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조금 불편한 단어, 엄마

엄마가 아닌 30~50대 여자는 비정상일까?

by 유미작가


"유미야, 와줘서 고마워. 돌잡이까지 보고 갈 거지?"

"아, 미안해 나 회사 후배 결혼식이 있어서 밥만 먹고 가봐야 할 것 같아. 1년 동안 새별이 키우느라 내 친구 진짜 고생했어. 축하해~!!"


취미 부자는 주위에 챙겨야 할 사람도 많고 그 덕에 경조사도 늘 많은 법이다. 친한 친구, 회사 동료, 동아리 선후배, 동호회 지인, 사석에서 알게 된 친구의 친구까지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다양한 타이틀을 지닌 지인들이 내 주위에 가득했다. 당시에는 우리의 프렌드쉽이 순도 100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나는 이들의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열심히도 챙겼다.


결혼 후 연락이 잠시 소원해졌던 그들이 의리파 친구 잘 지내냐며 출산 소식을 알려오면, 그 호칭에 응당 대응해 줘야 할 것만 같은 책임을 느끼며 산후조리원에 면회를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잔치 초대 링크를 보내오면, 주말 데이트 대신 수많은 조카들의 돌잡이 직관을 하느라 바빴다. 이후 점점 연락이 뜸해지고 멀어진 이들이 지금은 다들 잘 지내는지 알 길이 없다. 어쨌든 이렇게 보고 들으며 결혼하면 임신하고, 임신하면 출산하고, 출산하면 좌충우돌 초보맘으로의 삶의 시작을 간접적으로 경험하였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주위에서 수도 없이 보아왔던 그 과정이 내게는 어째 잘 진행되지 않고 삐걱거렸다. '그래, 한 번은 그럴 수 있지', '그래 두 번도 그럴 수 있지.', '엥? 왜? 뭔데? 왜 나만 이런 건데?' 엄마라는 이름, 워킹맘이라는 타이틀을 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예순이 넘은 엄마는 지금도 여전히 자식들에게 헌신하고 계시다. 마흔이 된 딸은 여전히 엄마의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엄마의 희생이 내게 부채감을 느끼게 할 때도 있다. 내리사랑을 받은 만큼 다시 내리사랑을 전한다면 이 부채감이 씻길 것 같은데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니 해소되지 않고 계속 쌓이기만 한다. 내게 '엄마'라는 이름은 감사한 엄마의 희생보다 내가 가진 결핍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좀 괜찮아졌지만, 나는 '엄마'라는 타이틀을 앞세우거나 강조하는 모임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커뮤니티나 온라인 모임도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면 찾지 않는다. 그 공간에서 엄마가 아닌 나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3~50대 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티에서 육아와 엄마라는 키워드가 없는 곳을 고르기는 사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친구들과의 모임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 이야기가 아닌 나와 너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나만의 바람처럼 느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비정상' 무리에 속한 느낌을 받을 때도 많았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정해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로망도 기대도 미해졌다. 애타는 갈망도 잦아든 지 한참이다. 번 일을 겪으며 나라는 사람은 욕심이 많고 의지도 강하지만 안 되겠다 싶을 땐 또 빠르게 포기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 영역이 내게 그런 부분일지도. 안 되겠다 싶은 일. 정신승리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 여자 자격지심이 이만저만이 아니구먼'이라고 흉을 보아도 어쩔 수 없다. 당연한 거 아닌가? 일단 내가 사는 게 먼저 아니겠나? 정신 승리를 해서라도 자격지심을 가져서라도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게 우선이지 않겠나?


20대의 나는 신발 덕후였다. 보기에만 예쁜 뾰족하고 높은 구두를 열심히 사 모으고, 신을 때마다 어김없이 발뒤꿈치가 까져서 고생했다. 삶의 기준이라고 다르겠나? 그럴싸하고 멋져 보인다고 억지로 집어넣으려 애써봐야 들어가지도 않을뿐더러, 어떻게 집어넣어다 해도 제대로 걸을 수 없고, 용케 몇 걸음 걸었다 해도 늘 고생했던 나의 발뒤꿈치처럼 까지고 피 흘리는 상처만 가득할 것이다. 타인이 세운 기준에 나를 맞추려 접히고 까져서 고생하지 말고, 내게 맞는 생활 방식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려면 뭐가 필요하겠나? 결국 자기 이해이다.


책 《행복의 정복》에서 버트런드 러셀 작가는 행복의 필수조건은 우연히 이웃이 되거나 알고 지내게 된 사람들이 지닌 비본질적인 취미나 욕망에 견주어 자신의 생활 방식을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충동으로부터 비롯한 생활 방식을 확립하는 것에 있다고 하였다.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엄마라는 이름은 아직 내게 조금 불편한 단어이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지금보다 한결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비정상 무리에 속했다는 결핍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