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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작가 Jan 04. 2023

새벽 4시 46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새벽 4시 25분 완전히 잠에서 깼다. 사실 눈을 뜬 것은 이보다 더 이른 시간이다. 어두운 방에 누워 1시간 가까이 SNS 속을 배회했다. 지금 일어나면 아이와 둘이 보낼 낮 시간이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좀 더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머릿속에서 생각의 타래가 부풀어 올라 도통 사라질 생각을 하질 않는다. 그래 그냥 일어나 보자. 새해부터 시작해 보겠다던 글쓰기나 한번 해보자. 자리를 박차고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는 거실로 나왔다.


집이 건조하다. 이 집에서 건조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방치하고 산 지도 벌써 햇수로 7년째다. 작은 가습기로는 바짝 타들어가는 혓바닥이 나아지질 않는다. 백태가 잔뜩 낀 것처럼 꺼끌꺼끌하다. 내 몸이 불편하다는 생각과 아이에게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동시에 일어난다. 아이가 태어난 지 208일째, 나는 여전히 나보다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엄마되지 못했다.


아이를 재우고 일찍 잠들면 2022년에서 2023년으로 바뀌어있을 줄 알았는데 깨어있을 기회가 생겼다. 지난 12월 31일, 아니 1월 1일,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가족들과 새해 소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글쓰기와 책 쓰기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개인적인 소망이 가족의 건강과 안녕보다 여전히 앞다. 이는 유전이다. 굳이 따지자면 '친탁'. 우리보다 내가 우선인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익히 보아온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인자한 어른의 수용력을 찾기 어렵다는 타박은 결국 나를 향한 질책이 될 것이다. 아니,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다. 나는 사는 내내 모성과 자기애 사이에서 고민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자책하는 행동을 반복할 운명이라는 확신이 든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아니 어떤 책을 쓰고 싶은가? 책을 쓰겠다면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가 중요한데, who와 what에 대해 명료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경험이라는 발을 어설프게 걸치고 있어 책으로 쓸 수 있을만한 몇 가지 주제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구체적으로 다듬고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쓰고 싶은 말이 넘쳐흘러 주체하지 못하는 그런 유의 인간은 아닌 게 분명하다. 오히려 구체적인 경험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시작하질 못하고, 내가 가진 것들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쪽에 가깝다. 사실 두 번째 책도 구체적인 기획 없이 이런 끄적임들이 모여 작은 물줄기가 시작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한번 시작된 물줄기는 멈출 줄을 모르고 세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렀다. 그렇게 만난 책이 <글쓰기에 진심입니다>이다.


'진심'이라는 단어가 이르는 곳이 책이 되었던 경험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럼 나는 요즘 무엇에 진심인가? 무엇에 온 마음을 쏟고 있는가? 하루 중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 무엇인가? 마음과 신경과 관심이 가장 향하는 곳이 어디인가? 질문을 바꿔볼까?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출산 이후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 있는 것은?


오직 멈추지 않는 것은 '기록'이다. 방법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기록'을 해야겠다는 마음만은 계속 가지고 있다. 긴 감상을 남기지 못하는 것들은 짧은 메모로, 이조차 버거울 때는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기록하지 않은 삶은 기억되지 않는다는 두려움은 어느새 확신이 되어 나를 기록하게 만든다.  


정처 없이 떠들고 있는 이 글은 2023년 1월 4일 새벽 4시 46분의 공기를 머금은 기록이다. 오늘부터 다시 1일이다. 글 쓰는 이로 돌아온 1일, 기록하는 삶으로 돌아온 1일, 이 시간은 엄마이기 이전에 나라는 사람 자체를 보듬고 아껴주는 시간이다. 글쎄, 내가 써나갈 글들이 누구를 향하고 무엇을 말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쓰다 보면 길이 생기지 않을까? 지금 필요한 것은 흰 여백에 활자를 쏟아내고, 퇴고를 하겠다며 돌아보지 않고, 누가 보아도 개의치 않겠다는 마음으로 내보이는 용기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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