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거운 꿀벌 May 12. 2024

보석같은 자식같은 직원들

보물찾는 기쁨

출처 Pinterest


작성일 2023.1.10.


식당을 3년 운영하면서, 회사를 2년 반 운영하면서 수많은 직원들이 오고 갔다. 

99%는 문맹이고 어리고 다른 곳에서 일을 해 본 적이 없고 학교도 초등학교나 많으면 중학교 정도 다녀본 아이들이었다.


그렇기에 간단히 몇가지 적어서 외우게 할 종이 조각부터 온갓 영수증, 매뉴얼이나 계약서 등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두 가지 이상을 얘기하면 뒤돌아서서 잊어버리기에 매번 같은 내용을 무한 반복했다. 1명을 가르쳐서 그 사람이 다른 2번을 가르치게 하려 했지만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잔소리, 가르치는 내용들을 하지 않는 개인주의가 이 나라의 문화의 한 부분이란다.


이제까지 내가 현지어를 열심히 배워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필사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름을 바로 앞에서 세네번을 불러도 모든 직원이 나를 처다보는데 본인만 처다보지 않는 경우는 매일 여러번 겪는 일이다. 현지어로 말해도 대부분은 못알아듣는다. 처음에는 내 현지어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한번은 대형 마트에 우리 직원을 데리고 갔는데, 그 직원이 나에게 '너희 직원은 이 나라 사람이 아니야. 내 말도 못알아들어'라고 했다. 어느 정도 교육이나 사회 경험이 있는 현지인들은 내 현지어 실력이 뛰어나다고 칭찬을 한다. 그 칭찬의 후유증으로 직원들이 내 말을 못알아들을 때마다 짜증이 올라오곤 한다. 매일 이거는 이렇게, 저거는 저렇게 하라고 열명이 넘는 직원에게 하루에 수십번을 매번 이야기하다보면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속이 터지다 못해 더이상 터질 속이 없고, 이러다 내가 성격파탄자가 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자영업은 외롭고 고단하고 쉽지 않은 삶이다.


매일을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신기록을 갱신하며 다양한 사례들이 수집이 되며 내 안에서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고 참으로 존중하거나 사랑하기 어려운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는 비슷한 환경과 삶의 조건 속에서도 정말 보석같은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소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미치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게 해준 이들이며 매일 황폐해져 가는 내 마음에 매일 물을 주고 햇볕을 쪼여준 보석들이다.  


쓰레기 더미에서 보석을 발견하는 것은 역겨운 악취와 더러움 속에 몸을 뒹굴다가 보석을 발견한 순간 그 모든 것이 잊혀지고 처절한 삶의 비애와 고통이 기쁨과 환희, 보람으로 바뀌는 기적이다.


출처 Pinterest


그동안 보석 같은 아이들 몇이 있었다.


짠마는 어린 나이에 우리 집에 왔다. 순수하고 해맑은 미소가 만화를 찢고 나온듯 했다. 어린 나이에 처음 일을 하는 데도 한 번 말한 것은 잊지 않고 지키고 항상 시간을 지키고 자기 일을 성실히 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적이 많았다. 매일 소리없이 찾아오는 반복되는 허드렛 일을 쉬지 않고 일을 한다는 것은 나도 해봐서 알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무슨 일을 시킬 때면 매일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들과 스트레스로 인해 짜증섞인 말투로 가르쳐도 신뢰와 경청으로 모든 걸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현지어로 매일 말을 하지만 90%의 직원들은 대부분 못알아듣지만 짠마는 내가 말하는 100%를 이해하고 또 나에게 말을 할 때에도 내가 알수 있게 쉽게 설명을 했다. 우리는 아주 제한된 단어로 모든 걸 소통했다. 몇 년 동안 매일 그러한 마음과 태도로 대하는 것을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해 많이 반성하고 또 힘을 많이 얻었다. 


한번은 내가 인상을 쓰며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오는 상황에서 설명을 하는데, 내 마음을 100% 느끼는지, 느끼려고 하는지 나와 동일시되어 똑같은 인상을 쓰는 것을 보며 순간 웃음이 터졌다. 내가 저런 인상을 쓰고 말했구나. 너무 화가 나고 기가 막혀서 말할 힘조차 없는 상황에서 빵 터지며, 나를 이해하려는 몸짓이 너무도 사랑스러우면서 나를 깊이 반성하게 했다. 

