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온 택배, 구운 마늘과 마늘 버터

by 유미작가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있어서인지 나는 이제 더 이상 임신과 출산에 대한 생각이 간절하지 않다. 혹은 '우리는 딩크족이야'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남다르고 멋지다는 반응에 취해 임신을 바라는 마음을 누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임신의 주체인 나는 이처럼 별생각이 없는 반면, 주위에는 여전히 내 건강과 출산을 소망하는 이들이 많다. 멀리서 보내온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음식 꾸러미였다. 친정 부모님이 근처에 사시기 때문에 택배로 음식을 받아볼 일이 거의 없었다.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자 진한 김치 향이 확 올라왔다. 박스 안쪽으로는 구운 마늘 한 봉지와 마늘 버터가 담긴 작은 유리병이 보였다.

지난 주말 동료 작가님 한 분이 내게 두부와 현미를 피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마늘과 죽염을 많이 먹는 게 좋다며 장문의 메시지를 연거푸 보내주셨다. 하필 외출 중이었던 나는 시간을 들여 메시지를 읽어볼 여유가 없었다. 우선 감사인사를 전하고 귀가해 읽어보겠노라 말씀드렸다. 친정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 딸들처럼 적극적이지 않은 반응이 느껴지셨나? 아니면 상대가 자신의 조언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간파하셨나? 작가님은 안 되겠다며 직접 보내주시겠노라 하셨다. '네? 보내주신다고요? 무얼요?' 작가님이 저 멀리 지리산에서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이 도착했다. 이 물건들을 받아 들고서야 작가님이 보내주셨던 문자를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자식은 부모나 조상의 음덕으로 크는 게 틀림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귀한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나셨으니 훌륭한 후손을 꼭 갖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냥 아기를 갖는 게 아니고 위대한 성인 같은 큰 인물을 낳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큰 욕심을 갖길 바라요. 그러실 수 있는 품성이 되실 거예요. 여성의 자궁은 평범한 아이일 때는 자궁이지만 큰 인물이 잉태되면 엄마의 자궁은 아이한테는 궁전이 된다고 합니다. 꼭 2세를 갖기를 바랍니다. 자연의학으로 몸을 먼저 만들어보십시오. 여성의 몸이 차갑기 때문에 포태가 안 되는 것이 제일 이유라는 말씀도 신약본초 책에 있는 내용입니다."

과분한 말씀이다. 나는 그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 나는 가슴이 따뜻한 머리형 인간이다. 작가님의 문자를 처음 받았을 때 감사한 마음 이면에 '자연의학'이라는 단어가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늘 그랬다. 과학적으로 기술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들에 인색한 편이었다. 공대를 나와 논리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이의 한계이다. 다르게 말하면 나는 이성적인 가슴형 인간이다. 이해할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따뜻한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크기가 대체 얼마나 크길래 직접 만난 적도 없고 온라인으로만 소통했을 뿐인 젊은 동료를 이렇게 진심으로 생각해 주실 수 있을까 싶어 감사하고 존경스러웠다.

"작가님! 어제 택배를 보냈습니다. 구운 마늘 버터는 빵이나 크래커에 발라드시고요. 마늘 구워서 드시면 너무 좋은데, 마침 구워놓은 마늘이 있어서 보냈어요. 죽염 김치도 맛 좀 보시고요. 건강해져서 건강한 아이 출산하시길 바라는 마음 담아 보냈습니다."


정말 죄송스럽게도 시어머님께서 보내주셨던 구운 흑마늘을 입에도 대지 않은 전적이 있는 나이다. 엄마가 자주 만들어 주시는 반찬 중 하나인 마늘양파장아찌에서도 양파만 쏙쏙 골라 먹는 나이다. 그런 내가 작가님께서 보내주신 택배를 풀어보자마자 마늘 하나를 까먹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고 그러고 싶었다. 쓴 마늘이 아니라 작가님의 사랑을 먹은 기분이었다.


가족은 그럴 수 있다. 가족은 내 일처럼 너의 일을 염려하고 마음을 쏟는 게 비교적 당연하다. 그게 묵묵하지만 끔찍한 피붙이의 사랑이다. 인연의 깊이와 시간과 무관하게 내게 사랑을 퍼부어주는 이들을 만날 때면 여러 가지 감정이 든다. 마음 씀씀이가 그렇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그들에 대한 존경, 과연 내가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의문, 혹여나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 그들의 관심과 사랑에 대한 감사와 벅차오름. 작가님이 보내주신 택배 상자 앞에 우두커니 선 내 안에서 이런 여러 감정들이 제멋대로 소용돌이쳤다.


주말 아침은 간단히 빵과 커피로 해결할 때가 많다. 베이글, 치아바타, 식빵, 바게트 어떤 종류의 빵이어도 좋았다. 늘 함께 곁들이던 딸기잼과 크림치즈 대신 작가님이 보내주신 작은 병을 꺼냈다. 넉넉히 올린 마늘 버터를 펴 발라주니 내가 앉은 곳이 파리 샹젤리제 거리 같았다가, 다시 지리산 기슭 시원한 숲길 같았다가 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를 꼭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조금씩 희미해가고 있다. 남편과 나, 이렇게 성인들만의 삶도 살아보니 나쁘지 않았다. 아니 사실 꽤 만족스러웠다.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는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이었다. 고소한 향이 나는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진한 커피를 홀짝이며 책장을 뒤적이는 여유를 부릴 수도 있었다. 물론 자상하고 합이 잘 맞는 남편 덕분이란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지금의 내가 혹시 임신을 하게 된다면 태명은 지리산 작가님의 몫으로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