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참 거시기합니다. 다른 마땅한 표현이 생각나질 않네요.
꿈에 대해 묻는 것도 답하는 것도 무엇 하나 바로바로 이루어지질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꿈에 대해 물으면 아직도 꿈타령이냔 소리를 들을 것 같고 누가 제게 꿈에 대해 물으면 그때부터 바삐 돌아가는 머릿속이 피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가 나누는 모든 대화에서 꿈이란 단어가 사라진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아! 난 건물주가 꿈이야, 난 유튜버가 될 거야와는 다른 말인 거 다들 아시죠?
다들 그럴 거라고 생각하며 지내다 어느 날 회사 선배들과 술자리에서 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돈 벌어서 이 담에 뭐할 건지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알싸하게 술기운이 오른 2차였던 탓인지,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사람들만 모인 덕분인지, 하나 둘 마음속에 간직한 꿈을 꺼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선배는 자기가 직접 불쇼를 하며 고기를 구워주는 고깃집 사장이 되고 싶다고 했고, 어떤 선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죠. 또 어떤 선배는 전망 좋은 카페를 열고 싶다고 했고, 한 동기는 수제 맥주집을 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들 각자의 꿈에 대해 고민하고 시간을 투자하고 있더라구요. 주말마다 핫플로 소문난 카페를 찾아다닌다거나 양조장 투어나 주조 원데이 클래스를 듣거나 나중에 좋은 고기를 공급해줄 정육점 사장님을 알아두거나 말이죠.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제 차례가 다가올수록 정말이지 도망가고 싶었어요. 갑자기 왜 이 주제가 나왔지부터 시작해서 그냥 꿈이 없다고 말할까, 뭐라도 지어서 말할까 수없이 고민했죠. 제 앞에서 누군가 한 명이라도 이제 꿈같은 건 없다고 말했더라면 저도 꿈이 없다고 말했을 텐데. 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 그 순간 떠오르는 걸 아무거나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두고두고 그 순간이 창피하게 느껴집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요.
이젠 더 이상 제가 아는 가장 멋진 직업이 제 꿈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이 꿈이라 말하기만 해도 온갖 이쁨을 독차지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지금 꿈이 뭔지 말하는 순간 그 말에 대한 변명이라도 하듯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최대한 빨리 덧붙입니다. 비웃음을 당하거나 생각 없는 애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죠. 현재 제 처지와 상황도 고려해 이 꿈이 어느 정도 현실적인 꿈인지는 말을 내뱉기 전에 이미 판단을 끝냈어야 하구요. 저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꿈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찰나의 순간에도 이렇게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속으로 '꿈은 무슨.'이라 생각하고 나쁜 생각이라도 한 듯 머릴 흔들며 생각을 떨쳐버리고 다시 일상을 살아가죠.
그래서 유독 선배들과 꿈에 대해 한 이야기가 오래도록 머리에 남나 봅니다. 어쩌면 제가 스스로 정한 제약 인지도 모르겠어요. 꿈은 이룰 수 있을 법한 현실적인 것이어야 하고, 꿈을 이룰 정돈 아니더라도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노력을 하고 있어야 하고, 너무 짧지도 그렇다고 너무 오래되지도 않아야 한다고요. 너무 오래된 꿈도 미련해 보이잖아요. 그런 생각을 너무 오래 가지고 있어서 어떤 꿈도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질 않더라고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미래에 대한 고민들, 최근 읽은 책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결심한 하루짜리 꿈이면 뭐 어때?
오래된 꿈과 노력은 그에 대한 간절함과 끈기를 보여주겠지만 그 모든 것에도 시작의 순간이 있었겠죠. 늦게 시작한 만큼 책임의 무게는 무겁겠지만 그것도 짊어져야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언제든지 하지만 늘 되뇌지 않으면 자꾸 까먹고 딴 길로 빠지곤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못 박으려고요. 하루짜리 꿈이면 뭐 어떻습니까. 어제 정한 거라도 내 꿈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