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시작이다
작성일 2023.1.27.
약 6개월 동안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6개월 전의 상황은 이랬다.
위층 내 방에서 주로 생활하며 가끔씩 밑에 내려와서 보면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장난을 치고 놀고 있는 모습이 너무 자주 보였다.
중간에 이야기도 없이 밖에 나가서 먹을 것을 사오는지, 먹고 들어오는지 직원들이 자주 없어졌다. 어떤 규율도 긴장감도 보이지 않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기가 막힌 상황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직원들을 관리하지 못한 나의 불찰과 게으름이 크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큰 수업료를 내고 배운 덕분에 지금의 내 삶은 많이 달라졌다. 모든 것을 점검하고 교육하고 관리하고 있다.
그 당시에 행정일을 하며 관리를 하던 씨아라는 직원이 한 명 있었다. 씨아는 너무나 성실하고 충성된 성품을 가졌고 항상 나를 배려하고 나에게 엄청난 위로와 격려를 준 소중한 아이였다. 사람에게 잘 맞춰주는 성품이다보니 직원들을 통솔해야 함에도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모습 또한 있었다. 그동안 내 자리를 대신해 주었던 씨아가 대학교 2학년 학생으로 인턴십 때문에 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나는 그 전부터 그 자리를 대신할 행정 직원을 뽑고 있었다.
행정 직원을 뽑으면 며칠 일하다가 그만두고를 여러번 반복하며 씨야는 약 두달의 시간을 더 일을 해주었고, 소퍼라는 행정 직원이 인수인계를 받아 일을 시작했다. 소퍼는 씨야랑은 정반대 성격이었고 영어 교사를 몇년 해서 그런지 카리스마가 있고 통솔을 잘 했다.(다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지금도 계속해서 배워가고 있다)
작업장을 가면 직원들이 앉아서 놀거나 장난치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며 흩어지기 일쑤였다. 그 때 나는 위기감을 느꼈고 가장 심각한 직원부터 불러서 열심히 일 하라고 이야기를 했다. 소퍼가 통역을 했다. 매일 이렇게 하나 둘씩 불러서 이야기를 하면서, 직원들이 뒤에서 불만이 터졌다. 그러더니 어느날부터, 소퍼가 나에게 "사장님, 00가 그만둔대요."라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더니 하루가 지나면서 매일 다른 직원이 또 그만둔다고 하더라. 그 당시에는 소퍼가 나를 부를 때면, 오늘은 또 누가 그만두나 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결국 열댓명 되는 직원들이 한달 안에 다 그만두게 되었다.
매일 다른 직원이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랴부랴 직원들을 뽑기 위해 배너도 만들어서 집 앞에 걸고, 알선 업체를 통해 매일 여러명이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면접을 보고 일을 시작하고 그만두고, 면접을 보고 채용을 하고 또 그만두고를 매일 반복했다.
하루는 밀려오는 직원들을 면접을 보는데, 소퍼가 면접자에게 사장님 정말 좋으신 분이라고 이런 것도 해주시고 저런 것도 해주시고.. 내 앞에서 우리 회사에 대해 나에 대해 좋은 점을 이야기를 하더라. 모든 직원이 다 너도 나도 떠나가는 마당에 오직 단 한사람, 소퍼가 나를 신뢰하고 내 마음을 이해하며 깊이 감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기가 막히고 혼자서 보기에는 너무나 아깝다고 느낄 장면이었다.
직원들 모두가 회사와 나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그만두는 상황에서 소퍼는 나에게 직원들 너무 잘해주지 말라고 사장님의 좋은 뜻을 모른다고 하며 자기가 빨리 직원들 구해보겠다고 손발을 동동 구르며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특별한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한꺼번에 그만둔 직원들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이번 기회에 너무 어리거나 경험이 없는 직원을 뽑지 말자고 소퍼와 다짐하며 매일 직원들에 대해 회의를 했다.
그렇게 기존 직원들이 하나둘 다 떠나가고 새로운 직원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나가며를 반복하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했다. 기존 직원들이 그만두고 새로 들어온 직원들은 이랬다.
