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굿초이스 Oct 08. 2021

'보통'의 잔인함

보통. 무리에 뒤섞여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그게 꼭 '뛰어나지 않아서'라기보단 뛰어나지도 부족하지도 않아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게 '보통'이란 의미일 텐데요. 날이 갈수록 그 '보통'의 수준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느끼고 있어요. 보통 크기의 집에서 보통 수준의 연봉을 받으며 보통의 사람을 만나 사랑하며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말이죠.


만약 여러분은 이 느낌을 잘 모르시겠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우리 팀에 또라이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나일지도 모른다'는 말처럼 평범한, 보통의 팀원을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이에요. 갑자기 이해가 되지 않나요?


종종 '보통'이란 잣대가 나에게만 가혹하게 구는 것 같아 속상하더라고요. 이쯤 되니 그놈의 '보통'은 누가 정한 기준인지도 궁금해지죠. 그런데 불현듯 저도 다른 사람에게 엄격한 '보통'의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어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있던 순간이었는데도 갑자기 제 자신에게 소름이 돋더라고요. 그리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는데, 그 대단하지 않음을 가장해 제 일상에 티 나지 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보통답게 말이죠.



사건은 그냥 평범한 하루에 일어났습니다. 길어진 코로나 탓에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재택근무를 하던 날이었죠. 갑자기 노트북이 고장 났는지 블루 스크린이 뜨더라고요. 한 15분 정도 지났을까, 재부팅이 끝나 노트북을 다시 켤 수 있게 되었어요. 길어봤자 한 15분 정도 오프라인이었는데, 회사로부터 메신저를 끄지 말고 켜놓고 일하라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순간 당혹스러워 재빨리 해명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보통은 무슨 일로 메신저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먼저 확인하고 켜놓으라고 이야기하는 게 맞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 반감이 생기더라고요. 당시 상황을 잘 설명하고 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화가 나는 거예요. 아직까지도 재택근무는 출근과 같은 취급을 받지 못하는구나 하면서 말이죠.


퇴근하고 샤워하면서 그때 상황이 다시 생각났어요. 그리고 순간 머릿속을 스치게 된 거죠.

왜 나는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어떤 상황이었는 지를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을까 하고 말이죠. 


평소에는 사회가 부여한 '보통'이란 잣대의 가혹함에 분개하면서 저야말로 제가 세운 '보통'의 기준을 들이밀고 있었던 거예요.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호들갑 떨면서 말이죠.


저는 제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알고 존중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대놓고 의견일 때의 일이었단 걸 깨달았습니다. 실제론 의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제가 정한 '보통'의 기준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거기서 불필요하게 감정을 소모하고 있단 사실도 말이죠.



물론 지금도 순간순간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분노와 짜증이 저를 시험하지만 잠시 멈추고 그게 저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아닌지를 한 번 더 생각해볼 여유는 갖게 되었습니다.(정확하게는 의식하면서 노력 중이죠.) 상대방의 '보통'은 또 다르지 않을까, 제 자신에게 알려주면서요.

작가의 이전글 어제 정한 하루짜리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