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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작가 Jan 05. 2023

'오하운'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게 어려운 이의 작심사일 운동법

한 분야의 일을 10년 이상 하면 전문가라 불린다고 하던데, 나는 목표를 수립하고 계획을 세워 단계별로 실천하는 일을 무려 17년 동안 했다. 이 정도로 오랜 기간 같은 일을 한다면, 소질이 없던 사람도 어느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래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나이지만 유독 성취도가 형편없는 분야가 하나 있는데, 바로 운동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꽤 오랫동안 나 자신이 운동을 좋아한다 착각 속에 살았다. 대학교 4년 내내 스노보드 동아리 활동을 했다. 당구 마니아들에게 흔하다는 착시 현상을 경험하기도 했다. 파고다 어학원에서 토익 수업을 듣다 강사 뒤편의 화이트보드가 눈 쌓인 슬로프로 보여 눈을 비볐던 게 여러 번이다. 사살사댄스 동호회에 가입한 이후로는 저녁을 먹고 수업을 들으면 춤 출 때 불편하 식사를 거를 정도였다. 좋아하지 않았다면 설명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누나는 돈 쓰는 운동만 하잖아" 어느 날 동생이 내게 이렇게 쏘아붙였다. 겨울에는 스노보드를 여름에는 웨이크 보드를 타러 다녔다. 퇴근 후에는 필라테스와 벨리댄스를 배웠고, 주말이면 살사 동호회 활동을 한답시고 강남과 압구정을 누볐다. 개인 PT도 꽤 오래 받았고 실내 클라이밍 장을 기웃거린 적도 있다. 동생 눈에는 이런 누나가 대책 없는 된장녀로 보였나 보다. 당시는 발끈했지만, 생각해 보니 영 틀리지도 않다.


돈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산책, 달리기, 등산 등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신체 단련이라는 진짜 목적이 아닌 보여주기에 더 치중했던 게다. 옷이나 가방처럼 당시의 내게는 운동 또한 나를 드러내는 부속품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니 트렌디한 커리어 우먼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에 걸맞아 보이는 운동을 골라 돈을 써가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물론 그 시간들이 모두 속 빈 강정처럼 허세로 찌든 시간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기대 이상으로 내 적성에 맞아 직업을 바꾸고 싶었을 정도의 것도 있었으니.

그래서 지금은 이 중 어떤 운동을 하고 있을까? 예상했겠지만, 내가 즐겼던 화려한 운동들은 모두 과거형이 되었다. 지금은 그 어떤 것도 하고 있지 않다. 어느 순간 통렬히 깨달았다. '아,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구나.' 시간이 없다, 할 일이 많다, 피곤하다 등등 뻔하고 뻔한 온갖 핑계들이 운동만 앞두면 기다렸다는 듯이 마구 피켓을 들어댔다. 결국 나는 알아봐 달라는 이들의 아우성을 버티지 못하는 척 KO 패를 선언했다. '그래 오늘은 안 되겠다. 내일부터 시작하지 모.'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오하운'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이럴 때면 습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내 이력을 수정하고 싶어 진다. 그 습관 프로젝트에 운동이 필수 미션이었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약속의 효과를 이용하면 좋다. 스스로와의 약속도 좋지만, 내 경우를 보니 자신과의 약속은 눈 질끈 감고 외면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외부에 선언하고 공개적인 약속을 해야 했다. 그게 내게는 특효약처럼 잘 통했다. 내꿈소생 커뮤니티에서 진행하는 1일1홈트를 신청해 매일 실천하겠노라 선언하고 참여했다. 누군가와 함께 하니 해내는 날이 해내지 못하는 날보다 많아졌다.


지인 중 나만큼이나 운동을 싫어해 늘 다짐하지만 실천을 못하는 이가 있다. 그는 거창한 목표를 세웠다 실패하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운동화 신기'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렇게 하찮은 목표를 세워놓으니 운동은 못해도 적어도 운동화는 신게 되더란다. 나 역시 운동만큼은 굉장히 소박한 목표를 세운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지속하는 것이니 말이다.

한동안 나의 목표는 매일 1분씩 플랭크를 하는 것이었다. 허리 디스크가 있는 내게 꼭 필요한 운동이란 걸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지가 몇 년 째였다. 동료의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에는 1분 플랭크 실천을 선언하고 5000원을 걸기도 했다. 공개적인 약속을 한 셈이다. 결과는? 그 10일을 채우는 게 뭐 어렵다고 하루를 빼먹어 실패했다. 그렇지만 못한 날보다 한 날이 더 많았으니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다고 자평했다.


실패라면 또 어떤가? 실패하면 까짓것 또 선언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겠나? 내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작심삼일 7번면 21일 성공'이다. 3일에 한 번씩 계속 새로 다짐하기를 반복하면 된다. 목표를 수립하고 계획을 세우는 게 취미이자 특기인데, 3일에 한 번씩 재능 발휘도 할 수 있고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여전히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운동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나는 각종 장치로 미약한 운동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면 좀 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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