 한 명도 없는 외동아들이라 집에 늙은 우리 부부를 봉양할 다른 자식이 없습니다. 남편의 나이가 예순다섯인데 넘어져 허리를 다쳐서 바깥출입을 못한 지 오래입니다. 허리를 쓰지 못해서 뒷간출입조차 간신히 합니다. 저 또한 올해 예순일곱인데 성한 데가 한 곳도 없어서 끼니조차 제대로 못 챙깁니다. 어서 빨리 죽기만 바라며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하오니 대명률 <명례편>의 존류양친조(存留養親條)를 적용해 자애로우신 성덕(聖德)을 베풀어주시길 엎드려 간절히 청하옵니다.
주상은 간충 어미의 탄원서를 무원에게 내려주었다.
무원은 ‘간충을 풀어줄 방법을 찾아보라.’는 뜻으로 여기고 대명률 <명례편>을 가져다 존류양친조를 펼쳐보았다.
「죽을죄를 지은 죄인에게 고령의 조부모나 부모가 있는데 집안에 봉양할 다른 성인 아들이 없으면 임금의 승낙을 받아 죄인의 형을 감하여 집에서 부모를 봉양하게 할 수 있다.」
법조문의 취지를 생각하면 양로에 진심인 주상이 간충의 석방을 주저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외아들인 간충이 부모가 늙고 병들었는데 집에 부모를 봉양할 다른 성인 자식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간충은 살인의 주범이 아닌 데다 수사에 적극 협조한 사실을 잘 드러내면 주상이 필시 자비를 베풀 것 같았다.
무원은 형조의 협조를 받아서 건국 이후 존류양친조를 적용해 사형을 면해준 사례들을 조사해 보았다. 먼지가 겹겹이 쌓인 과거의 판결문들을 모두 빌려다가 특례조항의 혜택을 받게 된 사연과 주상의 판단을 꼼꼼히 살폈다.
건국 이래 20여 년 동안은 존류양친조가 적용된 사례가 없었다. 첫 번째 사례가 생긴 것은 태종 치세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앉기 3년 전인 을미년(1415) 8월에 한성부 동부의 아전이던 장덕생이 관인을 훔친 혐의로 체포되어 옥에 갇혔다.
형조가 증거를 모으고 덕생의 자백을 받아서 주상에게 덕생을 참형에 처하기를 청했다.
덕생의 노모가 소식을 듣고 주상에게 탄원서를 올려서 덕생이 외동임을 알리고 덕생의 목숨을 살려주기를 청했다. 태종은 덕생 어미의 탄원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살인강도도 목숨을 살려서 부모를 봉양케 하라는 조문이 있는 마당에 관인을 훔친 것이 살인강도보다 중하겠느냐. 덕생을 집으로 돌려보내 늙은 어미를 봉양하게 하라. 앞으로는 대명률의 상사소불원조(常赦所不原條)에 의해 사면혜택을 줄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죽을죄를 저지른 죄수도 집에 부모를 봉양할 남자 형제가 없으면 대명률의 존류양친조를 적용하도록 하라.
상사소불원조는 임금이 사면령을 내릴 때 용서대상에서 자동으로 제외되는 죄목을 규정한 조문이다. 구체적 죄목은 십악(十惡), 고의살인, 강도강간, 방화 등이다. 십악은 모반(謀反), 모대역(謀大逆), 모반(謀叛), 악역(惡逆), 부도(不道), 대불경(大不敬), 불효(不孝), 불목(不睦), 불의(不義), 내란(內亂) 등이다.
태종의 뒤를 이은 주상은 즉위한 이후 대명률의 존류양친조를 적극 활용했다. 심지어 사형수라도 외아들이면 형벌을 낮추거나 속전(贖錢)을 받고 집으로 돌려보내 늙은 부모를 봉양하게 하였다.
을사년(1425) 8월 물품을 구매할 때 화폐를 쓰라는 어명을 어긴 혐의로 형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외아들을 추려서 아뢰게 하였다.
명단을 받아본 주상은 동전을 사용하지 않고 물물교환을 하여 지방에 부처된 차재라는 자를 석방하여 부모를 봉양하게 하였다.