씻지않아 쉰내가 나고 이름을 불러도 처다보지 않는 아이(덕분에 직원 채용에 위생의 기준이 추가되었다), 매일 야채 버리는 부분을 가져가더니 갈수록 가져가는 양이 많아지는 아이(가져갈 때 보여주고 가져가라고 했더니 그 다음날부터 안가져가고 중간에 나가서 버리면 가족이 와서 가져간다), 무거운 것을 들때마다 피하고 딴 짓을 하는 직원, 할 일을 알려 주는데 대놓고 말을 안듣는 직원에게 이렇게 할 거면 그만두든지 계속 일을 할거면 지시를 듣고 따라야 한다고 했더니 회사가 자기를 짤랐다고 공표를 하는 직원, 그 이야기를 듣고 소퍼를 불려서 직원들 다 듣는데서 왜 저 직원이 짤렸는지 우리 전원 앞에서 설명하라고 소리를 질러가며 따지는 직원(이 사건은 정말 충격이었고 소퍼와 나는 분개했었다), 내가 이 직원과 같이 얘기했던 직원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말할 수 없다고 하는 직원(매일 뒤에서 험담하면서 정작 내 앞에서는 판단할 줄도 모르고 말할 줄도 모른다고 그러더라), 남자를 유혹하는 직원, 뚝뚝이를 몰고 가다가 차를 쳐서 회사 경비로 물어줘야 했던 직원(6개월간 크고 작은 사고가 5~6번이 있었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너무 많았고 지금도 매일 소퍼와 회의하며 진행 중인 이슈들이 많다.
그 중에 이런 아이들도 들어왔다.
무슨 말을 하면 100%의 신뢰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행하고, 우리 회사가 얼마나 좋은지, 사장님이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하는 아이, 직원들의 단점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아이(문화적인 차이인지 직원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내가 개떡같이 현지어로 이야기를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직원들에게 이야기해주는 아이, 무거운 것을 번쩍 번쩍 들고 빠릿하게 일을 하는 아이, 무슨 일을 시켜도 고개를 끄덕이고 내 말에 집중하며 바로 움직이는 아이
6개월 전 완전 물갈이가 되어 매일 한 이야기를 무한반복하며 맨땅에 헤딩을 할 때는 사람이 이래서 사업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를 처음으로 느꼈다. 그럼에도 이런 직원들의 크고 작은 마음과 모습들을 보면서 그 힘든 시간을 견딜만한 큰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엊그제 현지어 수업을 시작하면서 문득 6개월동안 어떻게 이런 반전이 있게 되었는지 기가 막히고 참 감사했다. 오늘 엄마 친구분이 오셨는데 직원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시더니 너같은 사장이 어디있냐고, 누가 직원들한테 이렇게 관심을 갖냐고, 직원들이 나중에는 고마워 할거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극적 변화가 감격스러울 뿐이었다.그간의 변화의 감격이 그치기도 전에 또다른 설레임과 신나는 일들이 앞에 기다리고 있다.
소퍼를 6개월 간 행정, 회계, 매니지먼트 등 모든 살림을 꾸리는 것을 가르쳤는데, 이제는 회계 직원을 뽑아서 위임을 하고 소퍼에게 직원 교육과 매니저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가르치려고 한다. 2주전부터 회계 직원을 면접을 보기 시작했고 두 명의 직원을 뽑았다. 두 명 중 한 명을 골라야 한다. 오늘은 소퍼에게 앞으로의 계획과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나누었는데 소퍼의 눈빛이 빛이 났다. 그동안 나와 함께 매일 사투를 벌이듯 날라다니며 일을 수습하며 정신없이 달려왔기에 끈끈한 전우애 또한 느껴졌다. 내 마음을 이해하고 따라주는 단 한 명의 직원이지만 나에게는 천군만마와도 같다.
이제까지는 다리와 손이 없다가 한 다리와 한 손으로 일을 했다면, 이제는 두 다리와 두 손으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더 훌륭하고 근사한 직원들이 들어오고, 또 지금의 직원들을 그렇게 만들어갈 역사들이 기대가 된다.
오늘은 처음으로 유투브로 한국어 영상을 만들었다. 참 허접하지만 긴급하고 중요한 필요를 위해 급조되었다. 작은 시작이지만 나에게 특별한 의미와 뿌듯함, 즐거움, 설레임을 주는 경험이다. 부족함과 필요가 많은 우리 직원들이 나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참으로 고마운 직원들이다.
P.S.
참고로 소퍼는 이후 회사 돈을 횡령하고 내 전화기로 내 계좌에서 수없이 돈을 빼가고 직원들과 치고박고 싸우고 배째라며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