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굿초이스 Dec 29. 2021

누가 나를 속이는 걸까

다들 올 한 해는 평안하게 보내셨나요?


어느덧 또 21년의 끄트머리에 다다랐네요. 늘 그렇듯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받은 사람처럼 21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고 싶은 심정이지만 애써 담담한 척, 쿨한 척하며 또 보내줘야겠죠.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단 걸 이제 알고 있으니깐요. 다음번엔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에요.


저의 21년은 이렇다 내세울 만큼 뚜렷한 성과는 없었어요. 그렇지만 한 가지, 제 '마인드셋'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컸던 건 저의 커리어에 대한 생각과 돈에 대한 생각, 두 가지였어요. 하나씩 이야기해보면서 제 생각도 찬찬히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잠깐 제 이야기를 해보자면, 저는 이제 5년 차 직장인입니다. 이렇게 적으면서도 실감이 안 나네요. 직장인들이 흔히 겪는다는 3년 차 증후군을 회사 내에서 이동하느라 건너뛴 탓에 5년 차의 후폭풍이 더 심하게 오는 중인가 봅니다. 특히 제 신념에 어긋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말이죠.


때론 이게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이제야 비로소 사회를 알아가는 중이라고 다독였다가 가끔은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유별나게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몰아세워가면서 어떻게든 다시 회사에 저를 욱여넣어 봤어요. 이때부터인 것 같아요. 제가 저를 속이는 데 달인이 되기 시작한 건.


잡념이 많아지는 요즘, 오늘 한 영상이 유독 제 시선을 끌어서 클릭해봤는데요. 그가 하는 말이 제 머리를 탕! 때렸습니다. 어떤 영상인지는 아래 출처에 남겨둘게요.


영상 속 주인공인 케빈 오리어리(Kevin OLeary)는 어릴 때 좋아하는 여자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 맞은편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퇴근하는 길에 살짝 말을 걸어보기 위해서요. 퇴근하려던 그에게 가게 주인이 마지막으로 시킨 일이 바로 가게 앞 땅바닥에 붙은 껌을 떼는 일이었다고 해요. 쪼그리고 앉아서 바닥에 붙은 껌을 떼는 모습을 좋아하는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그는 사장님께 '그 일을 할 수 없다'라고 했답니다. 자신은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일을 하기 위해 알바를 지원한 것이지 땅바닥에 있는 껌을 떼려고 고용된 게 아니라고요. 그 결과는요?


여러분들도 예상했다시피 그날 바로 잘렸죠.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와 이 이야기를 엄마한테 하소연했는데, 엄마가 뭐라고 했겠어요?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 했어야지'라고 하셨대요. 뻔한 스토리죠? 저도 회사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 한참 하소연하다 결국에 마지막 결론이 '남의 돈 벌기가 다 그렇지 뭐'입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다들 그렇지 않으세요?


그런데 여기서 케빈은 다른 선택을 하죠. 절대 다시는 고용인(employee)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해요. 그리고 그 뒤로는 하루를 25시간처럼, 일주일을 8일처럼 살면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원하는 '자유'를 얻었다고 합니다.


자유


여러 가지로 자유를 정의해볼 수 있겠지만, 저는 이 영상을 보고 하고 싶지 않은 걸 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겐 하고 싶지 않은 걸 해야 하는 수많은 상황에 놓이지 않나요? 더 자고 싶은데도 할 수 없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것을 이미하는 것은 아니고요. 케빈처럼 내 일이 아닌 것을 거절할 권리, 부당하다고 느낀 것은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선택이 존중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저는요. 남 부럽지 않은 안정적인 직장에, 망설이지 않고 친구들한테 밥을 살 수 있는 정도면, 그 정도면 충분히 현재를 만끽하며 살 줄 알았어요. 스무 살엔 말이죠.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아요. 밤에 잠자리에 누웠을 때 이상하게 잠이 잘 오지 않는다는 점과 지금처럼 어쩔 수 없이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상황들을 빼면요. 매 순간 최선까진 아니더라도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요즘 그 노력의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렇게 매일 심히 살고 있는데 왜 나는 이 쉬운 것조차 하지 못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생각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을 하거나 돈을 좇는 것은 속물 같은 행동이라 생각했어요. 자아실현이나 정의, 행복과 같은 가치들을 추구하는 것은 충분히 당당할 수 있는 일이고, 돈을 운운하거나 돈을 1순위로 두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고요. 저도 모르게 둘을 나누어 평가하고 있었나 봐요. 그렇다고 돈이나 많이 벌면 말도 안 해요.


아무튼 현실을 직시하자면, 당장 회사를 관두자니 먹고 살 방법이 캄캄하고, 회사 안에서의 '열심히'가 회사 밖에서는 같은 의미가 아닐 거라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하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야 회사를 좀 더 오래 다닐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나 평가 시즌이니까 괜히 심기를 거스르지 말자 따위의 선택이나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요즘 틈만 나면 유튜브에서 자기 계발 영상을 보고 있거든요. 정확하게는 아까 소개한 영상과 같은 부자들의 마인드에 대한 영상들이요. 처음에는 부자들이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던 게 점점 나도 회사 밖에서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준비하려면 뭐부터 하면 좋을까 하면서 점점 생각의 방향을 틀어보기 시작했어요. 예전 같았으면 지금도 어떻게 해야 회사에 더 잘 적응해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죠.


올해 이런 생각의 변화를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 생각해요. 한 번 시작한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마련이잖아요. 그러다 보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곧 이런 생각이 결실을 맺는 날이, 저도 자유로워질 날이 오겠죠?


복잡한 마음 탓에 너무 두서없이 넋두리를 늘어놓은 게 아닌 가 갑자기 걱정이 되네요. 다른 분들은 연말에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작가의 이전글 '보통'의 잔인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