가끔씩 직원들과 파티를 할 때면 모두 춤을 춘다. 이 나라는 어릴 때부터 집 안에서 음악을 틀고 춤을 추는 문화가 있어서 아무데서나 자유롭게 어울려 춤을 춘다. 춤을 춰본 기억이 가물가물, 온 몸이 굳어있는 내가 아이들과 어설픈 몸짓으로 춤을 추지만 마음이 하나되는 감동의 순간이다. 짠마와 함께 춤을 추며 즐거워 했던 순간은 고이 간직하고 있다. 

짠마는 6개월 전에 그만두었는데, 마지막 날, 꼭 안아주며 흐르는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짠마야, 나중에 놀러와, 축복해" 그 말에 환하게 웃으며 눈물을 흘리며 가는 모습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딸이 있다면 이 아이보다 예쁠까 할 정도로 나에게 참 특별하고 기쁨과 힘을 주었던 아이다.


나틴은 엄마가 두번째 부인이었는데 어렸을 때 돌아가시고 두명의 또 다른 엄마와 그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고 한다. 학교는 몇개월 다닌게 전부이고 글씨를 모른다. 등치는 산 만한데 마음이 참 순수하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배운 것이 없고 여기 저기서 떠돌다보니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았다. 수중에 돈은 있는 족족 다 써버리고 밤에 놀다가 아파서 일을 못하겠다고 한 적이 수도 없었다. 배달 일을 나가서 중간에 집에 가고 찬구 만나고 놀다가 들어온 적도 많고 오토바이, 뚝뚝이가 허구헌날 고장이 났다. 나틴 손에만 닿으면 모든게 부서지고 고장나고 망가진다. 고치고 나서 당일에 다시 고장이 나길 부지기수였다. 짜증내며 화를 내고 가르치고 잔소리하고 윽박지르고 이러기를 수없이 했다. 그럼에도 마음이 삐뚤어지지 않고 잘 받아들였다. 


한 번은(정말 어이없는 실수를 수없이 했다) 내가 너무 기가 막혀서 화도 안나고, 차분하게 전후 상황을 설명했다. 자기 잘못의 심각성을 그제야 알았는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가더니 문자가 왔다. "사장님, 제가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죄송해요.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제가 배운 것이 없어서 그래요.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해요."

화를 낼 때마다 안기며 잘못했다고 하는 스타일이다. 정말 눈녹듯 화가 풀리고 그렇게 사랑스러울수가 없다. 난 이제까지 살면서 이런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틴을 통해 꾸중을 들을 때 내 모습은 어떠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틴도 짠마처럼 내가 말하는 것을 100% 알아듣고 내가 다 알아듣게 이야기를 한다. 학교를 1년도 채 다니지 못한 아이가 대학 나온 직원도 못알아듣는 현지어를 통역해준다. 짠마와 나틴은 내 현지어를 현지어로 통역해주는 통역관이었다. 무슨 말을 하면 그대로 수용하고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그 마음과 태도가 너덜너덜해져가는 내 마음에 힘과 위로와 격려를 주었다. 


설날, 추석때 마다 직원들에게 두박스 정도의 선물 세트를 주는데, 한 번은 바닥에 털퍼덕 앉더니 하나씩 열어보며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20대의 나이에 등치는 산 만한데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 순수한 어린아이 같아 어릴 적 크리스마스 때 과자선물세트 상자(우리 어릴 땐 그런게 있었는데 지금은 왜 없는지 모르겠다. 너무 행복했던 추억이다)를 받고 뭐가 들었는지 열어보고 또 열어보고, 뭐부터 먹을지 순서를 정하고 쳐다보며 너무 행복해했던 추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렇게 나틴은 누구도 꺼내지 않았던 내 어린시절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순수함을 가진 아이다. 

그런 나틴이 몇 주전 아빠가 되어 육아휴직을 끝내고 이틀 뒤에 복귀한다. 일한지 1년 반동안 월급도 두배가 오르고 내 말도 통역하고(진기명기한 장면이다) 직원들도 가르친다. 며칠 전부터 매일 현지어쓰기를 10분 정도 하고 인증샷을 나에게 보내고 있다. 현지어 쓰기, 읽기를 마스터해서 문서로 다른 직원들을 가르치고 평가하고 관리, 운영하는 것을 가르치려고 한다. 나틴 또한 나에게 "내가 아들이 있다면 이 보다 더 예쁠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던져준 아이였다.


원석을 더욱 갈고 다듬고 반짝반짝 닦아서 더욱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가는 삶이 참 설레이고 행복하고 기대된다. 


이 아이들 덕분에 나도 또다른 보석으로 다듬어져가고, 또 보석을 만드는 세공사로 훈련되어지고 있음이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이전 09화 오늘이 마지막 날인것처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