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와 '좋다'의 차이
다음 날 체크아웃은 11시. 조식은 7시 30분. 화담숲은 8시 30분 오픈.
그래도 휴가라고 온 건데 너무 이른 시각은 그렇고, 7시 반에 일어나 8시에 아침 먹고 8시 반쯤 화담숲에 가 두 시간쯤 보고 돌아와 씻고 퇴실하면 알맞겠다 싶었습니다. 크나큰 착각이었죠.
그래도 고작 30분 정도 늦은 거면 훌륭하지 않나요? 하하.
재작년까지만 해도 뭐가 그리 좋은 지 모르겠던 자연의 아름다움이 이젠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좋습니다. 사방에 푸릇푸릇한 나무와 저마다의 색을 뽐내고 있는 꽃들이 가득한 것만으로도 감격스럽더라구요. 매일 빌딩 숲 사이를 가로질러 출퇴근하고 전자파를 뿜뿜 내뿜는 모니터만 하루 종일 바라보다 탁 트인 풍광을 보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더라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예쁜 것이 싫었다 좋아지고 나서야 예쁜 것과 좋은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진실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당연히 예쁜 게 좋은 것, 그래서 가능한 예쁜 것을 갖고 싶고 또 예뻐 보이고 싶었거든요. 물론 머리로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늘 따로 놀았다랄까요. 그래서 예쁜데 매력이 없다던가 예뻐도 싫다는 말들은 으레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하고요. 그런데 오늘 보니 바로 제가 여태껏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풍경을 좋아하지 않고 있었더라구요. 진심으로요.
사람들마다 예쁘다고 느끼는 포인트와 예쁜 것에 대한 기준이 각기 다르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그 다름을 체감하는 순간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것들을 보고 배우며 비슷하게 자라니깐요. 그래서 제가 예쁘다고 느끼는 건, 남들도 예쁘다고 느낄 테고 또 그런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거죠. 여기까진 큰 문제가 없어요.
문제는 반대의 경우입니다. 내가 예쁘지 않다고 여기는 건 남들도 예쁘지 않다고 여길 테고(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건 모두가 싫어할 거다라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뿌리 박혀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입고 있는 옷, 혹은 저의 외모마저도 어떤 식으로 예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제 전체를 부정당한 느낌이 들었어요. 필요 이상으로요. 마치 면전에 대고 '난 니가 싫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다른 사람의 말과 시선을 의식하고 그런 말과 시선에 상처 받아온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냥 저 나름의 기준으로 보기에 별로 예쁜 것 같지 않다고 말했을 뿐인데, 제 취향을, 나아가 저 자신을 싫어하는 것처럼 확대 해석해 온 거죠. 그런 게 아닌데.
참 부끄럽지만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이상과 마음으로 느끼는 감정이 차이 나는 게 이것뿐만이겠어요? 제가 알고 있지만 그 간극이 잘 메워지지 않는 것들도 있을 테고, 심지어는 그 간극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도 있겠죠. 그렇지만 오늘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것을 진정으로 느끼게 된 순간을 하나 얻게 되어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 간에 대한 반성과 오늘의 깨달음을 두고두고 기억하려고 이렇게 글을 씁니다.
이런 순간들이 조금씩 조금씩 모이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훨씬 성숙한 제가 되어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