황해도 송화에 사는 백정 김조을도가 싸우다가 상대방을 죽여서 법에 따라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다. 형조에서 조을도가 독자이면서 일흔 살 먹은 아비가 있는 사실을 아뢰며 대명률의 존류양친조를 적용해 주기를 청했다. 주상은 조을도의 죄를 한 등급 낮춰서 장 1백대와 3천 리 밖 유배에 처하게 하였다.
정미년(1427) 9월 황해도 옹진의 병졸 임사경이 야인에게 소를 팔아먹었다가 장 1백대를 맞고 순위량(巡威梁)의 수군(水軍)에 배속되었다.
사경의 노모가 황해도 감사에게 글을 올려 ‘사경이 독자인 데다 사경의 식량을 대느라 아흔한 살인 내가 굶어 죽게 생겼다.’고 호소하였다.
글을 읽어본 감사는 사경이 독자임을 확인하고 대명률의 존류양친조에 의거해 주상에게 글을 올려 사경을 풀어주기를 청했다.
율문에 따르면, 죄수의 조부모나 부모가 늙고 병이 들었는데 집에 봉양할 성인 아들이 없으면 사면에서 제외되는 죽을죄(死罪·사형)를 제외하고 임금이 형을 감해줄 수 있사옵니다. 도죄(徒罪·노역)도 유죄(流罪·유배)도 장 1백 대를 치고 나머지는 속전(贖錢)을 받고 풀어줄 수 있사오니 사경에게 속전을 거두고 노모를 봉양하게 하시기를 청하옵니다.
주상은 형조의 건의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팔도에 공문을 내려 유사한 사례를 파악하여 아뢰게 하였다.
기유년(1429) 4월 신분이 노비인 주봉·석류·견본 등이 덕생이라는 노비를 희롱하다가 덕생을 죽게 하였다.
네 명 모두 사형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는데 형조에서 주봉의 아비가 고령인 데다 장애까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주상에게 인정상 불쌍히 여길 만하다고 아뢰었다.
형조의 건의를 청취한 주상은 주봉을 집으로 돌려보내 제 아비를 봉양하게 하였다.
***
무원이 판단하기에 간충의 경우는 외아들특례의 적용을 가로막는 두 겹의 장벽이 있었다.
첫째로, 대명률의 상사소불원조에 살인범의 경우는 주범이든 공범이든 존류양친조 적용의 예외로 명시되어 있었다.
둘째로, 죄수의 형을 감하고 말고는 주상의 고유 권한이고 형관에게는 조그만 결정권도 없었다.
따라서 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주상에게 올리는 결안에 간충 부모의 딱한 처지를 적고 주상의 자비를 기대해 보는 것밖에 없었다.
무원은 나장을 시켜서 간충의 노모를 데려오게 하였다.
나장과 함께 의금부에 도착한 간중의 노모는 머리가 백발이었다. 얼굴에 좌우로 밭고랑처럼 주름살이 파이고 손이 나무껍질처럼 거칠었다. 치아가 하나도 없어서 말을 할 때마다 입을 오물거렸다. 걸음걸이가 비틀거려 여생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무원은 간충을 풀어줄 수 없다는 사실과 이유를 알아듣기 쉬운 말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간충의 노모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자지러졌다.
-내 자식은 외둥이가 분명한데 왜 안 된다는 말입니까. 임금님은 인정이 많으시다는 말이 뜬소문입니까?
-내가 주상께 자세히 아뢰고 선처를 청해볼 터이니 집에 돌아가서 기다시오.
무원은 얼떨결에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내뱉고 곧바로 깊이 후회했다.
간충의 노모는 간충의 아비가 며칠 내로 죽을 것이라며 통곡하였다.
한참 뒤에 울음을 그치더니 간충이 태어나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자라온 과정을 소상히 털어놓았다.
간충은 어미가 임신을 하고 여덟 달 만에 어렵게 세상에 나왔다. 간충보다 앞에 아들과 딸이 한 명씩 태어났으나 둘 다 한 살을 못 넘기고 세상을 떴다. 집이 가난해서 어미가 제대로 먹지를 못해 아이들의 배를 채워줄 젖이 모자란 것이다.
