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말 못 할 비밀 하나를 안겨 주었고, 세상으로부터 나를 자연스럽게 고립시키고, 인간관계를 정리하게 만들었고, 증상 놀이와 난임 방학을 오고 가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하였다. 일상 속에 난임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만 하면 나는 손쉽게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처연한 사람이 될 수 있었고, 나를 향한 위로가 담긴 시선과 말들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
난임이라는 말이 임신이 어렵다는 뜻이니, 사실 지금의 내 상황을 놓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럼에도 저 단어에서는 슬픔과 한 같은 것이 느껴져서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려온다. 결혼이 조금 늦긴 했지만 남편과 나 모두 건강했고, 결혼 후 몇 개월 만에 임신이 되기도 했었기 때문에 임신이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원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은 처음이었다. 아마 남편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둘 다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왔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난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울컥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샘이 촉촉하게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세상과 공유할 수 없는 나 혼자 간직해야 할 슬픔을 안고 있는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듯했다. 그러나 사람은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면 그 어떤 충격과 슬픔에도 무던해지기 마련이다. 나도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을 보내면서 내 앞에 붙은 난임이라는 단어에 무뎌졌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난임 병원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고, ‘난임 일기’라는 타이틀이 붙은 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블로그에 쓰고 발행할 정도가 된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난임의 과정을 긴 터널이 아니라 동굴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었다.
터널은 출구가 있지만 동굴의 끝은 단단한 벽이고, 동굴 속 어둠에 적응하고 난 후에는 오히려 그 안에서 아늑함을 느끼게도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포로들에게 흔히 보였다는 체념 상태가 난임이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붙일 때마다 나에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왜 나의 삶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냐는 원망은 어느새 체념과 포기가 되어 어둠에 계속 머물러있는 지금의 상태를 오히려 편안하게 여기게 될까 봐 두렵기 시작했다.
5번째 시험관 시술 결과를 통보받고 난 후 처음 맞는 주말, 남편과 <슈가맨>이라는 예능프로를 보았다. 시대를 앞서 간 비운의 천재 가수 양준일이 추억으로부터 소환된 이 날의 주인공이었다. 30년 전 그의 모습은 지금의 기준으로도 세련되고 멋졌지만, 그 당시는 주류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아웃사이더였다.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 도장을 찍어주지 않겠다.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그에게 쏟아놓았다는송곳 같은 말에서 그가 얼마나 이 사회로부터 배척을 당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대의 그는 하루하루가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는 듯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삶도 녹록지 않아 보였지만 웨이트리스를 하며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50대의 그는 30년 전의 자신에게 띄우는 영상편지에서 이런 말을 전했다.
“준일아~ 네 뜻대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내가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수밖에 없어!”
시간이 흘러 아이를 키우며 지지고 볶는 일상에 지친 워킹맘의 입장이 되어 아이를 기다리며 임신을 준비했던 지금의 이 시기를 돌아보게 된다면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네 뜻대로, 혹은 계획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그의 메시지는 지금의 나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 같았다.
난임이라는 단어는 언젠가 출구가 있는 터널을 통과하여 그 출구 밖으로 나서면 찬란하게 쏟아지는 빛이 있으리라는 희망과 믿음을 자꾸 작아지게 만든다. 그의 위로에 힘입어 이 난임이라는 단어와 작별해보면 어떨까? 나는 난임이 아니라 그저 임신 준비를 조금 특별하게 하고 있을 뿐이라고 되뇌어본다.
“저는 조금 특별하게 임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결국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강원도를 향할 때면 길고 짧은 터널이 수없이 이어진다. 어렸을 때 나와 동생은 터널을 진입할 때마다 숨 참기 놀이를 즐겨하였다. 긴 터널을 지날 때면 얼굴이 불 고구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서로 못 버티겠다는 눈빛을 보내며 아빠에게 빨리 터널을 통과해달라고 낑낑거렸다. 작은 점처럼 희미하던 빛이 어느새 차 앞유리에 쏟아져 내리면 우리 둘은 동시에 숨을 파~ 하고 토해내며 까르르 웃곤 했다.
어쩌면 삶은 이런 길고 짧은 터널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지나고 있는 이 터널의 끝이 꼭 아이가 아니더라도, 내가 지금 이 길을 지나가는 의미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번 터널이 아니라면 다음 터널, 다음 터널도 아니라면 그다음 터널.. 숨 참기 놀이를 시작하려면 터널에 들어서기 전 양볼 가득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내 볼을 가득 채운 공기는 결국 터널의 끝에 다다를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이지 않을까.
가수 양준일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날그날 최선을 다해 살고 있고, 굳이 계획이라면 겸손한 아빠와 남편으로서 사는 것이라고 수줍게 그러나 누구보다 맑은 미소로 전했다.
나 역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보내고 있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쑥뜸을 뜨고, 탄천변을 걷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상들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채우며 보낸 오늘 하루는 긴 터널의 끝을 향해 어제보다 조금 나아갔음이 분명하다.
이 터널을 지나 내가 맞이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그날이 사뭇 기대된다. 모든 것이 딱 적당하고 완벽하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 쏟아지는 밝은 빛처럼내게 올 아이를 맞이할 모습을 가만히 그려본다.