첫째와 둘째를 허망하게 잃고 셋째를 얻은 부부는 아이에게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아이는 먹성이 좋고 잔병치레도 안 했다. 첫돌이 되었을 때 아이를 귀여워하던 마을의 유생이 간충(干沖)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방패(干)처럼 굳세면서 따뜻하고 부드러운(冲) 사내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간충은 자라면서 큰 위기를 여러 번 겪었다.
다섯 살일 때 집에 불이 나서 왼쪽 종아리에 심하게 화상을 입었다. 부부는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니며 약을 지어서 달여 먹이고 상처의 진물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힘줄이 오그라들어 걸을 때 몸을 한쪽으로 기우뚱거렸다.
부부는 아들이 절뚝이면서 걷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한쪽 다리를 절면서 평생을 살아야 할 걸 생각하면 아들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속없는 동네사람들은 간충이 군역(軍役)을 면하게 되었으니 도리어 잘 되지 않았냐고 염장을 질렀다.
이후로도 간충은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더 넘겼다. 열세 살 먹던 해 여름에 동네친구들과 중랑천에서 미역을 감다가 빠른 물살에 휩쓸렸다. 살곶이다리까지 떠내려갔다가 배를 띄워 물고기를 잡고 있던 어부에게 발견되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그다음 해 여름에는 동네친구들과 산으로 딸기를 따 먹으러 갔다가 벌떼의 공격을 받았다. 온몸이 퉁퉁 부어가지고 간신히 집에까지 왔으나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기절하였다. 그대로 죽는가 보다 했더니 의원이 지어준 약을 달여 먹고 사흘 만에 정신을 차렸다.
같은 해 겨울에 친구들과 산으로 땔나무를 하러 갔다가 오른쪽 발목을 낫에 베었다. 얼마나 심하게 베었던지 옆으로 벌어진 상처의 직경이 약지 손가락 길이의 절반만큼 넓었다.
하지만 간충은 천성이 온순하고 착실했다. 스무 살이 되도록 밖에 나가서 누구와 다툼을 벌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남의 싸움에 끼어들어 같이 싸운 적도 없었다. 대부분의 또래 친구들처럼 주막을 자주 찾거나 투전판을 기웃거리지도 않았다.
간충의 노모는 아들이 사람을 죽이는 일에 끼었을 리가 없다고 반복해서 우겼다. 만약 함께 죽인 것이 사실이면 나뿐 친구의 꼬임에 속은 거라고 하였다.
-이 글은 누가 써준 거요?
무원은 탄원서를 내보이며 간충의 노모에게 물었다.
-관아에서 형방을 지낸 동네어른이 써줬소. 우리 내외가 너무 불쌍하다고.
간충의 노모는 무원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묻는 대로 대답했으니 어서 아들을 풀어달라는 애원이었다.
무원은 몰라도 상관없는 것을 괜히 물었다고 생각했다. 후회가 머릿속을 채워서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간충 어미의 애처로운 눈빛이 무원의 대답을 재촉했다.
-간충은 풀려날 가망이 없으니 그리 알고 돌아가시오.
무원은 차마 하기 싫은 말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간충 어미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양쪽 팔을 부들부들 떨었다. 말을 잇지 못하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무원을 노려봤다. 그대로 놓아두면 곧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무원은 나장 두 명을 시켜서 간충 어미를 집에까지 데려다주게 하였다. 늙은 노파의 겨드랑에 팔을 집어넣고 의금부 대문을 나서는 나장들의 뒷모습이 초상집을 찾아와 망자를 데려가는 저승사자 같았다.
간충의 노모를 집으로 돌려보낸 무원은 간충의 석방을 가로막은 대명률을 펼쳐서 상사소불원조를 다시 한번 들여다봤다.
「고의살인을 비롯한 열 가지 범죄 중 한 가지 이상을 저지른 자는 사면 혜택을 영구히 박탈한다.」
무원은 퇴청을 미루고 한 구절 한 단어씩 꼼꼼하게 짚어가며 조문의 취지와 문맥을 다각적 관점에서 가늠해 보았다. 행간에 숨겨진 의미까지 면밀히 따지면서 혹시 아무도 모르는 빈틈이 없는지 반복해서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상을 자신 있게 설득할 수 있는 구실을 한 가지도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